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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

저승에서 살아 돌아오기


저승은 멀다. 얼마나 머냐 하면 삶 전체를 걸쳐 가야만 할 정도로 멀다. 살아서는 다 못 가는 곳이다. 그런 멀고 먼 미지의 세계인 저승이지만 ‘신화’라는 거대한 이야기 세계 속에서는 저승 문을 살아서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오는 일이 허다하다.


〈 『희락당문고(希樂堂文稿)』 권8에 수록된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살아생전 수많은 정적과 원수를 만든 김안로(金安老, 1481~1537)가 경기도로 귀양가서 쓴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에는 의술이 뛰어난 박생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박생은 명부를 잘못 본 저승사자에게 끌려가 염라대왕을 만나고 염이 시작되기 직전에 다시 돌아오는데, 그때 저승에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까닭은 ‘선왕’을 닮은 저승의 관리가 그를 몰래 뒤로 불러 저승에서 내어주는 떡을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해 주기 때문이다.

이 관리는 진짜 조선시대의 선대왕이기라도 한 듯 이승으로 그를 돌려보내면서 현재의 왕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왕에게 ‘좀 반성하라!’ 전하며 박생을 삶으로 돌려보낸다. 염이 막 시작될 참에 숨이 돌아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박생은 이후 내의원에서 벼슬까지 하며 사람을 너무 잘 치료하여 죽어 저승으로 가야할 사람도 제때 가지 못하게 하여 저승을 당혹케 했던 모양이다.

저승에 갔다 돌아올 뿐만 아니라 저승에서 얻은 물건으로 부모를 살리고 심지어는 자진해서 저승으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신이 된 바리공주도 있지만 만화 《신과 함께》로 유명한 강림도령은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차사가 된 예이기도 하다. 워낙에 능력이 출중하고 힘이 장사인 그가 저승에 나타나 심지어 명왕의 명줄까지 잡고 흔들 정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명왕은 그를 자신의 휘하에 부리고 싶어 하는데 이 일을 강림과 상의하는 게 아니라 강림의 상사인 김치원님과 상의한다. 강림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육신과 혼은 둘로 나뉘어 육신은 땅에 남아 김치원님의 것이 되고 혼은 염라대왕의 것이 되는데, 혼이 빠져나간 육신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주호민의 웹툰 《신과 함께》에는 이러한 강림의 에피소드가 너무나 못생겨 손가락 하나 대지 않으려 했다던 정실부인과의 에피소드로 짤막하게 담겨있다.


〈뮤지컬 《신과 함께》의 한 장면〉 (출처: (재)서울예술단)


뮤지컬 《신과 함께》는 제주의 ‘차산본풀이’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저승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원작인 웹툰 《신과 함께》를 극화한 영화 《신과 함께》에서 변호사인 진기한을 삭제하고 강림과 두 차사로 하여금 저승을 끝까지 호위하게 한 것과 달리, 뮤지컬 《신과 함께》에는 고전에는 없는 창작 인물, 신기한 저승 변호사 진기한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인물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저승이 무서운 이유는 알지 못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2015년에 초연을 올린 뮤지컬 《신과 함께》는 주호민의 원작을 성실하게 따르며 진기한 변호사와 이승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이었던 김자홍의 저승 여행기를 다룬다. 김자홍이라는 어딜 봐도 평범한 인물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크게 선한 일을 행한 것도 아니지만 딱히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뮤지컬 《신과 함께》 2018년 공연 하이라이트  더보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자홍처럼 선과 악의 경계에서 선에도 악에도 큰 관심 없이 소소한 삶을 살아가기 마련이라서 죽은 뒤 사십구재까지의 무시무시한 저승길에 진기한이라는 인물이 따라붙어 그의 소소한 죄마저 변호해 주고,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게 이끌어 준다는 사실은 큰 위안을 준다. 저승에서 살아나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마저도 길잡이 없이 자력으로 살아나오기는 어렵다. 이는, 웹툰 《신과 함께》가 전통 설화를 그리면서도 폭발적인 공감을 얻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피터 프리스(Pieter Fris)가 그린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이와 별개로, 저승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제 발로 다시 저승으로 간 인물도 있다. 그리스 신화의 유명한 음유시인 오르페우스는 독사에 물려 저승으로 끌려간 아내 에우리디체를 못 잊어 저승으로 아내를 찾으러 내려간다. 그의 특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애절한 노래다. 류트 하나 손에 들고 아내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노래로 그는 저승의 강에서 노를 젓는 엄격한 뱃사공 카론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내고 격려까지 받으며 무서운 저승 강아지 케르베로스를 잠들게 하고 마침내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아내를 되찾아 이승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몇천 년 동안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그가 천계급 싱어송라이터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미친 노래 실력을 가진 미남자가 저승을 나가는 문턱을 넘기 전 에우리디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의심스러워 뒤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그가 아내를 이승으로 데리고 나가는 유일한 단서 조항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 것. 저승 문을 나가기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저승문 바로 코앞에서 뒤를 돌아본다. 그의 등 뒤에서 그의 물음에 대답하며 춥고 서러운 저승에서 탈출하기를 간절히 원하며 맨발로 따라오던 에우리디체는 오르페우스가 그 하나의 약속을 어긴 탓에 다시 저승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 부분에 던지는 수많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해석이 이 이야기에 수천년의 생명을 불어넣는다.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Orpheus in the Underworld)》 중
파리의 유명 카바레 물랑루즈를 대표하는 캉캉으로 유명한
‘지옥의 갤럽’ 장면  더보기


