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나리, 훈장 나리! 큰일 났습니다!”
접장이 대문 너머에서부터 두 팔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댔다. 암행어사 출또라도 하는 건가? 정생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지. 시골 서당에 뭔 암행어사 출또냐? 정신을 차린 정생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벌떡 일어나는 통에 잃어버린 체면을 챙겼다.
“이놈! 아침부터 무슨 호들갑을 이리 떠는 게냐? 대체 무슨 일이냐?”
그랬더니 하늘이 무너질 듯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 접장은 사레가 들려서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마당쇠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려 한 대접 먹게 한 뒤에야 접장이 콜록거리면서 말을 꺼냈다.
“오 진사, 오 진사네… 켁켁…”
“아이고, 오 진사 어르신이 기어이 가셨구나. 날씨가 쌀쌀해지더니만 결국 못 견디셨구나! 아이고, 아이고.”
접장이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더니 두 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돌아가신 게 아니라… 켁켁… 그 댁 손자가… 오 진사 댁 손자가 이번 전시에 급제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정생도 잠시 숨이 멈췄다. 오 진사 댁 손자, 오명하는 지난봄에 만 오천 명이나 모여서 겨우 스무 명을 뽑았던 향시 생진과(생원과 진사를 뽑는 시험)에 합격하고 열흘 후 치른 대과에서도 합격하여 한양에서 치는 문과에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문과는 한양의 성균관에서 공부한 선비와 한성시에 붙은 선비들과 함께 치르므로 뚫고 올라가기가 불가능한 시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명하가 한양에서 임금님 앞에서 치른 과거에 붙었다는 것이다.
“그, 그게 정말이냐?”
“정말이고말고요. 제가 큰일이라고 했잖습니까? 병과 23등이라 합니다.”
정생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병과 23등이면 꼴찌다. 모두 33명을 뽑는데, 갑과 3명, 을과 7명, 병과 23명이 그 대상이었다. 갑과 1등이 바로 장원급제였다.
“훈장 어르신, 병과 23등이 무슨 문제입니까? 조선팔도에서 33등을 한 건데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석진이는 집에 왔느냐?”
“네? 석진이가 누굽니까?”
다시 한 번 쥘부채가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정생은 때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오명하의 자(字)가 석진이다. 석진이가 집에 왔느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자는 스승이나 집안 어른이 붙여주는 또 다른 이름이다. 정생이 붙여준 거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정생의 서당에 오명하는 석 달 정도만 다녔다. 천자문을 뗀 뒤에 오명하는 양주 오 진사의 사촌 동생인 안동 오 진사네 집으로 보내졌다. 정생에게 글을 배워봐야 과거 급제는 꿈이라는 걸 알고 도산서원에 들여보내려고 안동으로 갔던 것이다.
하지만 도산서원은 물론 들어가지 못했고, 그곳에서 공부를 좀 더 한 뒤에 돌아와 양주 향교에 입학했었다.
“지금 유가(遊街) 준비가 한창입니다. 걸립패도 불러오고 관가에서 기생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훈장 어르신도 어서 가보시죠.”
전(傳) 김홍도, 〈삼일유가〉 (출처: 문화콘텐츠닷컴)
유가는 과거 급제자가 하는 거리 행진을 가리킨다. 이때 광대 무리인 걸립패와 기생들이 연주도 하고 재주도 부리며 흥을 돋운다.
정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쓰다듬은 뒤에 한 벌 있는 비단 도포를 걸치고 접장과 함께 서당을 나섰다.
유가 행렬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풍악 소리가 동네 가득 울려 퍼지는 중이었으니까.
“여기네요! 어서 오세요!”
앞서간 접장이 손을 흔들었다. 그렇다고 양반이 체통 없이 달음박질칠 수는 없는 노릇. 정생은 팔자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비켜라, 훈장 어르신 오셨다!”
접장이 큰소리로 인파를 열었다. 정생은 헛기침하며 부채를 펴 얼굴을 살짝 가렸다. 동네 사람들에게 좀 우세스러웠다.
어사화 관모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유가 행렬의 맨 앞에는 붉은 천에 싼 문서 주머니를 든 세 사람이 앞장서고 그 뒤에 광대들이 피리와 대금을 불고, 해금을 켜며, 장구, 북을 울리며 신나게 연주하고 다른 광대들은 춤을 추며 따라갔다. 그리고 그들 뒤로 어사화를 꽂은 오명하가 눈을 내리깔고 말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으스대려고 그런 게 아니라 너무 피곤해서 눈이 반쯤 감겼던 거라고 했다. 어사화를 붙든 명주실을 입에서 놓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저 녀석이 천자문 가르친 공을 까먹고 서당은 안 들르면 어쩌나 했지만, 다행히 서당 앞에서 멈춰 예를 올려주었다. 정생은 그야말로 뿌듯해져서 어디 편액이라도 장만해서 ‘과거 급제자 배출 서당’이라고 붙일 수는 없을까 하는 망상까지 했다. 그럼 서당에 아이들이 미어터질 텐데.
