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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혼사추리극 - 연풍의 신부 6

신랑감이 결정되다

글 이외숙 / 삽화 이다



6화 신랑감이 결정되다


한마디로 낭패였다. 효문은 지금 동헌 사람들과 마주치면 곤란했다. 현감의 하인에게서 서신을 훔친 게 엿새 전이니 시간이 더 필요했다. 효문은 어쩔 수 없이 형방청의 사내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혹시 현감님이십니까?”
“그건 아니고, 나는 현감 바로 밑에 있는 장이방인디… 여는 아무나 들어오는 데가 아니란 말이지.”
“압니다. 현감님을 만나러 왔는데 길을 잃어서 그만…….”
연풍현 이방 장영이 거들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이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먼. 대체 뭐 하는 작잔디 우리 현감님을 찾는단 말이여?”
효문은 옷에 품은 서신을 꺼내서 장이방에게 보여주었다. 그제야 장이방은 뒷짐을 풀었다.
“몰라 뵈어 송구하구먼유. 안 그래도 현감님이 애가 타도록 기다리고 있구먼유. 지를 따라오시쥬.”
장이방은 현감이 있는 동헌으로 효문을 데려갔다.
“한양에서 손님이 도착했구먼유.”
장이방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감 홍권탁이 방문을 열었다. 동헌 대청으로 나와서는 효문의 손을 반갑게 잡았다.
“며칠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일찍 오시었소.”
“박연지라 합니다. 워낙 중차대한 일이라 말을 급히 몰아서 왔습니다.”
“손에 땀이 아직도 흥건합니다. 급히 오느라 고생하셨소.”
효문의 손이 축축한 것은 당황한 탓이었다. 이 상황을 알 리 없는 현감은 잠깐이지만 서둘러 와준 효문이 고맙기까지 했다. 현감이 효문과 잡은 손을 풀며 말했다.
“박처자의 중매를 하려는데 집안어른이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여기 현감으로 오기 전에 나도 한양서 살았소. 그때 친하게 지낸 인맥을 동원해서 처자의 친척을 수소문하였지요. 근데…….”
갑자기 현감이 효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당숙이라 하기엔 나이가 한참 어리지 싶소.”
효문은 현감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몸이 좋지 않아 저를 대신 보내었습니다.”
“아이고, 그런 것이오?”
현감이 자신에게 더 이상 호기심을 갖지 못하도록 효문은 혼사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채옥이 중매는 어찌 되고 있습니까? 이 근방에 좋은 혼처가 있는지요?”
“있다마다요. 안 그래도 신랑감이 정해졌소이다.”
“벌써 말입니까? 아무리 현감님이 중매를 한다 해도 제게 상의도 없이 신랑감을 결정하다니요. 혼인은 인륜지대사라 신중하게 진행해야 하거늘…….”
“박처자 나이가 숨넘어가는지라 그리했습니다. 신랑감에 대해선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정성을 다해 찾았으니까요. 그리고 그쪽도 얼른 일을 치르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효문은 현감의 마지막 말이 자못 마음에 걸렸다. 가짜이지만 최선을 다해 채옥의 친척 오라비 행세를 하고 싶었다. 그래야 조금은 덜 미안할 것 같았다.
“신랑감은 어떤 사람입니까?”
“문경 현감의 둘째 아들 이경박입니다.”
“집안이며 사내의 인품이 괜찮은 것이지요?”
“그건 말할 필요도 없지요. 박처자와 천생연분이라 하더이다.”
효문은 현감이 이리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사내라면 괜찮을 듯싶었다.
“내일 오후에 사주단자와 청혼서가 오도록 처리하겠소이다. 신랑 신부 궁합 보는 김에 택일 날짜도 알아보았지요. 이레 뒤에 혼인하면 백년해로한답니다.”
“날받이는 신부 집에서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길일이라지만 이레 뒤라니 너무 빠릅니다. 자장도 준비해야 하는데…….”
“그것 때문이라면 걱정 마시지요. 혼례에 필요한 옷이며 물품도 내가 준비해서 보낼 테니까요.”
“혼기를 넘긴 처녀의 중매까지 직접 해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럼 채옥이에게 신랑감에 대해 전하겠습니다.”
효문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동헌을 나왔다. 임금에게 올릴 장계에 현감을 칭찬하는 내용도 빠뜨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효문의 모습이 사라지자 현감은 눈빛이 사납게 바뀌었다.
“이레 뒤에 무슨 일이 있어도 혼례를 치러야 하네.”
“많이 급한 감이 있긴 한디…….”
“이번 일에 자네는 물론 내 벼슬자리까지 달렸네. 잔말 말고 바삐 진행하게나.”
“예, 알겠구먼유.”
“그나저나 기다리는 사람은 왔는데 서찰을 가져간 아이는 어찌 이리 함흥차사인고…….”
“돌쇠 놈이 어서 또 놀고 있나보네유. 오믄 따끔하게 혼을 내겠구먼유.”

