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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 낸 한국 호랑이

코로나 19로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부터 이날치 밴드의 '범이 내려온다'라는 시원한 판소리 팝이 귓가에 들려온다. 흥이 나지 않는 시국이지만 그 리듬에 맞추어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어야 할 것만 같은 중독성 있는 멜로디다. 음악을 듣는 동안만큼은 힘센 호랑이 기운으로 답답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노래에서 받은 기세를 몰아, '호랑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떠오른 것은 '훌륭한 우리의 전통 재해석'이라는 프로젝트였다.

호랑이는 그 상징성 때문에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덕분에, 호랑이를 브랜딩화 한 디자인도 우리 삶 여기저기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켈로그(Kellogg)'의 시리얼, '팬디(Fendi)'의 개성 있는 호랑이 로고,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의 감각 있는 슈즈, 싱가포르의 '타이거 밤(Tiger Balm)'과 대표 맥주 '타이거 비어(Tiger Beer)', 곰돌이 푸우의 친구 '티거(Tigger)', 감명 깊었던 영화 'Life of Pi' 까지 국경과 장르를 넘나들며 호랑이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호랑이는 6종의 아종과 3종의 멸종 종으로 겉보기에 다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 호랑이' 또는 '백두산 호랑이'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 호랑이는 '시베리아 호랑이'로 예부터 산이 많아 호랑이의 서식지로 제격이었던 우리나라에 집채만 한 이들이 민가에 자주 출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호환도 1922년 한국 호랑이가 멸종되었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한국 호랑이의 성격과 상징


선조로부터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호랑이에 대한 기록, 즉 예술 작품에서부터 이야기에 이르러 살펴보면, 호랑이의 성격과 상징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큰 덩치와 날카로운 이빨로 사람 잡아먹는 무서운 호랑이.
둘째, 염원을 이루어주고 악귀를 쫓아주는 신비스러운 호랑이.
셋째, 은혜와 원수를 갚아주는 착한 호랑이.
마지막으로, 토끼와 여우에게 놀림이나 당하는 어수룩하고 어리석은 호랑이.

호랑이의 여러 가지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선조들의 삶에 호랑이가 얼마나 가까웠고, 그 존재가 다양한 해석으로 스토리텔링이 됨에 있어 단순한 짐승 그 이상의 존재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호랑이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책의 주인공으로 국내에서는 호랑이와 도깨비가 가장 많이 쓰인다고 한다. 또한, 호랑이는 88서울올림픽의 상징인 '호돌이'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인 '수호랑'으로도 재해석 되어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친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단연 한국 대표 동물이다.

작품을 제작하기에 앞서 선조들의 그림과 이야기들을 분석한 결과, 호랑이가 그려진 그림으로는 매, 까치, 토끼와 배경에 소나무와 대나무가 그려진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또한, 호랑이의 자세에 따라서는 입호(立虎), 좌호(坐虎), 복호(伏虎)로 나누어졌고,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의 출산호(出山虎)도 한 종류라 볼 수 있다.

먼저, 호랑이의 벽사수호적인 의미를 강화시키기 위하여 매와 함께 그려진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호랑이와 매가 함께 그려진 그림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벽사용 삼재부적'으로 다수가 소유할 수 있는 판화로 제작되었다. 매는 다리 하나에 머리가 세 개 달린 '삼두 일족응(三頭一足鷹)'으로 그려졌는데 세 개의 머리가 각각 풍(風), 수(水), 화(火)에 의한 재난을 상징한다. 그러나 고판화 미술관 소장의 〈호랑이와 매〉 작품처럼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하늘의 왕인 매와 땅을 지배하는 호랑이가 함께 그려진 그림은 그 강한 기운이 배가 되어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삼재를 완벽 차단하려는 의도에 적합한 작품이다.


