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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와 목금

영괴들의 아회



(출처: 한겨레)


보름달이 휘영청 뜬 날이었습니다.

집안사람 모두가 잠이 들었을 때, 백이네 방 굴뚝 아래에 있던 불돌이가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구들장 고래를 지나쳐 아궁이로 빠져나와 잠시 불길에 몸을 지졌습니다. 양수지조(陽燧之鳥)인 불돌이는 불길에 몸을 던지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도 좋습니다. 따뜻한 초여름 밤이라 밖에 나와도 춥지 않습니다. 이제 슬슬 돌아다녀도 좋은 날이 되었습니다.

“빨리 좀 나오지. 잘못하면 늦겠다.”

나무 위에서 불돌이를 탓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백이의 삼시충, 아니 이젠 삼시뱀인 초록이었습니다. 본래 백이의 몸에 깃들어 있던 삼시충이었는데 목금이가 몸에서 뽑아내 가둬버린 때문에 초록색 뱀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백이의 팔목에 매달린 팔찌로 행세하는데 보름날을 맞아 백이네 집에 온 것입니다.

“미안, 미안. 오늘따라 불길이 좋아서 그랬어. 어서 가자.”

보름달이 뜨면 음기가 충만해집니다. 영괴들의 힘도 세지지요. 영괴가 뭐냐고요? 신령스러운 존재와 괴이스러운 존재들을 모두 일컫는 말입니다. 신령의 영과 괴이의 괴가 합해진 말이죠. 보통 영괴들도 한겨울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거나 잘 움직이지 않으면서 영괴들이 더 잘 눈에 띌 뿐입니다. 사실은 영괴들도 여름을 더 좋아합니다.


〈19세기 이후 만들어진 《십장생도병풍(十長生圖屛風)》에서 사슴·거북이·학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오늘은 긴 겨울과 어수선했던 봄날을 지나 처음으로 망허촌에 사는 영괴들이 모이는 날입니다. 모임을 주선해 왔던 늙은 호랑이가 작년 봄에 망허산을 떠나버리는 바람에 갑작스레 모임을 주관할 영괴가 나타나지 않아 작년에는 모임을 갖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1월 16일, 그러니까 정월대보름 다음날을 귀신날이라고 부르며 온갖 귀신들이 그날 모인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날은 정월대보름 때 연휴로 놀려고 사람들이 만든 날일 뿐입니다.

불돌이와 초록이는 오늘의 모임 장소인 망허정을 향했습니다. 불돌이가 초록이에게 물었습니다.

“호랑이님은 안 계신데 그럼 누가 모임을 만든 거야?”

“장 선생이 만들었대.”

장 선생은 노루 요괴입니다. 망허산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고 점잖고 학식이 높아 요괴들이 우러르는 요괴였습니다.

“작년에도 모임을 만들려고 했는데 주변 눈치가 안 좋아서 못 했다고 하더라고.”

“무슨 눈치?”

“원래 호랑이랑은 사이가 안 좋았잖아. 그래서 호랑이가 모임을 만들 땐 잘 안 왔는데, 호랑이들이 떠나자마자 모임을 만들면 주변에서 비웃을 수 있다고 생각했대.”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올해는 아드님이 하늘나라에서 벼슬도 받고 해서 겸사겸사 모임을 가지기로 했대.”

“축하할 일이 있었구먼.”

“또 누가 온대?”

“배 씨 자매도 오고, 금동이도 온대.”

배 씨 자매는 억울하게 죽은 자매였습니다. 백이와 목금이 사또 나리에게 잘 말할 수 있게 도와주어 억울함을 풀었습니다. 그 후에 동네 연못 밑에서 살고 있습니다. 금동이는 어린 귀신입니다. 보통은 자기 무덤에서 움직이지 않는데, 오늘은 특별히 나들이를 하는 모양입니다.

불돌이가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아궁이 안에만 있어서 못 본 동무들이 많겠네. 오늘 얼굴들 보겠다.”

“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가다간 도착하기도 전에 모임이 끝나겠다.”

“뭐래? 나는 빨리 갈 수 있어. 하지만 네가 못 따라오겠지. 네가 홀랑 타버릴 테니까 업어줄 수도 없고.”

“웃기시네. 그럼 누가 먼저 도착하나 해볼까?”

