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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기록되고 역대 편집위원의 축하 메시지

최희수 선생님
(2014~2015년 편집위원 역임)


“스토리테파마크 웹진 〈담談〉의 100호 간행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진정성있는 서비스 의지와 문화콘텐츠 분야 산학 전문가분들이 함께 애써 주신 덕분에 9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토리테마파크 서비스의 시작을 함께 했던 저로서도 잠깐 동안의 웹진 편집자였지만,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매년 진행되어 온 공모전과 함께 스토리테파마크는 이야기 소재 서비스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야기 소재의 꾸준한 축적을 통해 우리나라 이야기산업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웹진 〈담談〉이 문화콘텐츠 분야의 창작자들 뿐 아니라 예비 창작자들에게도 널리 확산되어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한 번 100호의 간행을 축하드립니다.”


동희선 작가님
(2020년 편집위원 역임)


100호에 이르기까지, ‘전통기록’이라는 금광에서 웹진 〈담談〉이 보여준 채굴법은 스마트하고 참신했습니다. 매 호마다 ‘과거’를 꺼내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숨 쉬는 현재의 컨텐츠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계 속으로 확산되는 K-컨텐츠의 원천이 앞으로도 계속 〈담談〉을 통해 공급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풍요롭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김상헌 선생님
(2014~2015년 편집위원 역임)


웹진 〈담談〉의 100번째 발행을 축하합니다. 이제는 기록유산의 수집, 연구와 콘텐츠 확장을 가장 앞서서 실천하는 한국국학진흥원의 대표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10년 전 (지금은 없어진) 푸른역사 아카데미 세미나실에서 진행된 첫 기획회의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국학진흥원의 도전정신 덕분입니다. 더욱 발전하는 〈담談〉을 기대합니다.



신촌서당 피터 김용진 작가님
(2019년 편집위원 역임)


담을 통해서 조선시대 일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매호 주제에 따라 일기를 검색해 보는 맛이 무척 담백하고 신기했지요. 100호라니 담 역시 역사가 되어가고 있네요. 흥해라 담 얼씨구!


이수진 작가님
(2020~2022년 편집위원 역임)


한국국학진흥원 웹진 〈담談〉의 100호를 축하합니다. 그 가운데 조금이나마 함께 할 수 있어 기쁩니다. 백 번이 천 번이 되고 그렇게 쌓여 역사가 되겠지요. 세상 구석구석 숨어있는 기록들을 찾아 재미를 전하는 일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기를!!!



김용범 선생님
(2015~2018년 편집위원 역임)


한국국학진흥원의 스토리 테마파크 웹진 〈담談〉의 지령 100호 발행을 축하합니다. 지난 2014년 3월에 “입학, 공부의 시작”을 특집으로 첫 호를 발행한 이래 8년여란 짧지 않은 기간에 걸쳐 매월 쉼없이 발걸음을 내딛어 지령 100호란 기념비적인 고갯마루에 올라섰으니, 실로 축하할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동안 〈담談〉이 다룬 주제를 살펴보면, 간단히 일별해도 “공직의 덕목”(97호), “평양, 그 곳”(54호), “맞수”(39호) 등 시사적인 것에서 “조선시대 집콕, 랜선 가정방문”(75호), “재난, 그 후”(26호), “전염병”(18호) 등 사회 현안, “,조선시대 BTS”(95호) “선비의 재테크”(90호), “휴가”(19호), “봄소풍”(02호) 등 일상의 생활과 관심사를 아우르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내용을 망라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담談〉 매호가 소개하는 새로운 콘텐츠에 많은 독자들은 물론이고 여러 언론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스토리 테마파크 웹진 〈담談〉의 눈부신 성장과 성취는 발행자인 한국국학진흥원과 담당 선생님들, 알찬 원고를 기고해 주신 필진, 웹진 제작자들의 노고가 모아진 덕분일 것입니다. 그 과정에 잠시나마 참여하였던 일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지령 100호 발행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공병훈 선생님
(2017~2022년 편집위원 역임)


국학 집단지성의 공유지 스토리테마파크의 웹진 〈담談〉 100호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선인들의 깊은 지식과 지혜에서부터 치열한 공부 길과 가슴 아픈 이야기, 그리고 무시무시한 괴물과 귀신 이야기까지 웹진 〈담談〉은 스토리테마파크의 일기류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수많은 시간을 넘나들게 해주는 타임머신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자, 자료 소장자, 콘텐츠 전문가, 번역자, 창작자, 창작 예비자, 사용자 등이 한국국학진흥원과 어떻게 집합적 협업을 이루는지를 웹진 〈담談〉을 통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지식 가득한 활동과 배달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김민옥 선생님
(2021~2022년 편집위원 역임)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00호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금은 편집위원으로 축하 인사를 드리지만, 2014년 3월, 1호부터 2019년 3월, 61호까지는 국학진흥원에서 근무하며 웹진 발행을 담당했기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2014년 2월 6일 화요일 오후 2시, 광화문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편집위원들과 ‘공식적인’ 첫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겨울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는데, 옛 기록에 담긴 재미와 감동을 전하고픈 참석자들의 눈빛은 참 뜨거웠습니다. 그 눈빛이 웹진 〈담談〉의 힘이 아닐까 생각하며, 매달 1일 〈담談〉 발행을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기도합니다.