〈호랑이와 매〉(출처: 고판화 박물관)


두 번째로는,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그림과 출산호(出山虎)를 주목하였다. 호랑이와 까치 그림은 '희보 작호도(喜報鵲虎圖)'라 하여 하늘의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까치와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함께 친숙한 얼굴의 호랑이가 길상적인 의미로 그려진 것이 많다. 까치와 호랑이가 함께 그려진 그림은 대부분 민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소나무 위에 까치가 앉아있고 아래쪽에 호랑이가 앉아서 까치와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듯한 그림의 구도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그림에서는 호랑이가 무섭게 표현되기보다는 어수룩하거나 친숙하게 해학적으로 표현된 작품이 많았고, 무명이나 떠돌이 화가가 그린 작품으로 서민적인 느낌이 강하다.


작호도(鵲虎圖)(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출산호(出山虎)는 북송대의 호랑이 화가 조막착(趙邈齪)에 의해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조선 후기에 발견된 대표적인 작품은 작가 미상, 김홍도, 김홍도와 임희지의 콜라보 작품과 김홍도의 아들인 김양기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언급된 화가들의 작품은 회화로 그려졌는데, 조선 후기 회화는 작가 개인의 예술성이나 개성, 세계관까지 드러내어 민화와는 그 성격과 목적이 다르다. 회화로 그려진 다수의 출산호도는 터럭 한 올까지 섬세하게 그린 작품으로 거의 같은 포즈의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의 작품이 다수였다. 이 포즈는, 몸은 비스듬히 옆면을 보여주고 다리는 어슬렁 걸어 내려오듯 엇갈려 있거나 정지해 있으며, 머리와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꼬리는 위로 치켜 올려져 있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출처: 삼성미술관 리움)


마지막으로, 호랑이가 토끼와 함께 그려진 작품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곰방대를 들고 토끼들과 함께 있는 벽화들이 존재한다. 전해지는 호랑이의 우화에서 토끼가 많이 등장하고 있었는데 거의 힘센 호랑이가 잡아먹으려 하자 꾀를 내어 호랑이를 골탕 먹이고 약 올리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호랑이는 비 오는 날 사냥을 갈 수 없으면 동굴에서 담배를 핀다고 하는데 전래동화가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하는 것들이 많은 것을 보아 화성 보적사(華城 寶積寺)나 수원 팔달사(水原 八達寺)의 벽화가 이러한 우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였다. 우화에서는 토끼뿐만 아니라 여우, 노루, 부엉이, 다람쥐 등 호랑이의 한입거리 동물들이 주로 등장하는데 산중호걸 호랑이가 어수룩하게 이들에게 당하거나 놀림 받는 이야기들이다.


수원 팔달사(水原 八達寺)의 담배 피는 호랑이 벽화



호랑이의 현대적 재해석: 비디오, 드로잉, 스카프


선조들의 작품을 토대로 주제를 정하고 현대적 재해석 사례들도 살펴보았다. 현대미술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작품은 뉴욕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활동 중인 젊은 여류작가 제시카 세갈(Jessica Segall)의 '(낯선) 친밀함((un)common intimacy)'이라는 작품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2020년 코리아나 미술관의 Space*c에서 '호랑이는 살아있다'라는 전시를 통해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흥미로운 그녀의 전반적인 작품 세계를 엿보니, 주요 관심사는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존 등의 다양한 환경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제시카 세갈(Jessica Segall)의 (낯선)친밀함 ((un)common intimacy) 비디오 스틸



'(낯선) 친밀함((un)common intimacy)'이라는 작품은 7분 42초간 그녀 자신이 빨간 매니큐어에 도트무늬 수영복을 입고 수중에서 호랑이와 악어 등의 개인 소유의 미국 사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사는 동물과 마주하는 장면을 굉장히 느린 속도의 오묘한 느낌의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을 위해 작가는 6개월간 호랑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철저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생경한 장면 자체로도 눈길을 사로잡는 영상이었지만 작품 의도부터 진행 과정까지 아울러 내포된 동물과 인간의 공존에 관하여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두 번째로, 얼마 전 광고에서 코로나19 관련 그림을 벽면 크기의 종이에 먹과 붓으로 아무런 밑그림 없이 쓱쓱 거침없이 그려나가던 작가가 눈에 띄었다. 그의 이름은 김정기로, 그의 40여 년 그림 인생을 기념하기 위한 '디 아더 사이드' 전시가 마침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었다. 김정기는 '라이브 드로잉의 신'으로 불리는데 그도 그럴 것이 주제 하나만 던져주면 관련 그림을 즉흥적으로 그려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인물이나 생김새, 비례와 모습 등이 마치 대상물을 보고 그린 듯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 이것은 그의 고교시절부터 만화와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쌓아온 탄탄한 그림 실력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음을 전시에서 입증하였다.