말이 떨어지기 빠르게 불돌이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습니다.

“잘 기어서 와보시지?”

“날아갈 건데?”

초록이의 말소리가 바로 밑에서 들려서 불돌이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틈에 초록이는 꼬리로 불돌이의 발목을 감고 있었습니다. 불돌이는 초록이 꾀에 깜빡 속은 것을 알았지만, 그대로 힘차게 날갯짓을 해서 망허정으로 날아갔습니다.


〈챗GPT를 이용하여 구현한 영괴들의 잔치〉 (출처: ChatGPT)


망허정 앞에는 벌써 많은 신령과 요괴들이 모여 시끌벅적했습니다. 특히 정자 안에 차려진 주빈 상에 누가 앉을 것인지를 놓고 신경전이 한창 뜨거운 중이었습니다. 물론 제일 가운데 자리는 모임을 만든 미르가 앉아있었습니다. 본신을 드러내지 않고 갓 쓰고 도포 입은 점잖은 선비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르가 자신의 진짜 모습인 용이 되어버리면 망허정 전체를 감싸고도 남을 것이니 당연한 변신이라 하겠습니다.

“어머, 불돌이랑 초록이랑 왔구나. 왜 이렇게 늦었니?”

배 씨 자매가 둘을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불돌이는 초록이 뒤에 서서 배 씨 자매와 좀 거리를 두었습니다. 아무래도 배씨 자매는 연못 밑에서 살아서 축축하거든요. 불이 가까이하기는 좀 그렇죠.

망허정 주위로는 신록이 우거지고 좋은 향내가 감돌았습니다. 밤이라 꽃들은 봉오리를 오므렸지만 향기만은 감출 수 없었죠. 이 맘 때에는 나무에서도 좋은 향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그런데 정자 위는 소란스러운 중이었습니다. 누가 상석에 앉을 것인지를 놓고 다투는 중이었어요.

“비켜라, 나는 미르니라. 너희 중에 나보다 고귀한 영괴는 없을 것이다. 내가 당연히 상석에 앉아야 할 것이다.”

미르는 용입니다. 작년에 여의주를 되찾은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는데 아회에 왔네요.

“푸르르르, 네가 작년에 망허촌 사람들을 다 굶겨 죽일 뻔한 강철이구나? 양심이 있으면 구석에 쭈그리고 있어야지, 어디서 위세를 부리느냐?”

미르를 야단치며 앞으로 쑥 나온 이는 한 마리 말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날개가 돋아있는 용마였습니다. 용궁에서 온 사람이니 물의 신인 미르에게도 큰소리를 칠 수 있는 모양입니다.

“위엄으로 말하자면 내가 최고 아니겠느냐? 다들 자리를 비켜라.”


〈무신도에 나타난 별상님〉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초록이가 혼잣말을 했는데, 대별상은 귀가 밝은지 그 소리를 듣고 말았습니다.

“네 이놈, 그럼 무엄한 말을! 죽고 싶으냐?”

초록이는 잠깐 찔끔했지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불돌이가 지켜줄 테니까요.

“우리는 역병에 걸리지 않는 몸이라는 것도 모르세요? 그런 협박은 안 통한다고요.”

대별상이 부르르 몸을 떨었지만 초록이 말이 맞는 말이라 더 할 말은 없었습니다.

“저 먼 서쪽 나라에서는 여자를 앞세운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도 한번 이번에는 여자들이 상석에 앉아보는 게 어때요?”

이번에는 배 씨 자매 중 언니가 나섰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러니 서양에 도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새 같은 머리에 뿔이 나 있고 반점이 있는 몸뚱이에 날개가 붙어있는 요괴가 타박을 주었습니다. 네 발의 발굽에는 뱀 꼬리 같은 것까지 달고 있었습니다.

“저건 누구야?”

불돌이가 초록이에게 귓속말로 물었습니다. 초록이가 얼른 대답해 주었습니다.

“요괴 아니고 바람신이야. 이름은 비렴이야.”

이번에는 초록이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다투다가 달이 지겠습니다. 잠깐 제 말을 좀 들어보시죠.”

모임을 만든 장 선생이 난처해하고 있다가 초록이 말에 반색을 했습니다.