***

효문은 형방청에서 훔쳐 본 검안서 내용을 곱씹고 있었다.
‘박채영… 처자의 언니로구나. 미인촌 소문이 거짓이 아니란 말인가……. 하나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지… 또한 왜 박처자는 언니 일을 모른다고 했을까…….’
효문은 맞은편에서 오던 노파와 부딪히고 나서야 생각을 멈추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미인촌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다른 길에 들어서 있었다.
효문의 눈앞으로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었고, 그곳에서는 약재들을 팔고 있었다. 효문은 제일 오래되어 보이는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이건 어디에 쓰는 겁니까?”
“체했을 때 차로 다려 먹으면 좋지유. 어떤 약재를 구하신데유?”
“찾는 게 있긴 한데…….”
약재 가게 주인이 다 안다는 듯 눈 한쪽을 찡긋하였다.
“사내한테 좋은 걸 찾으시는감유?”
“그런 게 아니라… 혹시 길을 잘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약재는…….”
“그게 무신… 뚱딴지같은 소리래유?”
효문은 가게 주인의 미간이 찡그려지는 것을 보고는 얼른 말을 돌렸다.
“아닙니다. 멍 빠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걸로 챙겨주십시오.”
“그거라믄 좋은 게 있구먼유.”
“여기서 장사를 오래하였습니까?”
“그람유. 여기 토박이지유. 약재 장사도 3대째 하고 있구먼유.”
효문은 잘못 들어서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가다 미인촌 소문을 들었는데…….”
“아휴, 숭악스런 소문이쥬.”
“아주 옛날부터 내려오던 이야기입니까?”
“아니구먼유. 이 고을이 얼마나 살기가 좋은 곳인데유.”
“그럼 언제부터 소문이 퍼졌습니까?”
“그러니께 미인촌 박씨네 딸이 죽고는 갑자기 확 퍼졌다니께유. 소문이라는 게 흉측할수록 살도 더 많이 붙고 빨리 퍼지니께유. 미인은 박명이라더만 그짝 집안 딸들이 참 안 됐쥬.”
효문은 약재 꾸러미를 받아들고서 미인촌으로 향했다.

***

효문은 마음이 답답했다. 방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미인촌 소문의 진실을 알아내려면 박처자 언니의 혼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야 한다. 필시 박채영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하늘을 쳐다보던 효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돌담 위에 반달이 하나 걸려 있었다.
“숨어 있지 말고 이쪽으로 오너라.”
돌담 위에 살포시 걸려 있던 반달은 사람의 이마였다. 잠시 뒤 소진이 몸을 배배 꼬며 모습을 드러냈다.
“부딪힌 데는 괜찮으냐?”
“멍들었구먼유.”
“혹시 나한테 따지려고 온 것이냐?”
“그런 건 아니어유.”
“이거 챙겨가거라.”
효문은 아랫마을에서 산 약재 꾸러미를 들어 보였다. 눈이 동그래진 소진이 효문에게 다가왔다.
“멍 빠지는 데 좋다는구나.”
“줄려면 더 일찍 줬어야쥬.”
소진은 괜히 뽀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도 채옥이와 성격이 비슷한 모양이구나.”
“그거 칭찬이여유? 욕이여유?”
“비밀이다.”
소진이 효문을 향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근데 마을 사내들은 어디로 갔느냐? 여인들만 보이던데…….”
“없구먼유.”“그게 무슨 말이냐?”
“사내는 안 산다구유.”
“어찌…….”
“작년에 채옥 언니 어르신 돌아가시고는 여인들만 남게 됐구먼유.”
“그럼 너도 아버지가 안 계시겠구나.”
“얼굴도 본 적이 없는데유…….”
“사내가 한 명은 있어야 할 텐데… 마을에서 큰일을 치르려면 말이다.”
“그럴 땐 언니가 다 해유.”
“소진아… 작년에 채영, 그러니까 이 집 작은언니의 혼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느냐?”
“몰러유.”
“채옥이가 마을 일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더냐?”
“진짜라니께유. 그날 이야기 꺼내믄 혼나는구먼유. 다들 너무 슬퍼서 그러는가… 채영 언니가 너무 안 됐어유. 채옥 언니도 불쌍하구유.”
그때 채옥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소진이 왔구나.”
“언니…….”
효문은 몰래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듯해서 괜히 헛기침을 했다.
“집에 계셨습니까?”
“나도 좀 전에 들어왔다.”
“저녁상 봐오겠습니다.”
“그전에 할 말이 있는데 혼처가 정해졌구나.”
“예?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효문은 채옥이 정색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신랑감이 정해진 게 기쁘지 않은 것이냐?”
“도대체 어떤 작자입니까?”
“작자라니, 배필이 될 사람에게 쓸 단어는 아니구나.
” “지나쳤습니다. 어느 댁… 사람입니까?”
“문경 현감 둘째 아들 이경박이다. 너와는 천생연분 짝이라는구나. 혼례 날은 이레 뒤로…….”
효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채옥은 뛰어나가 버렸다. 소진도 약재 꾸러미를 챙겨서는 채옥의 뒤를 따랐다.
‘이곳 여인들은 걷는 것보다 뛰는 게 일상이구나. 그나저나 신랑감이 정해진 게 나한테 이리 화를 낼 일이란 말이냐…….’
효문은 채옥과 소진이 나간 쪽을 쳐다보았다. 효문의 눈빛에는 당황한 기색이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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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유교시대 싱글의 삶을 꿈꾸는 채옥과, 미인촌 소문을 파헤치려고 신분을 위장하여 채옥의 혼인을 진행하려는 효문이 만나 벌어지는 <조선혼사추리극>

