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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과 처녀 귀신, 그리고 명탐정 :
민속학 미스터리, 그 창작의 여정


한국의 민속을 배경으로 추리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순전히 그 내력에 반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작풍을 추구했던 타국의 대가를 향한 동경이 크기도 했다지만, 민속학이라는 소재 그 자체가 흥미로웠다. 소설가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을 때, 흥미로운 소재라면 무엇이든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했는데, 때마침 매료된 것이 우리나라의 민속이었을 뿐이다. 미국산 영화를 애호하고 일본산 소설을 선호하는 나조차도 원점으로 회귀한 것을 보건대, 우리의 민간신앙에는 보편적인 매력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기고는 나의 창작 여정을 기록한 일종의 작가 노트이다. 멋도 모르는 신인 작가로서, 자료를 수집하고 문장을 쥐어짜는 과정에서 느꼈던 소회를 많은 이와 가감 없이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김홍신, 『풍객』, 행림출판사


김홍신의 『풍객』에서 묘사하기를 “무당 내력이란 별수 없이 귀신을 빙자해서 살아지는 목숨”이라고 했다. 탐정의 운명도 무당과 다를 바 없다.


〈김홍신, 『풍객』〉 (출처: 알라딘 중고서점)


미스터리 장르, 특히나 탐정과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 미스터리 장르는 본질적으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나름의 소견을 이르자면 판타지 장르의 한 갈래로 분류하는 바이다. 물론 지극히 사실적인 설정이 작품의 기반이 되기는 한다. 물리의 법칙이 존재하고, 당대의 기술 수준을 적용하며,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엄격히 제한한다. 그런가 하면 그토록 복잡한 범행을 실행하는 범인에게 복권 당첨 같은 천운이 몇 번이나 겹치기도, 범인이 일시나마 초인으로 변신한 듯 변수를 완벽하게 통제하기도 한다. 이 괴물 같은 범인을 지성 하나로 끝끝내 물리치는 탐정은 그야말로 마법사나 다름없다. 이런 면에서 본격 미스터리는 현실적인 요소를 끌어모아 초현실적으로 가공한 장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민간신앙에도 이와 유사한 모순이 있다. 가뭄 등의 재해에 직면했을 때 옛사람들은 기우제 같은 의례에 열을 올렸다. 굿으로 병을 고치려고 하고, 부적으로 액을 막으려고 했다는 것은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에도 합격을 위해 기도하고 예배를 통해 안식을 찾는 사람이 적잖은 것을 보면, 세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욕구는 크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렇듯 현실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해결 방식이 현실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본격 미스터리와 민간신앙은 모두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불가해함을 이해하고 지배하려는 욕구―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극명한 차이도 있다. 숱한 주술적 시도에도 현실에서의 고민은 그대로지만, 소설에서의 고민은 탐정이 깔끔하게 해결해 준다. 나는 이러한 공통점과 양가성, 또 실화와 허구의 간극에서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이 결합을 하나의 ‘미스터리’로 보았다.


〈무녀 김금화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만신》〉 (출처: ㈜엣나인필름)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무당이라고 하면 김금화(1931~2019)를 꼽을 수 있다. 김금화가 무당으로서 큰 발자취를 남길 수 있던 까닭은 단지 신통한 점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전국 민속경연대회에 입상하고,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될 만큼 우수한 기예를 지녔기에 널리 회자된다고 분석하는 바이다.

작가를 지망하고 나서 첫 장편을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쌀을 뿌리는 무당과 호통을 지르는 무당은 철저히 배제하겠다고 결심하던 나에게, 김금화라는 익살맞은 예인은 큰 울림을 안겨주었다. 한쪽을 보면 무속인이고 다른 한쪽을 보면 예능인인데, 우리는 대개 무당의 일면만 주시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뒤이어 떠오른 것은 다중 추리물, 이를테면 수 명의 탐정이 각자의 논리로 각기 다른 답을 도출하며 추리 경연을 펼치는 미스터리 작품들이었다.

점쟁이든 예인이든, 무당의 여러 면모를 탐정의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한다면 장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창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야무지기 그지없는 포부로 첫 장편 ‘무당집 살인사건’의 집필에 임했다. 역시나 꿈은 꿈일 뿐, 머지않아 난관에 부딪히며 역량 부족을 절감해야만 했다.