프랑스가 자랑하는 오페레타의 신, 쟈크 오펜바흐는 자신의 히트작인 《지옥의 오르페우스(Orpheus in the Underworld)》에서 이 고전적인 ‘왜’를 아예 풍자로 지워버린다. 애당초 하데스와 에우리디체는 불륜 사이고 이를 알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체가 연인 하데스를 따라 지옥에 가버리자 속이 다 시원하다. 하지만 지상의 사람들은 오르페우스에게 지옥에 가서 아내를 데려올 능력이 있으면서도 안 간다며 오르페우스의 윤리성을 두고 비난한다.

견디다 못한 그는 마지못해 지옥에 내려가 아내를 구해오는 척하는데, 지옥에서는 역시나 가면 부부인 페르세포네와 하데스가 떨떠름하게 그를 맞이한다.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재미없는 오르페우스와 지상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에우리디체, 빨리 그녀를 돌려보내라는 아내 페르세포네 사이에서 지옥의 왕 하데스는 돌아보지 말라는 조항 하나를 붙여 모든 사태를 해결한다. 프랑스의 지식인과 지배계층을 풍자한 이 우스꽝스러운 오페레타는 전 유럽을 휩쓸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뮤지컬 《하데스 타운》의 한 장면〉 (출처: 에스앤코㈜)


뮤지컬 《하데스 타운》은 신과 인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그리면서 신화를 현실로 끌어오되 신화의 주인공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게 만드는 독특한 작품이다. 신화를 현실로 가져오면서 생기는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무리한 시도를 아예 하지 않으면서도 신들에게 인간의 특성을 입혔다. 극 중에서 에우리디체와 오르페우스가 사는 시대는 장벽을 높이 세우고 일거리가 없어 배가 고픈 시대다. 헤르메스나 하데스, 페르세포네의 의상을 보면 마치 경제 대공황기를 연상케 한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시를 쓰고 노래를 완성하고 싶어 몰두하는 베짱이 같은 오르페우스와 달리 에우리디체는 배가 고파 돈을 벌려고 애쓴다. 하지만 에우리디체는 고통 속에서 삶을 포기하고 하데스의 유혹을 받아들여 저승으로 가버린다. 뒤늦게 아내를 잃은 것을 안 오르페우스는 한발 늦게 저승으로 향한다. 역시나 그의 무기는 노래다. 저승으로 향하며 아내에 대한 목마름과 사랑을 담아 그의 노래는 마침내 완성되고 페르세포네의 마음을 적신다.