*이외에도 김수영 선생님(2014~2018년 편집위원 역임)께서는 커버스토리로, 하원준 감독님(2014~2016년 편집위원 역임)께서는 좌담회로 100호와 함께해주셨습니다.

조경란 선생님
(편집위원장, 2019~2022년 편집위원 역임)


웹진 〈담談〉이 100호를 발행하게 되었고, 영광스럽게도 제가 100호 편집자가 되었습니다. 100호 인사 말씀을 쓰기 위해 발행된 웹진 〈담談〉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독자로, 편집위원으로 보냈던 시간들, 그 시간 속에 만났던 기록, 인연, 배움들이 하나하나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100호에서는 우리의 지난 시간과 기억들을 이야기합니다. 편집자의 말과 좌담회를 통해 그동안 편집을 맡아주셨던 편집자들과 집필을 해 주셨던 집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그들의 기억과 시간을 공유해 보았습니다. 담談의 준비부터 탄생과 성장에 큰 기여를 해 주었던 김수영 교수님은 〈“담談”에 담담을 더하여〉를 통해 〈담談〉의 고민, 성과와 의미를 짚어주었습니다. 서은경 작가님은 웹툰 〈밤이 깊었네〉에, 이문영 선생님은 〈정생, 몽유록을 만나다〉에, 기억과 기록의 의미를 재미있게 담아 주었습니다. 이복순 선생님은 〈편액의 문을 열다〉에서 그동안 〈담談〉에서 다루었던 편액들을 정리하면서, 물리적인 공간이 인문학적인 공간으로 바뀌는 ‘편액의 매직’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홍윤정 작가님은 〈우리들의 회색노트〉에서 기록과 창작물과의 관계를 살피면서, 창작물의 보고로서의 기록, 창작물을 통한 기록의 전달 효과에 대해 언급해 주었습니다. 100호에서는 아쉽게도 홍작가님의 〈미디어로 본 역사이야기〉와 이별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유익하고 재미있는 글을 쉼 없이 써 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홍작가님과 함께했던 시간과 기억이 이렇게 작가님의 글로 〈담談〉에 남았습니다.

시간은 기억이 되었고, 기억은 이렇게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선인들의 시간과 기억도 이렇게 기록에 남았기에 오늘의 우리가 기록을 통해, 그들의 기억과 시간은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기록에 담긴 기억과 시간, 그것을 기록한 사람, 그 기록 속에 남은 사람들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담談〉에서는 선인들의 기록을 현대인들에게 전하면서 기록을 남긴 이들과 기록 속에 남겨진 이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도 함께 제시했다고 생각됩니다. 이번 달에 100호를 발행하고 나면, 다음 달에는 101호가 발행될 것입니다. 앞으로 〈담談〉의 시간이 또 쌓이고 기억이 또 쌓여 〈담談〉이 담아내는 기록과 함께 〈담談〉의 기록도 쌓여가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소개

글 : 조경란
조경란
재밌는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서강대에서 역사 공부를 하였습니다. 박사과정(한국사전공)을 마치고 나서는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계속 역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들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아까워서 드라마 역사 자문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참여했던 작품이 “옷소매 붉은 끝동”, “녹두꽃”, “역적”, “왕이 된 남자”, “장영실”, “징비록” 등 20여 편 정도 됩니다.
“무료한 틈에 계사년과 갑오년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다”

오희문, 쇄미록, 1597-07-04 ~

1597년 7월 4일, 벌써 올해 정유년도 절반이 지나갔다. 요사이 밤기운이 서늘하여 싸늘한 바람이 때로 불어 와서 아침저녁으로는 겹옷을 입지 않으면 안되었다. 심신이 상쾌하니, 가을 바람에 몸의 병이 나아가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요즘은 특별한 일이 없어 무료한 날이 많은데, 심심함을 이기려고 계사년과 갑오년의 일기를 꺼내어 다시 읽어보는 중이다. 전란을 피해 떠돌아다니며 병을 앓고, 추위와 굶주림에 지치며 고생한 내용을 다시 읽자니, 그때의 기분이 생생히 기억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슬하의 7남매가 모두 무고히 살아 있었으니, 비록 때로 끼니를 잇기 어려운 탄식이 있었어도 비통하고 마음 상하는 일은 없었다.

지금 지내는 산속 고을로 들어온 이후로는 양식과 반찬을 조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고, 또 종종 맛난 반찬도 얻어다가 어머님을 봉양하고 아랫사람들도 먹일 수 있으니, 가히 근심이 없다고 할만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매번 좋은 음식을 앞에 두면 문득 슬피 울기를 그치지 않으니, 얼마전 죽은 딸 단아 때문이었다.

갑오년 봄과 여름에 굶주려 곤궁한 중에도 막내딸과 추자 놀이를 하면서 무료한 회포를 보낸 대목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막내딸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애통한 마음이 치솟았다. 일기를 읽어 내리던 오희문은 눈가가 촉촉이 젖어왔다.