한국 민속과 본격 미스터리를 접목하는 작업은 양팔 저울의 평형을 맞추고자 씨름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현대에 이르러 본격 미스터리는 사실상 일본의 전유물이 되었는데, 나 또한 그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국식으로 재구성하며 정서를 살리자니 트릭이 한정되고, 배경을 죽이고 일본의 색채를 덧칠해야 재미가 살아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좋은 미스터리 작품은 장르적 재미가 최우선이고 이를 보조하는 장치는 어디까지나 장식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애써 깨우친 통찰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심에 배와 배꼽이 뒤바뀌는 순간이 허다했다. 그 와중에 잔머리는 어쩜 그리 떼굴떼굴 잘 굴러가는지, 아이디어가 과포화되는 바람에 하나로 끝내야 할 작품이 두세 개로 쪼개지며 작가 데뷔도 전에 시리즈를 만들 판이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출발한 ‘무당집 살인사건’은 장르와 배경, 그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는 어정쩡한 물건이 되고 말았다. 소설이 없는 추리소설, 소똥 냄새나지 않는 시골 같은 이야기였다고나 할까. 결국 어렵사리 완성한 첫 장편은 서랍 안에 넣어두고, 떨거지로 분류한 소재를 끌어모아 다른 습작을 쓰기 시작했다. 미스터리 작가가 되는 데 우선시해야 할 요소부터 선택 및 집중하여 그 이상의 큰 꿈은 뒷날에 이루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김동리, 『을화』, 문학사상사


김동리의 『을화』에서 영술은 심란한 와중에도 언어장애가 점차 회복되고 있는 누이동생을 보며 “차츰 혀를 제대로 놀릴 수 있게 된 점을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작업에 착수했을 때 나의 심정도 영술과 비슷했다.


〈김동리, 『을화』〉 (출처: 문학사상사)


무속에서 신봉되는 신의 숫자만큼이나 무당의 모습도 다채롭기 이를 데 없다. 그중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 아미타불의 기원에 대해 파격적인 이론을 제시한 무당이었다. 요컨대 무당이 나무아미타불을 읊는 것은 아미타불 님이 본래 무속의 신령님이라는 역사적 뿌리에서 연유했을 뿐인데, 승려들이 아미타불 님을 훔쳐 간 통에 무당이 졸지에 ‘짝퉁’이 되어버려 심기가 불편하다는 투정이었다. 따지고 잴 것도 없이 석가모니마저 뒷목을 잡을 법한 발상이었다.


〈고태라 작가의 장편 미스터리 소설 『마라의 요람』〉 (출처: 아프로스 미디어)


어쨌거나 아미타불의 소유권 논쟁, 나아가 불교와 무속의 미묘한 관계에서 실마리를 얻어 집필한 습작이 『마라의 요람』이었다. 무속을 조사하다 보면 불교와 유교, 하물며 도교까지 파고들어야 하는 시련에 부딪히게 마련인데, 불교가 새삼 신비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난세만 도래하면 목탁을 내려놓고 창검을 잡았다는, 승병들의 활약이 남긴 여운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게 ‘파계승과 명탐정의 지적 대결’이라는 구도가 잡히며 순조롭게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인상을 박박 쓰게 되며 막판에 이르러서는 줄담배를 뻑뻑 피워야만 했다.

민속과 역사에 이어 불교까지 공부하는 것은, 숨김없이 고하자면 정말이지 토 나오는 고행이었다. 고행이야 감수하면 그만이지만 진짜 문제는, 불교적 트릭을 위해 일본 밀교의 기괴한 문화를 차용하다 보니 또다시 한국 민속의 맥락에서 엇나갔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일본 미스터리의 작법을 빌려온 터라, 『마라의 요람』은 하회탈을 썼지만 까고 보면 가부키 배우의 얼굴이 튀어나오는, 출신이 어디인지 정의하기 어려운 혼종이 되어버렸다. 퇴고를 마치자니 후련함보다는 분함이 앞섰다. 분함을 해소하려면 다음 작품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각국의 설화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설화에도 무고한 귀신을 희생양으로 삼는 서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을이 흉년에 시달리게 된 원인은 억울하게 죽은 처녀가 애꿎은 마을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린 탓이라는, 다시 말해 모든 불화의 원흉을 죽은 처녀로 몰고 가는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대개 주민들이 처녀 귀신을 위해 제사를 올림으로써 마을이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는 식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망자를 악귀로 묘사하며 두 번 죽이는 여러모로 불합리한 기승전결이다. 다만 이런 서사 구조가 한편으로는 본격 미스터리의 특성과 유사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해결 불가능한 사고가 발생하고 이를 수습하고자 어떻게든 답을 도출하려는 노력이, 아이러니하게도 불굴의 명탐정을 연상케 했다.