뮤지컬 《하데스 타운》 토니상 쇼케이스   더보기


이 뮤지컬의 시작과 끝은 페르세포네다. 페르세포네는 여신 데메테르의 딸이라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신계의 온갖 규칙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미친듯이 사랑해 지옥에 머물러 주기를 간청하며 온갖 산해진미를 들이민 하데스 앞에서 페르세포네는 굳게 입을 닫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긴 세월을 버텼다. 하지만 지상으로 돌아가게 해준다는 말에 들뜬 그는 딱 석류 6알을 먹었고 그 때문에 지상에서 6개월, 지옥에서 6개월을 살게 되었다. 페르세포네의 어머니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라, 페르세포네가 지옥으로 가버리면 데메테르의 슬픔으로 대지에는 혹독한 겨울이 오고, 페르세포네가 돌아오면 그 기쁨으로 대지에도 따스한 봄이 돌아온다. 페르세포네는 지독하게 남편을 미워하는 인물이었지만 뮤지컬 《하데스 타운》에서는 어쩐지 그 미움에 애정이 들어가고 예전만큼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즈음, 사랑 하나 믿고 저승으로 쳐들어온 오르페우스의 존재는 그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아니 그런데, 지옥의 왕 하데스마저 흔들었던 그 오르페우스가… 그 오르페가… 뒤를 돌아보고 에우리디체가 다시 지옥으로 끌려내려 갈 때의 관객의 절망을 생각해 보자. 브로드웨이에서 이 뮤지컬을 볼 때 주변 관객들의 입에서 F와 S, I 로 시작되는 원색적인 욕들이 탄식처럼 터져 나왔던 순간. 그 정도의 절망일 것이다. 에우리디체는 다시 지옥으로 잡혀간다. 그것도 원작과 달리 뮤지컬에서 표현하는 에우리디체의 지옥은 무한의 노동이 기다리는 곳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시계를 다시 앞으로 돌려 오르페우스의 눈앞에 에우리디체가 처음 나타났을 때로 돌아간다. 그렇다. 옛날이야기는, 힘을 지닌 이야기는 이렇게 수천 년을 거듭하며 오늘의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이야기라는 형식이 지닌 힘이다.

페르세포네는 석류를 먹어 삶의 반을 지옥에서 보내고 박생은 떡을 먹지 않아 삶으로 돌아온다. 저승에 잡혀갔으나 명을 다하지 않았다면 상으로 극락에 보내주거나 천상계로 보내줄 법도 한데 상은 늘 지상으로의 복귀다. 이야기를 만든 존재가 신이 아니라 사람이고, 사람에게 가장 좋은 곳은 천국이나 극락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삶이다.

나에게는 18년을 함께 산 고양이가 있다. 내 고양이가 저승에서 주는 추르를 낼름 받아먹지 않고 이승에 조금만 더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희망이지만, 아직 살아있어 삶 밖에 모르는 인간이라. 그러니 고양이를 데리러 온 차사가 있다면 부디 조금 멀리 서서 기다려 주시기를.




집필자 소개

이수진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 〈그리스〉, 〈넌센스〉, 〈에비타〉 등 번역하고,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등을 썼습니다.〈뮤지컬 스토리〉 저자 / 더 뮤지컬 어워드 심사위원 역임 등
“집터의 길흉을 점치다”

점괘패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최흥원, 역중일기, 1764-02-14

1764년 2월 14일. 맑은 날이었다. 어머니는 환후가 심해지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부쩍 음식 드시기를 싫어하시니, 애가 타고 두려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제는 송도관이 최흥원을 찾아왔는데, 이 사람은 평소 점을 잘 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송도관이 최흥원을 위하여 집터의 길흉을 점쳤는데, 관괘에서 비괘로 바뀌는 점괘를 얻었다. 이 점괘는 대단히 불길한 것으로, 그간 집안에 많았던 좋지 않은 일이 집터로 인해 일어난 것 같았다. 최흥원은 집터가 매우 불길하다는 말을 듣고는 거처를 옮겨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구에 있는 새 집터에 대한 점도 쳐 보았는데, 이 터에는 복괘가 진괘로 바뀌는 점괘였다. 꽤 길한 점괘라고 할 수 있었다. 본래 이곳에는 항진이가 새로 집을 지어 거처할 계획이었는데, 집터가 좋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었다. 항진이는 얼마 전 진사시에도 합격하였는데, 아마 집터의 좋은 기운을 받으면 대과에도 급제할지 모를 일이었다.