“무슨 좋은 꾀가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자고로 동방예의지국으로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좋은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니 나이에 따라 자리를 정하면 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북 요괴가 앞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내 등을 한번 보게나. 나이가 많아 이렇게 등이 다 굽어서 둥글지 않나. 그러니 내가 상석에 앉겠네.”

그러자 이번에는 염소 요괴가 매애애 소리를 내며 거북이를 밀쳤습니다.

“내 수염을 한번 보게. 나이가 많아서 이렇게 하얗게 세질 않았나. 상석은 내 것일세.”

그때 웃통을 벗어젖힌 사내가 염소와 거북이를 모두 밀어내면서 앞으로 나왔다.

“나는 하늘 거인이오. 먼먼 옛날에 옥황상제의 따님인 공주님께서 가락지를 지상으로 떨어뜨린 적이 있는데, 내가 그것을 찾으러 왔었소. 쉽게 눈에 띄지 않아서 땅을 다 뒤집어놓아야 했소. 내가 밀어 올린 흙더미는 산이 되고 그 사이로 물이 들어와 바다가 되었소. 손가락으로 긁어 내린 곳은 강이 되었고. 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가 있소?”

그 말에 기가 질렸는지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천지창조 때 이야기니 누가 거기에 시비를 걸겠나요.

불돌이가 초록이에게 귓속말을 했습니다.

“저 말 진짤까?”

“뻥일 것 같은데? 거인이 뭐 저렇게 작겠어?”

물론 하늘 거인은 아회에 오기 위해 몸을 줄인 것이었지만, 초록이도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 거짓말 대회가 열린 셈이구나. 또 누가 황당한 이야기하기 전에 내가 정리해야겠다. 이러다가 입씨름 구경만 하다가 돌아가겠어.”

“왜, 왜? 뭘 어쩌려고?”

갑자기 불돌이가 앞으로 나가며 엉엉 울었습니다. 불돌이 눈에서 불똥이 팍팍 튀었습니다.

“너는 왜 좋은 자리에 와서 울고 있는 거냐?”

하늘 거인이 기분 잡쳤다는 얼굴로 물었습니다.

“하늘 거인님의 말을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나서요.”

“옛날 생각이라니?”

“공주님 반지를 만들 때 용광로에 불길이 엄청나게 필요했어요. 그래서 제가 불구덩이에 들어가서 불길을 크게 일으켰지요. 그때 제가 직접 만든 숯을 한 아름 안고 들어갔었죠. 그 숯은 제가 직접 심은 천 년 묵은 회화나무로 만들었던 거예요. 애지중지 키웠지만 공주님 반지를 만드는데 아낄 수가 없었죠. 그때 일을 생각하니 이렇게 눈물이 나네요. 아이고 나무야, 잘 지내니!”

초록이가 그 말에 킥킥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불돌이가 하늘 거인보다 천 년은 더 살았다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아궁이와 구들장에서 살면서 어쩜 이렇게 허풍을 잘 치는지 깜짝 놀랄 일이었습니다.

내친김에 불돌이는 바로 상석에 올라가 척! 하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초록이까지 불러들여 옆 자리에 앉혔습니다. 하늘 거인이 분한 마음이 들었는지 불돌이에게 시빗조로 말을 걸었습니다.

“불돌 어르신은 그리 오래 살았으니 보고 들은 신기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은데 한 꼭지 좀 들려주시죠?”

불돌이가 능청맞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그럼. 하지만 이 자리는 아회가 아니더냐? 사람들은 이렇게 모이면 시와 술을 즐기며 친목을 도모한다고 하더라. 내가 자랑을 늘어놓는 자리가 아니니까 다들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는 사람이 아니니까 시는 못할 것이지만 각자 재주로 오늘 좋은 일을 맞이한 장 선생을 축하해 주는 게 좋겠다.”

영괴들은 불돌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환영했습니다. 장 선생도 바로 말했습니다.

“그럼 이제 자리에들 앉아주시고 주안상을 바로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영괴들의 아회’에서 상상되는 이미지를 챗GPT를 이용하여 그림으로 만들었다.〉 (출처: ChatGPT)


밤새도록 즐거운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해가 뜰 즈음이 되어서야 다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잔치를 파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초록이가 불돌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넌 진짜로는 몇 살이야?”

“나?”