김정기의 '해님 달님'



많은 그림 중에서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호랑이가 상징적으로 그려진 '해님 달님'의 라이브 드로잉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커다란 호랑이가 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 이야기의 스토리텔링이 한 장면 안에 모두 표현되었다. 그림을 가만히 살펴보니 전래동화임에도 곳곳에 크록스(Crocs), 샤넬(Chanel), 맥도널드(McDonald’s) 같은 현대적 브랜드의 로고들이 눈에 띄었다. 이는 라이브 드로잉을 하며 김정기 작가가 즉흥 해서 이야기의 내용과 결말을 현대적으로 바꾼 것으로 전통 재해석의 좋은 사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참고작품이 된 것은 다름 아닌 스카프였다. 호랑이 작품의 현대적 재해석 콘셉트를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던 중, 스카프를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장롱에 있던 호랑이 스카프가 뇌리를 스쳤다. 펼쳐본 무게감이 있는 스카프는 꽤 큰 크기로 거의 한 벽면을 차지할 정도였고, 무엇보다 정사각형 안에 그려진 호랑이 그림과 주변에 그려진 요소들이 세련되며 멋스러웠다. 분명 호랑이가 그려진 이 같은 하이엔드(High-end) 브랜드의 스카프 디자인이 다양하게 있을 거라 생각하고 검색을 해 보니, 에르메스(Hermès)를 비롯하여 구찌(Gucci), 페라가모(Ferragamo) 등에서도 상징적인 호랑이 스카프 디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에르메스 스카프 '까레'의 Tiger Royal Fleuri Scarf 70



그중 에르메스(Hermès) 스카프인 '까레(Carré)'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에르메스는 가업과 희소성을 중시하는 메종 브랜드로 1938년 안장을 주력상품으로 하는 고급 마구상을 하는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에 의해 탄생되었다. 특히, 그들이 만드는 핸드백은 한 땀 한 땀 정해진 장인의 손으로 만드는 것으로 현존하는 브랜드 중 최고가를 자랑한다. 이러한 에르메스에서 '까레'라 불리는 250개의 누에고치에서 실크를 추출하여 만드는 90 x 90cm 정방형의 스카프를 1937년 국제 박람회에서 선보였고, 그 후로 현재까지 900개가 넘는 디자인이 제작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여러 가지 실험적인 디자인 가운데서도 2000년대 이후부터 일러스트레이션을 쓰기 시작했는데 호랑이가 그려진 스카프들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우리의 전통 재해석' 프로젝트


모든 사전연구가 끝나고 드디어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 작품은 전시를 위한 것으로 일러스트레이션과 회화의 객관성과 주관성을 복합적으로 보여질 수 있도록 구상하였다.

먼저, 작품 콘셉트에서 사이즈는 100 x 100cm의 정방형으로 정했다. 정방형은 회화작가들에게도 가장 도전적인 형태로, 구도를 잡기가 굉장히 애매한 만큼 흥미로운 작품이 완성된다. 앞서 살펴본 하이엔드(High-end) 브랜드들의 스카프 느낌을 지향하며 일러스트의 패턴을 배경에 둘러 전하려는 주제와 메시지가 시각적으로 눈에 더 잘 띌 수 있게 구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전체적인 컬러의 선택은 너무 튀지 않는 은은한 파스텔 톤이나 톤 다운된 컬러를 바탕으로 호랑이와 주변 동물들이 시각적으로 주목성을 띌 수 있도록 선택하였다. 작품 제작은 핸드 드로잉 → 잉크와 브러시로 그리기 → 스캔 → 디지털 컬러링 순으로 진행되었다.


