사람들은 어째서 그토록 ‘이야기’를 좋아할까. 입으로 전해져 온 구전에서, 시에서, 노래에서, 무대에서, 때로는 춤으로, 때로는 노래로, 라디오에서, 영화관에서, 티브이에서, 수많은 OTT에서, 웹에서 지치지도 질리지도 않고 이야기를 본다. 어떤 이야기는 주인공이 늙어 죽고 그 자식들의 대까지 이어지며 몇십, 몇백 회를 넘어가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는 수천 년을 지나오며 셀 수 없이 변주되면서도 원형을 잃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에 살이 붙고, 어떤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 쓰였어도 마치 정말 있었을 법하다.
보이지도 않는 신과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 수많은 영웅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중에서도 그리스 신화의 뮤즈 칼리오페의 아들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를 찾기 위해 지옥으로 내려갔던 이야기는 특히나 음악극 쪽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다.
〈오페라를 탄생시킨 야코포 페리〉 (출처: 위키피디아)
오페라를 탄생시킨 인물로 알려진 야코포 페리(Jacopo Peri)가 남긴 최초의 오페라 악보가 음유시인이면서 인간의 몸으로 죽음을 이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오르페》(1600)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그로부터 고작 7년 뒤, 몬테베르디(C. Monteverdi)는 같은 소재지만 보다 묵직한 《오르페》를 발표하면서 아폴로가 오르페오를 구원하는 나름의 해피앤딩을 구현하기도 했다. 이 오페라는 2015년 서울시오페라단에 의해 한국에서 초연됐다.
프랑스에서 큰 환영을 받았던 작곡가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역시 사랑의 여신이 오르페를 되살리는 해피엔딩 버전으로 각색한 《오르페와 유리디체》(1762년 초연)를 내놓았다. 비록 해피엔딩으로 각색되긴 했어도 에우리디체가 다시 지옥으로 끌려간 후 오르페가 부르는 아리아는 그 자체로 당시의 비극적 멜로디의 정점이다. 때문에 결말부의 해피엔딩이 오히려 사족 같을 정도다. 미니멀리즘 작곡가로 유명한 필립 글라스(Philip Glass) 역시 오페라 《오르페》(1993년 초연)를 만들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싱어송라이터인 아나이스 미첼(Anaïs Mitchell)이 대본 쓰고 가사 쓰고 작곡하며 북 치고 장구치고 심지어 콘셉트앨범에서는 스스로 노래까지 불렀던 뮤지컬 《하데스 타운》이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하데스 타운》의 오르페는 왕자의 위엄 따위는 없다. 미국의 대공황기를 연상하게 하는 무대 위. 카바레에서 일하는 가난한 종업원에 지나지 않는다. 추위와 굶주림을 피해 그곳에 도착한 유리디스를 본 오르페는 한눈에 반하지만, 유리디스는 그의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가난한 유리디스에게 사랑은 사치다. 눈보라보다 날카롭고 차가웠던 유리디스의 마음은 오르페의 노래에 녹아내린다. 하지만 사랑은 밥을 먹여주지 않기에 유리디스는 하데스를 향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다.
〈아나이스 미첼의 《하데스 타운》〉 (출처: Hadestown.com/YouTube 에스앤코)
뮤지컬 《하데스 타운》의 강하고 아름다웠으나 결국에는 쓰러진 유리디스에 비해 오르페는 유리디스가 죽기 전까지는 세상 우유부단하고 대책이 서지 않는 인물이다. 세상을 바꿀 노래를 쓰느라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선택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유리디스가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그를 막지는 못한다. 저승의 왕과 왕비 앞에서 세상을 바꿀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고 마침내 유리디스를 구했을 때, 아니, 구했다고 착각했을 때, 오르페의 인생은 정점을 찍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오르페는 간신히 획득한 관객들의 애정을 와르르 잃는다.
관객들은 오르페가 돌아볼 것을 알고 있다. 유리디스에게 지상의 나날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수천 년 전 이 작품을 처음 본 관객들이 그러했듯이 탄식하고 한탄하며 마지막 한 순간을 참지 못하고 돌아본 오르페를 탓한다. 뒷자리에서 ‘어쩐지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니!’하고 나직하게 내뱉은 한탄은 웃음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공연은 영리하게도, 분노의 꽃을 피운 상태로 끝내지 않는다. 장면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봄이 오고, 유리디스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오르페는 또다시 한눈에 반한다. 봄날처럼 마음이 사르르 다 녹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관객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수천 번, 수만 번이 거듭되어 왔음을 알게 모르게 받아들인다.