〈고태라 작가의 『설곡야담』은 계간 《미스터리》 통권 77호, 2023년 봄호에 수록되었다.〉
(출처: 한국추리작가협회)


『설곡야담』은 이 유사성에서 착안하여 설화적 관행을 전복시키고자 집필한 단편이었다. 설산의 산장이라는 정형화된 미스터리 설정에다 많고 많은 귀신 중에서도 비주류 귀신, 타사신(墮死神)을 택하여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타사신은 여수 어느 동네의 당집에 달랑 한 줄 기록된 귀신의 한 종류인데,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여귀(厲鬼)를 통칭한다. 아마도 까마득할 무렵, 크고 작은 사달에서 비롯된 책임이 타사신에게도 한 번쯤은 전가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이런 누명 설화를 구성한 뒤 작중 시점을 달리함으로써 비로소 작의를 관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설곡야담』으로 소박하나마 데뷔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이후 한 해가 지나 『마라의 요람』도 그럭저럭 가다듬어 펴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두 작품에 통찰을 명확히 반영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극적 긴장감을 위해 한국의 무당을 일본식 영매로 변형한 점, 세시풍속을 구시대의 미개한 산물쯤으로 곡해하며 세계관을 비이상적으로 묘사한 점도 못마땅할 따름이었다. 한국적이지 못해서 유감이기보다는, 한국 민속 고유의 매력―무당의 삶, 주술과 저주, 민속 의례에 녹아있는 공동체의 정서 등―을 전달하지 못한 점이 못내 불만이었다.




이청준, 『이어도』, 문학과지성사


그것은 이를테면 오랜 세월 동안 이 제주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 전설의 섬이었다.


〈이청준, 『이어도』〉 (출처: 문학과지성사)


민속의 현지 및 현장 조사는 발로 뛰는 일이다. 업무 특성상 열정으로 도전한들 보상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니, 학자들에게는 마치 전설의 섬을 향한 항해와도 같을 것이다.

지면을 빌려 한국의 민속을 지켜오고 알리는 데 헌신하는 모든 이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나에게 작가라는 타이틀도, 또 다른 염원을 품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의 성과를 부정적으로 과장하거나 축소하고 한편으로는 자극적으로 왜곡하는 등, 흥미만을 위해 제멋대로 각색했던 것을 반성하는 바이다.

올해로 접어들어 앞서 언급한 염원을 실현하고자 ‘무당집 살인사건’의 원고를 다시 꺼내 들었다. 오랜만에 원고를 살펴보니, 대대적인 손질을 넘어 아예 첫 문장부터 다시 써야 할 판이라 암담한 지경이다. 장르적 재미를 보강하고 한국 무속의 진면모를 구현하는 동시에, 독자성을 확보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싶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4년의 세월을 이 기고문으로 풀어내며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으려니 어깨가 더 무거워진다. 태산에 맞먹는 눈높이를 능력이 따라잡을 수 있을지 불신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설의 섬을 찾아 헤매는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비록 토 나오는 고행의 연속일지라도, 민속과 미스터리의 융합이 결실을 볼 때까지는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남들은 무슨 콩고물이 떨어지길래 불안정한 일에 집착하냐고 핀잔하지만, 실속 없는 욕심쟁이가 어디 나 하나뿐이겠는가. 과거와 현재가 증명하듯이, 알 수 없는 것을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욕망의 노예는 한둘이 아니다. 그 욕망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미스터리라고 믿으며, 오늘도 탐정의 길을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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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소개

고태라
미스터리 소설가. 2023년 『설곡야담』으로 데뷔했다. 2024년 『마라의 요람』을 펴냈다. 미스터리 장르와 민속을 아우르고자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집터의 길흉을 점치다”

점괘패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최흥원, 역중일기, 1764-02-14

1764년 2월 14일. 맑은 날이었다. 어머니는 환후가 심해지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부쩍 음식 드시기를 싫어하시니, 애가 타고 두려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제는 송도관이 최흥원을 찾아왔는데, 이 사람은 평소 점을 잘 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송도관이 최흥원을 위하여 집터의 길흉을 점쳤는데, 관괘에서 비괘로 바뀌는 점괘를 얻었다. 이 점괘는 대단히 불길한 것으로, 그간 집안에 많았던 좋지 않은 일이 집터로 인해 일어난 것 같았다. 최흥원은 집터가 매우 불길하다는 말을 듣고는 거처를 옮겨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구에 있는 새 집터에 대한 점도 쳐 보았는데, 이 터에는 복괘가 진괘로 바뀌는 점괘였다. 꽤 길한 점괘라고 할 수 있었다. 본래 이곳에는 항진이가 새로 집을 지어 거처할 계획이었는데, 집터가 좋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었다. 항진이는 얼마 전 진사시에도 합격하였는데, 아마 집터의 좋은 기운을 받으면 대과에도 급제할지 모를 일이었다.