등장인물

  • 박채옥 미인촌 박씨 집안 막내딸로 자매 가운데 가장 미모가 뛰어나다. 머리보다 행동이 앞서는 탓에 걷는 것보다는 뛰는 게 일상이다. 치마는 흙투성이, 얼굴에 상처 하나쯤은 장식으로 여긴다. 어릴 적부터 행실도 읽는 일을 제일 싫어했으며, 마을 어귀에 세워진 열녀비에다 아무렇지 않게 돌을 던진다.
  • 김효문 한양 명문가의 아들이나 서출의 신분. 규장각 각신으로 검서관 자리에 있다가 충청 지역에 가뭄이 들자 위유사(천재지변이나 병란이 났을 때 지방의 사정을 살피고,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 관리) 로 임명받는다. 채옥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육촌 오라버니 행세를 하면서 미인촌 소문을 파헤친다.
  • 어을할매 고갯길에서 주막을 운영하는 노과부. 할매의 나이와 과거는 아무도 모른다. 궁녀 출신이다, 수십 년 전 남편에게 소박맞았다 등 갖가지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남자들에게는 팜므파탈, 채옥에게 친할머니 같은 존재.
  • 박채선과 박채영 미인촌 박씨 집안의 큰딸과 둘째 딸.
  • 박광헌 채선, 채영, 채옥의 아버지.
  • 홍권탁 연풍 현감.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지 않고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하다.
  • 장영 연풍현 이방. 형방청에서 하는 일이라곤 새로 온 현감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고민하는 것이다. 아들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아들 바보(?).
  • 장병수 연풍현 이방의 아들. 혼인날 일어난 사건 때문에 박씨 집안을 저주한다.
  • 이경박 문경 현감의 둘째 아들로 채옥의 중매남이다. 한마디로 계집 팔아 명당 살 놈.
  • 소진 미인촌에 사는 여자아이. 효문을 좋아한다.
  • 그 외 어정개 주막의 주모와 선비들, 연풍현 하인 돌쇠, 오작인, 노비 막동이 등.

작가의 말

‘연풍의 신부’는 지난해 ‘스토리 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스토리 테마파크의 자료들 가운데 선인 박재현이 쓴 서정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서정일기를 보면 “연풍(延豐)의 미인촌(美人村)은 미인이 많은 곳이지만, 혼인하는 날 모두 죽게 되는 괴이한 전설이 있었고⋯⋯.”라는 내용이 나오지요.
전설이란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일기를 보자마자 미인촌 전설에 숨은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그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유학 군주’라 불렸던 정조의 시대를 배경으로 일기에 미처 담지 못한 미인촌 전설의 시작을 스토리로 만들었어요. 조선 시대 싱글의 삶을 꿈꾸는 처자 박채옥과 미인촌 소문을 파헤치는 위유사 김효문의 만남을 통해 조선 시대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려고 했습니다.

작가소개

이외숙
이외숙
전방위 작가가 되고 싶어서 하루하루 고군분투합니다. 지름길보다는 에움길을 가는 마음가짐으로 이 길을 가려 합니다.
이다 (박은희)
이다 (박은희)
순정만화가. 2003년 만화계 데뷔.
드라마 원작 만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 차기작 ‘향’ 작품 준비 중.
작품으로는 ‘why not?’, ‘포도밭 그 사나이’ 등이 있다.
“ 조선시대의 디자이너, 철학에 기초하여 옷을 짓다 ”

서찬규, 임재일기,
1849-06-15 ~ 1859-07-17
1849년 6월 15일, 안동의 신재기(申在箕)[자는 범여(範汝)]씨가 서찬규를 찾아와서 위문하고 제복(祭服)을 만들었다.
1853년 1월 19일, 안동의 신재기 씨가 내방하였다.
1854년 2월 24일, 춘당대에 국왕이 친림하는 인일제를 설하여 시제(詩題)에 내었는데 근래에 없던 것이었다. 과거에 응시한 후에 곧 노량진에 가서 선생의 제사상에 조문을 드리고 곧바로 성균관에 들어갔다.