“반지 만드는 데 불 지폈다는 이야기는 뻥이잖아. 진짜로는 몇 살이야?”

“아마…”

불돌이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습니다.

“두 살이겠지? 알 속에 있었던 건 안 세는 거지? 알 속엔 꽤 오래 있었는데.”

초록이가 데굴데굴 굴러갔습니다.

“와, 정말, 너, 희대의 거짓말쟁이구나.”

초록이 말이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 갔습니다. 불돌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내가 안 그랬으면 아회는 아예 열리지도 못했을 걸!”

불돌이는 뿌듯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집필자 소개

이문영
이문영
역사, 추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문서 쪽으로도 출간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의 소설게시판지기로도 활동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을 겸하고 있다. 역사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어린이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역사동화 『역사 속으로 숑숑』, 어린이 인문서 『그게 정말이야?』, 역사인문서 『만들어진 한국사』를 비롯해서 MMORPG 『무혼』 등 여러 편의 게임 시나리오도 만든 바 있다.
“아버지께서 문언박의 기영회를 흉내내시다”

『기영회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엄경수, 부재일기, 1708년 3월 10일

1708년 윤3월 10일. 아버지께서 친구들과 함께 필곡에 있는 임감사 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시고는 식후에 가마를 타고 갑산부사 성숙 영공 어르신께 함께 가셨다. 얼핏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거 송나라 명재상이었던 문언박이 부필과 함께 모의하여 개최했던 낙사기영회를 흉내내어 나이가 지긋한 친구분들과 함께 잔치하시려는 모양이었다. 문언박의 기영회에서는 모두가 당대의 명사가 모였었다.

오늘 아버지의 기영회에 모신 분은 참판 남필성, 판결사 임당, 참의 임윤원, 감사 임순원, 참판 강선, 판서 강현 어르신이었다. 이분들이 처음 기로회를 결성하시고자 하였는데, 다만 문제가 있었다. 성숙 어르신과 강대감, 임씨 형제분들은 이제 겨우 60세를 넘었거나 아직 60세가 되지 못하신 분들이었다. 기영회를 흉내내는데 옛 규례에 어긋나는 점이 있어 다소 아쉬웠다.

모이신 분들은 서로 규례를 정하고 자리 순서를 정하느라 분주하셨다. 서로 나이나 관직으로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고, 나이가 적은 어른들은 서로 말석을 차지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이처럼 예로 서로 모여 유흥을 즐기니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산 속의 연포회 - 따끈한 두부탕과 술, 그리고 벗이 읊조리는 시”

김령, 계암일록, 1603년 9월 28일~1619년 10월 4일

1603년 9월 28일, 김령은 오시에 평보 형을 보러 갔다. 저녁에 상주 형, 평보 형과 함께 도목촌(道木村)으로 배 한림(裴翰林)을 보러 갔다. 오래전에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림이 집에 있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서 명암사(鳴巖寺)로 가서 두부를 해 먹고 함께 자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늦은 밤, 정언(正言) 금업(琴(忄 業))이 가구(佳邱)에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와서 도목촌에서 자게 되었는데, 배 한림이 그의 아들 숙전(淑全)을 보내어 함께 자도록 했다고 말했다.

1618년 1월 28일에는 아침에 연포(軟泡)를 차렸다.

김령이 지팡이를 짚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서설암(棲雪庵)에 도착해서 보니, 암자의 편액이 바로 장인어른의 글씨였다.

이튿날 효중이 율시 한 수를 써서 김령도 그에 화답했다.

밥 먹는 데 다시 연포를 차렸다. 절문을 나서는데 여전히 미련이 남았으나 눈을 맞으며 춘양에 도착했다. 공보의 아내가 다시 술을 보내와서 잠시 머무르면서 마셨다. 말 위에서 효중이 시를 읊조리는데 흥이 여간 아니었다.

날이 저물자 눈이 개었다. 김령은 닭실[酉谷]에 도착해서 머무르다 효중과 같이 잤다. 계집 종 청심(淸心)이 선성(宣城 : 예안) 집에서 왔는데 편지를 가져왔다. 김령 집사람이 술을 보내왔다.

1619년 9월 4일, 김령이 아침에 들으니, 덕여가 급히 도산 서원에 갔다고 했다. 초두 무리가 서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연포(軟泡 : 두부)를 해 내놓으라고 했다. 부끄럼도 없이 이 모양새로 기세를 부리고 있다. 그 무리 20여 명이 모두 산에 들어간다고 한다.