좋은 이야기에는 물음표가 있고, 그 물음표는 수많은 변주를 가능하게 한다. 수천 년 전, 음유시인이 사람들에게 노래했던 이야기의 비극적인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어 부르고 더 유명해졌어도 비극적인 결말은 살아남아 전해졌다. 돈도 돈이지만 ‘바드’라고 불리던 음유시인들이 욕을 먹지 않으려면 어쨌든 저승행을 불사한 인물에게는 해피엔딩이 따라야만 했다. 아니라면 오르페와 같은 결말을 맞을 수도 있다. 오르페는 아마도 역사상 거의 최초로 자신의 팬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죽은 인물이니 말이다.
〈조선시대 전기수를 재구성한 일러스트〉 (출처: 국립극장, 일러스트레이터: 김도연)
서양에 바드가 있다면 조선에는 전기수가 있다. 조선 후기에 성행했다고 하지만 ‘직업’이 되기 전에도 사람들은 등잔불 아래 모여 전기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전기수가 돈을 버는 방식도 매우 재밌다. 그저 읽어주기만 해서는 먹고살 수 없었다. 전기수는 관객을 모으기 위해 장소를 옮겨가며 이야기를 진행했고, 아슬아슬한 부분마다 이야기를 끊으면서 관객을 이끌고 새로운 장소로 옮겨가며 관객을 불려 나갔다. 그리고 침이 꼴깍 넘어가는 중요한 대목에 이르면 문득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러면 안달 난 사람들이 돈을 던졌고 그제야 비로소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숙향전」·「소대성전」·「심청전」·「설인귀전」 등과 같은 이야기가 인기였다고 한다.
전기수 가운데는 허망한 죽음으로 실록에 실린 사람도 있다. 정조 때 유명한 전기수였던 이업복의 일이다. 그는 이야기 속 인물이 된 듯 연기하며 애절하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달인이었다고 하는데 그가 악역을 너무 실감 나게 묘사한 게 화근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옮겨오며 빠져들었던 관객 하나가 악인에게 벌을 내리겠다며 잘 벼린 낫 하나를 품고 왔던 것이다. 이 안타깝고 어리석은 자가 콧김을 내뿜으며 기회를 엿보는 것도 알지 못하고, 아니 어쩌면 그 모습에 더욱 달아올라 더 더 실감 나게 악행을 묘사했을지도 몰랐을 이업복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정조가 어이없는 죽음이라고 언급했던 이 사건은 『정조실록』 정조 14년 8월 10일의 기록으로 남았다.
18세기 정조가 다스리던 시절의 조선은 소설의 전성기였다. 서울 도성 안에 15곳에 이르는 책 대여점인 세책점이 성업했다고 하는데 세책점은 이야기를 잘게 쪼개 묶어서 사람들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계속 돈을 지불하고 다음 권을 빌리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 어렸을 때 만화책을 빌리러 만화 대여점에 가면 누군가 꼭 중간만 쏙 빼서 빌려가곤 하는데, 그때의 심정이 아마도 세책점에서 새 책을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과 같을 터였다. 다행이라면 그 당시보다 책이 비싸지 않아서 책을 빌려보다 집안이 기울 일은 없다는 것뿐.
〈서울예술단 창작 가무극 《금란방》〉 (출처: 서울예술단)
이러한 전기수가 활동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퓨전 사극 뮤지컬이 《금란방》이다. 《금란방》은 2018년에 초연된 이후 공연을 거듭하면서 점점 더 관객을 깊숙이 끌어들이는 이머시브 공연으로 발전하였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그대로다.
이야기를 재밌게 하기 위해 배경에 두 가지의 금기가 세워지는데 정조를 연상케 하는 왕이 백성들에게 금주와 이야기를 금지한다. 마치 영조와 정조를 합친 듯한 설정인데, 그래놓고 정작 왕은 총애하는 신하를 불러 이야기를 전기수처럼 맛깔나게 읽으라고 닦달을 하는 인물이다. 하지 말래도 이미 맛난 술과, 즐거운 이야기건만 하지 못하게 하자 사람들은 몸이 달아오른다. 금란방은 몸이 달아오른 사람들이 밤에 몰래 모이는 조선시대 클럽의 이름이다. 클럽 금란방에는 절대 인기를 구가하는 전기수가 있으니 이자상이다.