핸드 드로잉 과정



핸드 드로잉 과정



핸드 드로잉 과정



작품의 내포된 이야기는 우리 고유의 전통 호랑이 그림의 구조는 유지하되, 사회 비판적 시선에서 현대 사회를 반영하려 하였다. 2020년부터 예고 없이 들이닥친 코로나19의 여파로 우리의 삶의 방식이 크게 전환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답답함과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외에도 3~4명 이상의 인원은 모일 수 없고 마음껏 먹고 마실 수도 없게 됐다. 백신 접종 여부에 따라 입장 가능의 여부도 달라지고 있고, 이에 따른 소상공인들과 개인사업장의 피해도 막심하다. 그러나 역으로, 배달과 택배 등의 배송사업은 전에 없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또한, 디지털과 앱 네이티브 세대로 대표되는 MZ세대의 인플루언서블 트랜드는 이에 아랑곳할 것 없이 고속성장 중이다. 2022년 현재는 유튜브(YouTube)와 SNS가 비즈니스를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대가 왔다. 어떻게 보면 현대 사회는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 시대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미래도시'를 그린 그림의 일부분은 정말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편리한 시대가 병든 지구와 함께 전염병과 공존할 줄은 꿈에도 그리지 못했다.

나는 앞서 살펴본 선조들의 호랑이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기계화, 자본주의화 된 현대 사회의 이면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스토리텔링 하고자 하였다. 선조들의 것과 다르게, 현재는 호랑이가 멸종되었기에 실제 호랑이가 아닌 내 그림 안에서의 호랑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한국 호랑이'인 것이다.


호랑이와 매 완성작



첫째로 매와 함께 그려진 호랑이의 얼굴이다. 그림에서 호랑이는 진짜처럼 보이지만 터진 부분을 보아 로봇인 듯 보이는데, 기계의 과부하로 폭발하여 버렸고, 아래쪽에 기름이 흘러내리고 있다. 호랑이의 주변에는 삼재(三災)를 뜻하는 매 세 마리를 배치하였고, 오른쪽 위와 뒷면의 꽃은 상징적으로 '매발톱꽃'을 그려 넣었다. 사각의 틀을 구성하고 있는 소나무 줄기에는 카메라를 박았다. 이 카메라는 현대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몰래카메라도 포함한다.


호랑이와 까치 완성작



두 번째는 출산호도를 까치와 배치하였다. 호랑이의 포즈는 조선 후기 화가들의 그림을 참고하였고, 산에서 어슬렁거리며 내려온 호랑이를 자세히 보면 몸통 부분에 창문들이, 다리 부분에는 문이 있다. 또한, 머리의 안테나는 기계임을 알려준다. 이는 호랑이 자체를 '걸어 다니는 건물'로 형상화한 것이다. '건물'이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마치 모두가 이루고 싶은 꿈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본인 소유의 건물을 갖는다면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호랑이의 상품적 가치가 건물이 될 만큼의 힘이 있다는 것도 상징하였다. 주변에 둘러진 까치는 그림의 밸런스를 위해 네 마리를 배치하였고, 그중 한 마리는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 앉아 가짜 호랑이에게 무언가 말하려는 형상으로 표현해 보았다.


호랑이와 토끼 완성작



마지막으로 곰방대를 피우는 호랑이와 토끼이다. 이 작품의 호랑이를 자세히 보면 몸통을 가로지르는 스티치가 있다. 이는 곧, '박제'된 호랑이임을 알 수 있다. 예부터 호랑이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호랑이의 가죽이었다. 돈이 된다면 멸종 위기이건 희귀동물이건 상관없이 잡아서 가죽을 벗겨내 판매된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부터 '비거니즘(Veganism)' 열풍이 불고 있다. 이로 인해 동물성 제품이나 식품에 대한 소비 전에 한 번쯤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인식의 변화가 일고 있다. 이러한 생명존중에 대한 긍정적 현상을 바탕으로 작품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바람직한 공존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Re-New Old전 전시 이미지 (서울대학교 삼원 S&D 홀 2021.07.05.~07.09)



Re-New Old전 전시 이미지 (서울대학교 삼원 S&D 홀 2021.07.05.~07.09)



2021 서울대학교 예술주간 전시 이미지 (2021.10.25~10.29)



레터프레스(Letterpress) 엽서 인쇄물



'훌륭한 우리의 전통 재해석' 프로젝트는 인간이 만든 진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짜인 호랑이 세 마리와 매, 까치, 토끼, 소나무 등이 함께 그려져 완성되었다. 작품은 16x16cm의 레터프레스(Letterpress) 엽서로도 제작되어 부적처럼 소장도 가능하게 하였다.