9월 26일, 아침에 참이 와서 연포(軟泡)를 만들어 반찬으로 나누어 주었다. 아침을 먹은 뒤 김시량(金時亮)이 와서 여러 사람들과 놀며 이야기했다. 저녁이 되어갈 무렵에 이운(李芸)과 서원의 사람[院人]이 왔는데, 서원에서 김령의 사임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정장(呈狀)을 되돌려 주었다. 김령 일행은 이날도 유숙했다.

1619년 10월 4일, 김령은 밥 먹을 때 연포(軟泡)를 만들어 북대(北臺)에 올라가 둘러보았다. 다시 강물을 건너 노천을 둘러보았는데, 새로 큰 집을 지어놓았으니, 힘 있는 사람이라고 할 만했다. 운암(雲巖) 앞 천석(泉石)을 거닐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개와 이지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차례로 방문했다.

숙경.자개와 함께 이지의 집에서 잤다. 숙경이 온 것은 본래 김령 무리를 찾아보고 또 도산 서원에 가기 위함이었는데, 청량산을 본 적이 없다 하자 김령이 충동해서 가게 했다. 숙경이 산행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도 함께 가자고 하였다. 나는 짐짓 머뭇거리며 우물쭈물하고 허락하지 못하고 있었더니, 숙경이 심하게 졸랐다.

“끈끈한 과거급제 동기 모임”

금난수, 성재일기, 1580년 1월 13일~1580년 4월 24일

1561년에 사마시에 합격했던 금난수는 그 해에 함께 입격한 여러 동기들과 서로 도와가며 친밀하게 지내 왔다. 1580년 새해에도 생원시 동기인 구효연(具孝淵)을 찾아가 함께 눈을 바라보며 술을 마셨다. 밤이 되어 떠나려는 금난수를 자리에 다시 앉힌 것은 김복일(金復一)과 이교(李㝯)였다. 김복일은 이황 문하에서 함께 공부했던 사이고, 이교는 이황의 조카였다.

손에 손마다 술을 들고 찾아오니 이날 밤은 일찍 자기는 틀렸다는 생각에 함께 어울렸다.

금난수가 다시 사마시 동기와의 연을 생각하게 된 것은 4월에 개성에 갔을 때였다. 문충공 서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둘째 아들 금업을 만나고, 서원에서 유숙하기로 하였다. 금난수가 서원에 아들을 맡겨놓은 이유 중 하나는 서원의 원장이 곧 금난수의 사마시 동기인 김지(金漬)의 아우인 김유(金濡)였기 때문이었다. 개성뿐 아니라 금난수의 동기들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금난수가 봉화에 갔을 때에는 그곳에 사는 박대임(朴大任)을 잊지 않고 찾아갔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동기였기 때문이었다.

비단 금난수와 그 동기뿐 아니라 어렵고 힘든 과거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끼리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겨났기 때문에 일종의 동기 모임인 동기계를 만들어 소속감을 가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물론 이러한 계에서 특별히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보다는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 것이 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팍팍한 관직생활 속에서 동기라는 의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형제와도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은 마음에 큰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봄날의 낚시 모임 - 노천에서 회와 어탕을 즐기다”

김령, 계암일록, 1621년 4월 22일~1621년 4월 29일

1621년 4월 22일, 봄이 한창이었다. 김령은 벗들과 물고기를 잡기로 약속을 하였다. 일부는 어정(漁丁)을 데리고 먼저 출발하였고, 김령은 남은 몇몇 지인들과 침락서당(枕洛書堂)에 들렀다가 합류했다. 사람들은 느즈막 할 때까지 잡은 고기로, 회를 치기도 하고 끓이기도 했다. 술을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이 낚시 모임은 일주일 후인 29일에도 열렸다. 여희와 덕여가 어정을 데리고 일찌감치 물고기를 잡기 시작했고, 김령은 정오 즈음해서 나아갔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은 물가의 돌 옆 땅바닥에 앉아서 끓인 물고기와 회를 부족함 없이 먹었다. 이들은 날이 저물어서야 서로 헤어졌다.