〈뮤지컬 《금란방》의 한 장면과 하이라이트〉 (출처: 서울예술단/YouTube 더 뮤지컬)
이자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수많은 낭자들이 체면을 버리고 모여든다. 이자상은 이들의 우상이자 아이돌이다. 이자상을 짝사랑하는 매화도 이자상이 등장하는 날이면 날듯이 금란방으로 향하는데, 왕으로부터 책 좀 맛나게 읽으라고 닦달을 들어야 하는 매화의 아비 김윤신도 책 재미나게 읽는 법을 익혀보고자 딸 매화의 장옷을 쓰고 여장을 한 후 금란방으로 향한다. 그저 신나서 자신의 우상인 이자상을 보러 가는 딸 매화와 달리 김윤신은 목숨이 걸린 일이다. 왜냐하면 왕이 제대로 못 읽으면 귀양을 보내겠다며 농을 날린 것인데, 매사에 진지한 김윤신은 농을 진으로 받아들인다.
설정부터 이미 조선시대로부터 벗어난 덕에 뮤지컬 《금란방》은 음악도 시대를 초월해 널을 뛴다. 전통악기에 밴드 악기인 드럼 베이스 키보드가 들어오고 디제이 믹스가 더해져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리듬도 가미됐다. 이 금기 클럽 금란방에서 아비 김윤신과 딸 매화, 매화의 정혼자인 윤구연, 매화의 종, 이자상과 이자상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얽힌 이야기까지 끼어들면 이야기는 마치 셰익스피어의 코미디극처럼 얽히고설킨다. 이자상은 성별을 구별할 수가 없어 매화는 이자상을 남자라 여기지만, 아비인 김윤신은 여자라 여기며 스르륵 매료된다.
게다가 이자상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 인물은 성별이 변화무쌍한 인물이라 듣는 이를 혼란에 빠트린다. 본인이 누구보다 야한 이야기를 즐기면서도 백성에게는 이야기를 금지하는 왕의 모습은 풍자랄 것도 없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중적 태도를 보여주지만 극 중의 왕과 김윤신의 모습은 차라리 인간적이다. 성리학을 내세우며 명분을 따지는 관료가 내적 갈등을 겪는 모습도 웃음벨이다. 이 뮤지컬 속의 전기수 이자상은 이업복처럼 불행한 결말을 맞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우주인처럼 느껴질 정도다.
〈김홍도의 그림 속 전기수. 전기수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담배가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티브이도 없고 영화도 없고 넷플릭스도 없던 시대에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게 푹 빠져들었을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도 《담배 썰기》에도 부채를 들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전기수의 모습이 담겨있다. 관객들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대부분 관심이 없다. 대부분 그들이 관심을 두는 존재는 배우다. 조선시대에 전기수는 그 자신이 일인 다역을 하는 배우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작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한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수많은 작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유독 무대 장르에서는 작가가 주인공으로 나서면 필패한다. 뮤지컬은 더 그러하다. 관객들은 작가인 주인공까지는 그럭저럭 참아주지만 작가가 작품 만들려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길 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배우들의 뒷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다. 당연히 더 다채롭고 즐거운 에피소드가 많을 수밖에.
그런 와중에 전기수는 정말이지 매력적인 소재다. 그는 각색자이자 해설자이자 배우이며, 인기의 중심에 서 있다. 권력과 돈이 있는 팬은 전기수를 집으로 불러 친구들을 모아 이야기를 청했지만, 전기수는 그들을 위해서만 자신의 재능을 쓰지 않았다.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양반 험담은 할 수 없는 돈 많은 귀족 집안의 사랑채보다 저잣거리의 반짝이는 눈빛들에서 그는 더 큰 희열을 느꼈을 터였다. 물론 그게 죽음을 불러왔다 하더라도.
등잔불 아래서, 조선 최초의 배우들이 탄생했을 그 터에 앉아, 누군가의 팬이 되어 그를 따라 동짓달 초하루에도 손을 호호 불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수십 번 수백 번을 들어도 새롭고 재밌을 그런 이야기를. 낫은 아궁이 옆에 세워두고.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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