“ 20년만에 만난 관기 몽접, 그녀의 노래실력은 여전하다 ”

양경우, 역신연해군현잉입두류상쌍계신흥기행록,
1618-05-05 ~
1618년 5월 5일, 남도일대를 유람중이던 양경우가 수령에게 접대를 받았다. 관기인 몽접(夢蝶)이란 이가 들어와 인사를 드리는데, 이 기생은 젊었을 때 노래를 잘 불렀다. 난리를 만나 떠돌아다니다가 용성에 이르러 내가 거처하는 촌사(村舍)에 3년 동안 붙어살았는데, 그 이후로 20년간을 어디에서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문득 만나니 또한 세상사는 사람의 우연한 일이다. 서로 옛날이야기를 하였고 그녀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아직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한들한들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른다. 태수가 나를 위하여 술자리를 마련하니 밤늦도록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파하였다.

“ 음악과 시로 어울렸던 광대와 양반, 눈물로 헤어지다 ”

서찬규, 임재일기,
1846-09-16
1846년 9월 16일, 서찬규는 며칠 간 망설였던 일을 하고 말았다. 창부(倡夫)들을 내보낸 것이다. 사실, 반년 동안이나 와서 의지했던 터라 그의 마음도 참으로 서운하고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창부 일행의 마음도 착잡하긴 마찬가지였다. 모두 돌아간다고 말해놓고 행장은 이미 꾸렸음에도 눈물이 앞을 가려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간 서찬규 생원 댁에서 편안하게 지냈는데, 이제 어디로 가서 입에 풀칠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비라도 오면 좋으련만, 맑은 날씨가 발길을 재촉하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 아름다운 노랫말과 슬픈 과거를 지닌 여인, 시희(詩姬) 얼현을 만나다 ”

김령, 계암일록,
1625-01-03 ~
1625년 1월, 추운 겨울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된 나그네 신세의 김령에게 아침 일찍 지인들이 찾아왔다. 김령은 놀랍고 기쁜 마음으로 회포를 풀고, 날이 저물 때까지 그들과 함께 했는데, 무리 중에는 김령을 찾아온 시희(詩姬) 얼현(乻玄)이 있었다.
그녀는 천성(川城)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의 여종이었다. 20년 전에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다가 서울에 들어와서 어떤 자의 첩이 되었는데, 미모가 시들자 이별을 당했다. 이때 와서 시권(詩卷)을 가지고 김령을 찾아왔는데, 그 시어(詩語)가 매우 맑고 아름다웠다. 창석(蒼石) 이준(李埈) 어른이 때마침 왔다가 그 시를 보고 칭찬하면서 그것을 소매 속에 넣어서 돌아갔다.

“ 밀양 기생 보금을 연주하다 ”

황사우, 재영남일기,
1519-02-04 ~ 1519-07-09
1519년 2월 4일, 황사우는 밀양의 수산현과 금동역을 거쳐 밀성(密城)에 들어갔다. 집무를 마친 황사우는 저녁에 기녀를 불러 거문고를 연주하게 하고 회포를 풀었다.
7월 8일, 아침 일찍 양산군을 출발하여 밀양에 이르렀다. 춘추 포폄 때문에 감사가 좌수사와 우수사와 함께 집무를 보았다. 황사우는 이들을 뵙고 저녁 식사를 함께 하였다. 그리고 이날 황사우는 밀양에 처음 왔을 때 만났던 기녀를 다시 불렀다. 그녀를 보자 황사우의 가슴이 뛰었다. 그녀의 이름은 보금(寶琴). 보배로운 거문고라는 뜻이었다.
7월 9일, 밀양. 감사와 좌수사, 우수사가 누각에서 집무를 하고, 여러 사람들이 모두 머물렀다. 여러 훈도를 고강하였다. 황사우는 저물 무렵 방으로 내려와 밀양현감과 전 고령현감과 잠깐 술자리를 하고 잤다. 좌수사와 우수사가 감사에게 고기를 먹고 술 마시기를 권하여 밤중까지 이르렀다. 황사우는 그 자리에 끼지 않았는데, 내심 다행으로 여겼다. 칠원현감과 영산현감에게 대전(大典)을 고강했다. 이날도 황사우는 보금을 몰래 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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