“취미생활, 매사냥을 즐기다”

권별, 죽소부군일기, 1625년 1월 27일~1625년 12월 2일

1625년 1월 27일, 권별이 키우는 수지니(길들인 매나 새매)가 묶어 놓은 것을 풀고 날아 가버려서 종일 쫓았으나 팔에 내려앉지를 않았다. 날이 저문 뒤에 사불랑 촌에서 팔에 내려앉았다.

1625년 9월 2일, 맑음. 수지니를 놓아서 1마리를 잡았다.

1625년 10월 26일, 이봉(以奉) 형제와 더불어 구계(鷗溪)에 가서 매사냥하는 것을 보았다.

1625년 11월 29일, 맑음. 이른 새벽에 화장(花莊)으로 갔다. 기운이 몹시 편치 않았다. 수지니를 잃어버린 지 2개월쯤 만에 노비의 팔에 내려앉아 간신히 도로 찾았다 하였다.

1625년 12월 2일, 화장에 머물렀다. 의숙(義叔)이 같이 잤다. 이술(而述)은 매사냥하는 일로 들어와서 그와 더불어 같이 잤다. 새 매가 날아 가버려서 잡지 못하였다.

“소년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먹으며 시회를 열다”

고기 바구니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7년 6월 20일

1617년 6월 20일, 맑고 몹시 더운 날이었다. 김택룡이 역정에 나가는데 아들 김숙과 생질 정득이 따라왔다. 유사 김개일 · 상사 김회일 · 권전룡 등도 역정에 왔다. 그리고 물고기 회식을 벌였는데, 소년들을 모아 나누어 보내어 물고기를 잡아오게 하고 각기 보리밥을 하고 물고기를 끓여 사람들을 먹였다.

모인 사람 모두는 김택룡의 두 아재인 심신과 심지 · 생질 정득 · 아들 김숙 · 권취중 · 박선윤 · 황유문 · 심학해 · 이춘발 · 손흥선 · 심수해 · 심이달 그리고 관동[丱童, 어린 아이] 6, 7명이었다. 김택룡이 촌료주(村醪酒) 한 동이를 구해서 대접하였다. 그리고 김회일로 하여금 운(韻)을 부르게 하여 김택룡이 정(亭), 병(屛), 정(酲) 자 세 자로 『역정절구(櫟亭絶句)』를 지었는데, 아들 김숙과 그 곳에 모인 여러 공들이 김택룡의 시에 화답했다.

날이 저물어 시회를 파하고 헤어졌다. 김회일은 지장리(紙匠里)로 가고, 김개일은 심 봉사 집에서 잤다. 숙도 김회일 공을 따라 지장리에 가서 잤다.

“딸의 만류로 문중 모임에 늦어버리다”

1631년에 태어난 관리의 친목모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최흥원, 역중일기, 1759년 9월 30일

1759년 9월 30일. 최흥원은 아침 일찍 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최근 며칠 최흥원은 석전 마을에 있는 딸의 집에 머물렀다. 인근 지인의 상가를 조문하는 길에 들렀다가 딸의 집에서 며칠 묵게 된 것이다. 이제 제법 큰 외손자도 만나보는데, 제법 아이의 품성이 착하고 아름다워 마음이 흐뭇하였다. 사위가 다소 잔병이 있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딸의 집안은 대체로 큰일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오늘은 본래 문중의 모임이 있는 날이라, 최흥원은 본래 어제 길을 나서 문중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를 쉬이 놓아 보내주고 싶지 않은 딸이 최흥원을 간절하게 울며 붙잡는 것이 아닌가. 어미를 일찍 여의고 부모라고 살아있는 사람은 애비인 최흥원뿐이니, 최흥원은 새삼 딸의 만류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결국 하루를 더 묵고 오늘 아침 일찍 길을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모임 장소까지는 역시 먼 길이어서, 이미 도착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다행히 문중의 모임은 끝나지 않았는데, 최흥원을 보자 사람들이 모두 꾸짖으며 역정을 내었다. 최흥원이 늦은 것도 문제였지만, 집안의 동생 중 아무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무안한 마음에 얼굴이 벌게진 최흥원은 사람들에게 거듭 사과를 하였다. 문중에서 재사를 지을 일을 의논하여 정하였는데, 무안해진 최흥원은 마음속으로 빨리 회의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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