전통 시대의 호랑이부터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호랑이를 거쳐, '훌륭한 우리의 전통 재해석' 프로젝트 속의 '인간이 만들어낸 한국 호랑이'까지 우리 민족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상징성을 가진 호랑이. 그리고 2022년 임인년 한해도 호랑이처럼 우렁찬 기운으로 코로나19에 꺾이지 않는 한민족의 기상을 보여주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집필자 소개

노정연
노정연
뉴욕 School of Visual Arts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디자인 학부에서 박사를 수료하였다. 2009년부터 실크스크린으로 핸드메이드 아티스트북을 만들어 왔으며 현재까지 The New York Times, GQ, The New Yorker, Newsweek, Harvard Magazine, Billboard Magazine, Facebook, Ray-Ban 등 세계의 100여 개 클라이언트와 작업하였다. 현재 국민대학교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 출강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 풍속화가인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재해석 작품 창작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호랑이 이야기”

작호도(鵲虎圖)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최남선의 전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호랑이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풍부하다. 중국의 대문호인 노신(魯迅)도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한국의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호랑이는 아시아에만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시아 중에서도 인도·수마트라·중국·만주·한국·시베리아 흑룡강 연안에만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아시아나 일본·대만 등에는 살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므로 호랑이 이야기도 이러한 분포지역에 따라서 주로 전승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산이 많고 골짜기가 많아 호랑이가 많이 서식했던 한국에서 가장 많이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기록을 보면 조선 시대에만 해도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고 있었으며, 도성 안이나 궁궐 안에도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기록들이 자주 나타난다.

“신비의 동물로 여겨진 호랑이”

〈호랑이와 매〉(출처: 고판화 박물관) 권상일, 청대일기, 1753-06-06

1753년 6월 6일, 권상일은 어느 날 이웃 마을의 소식을 들었다. 상주의 인근 고을이었던 용궁현의 월오리라는 곳에 호랑이가 출현했던 것이다. 마을 앞산에 조그마한 소나무 숲이 있었다. 그런데 대낮에 호랑이가 출현하여 그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일상 호랑이가 나타나게 되면 몸을 피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람들은 몸을 피하지 않고 구경하기에 바빴다.

호랑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신기한 대상으로 비쳐졌던 모양이었다. 양반들에게야 호랑이는 백성을 위해서 해로운 대상이므로 당연히 없애야 하는 포호(捕虎)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에게 호랑이는 신비의 동물이면서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결국 호랑이를 보러온 마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 물려서 부상을 입은 자가 다수 출현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는 권상일이 잘 알고 지내던 안필세도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양반이었던 권상일에게 호랑이는 당연히 처치해야 할 동물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사실에 너무 놀라고 그 피해 사실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물려가다”

호랑이(출처: 픽사베이) 오희문, 쇄미록, 1597-03-07 ~

1597년 3월 7일, 오늘 오희문은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 어젯밤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뒷산 인가에 들어와서 자는 사람을 잡아갔다고 한다. 사람을 물어 가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차마 빼앗을 수가 없었는데, 아침에 찾아가보니 사람의 반을 먹어버렸다고 한다. 참으로 분통한 노릇이었다.

호랑이가 마을 사람을 해친 것은 비단 오늘 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달 26일에는 관아에 소속된 관비가 범에게 물려갔다고 한다. 관비는 범에게 물려갈 때 살려달라고 사람들을 애타게 불렀는데, 사람들이 두려워서 나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호랑이는 관비를 물고 달아날 때 관아 뒤를 지나갔다고 하던데,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사람이 호랑이에게 물려 가는데도 두려워서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고약한 인심이라 할 만 하였다.