아내의 묘도 불길하다고 하여 이장을 하였는데, 이제 집터마저 기운이 좋지 않다고 하니 최흥원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아내, 형제, 아들……. 귀중한 혈육들이 이 집에서 몇 명이나 죽어 나갔는지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큰일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법이고, 그럴만한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최흥원은 송도원의 점괘를 앞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거를 꿰뚫어보는 맹인 점술가 ‘김여추’”

점괘표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권문해, 초간일기, 1594-03-09

1584년 3월, 권문해는 추운 겨울을 지나 어서 봄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3월 9일, 바라본 소백산에는 겨울처럼 눈이 내려온 산이 다 하얗게 되었다. 더욱이 연일 서리가 내려 초목의 싹이 대부분 시들어 죽어가는 걸 보니 마음까지도 메마르는 듯하였다. 그러던 중 예천군 성주 류세무와 경상북도 선산부백(善山府伯) 류덕수(柳德粹)가 경상북도 의성군의 대곡사(大谷寺)에 만나기를 청하였다.

3월 14일, 권문해는 집을 나서 대곡사로 향했고 그곳에서 3일을 머무르며 류세무와 류덕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3월 15일, 이야기 중 경상북도 선산군의 부백 류덕수에게 자신의 고을에 맹인 점쟁이 김여추(金汝秋)에 대해서 듣게 된다. 앞을 못 보는 맹인이지만 그 누굴 만나도 그가 살아온 과거를 귀신같이 맞춘다는 것이다. 권문해와 류세무는 명경수(明鏡數) 김여추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여추의 이야기를 한참 듣던 류세무는 율시 한 수를 쓰는데,

화와 복은 다 이미 정해진 것 禍福皆前定
꽃 피고 시드는 것은 각기 때가 있다네 榮枯各有時
정원의 꽃은 일찍 떨어져 버리지만 花落園中早
산골짝 옆 소나무는 오래도록 산다네 松生澗畔遲
현묘한 이치 원래 수가 있는 것이니 玄機元有數
조물주가 어찌 사사로움을 용납하리오 造物豈容私
모름지기 반계(磻溪) 늙은이를 알아야 할거니 須識磻溪叟
끝내 임금의 스승이 되었네 終爲帝者師

대곡사에 모인 권문해와 류세무, 류덕수는 앞 못 보는 맹인 점쟁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몰랐다.

“자신의 수명을 점쳤던 점괘가 생각나다”

『점괘』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오희문, 쇄미록, 미상

1593년 3월, 해가 바뀌자마자 100여 일을 앓았던 오희문은 최근에야 밥을 먹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운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희문이 병으로 죽었단 소문도 돌았고, 이로 인해 아들에게는 위문편지가 날아오기도 하였다. 병이 너무나 심하여 오희문 스스로도 이제 곧 죽는구나 생각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제 이렇게 다시 살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문득 15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오희문은 양지현 농촌에 머물고 있었는데, 죽산에 사는 맹인 김자순이란 자가 점을 잘 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리하여 그를 불러다가 자신의 운명을 점치게 하였는데, 그때 김자순이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나이 54세, 그러니까 임진년에 큰 횡액이 있고, 이것을 지나면 70살 넘게 살 수 있다” 그때 오희문은 재미 삼아 친 점이라 특별히 신뢰하지 않고 있었는데, 과연 임진년에 난리가 터져 거의 죽을 뻔하게 되었다. 비록 몸의 병은 해를 넘겨 생겼지만, 김자순이란 자가 이야기한 점괘와 신기하게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오희문은 새삼 점쟁이 맹인의 신통함에 감탄하였다.

“딸이 죽은 지 백일이 되어 굿을 하다”

오희문, 쇄미록, 1597-05-11

1597년 5월 11일, 오늘은 딸 단아가 죽은지 백일이 되는 날이다. 집사람이 무당을 불러다 놓고, 이웃집에 자리를 차리고는 징과 북을 치면서 굿을 하였다. 아마 딸의 원혼을 달래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한갓 미신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오희문은 그것이 허사인줄을 알면서도 애통한 마음과 부인의 마음을 헤아려 그대로 허락하고 말았다. 어쩌면 저 굿은 딸아이가 아니라 집사람을 위한 것이리라.