유가 행렬은 오 진사의 집으로 향했고, 집에서는 이미 잔치 준비가 한창이었다. 걸립패들은 어름사니 공연을 위해 줄을 걸어 놓았고, 대문 앞에서는 농환이 벌어졌다. 양손으로 공을 돌리는 건데, 처음에는 한 개였다가 어느 틈에 세 개, 다섯 개, 아홉 개로 늘어났다.
그렇게 아홉 개의 공을 던지며 대문을 넘어서니 박수가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어서들 들어오십시오. 오늘 급제하신 오 나리를 위해 양주, 아니 조선 팔도 최고 광대들의 연희가 펼쳐집니다요!”
농담이 아닌 듯이 농환을 하던 광대는 집안 마당에 서자 공을 하나씩 칼로 바꾸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는 번쩍번쩍하는 칼 일곱 자루가 허공을 날았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털이 쭈뼛 섰다.
또 다른 쪽에서는 버나잡이가 가느다란 대나무 막대 위에 커다란 대접을 돌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였지만 어느 틈에 양손에 머리에까지 대나무를 올려서 신나게 돌렸다.
국보 제135호 신윤복필 풍속도화첩 (출처: 문화재청)
또 한쪽에는 기생 둘이 화려한 색동저고리를 입고 빛나는 쌍검을 휘두르며 검무를 추는 중이었다. 그 놀이 사이를 살판쇠가 아슬아슬하게 재주를 넘으며 오가고 있었다. 저렇게 계속 돌면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은데도 점점 더 빨리 도는 것이 정말 놀라울 지경이었다.
이미 마당 곳곳에 버드나무 자리가 깔려 술판이 벌어졌고 벌겋게 얼굴이 익은 손님들도 여럿 보였다. 정생도 한 잔 생각이 안 나는 건 아니었지만 구경거리가 이리 많고 술이 떨어질 리도 없으니 먹고 마시는 건 좀 천천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때 문득 큰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오늘, 왜들 모이셨는가 하면, 우리 고을의 양반 중의 양반 오 진사 나리 댁의 손자 도령께서 당당히 대과에 급제하여 상감마마로부터 어사화를 하사받고 금의환향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이셨습니다요!”
고개를 들어보니 어름사니가 부채를 펼쳐 들고 장대 위에 올라 동아줄 위로 발을 옮기며 말을 하는 중이었다.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
이극돈 (『봉사도(奉使圖)』. 출처: 네이버_한국전통연희사전)
“우리 양주 걸립패로 말할 것 같으면, 저 청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상감마마 앞에서 산대희(山臺戱)를 펼치던 조선 대표 광대올시다! 산대희란 무엇이냐? 모화관 앞에 100척 넘는 산붕(山棚)을 만들어 그 안에서 연희를 펼치는 것이 바로 산대희올습니다! 팔도에서 600명이나 되는 광대가 모여드는데 그 중 으뜸이 바로 우리 양주 걸립패였습니다요. 우리가 산대희를 펼치면 청나라 사신들이 얼굴을 쳐들고 구경하다가 바닥을 보다가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연희 보다가 뭣 때문에 바닥을 보는가?”
밑에서 다른 광대가 질문을 던졌다.
“아, 그야 놀라서 떨어져 나간 턱을 다시 주워야 하니까 그렇지요!”
폭소가 터져 나왔다.
“턱이 문제가 아닙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밟혀죽는 일까지 있었습니다요.”
그때 흥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흥! 그래봐야 조선 안에서 노닥거리는 것밖에 더 되나? 그렇게 자신 있으면 북경에 가서 연희 판을 벌여봤어야지!”
광대패도 놀라고, 사람들도 놀라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술이 불콰하게 오른 사람이 호리병을 들고 흔들며 소리쳤다.
“우리나라를 도륙을 낸 뙤놈들에게 아양이나 떠는 게 무슨 놈의 자랑질이냐고!”
선달은 본래 무과 급제자에게 붙는 칭호인데, 무과에 급제를 했는지 안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선달로 불리는 노인이었다. 술주정이 심해서 마을에서 취급을 안 한 지 한참 된 주정뱅이기도 했다.
“박 선달, 많이 취한 모양이군. 말이 심하네.”
박 선달 친구인 노 선비가 말리려고 들었는데 소용이 없었다.