요사이 호랑이들이 많이 돌아다녀서, 혹은 대문을 부수고 울타리를 헤치고는 인가로 들어온다고 하니 몹시 걱정이었다. 악독한 맹수가 성하게 다니면서 사람을 상하게 하는데도, 이것을 잡아 없애지 못하고 사람마다 두려움에 질려서 해가 넘어가자마자 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를 않는 상황이었다. 오희문은 또 한 가지 걱정거리가 늘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원수를 갚은 호랑이”

노상추, 노상추일기, 1764-05-27 ~

노상추가 사는 선산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웅곡면(熊谷面) 일촌(一村)에 사는 남 씨 일가와 심 씨 일가가 호환(虎患)을 입었다는 소식이 선산 일대에 쫙 퍼졌다. 노상추도 전해 들은 이 소식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남 씨네 집 아들과 심 씨네 집 아들은 어느 날 뒷산에 갔다가 호랑이와 마주쳤다. 호랑이는 새끼 네 마리를 데리고 있었기 때문인지 매우 예민했다. 두 사람은 포효하는 호랑이로부터 달아나면서 새끼 네 마리를 모두 죽였다. 큰 호랑이는 죽이지 못했지만, 마을에서는 두 사람이 돌아온 것이 천행이라며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불행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호랑이로부터 달아난 날로부터 나흘 후, 호랑이가 남 씨‧심 씨네 집이 있는 마을로 내려왔다. 호랑이는 먼저 심 씨의 집에 들어가 외양간에 묶여 있던 큰 소를 죽였다. 그리고 죽인 소를 먹는 대신 온 집안을 들쑤시며 간장 항아리와 가마솥 등의 물건을 모두 깨부쉈다. 그 뒤에는 남 씨의 집으로 가서 안방에 있던 남 씨의 처와 며느리, 딸 두 명과 아들 한 명을 물어 죽였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승려 한 명과 호랑이를 죽이러 온 포수 한 명을 죽였다.

이 모든 일을 한 다음 호랑이는 남 씨의 집 방에 들어가 누운 채 나오지 않았다. 소와 사람들을 물어 죽이기는 했으나 먹지 않은 점은 호랑이의 행동이 결코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치 죽음을 기다리듯 방에 누워 있었다는 점이 기이했다. 결국, 관에서는 별포수(別砲手)를 파견하여 호랑이를 쏘아 죽였다. 잡은 호랑이의 크기는 턱밑 길이가 세 뼘 반에 달할 만큼 거대했다.

“조선시대 사냥꾼 부대의 존재”


일기에는 백두산에 당시 오랑캐 사냥꾼의 움막이 있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당시 사냥꾼들이 산속에 움막을 지어놓고 장기간 사냥을 다녔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조선 시대 사냥꾼들은 비단 일반 사냥꾼뿐만 아니라 군부대로서 기능도 갖고 있었다. 호랑이 사냥을 전담하는 군대인 착호군(捉虎軍)은 조선 건국 초부터 중앙과 지방에서 포호(捕虎) 정책을 수행했다. 착호군은 현종 15년(1674년) 때 5000명, 숙종 22년(1696년)에는 1만1000명까지 늘어났다. 17세기 들어 산의 외진 곳까지 개간하며 생활한 화전민이 늘어나고 수렵이 활성화되자 갈 곳을 잃은 호랑이들이 민가의 가축이나 인명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착호군이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전투에 나서 탁월한 전과를 올렸다. 이들은 전시에 소집될 의무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과는 특히 19세기 제국주의 열강과 싸움에서 두드러졌다. 19세기 미국의 동양학자인 윌리엄 그리피스는 조선의 착호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서구의 근대적인 함선과 총포로 무장한 군대를 물리쳤다고 ‘한국, 은둔의 국가’(1907년)에 상세히 기술했다. 병인양요에서 프랑스군에 맞선 주력은 관동과 경기지방에서 모인 포수 370여 명이었다. 신미양요가 발발하자 포수를 중심으로 한 별초군 3,060명이 상경해 미군에 대항했고 고종 13년(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할 때는 포수 4,818명이 상경해 대응하기도 했다. 이는 사냥꾼들이 지닌 탁월한 사격 솜씨 때문이었다고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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