무당이 한창 북과 징을 울려대며 푸닥거리를 하니, 옆에서 집 사람 역시 무당의 말을 듣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통곡하였다. 그것을 바라보는 오희문 역시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미신인줄이야 알지만, 무당이 딸아이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대목에서는 콧등이 시큰거려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오희문 딸의 백일 기일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이 고을의 품관과 교생 등 15명 남짓 사람들이 술자리를 베풀고는 오희문과 아들 윤겸을 초청하여 위로의 자리를 가졌다. 비록 오희문은 얼마 전에 난 입병 때문에 술을 마실수가 없었으나, 그들의 호의는 무척 감사하였다. 이곳은 사람들의 품성도 순박한데, 음식도 사람들을 닮아서 모두 담백한 맛이었다. 이런 순박한 맛이야말로 선현들이 말한 후하고 아름다운 풍속이 아니었겠는가. 위로해 준 사람들은 모두 술에 취하여 저마다 시끄럽게 떠들고, 노래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였다. 맨 정신의 오희문은 자리에 앉아 살아있던 시절 딸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미신인줄 알면서도 기도를 올리다”

오희문, 쇄미록, 1597-01-16

1597년 1월 16일, 딸 단아의 증세가 날로 심각해져갔다. 지난 해 10월부터 병을 앓기 시작하더니, 해가 넘기고도 병세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오래도록 누워있고 씻지를 못하니 온 몸에 이가 끓고 피부병마저 앓게 되어 그 형상이 참혹하였다. 약을 써도 듣지를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단아의 병으로 피난 길에 오른지 한 달이 되었건만 아직 충청도 아산 고을에 머물러 있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가르쳐주기를, 병자의 생기복덕일을 가려서 글 아는 중을 불러가지고 쌀 3되로 밥을 지어 세 그릇에 담고, 정화수 한 그릇에 백지 한 장으로 깃대 5개를 만들어 세운 이후, 징을 치고 경을 외우면서 빌면 자못 효험이 있다고 한다. 오희문은 듣는 순간 그것이 허망한 일인 줄은 알았지만, 딸아이의 병이 어떻게 해도 효험이 없자 이거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하여 사람을 시켜 중을 불러다가 물었더니, 다행히 내일이 딸 단아의 생기일이라고 한다. 이에 들은 대로 준비해서 그 암자로 보내어 내일 새벽에 기도를 올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종 개질지를 시켜서 짐을 가지고 가도록 하고 아울러 등유 반종지도 함께 보냈다.

중의 이름은 인천이란 자였는데, 호남 출신의 중으로 이 암자에 머물고 있으면서, 이러한 기도로 일을 삼는다 하였다. 오희문은 영 믿음이 가지 않았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가 효험이 있기를 빌었다.

“몇 자 되는 뱀을 때려죽이다”

오희문, 쇄미록, 1596-06-16

1596년 6월 16일, 오늘은 종일 음산하게 비가 내렸다. 말더듬이 계집종과 개금이, 그리고 품삭일꾼 두 명으로 하여금 어제 끝내지 못한 김매기를 시켰는데, 역시 오늘도 끝내지 못하였다. 밤에 창 앞에 누워 있는데, 처마 끝에서 잠자던 새들이 놀라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이상한 생각에 올려다보니 뱀이 새집을 찾으며 처마에 걸려 있었다. 깜짝 놀란 오희문은 종 덕노를 시켜서 갈고리로 뱀을 걸어 내려서 때려죽였다.

뱀이 오희문 집에 나타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10일경 그날도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처마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올려다보니 처마 끝에 뱀이 걸려 있었다. 그 뱀은 길이가 무려 몇 자나 되고 검붉은 반점 무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독사가 분명하였다. 새집을 찾아서 새끼를 잡아먹기 위해서 지붕에 올라갔던 것이다. 만일 잡아 죽이지 않으면 필경 사람을 해칠 뻔했으므로, 뱀을 잡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 잡은 뱀을 보니 얼룩진 무늬가 먼젓번 죽였던 뱀과 똑같은 것이었다. 독이 있는 뱀이 이와 같이 자주 출몰하니 매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며칠 사이에 이와 같은 큰 뱀을 두 마리나 잡아 죽였으니, 혹 집안에 이상한 변고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오희문은 마음에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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