아내의 묘도 불길하다고 하여 이장을 하였는데, 이제 집터마저 기운이 좋지 않다고 하니 최흥원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아내, 형제, 아들……. 귀중한 혈육들이 이 집에서 몇 명이나 죽어 나갔는지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큰일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법이고, 그럴만한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최흥원은 송도원의 점괘를 앞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거를 꿰뚫어보는 맹인 점술가 ‘김여추’”

점괘표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권문해, 초간일기, 1594-03-09

1584년 3월, 권문해는 추운 겨울을 지나 어서 봄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3월 9일, 바라본 소백산에는 겨울처럼 눈이 내려온 산이 다 하얗게 되었다. 더욱이 연일 서리가 내려 초목의 싹이 대부분 시들어 죽어가는 걸 보니 마음까지도 메마르는 듯하였다. 그러던 중 예천군 성주 류세무와 경상북도 선산부백(善山府伯) 류덕수(柳德粹)가 경상북도 의성군의 대곡사(大谷寺)에 만나기를 청하였다.

3월 14일, 권문해는 집을 나서 대곡사로 향했고 그곳에서 3일을 머무르며 류세무와 류덕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3월 15일, 이야기 중 경상북도 선산군의 부백 류덕수에게 자신의 고을에 맹인 점쟁이 김여추(金汝秋)에 대해서 듣게 된다. 앞을 못 보는 맹인이지만 그 누굴 만나도 그가 살아온 과거를 귀신같이 맞춘다는 것이다. 권문해와 류세무는 명경수(明鏡數) 김여추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여추의 이야기를 한참 듣던 류세무는 율시 한 수를 쓰는데,

화와 복은 다 이미 정해진 것 禍福皆前定
꽃 피고 시드는 것은 각기 때가 있다네 榮枯各有時
정원의 꽃은 일찍 떨어져 버리지만 花落園中早
산골짝 옆 소나무는 오래도록 산다네 松生澗畔遲
현묘한 이치 원래 수가 있는 것이니 玄機元有數
조물주가 어찌 사사로움을 용납하리오 造物豈容私
모름지기 반계(磻溪) 늙은이를 알아야 할거니 須識磻溪叟
끝내 임금의 스승이 되었네 終爲帝者師

대곡사에 모인 권문해와 류세무, 류덕수는 앞 못 보는 맹인 점쟁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몰랐다.

“자신의 수명을 점쳤던 점괘가 생각나다”

『점괘』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오희문, 쇄미록, 미상

1593년 3월, 해가 바뀌자마자 100여 일을 앓았던 오희문은 최근에야 밥을 먹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운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희문이 병으로 죽었단 소문도 돌았고, 이로 인해 아들에게는 위문편지가 날아오기도 하였다. 병이 너무나 심하여 오희문 스스로도 이제 곧 죽는구나 생각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제 이렇게 다시 살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문득 15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오희문은 양지현 농촌에 머물고 있었는데, 죽산에 사는 맹인 김자순이란 자가 점을 잘 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리하여 그를 불러다가 자신의 운명을 점치게 하였는데, 그때 김자순이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나이 54세, 그러니까 임진년에 큰 횡액이 있고, 이것을 지나면 70살 넘게 살 수 있다” 그때 오희문은 재미 삼아 친 점이라 특별히 신뢰하지 않고 있었는데, 과연 임진년에 난리가 터져 거의 죽을 뻔하게 되었다. 비록 몸의 병은 해를 넘겨 생겼지만, 김자순이란 자가 이야기한 점괘와 신기하게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오희문은 새삼 점쟁이 맹인의 신통함에 감탄하였다.

“딸이 죽은 지 백일이 되어 굿을 하다”

오희문, 쇄미록, 1597-05-11

1597년 5월 11일, 오늘은 딸 단아가 죽은지 백일이 되는 날이다. 집사람이 무당을 불러다 놓고, 이웃집에 자리를 차리고는 징과 북을 치면서 굿을 하였다. 아마 딸의 원혼을 달래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한갓 미신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오희문은 그것이 허사인줄을 알면서도 애통한 마음과 부인의 마음을 헤아려 그대로 허락하고 말았다. 어쩌면 저 굿은 딸아이가 아니라 집사람을 위한 것이리라.