“나는 말이야! 저 왜놈들 나라에 가서 마상재(馬上才)로 왜놈들 야코죽이고 왔다 이거야! 국위를 떨치려면 나 정도는 했어야지! 어디 광대 놈들이 잘난 척이야! 잘난 척!”
마상재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마상재는 말을 타고 재주를 부리는 것으로, 정조가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에도 실린 무술 중 하나이다. 본래 일본에 가는 사신단을 통신사라고 불렀는데, 임진왜란 후에 사라졌다가 광해군 때 다시 통신사가 가고 금상(순조) 신미년(1811)에 간 바 있었다. 그것이 한 이십 년 전의 일인데 박 선달이 그때 사행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이고, 저희가 몰라 뵈었습니다! 통신사행단의 마상재를 하신 분이 계시다니!”
어름사니가 줄 위에서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허허허, 그럼, 그럼. 이제야 사람을 알아보는구먼.”
박 선달이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죄송하옵지만 나리의 관직은 어찌 되시나요? 마상재는 군관 중에서도 최고로 우수한 나리가 하는 걸로 압니다. 그런데 ‘선달’이라고 아까 누가 부르던데요?”
그랬다. 마상재는 정예 군관이 맡았고, 일본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서커스단을 흔히 곡마단(曲馬團)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의 유래도 마상재에 있었다.
“이, 이놈이!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냐? 일본에선 ‘조선의 마상재가 천하제일’이라고 할 만큼 격찬을 받았느니라!”
광대쥴타고 (『기산풍속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어름사니가 줄 위에서 박수를 치다가 휘청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악’ 소리를 질렀다. 어름사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능청맞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선의 마상재는 천하제일이 맞습니다요. 헌데 이 몸이 소싯적에 관가에서 통인 노릇을 해서 좀 아는 바가 있습니다요. 신미년에 간 통신사에는 마상재를 할 군관이 동행하지 않았는데 말입쇼. 영묘(영조) 때인 갑신년(1764)에 일본에 갔었단 말입니다요.”
어름사니가 줄 위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말을 이었다.
“물경 60여 년이 지났으니 박 선달 나리께선 강보를 쓴 아해였을 텐데, 마상재를 하셨다니 엄청납니다요! 엄마, 젖 줘! 이러면서 말 등에 누웠다가, 엄마, 쉬 했어! 이러면서 말 등에 우뚝 섰다가 막 이러셨을 거 아닙니까?”
어름사니가 줄 위에 드러누웠다가 발딱 일어나 오줌 누는 시늉을 하자 좌중에선 폭소가 쏟아졌다.
“네, 네 이놈! 감히 양반을 욕보이다니!”
박 선달이 격분해서 줄을 매달아 놓은 기둥을 발로 쾅 걷어찼다. 줄이 출렁하면서 어름사니가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박 선달이 다시 기둥을 발로 차려는 순간, 농환꾼이 허공에 돌리고 있던 칼을 촤르르 손에 감아쥐더니, 휙휙휙 번개처럼 박 선달에게 날렸다. 날아간 칼이 박 선달의 소맷자락과 바짓자락을 기둥에 박아버리고, 갓을 날려버렸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박 선달의 안색이 싹 변했다. 어름사니가 다시 중심을 잡고 말했다.
“이게 바로 천하제일의 비도술이올습니다. 고구려 막리지 연개소문의 솜씨 아니겠습니까? 연개소문이 당나라 군대를 상대로 이렇게 비도술을 휙휙휙 날렸다지요.”
그때 오 진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왔다. 오 진사가 박 선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오 진사가 하인들에게 손짓을 했다.
“술만 취하면 앞뒤 못 가리는 저 인간 내쫓아라. 잔칫집에 흥을 깨도 유분수지!”
하인들이 즉각 달려들어 박 선달을 답삭 들어오려 대문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정 하나는 천하제일입니다.”
정생은 그래도 박 선달이 마을 어른인데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 마음에 좋지 않았다.
“어허, 말이 심하구나.”
정생은 못 일어나고 버둥대는 박 선달을 일으켜 담벼락에 기대어 앉혔다. 박 선달이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이, 이놈들… 바다 건너서 이름을 떨치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느냐? 그런 줄 아느냐고.”
그러더니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는 드르렁거리며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잠꼬대를 ‘이랴, 이랴’ 하는 것으로 보아 꿈에서는 천하제일의 마상재를 펼쳐서 해외 사람들의 박수갈채라도 받는 모양이었다. 언젠가는 그의 꿈이 그 후손들 품에서 이루어져 세상 사람들이 한류라 부르며 환호하게 될 거라는 건 정말 꿈에도 모른 채 정생의 손을 말고삐처럼 꽉 쥔 채로.
덕분에 정생은 박 선달이 눈을 뜰 때까지 꼼짝없이 잔칫집 담장 너머에서 쫄쫄 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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