무당이 한창 북과 징을 울려대며 푸닥거리를 하니, 옆에서 집 사람 역시 무당의 말을 듣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통곡하였다. 그것을 바라보는 오희문 역시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미신인줄이야 알지만, 무당이 딸아이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대목에서는 콧등이 시큰거려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오희문 딸의 백일 기일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이 고을의 품관과 교생 등 15명 남짓 사람들이 술자리를 베풀고는 오희문과 아들 윤겸을 초청하여 위로의 자리를 가졌다. 비록 오희문은 얼마 전에 난 입병 때문에 술을 마실수가 없었으나, 그들의 호의는 무척 감사하였다. 이곳은 사람들의 품성도 순박한데, 음식도 사람들을 닮아서 모두 담백한 맛이었다. 이런 순박한 맛이야말로 선현들이 말한 후하고 아름다운 풍속이 아니었겠는가. 위로해 준 사람들은 모두 술에 취하여 저마다 시끄럽게 떠들고, 노래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였다. 맨 정신의 오희문은 자리에 앉아 살아있던 시절 딸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미신인줄 알면서도 기도를 올리다”

오희문, 쇄미록, 1597-01-16

1597년 1월 16일, 딸 단아의 증세가 날로 심각해져갔다. 지난 해 10월부터 병을 앓기 시작하더니, 해가 넘기고도 병세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오래도록 누워있고 씻지를 못하니 온 몸에 이가 끓고 피부병마저 앓게 되어 그 형상이 참혹하였다. 약을 써도 듣지를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단아의 병으로 피난 길에 오른지 한 달이 되었건만 아직 충청도 아산 고을에 머물러 있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가르쳐주기를, 병자의 생기복덕일을 가려서 글 아는 중을 불러가지고 쌀 3되로 밥을 지어 세 그릇에 담고, 정화수 한 그릇에 백지 한 장으로 깃대 5개를 만들어 세운 이후, 징을 치고 경을 외우면서 빌면 자못 효험이 있다고 한다. 오희문은 듣는 순간 그것이 허망한 일인 줄은 알았지만, 딸아이의 병이 어떻게 해도 효험이 없자 이거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하여 사람을 시켜 중을 불러다가 물었더니, 다행히 내일이 딸 단아의 생기일이라고 한다. 이에 들은 대로 준비해서 그 암자로 보내어 내일 새벽에 기도를 올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종 개질지를 시켜서 짐을 가지고 가도록 하고 아울러 등유 반종지도 함께 보냈다.

중의 이름은 인천이란 자였는데, 호남 출신의 중으로 이 암자에 머물고 있으면서, 이러한 기도로 일을 삼는다 하였다. 오희문은 영 믿음이 가지 않았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가 효험이 있기를 빌었다.

“몇 자 되는 뱀을 때려죽이다”

오희문, 쇄미록, 1596-06-16

1596년 6월 16일, 오늘은 종일 음산하게 비가 내렸다. 말더듬이 계집종과 개금이, 그리고 품삭일꾼 두 명으로 하여금 어제 끝내지 못한 김매기를 시켰는데, 역시 오늘도 끝내지 못하였다. 밤에 창 앞에 누워 있는데, 처마 끝에서 잠자던 새들이 놀라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이상한 생각에 올려다보니 뱀이 새집을 찾으며 처마에 걸려 있었다. 깜짝 놀란 오희문은 종 덕노를 시켜서 갈고리로 뱀을 걸어 내려서 때려죽였다.

뱀이 오희문 집에 나타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10일경 그날도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처마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올려다보니 처마 끝에 뱀이 걸려 있었다. 그 뱀은 길이가 무려 몇 자나 되고 검붉은 반점 무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독사가 분명하였다. 새집을 찾아서 새끼를 잡아먹기 위해서 지붕에 올라갔던 것이다. 만일 잡아 죽이지 않으면 필경 사람을 해칠 뻔했으므로, 뱀을 잡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 잡은 뱀을 보니 얼룩진 무늬가 먼젓번 죽였던 뱀과 똑같은 것이었다. 독이 있는 뱀이 이와 같이 자주 출몰하니 매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며칠 사이에 이와 같은 큰 뱀을 두 마리나 잡아 죽였으니, 혹 집안에 이상한 변고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오희문은 마음에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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