“종이가 모자라 일기를 쓰지 못하다”

장흥효, 경당일기,
1621-08-21 ~ 1621-08-22

1621년 8월 21일, 일기는 장흥효에게 있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었다. 그의 일기는 다른 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않으면서 자기가 추구한 성리학적인 삶을 완성하는 하나의 경전과도 같았다. 공자의 논어와 맹자의 맹자, 주자의 사서집주(集註)가 있다면 장흥효에게는 일기가 있었다. 그만큼 그에게는 어떠한 것보다도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런데 종이가 모자랐다. 일기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할 종이가 공급되어야 했다. 물론 제자들이 공부를 배우는 대가로 종이를 가져오기도 하였고 친지들이나 아는 관원들이 종이를 지급해 주기도 하였다. 유력 양반이라면 사찰에서 질 좋은 종이를 공급받을 수 있었지만, 장흥효의 형평상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결국 종이가 모자라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장흥효는 심지어 20여 일 동안 종이가 없는 상태로 일기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러한 날이면 그는 날짜, 간지, 날씨만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야 어찌 되었든 일기를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종이를 구했지만 문제는 모두 다 기록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매일매일 쓰지 않으면 기억이 사라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서울 소식 전해주는 신문, 조보(朝報)”

김광계, 매원일기,
1634-01-17 ~ 1644-04-11

예나 지금이나 시골 사람들의 생활은 도시보다 단조롭기 마련이다. 김광계의 일상 역시 늘 읽던 책을 또 읽고 항상 만나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사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634년 1월 중순, 김광계는 ‘경보(京報)’를 읽었다는 기록을 일기에 남겼다.

경보란 조선시대 승정원에서 매일의 소식을 적어 발행하던 조보(朝報)를 의미한다. 김광계처럼 지방에 거주하던 양반들은 서울 소식이라는 뜻에서 조보를 경보라고도 불렀다. 조보를 읽으면 새로 바뀌는 세금 정책이나 조정의 정치적 논쟁, 당장 다음 달에 올 신임 수령의 인선까지 알 수 있었으니 지방 양반들에게 조보는 중요한 소식 창구였다.

현대의 종이 신문은 구독을 신청하면 매일 아침마다 집으로 배달받아 간편하게 볼 수 있지만 조선시대의 조보는 그렇지 않았다. 승정원에서 매일 조보를 발행하면 각 지방 관청의 서리들이 일일이 손으로 베껴 발송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관직이 없는 지방 양반들은 거주지의 수령에게서 빌려 읽거나 서울에서 오는 인편에 조보를 가져다 줄 것을 부탁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조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발행된 조보가 지방까지 오려면 시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매일 나오는 조보를 지방에서 그때그때 챙겨 읽기란 불가능했으므로, 보통 지방 양반들은 며칠이나 몇 달치 조보를 한 번에 얻어다 읽곤 했다. 김광계의 재종숙부 김령의 일기에는 예안 현감에게서 조보를 빌려 읽었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열성 구독자로 거의 달마다 조보를 구해 읽고 그 내용도 상세히 적어 놓은 김령과 달리 김광계는 조보 읽기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고 어쩌다 들어오면 읽어 보는 수준이었던 듯하다. 번다한 세상사에 관심을 갖기보다 스스로의 공부와 수양에 더 마음을 쏟은 것이 김광계의 성품이었다.

“40여 년 동안 쓴 『해주일록(海洲日錄)』은 전감으로 삼을 만하다”

남붕, 해주일록, 1930-06-05

1930년 6월 5일, 남붕은 며칠 동안 읽은 『중용혹문(中庸或問)』 등사본의 후지(後識)를 작성하려다가 붓을 멈췄다. 등사했던 날짜를 쓰려고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서였다. 남붕은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해주일록(海洲日錄)』을 가져 와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아들 원모(元模)가 죽기 전인 기유년(1909) 봄에 난고정(蘭皐亭)에서 원모가 등사한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붕은 아들이 등사한 『중용혹문』에 발문을 짓고 점심 때 발문을 다시 베껴 썼다.

이렇게 오래 전의 일이 기억나지 않을 때 『해주일록』을 살펴보면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이 역력하니 40여 년 동안의 기록이 지난 일을 살피고 증거로 삼을 수 있으니 여간 큰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었다.

한 달 정도 지난 윤6월 4일 아침을 먹은 뒤에 남붕은 『해주일록』을 처음 쓰기 시작한 병술년(1886) 조 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40여 년이고 해마다 기록한 것이 거의 50여 권이니, 전감(前鑑)이 될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세월이 흘러도 『동소만록』은 썩지 않고 전해질 책이다”

남붕, 해주일록,
1926-03-06 ~ 1930-11-02

1926년 3월 8일. 남붕은 이틀 전에 우현(禹玄) 족조를 찾아갔다가 빌려 온 『동소만록(桐巢漫錄)』을 읽고 있었다. 남붕은 『동소만록』을 쓴 남하정(南夏正)이 조야의 고사를 수집하여 사건마다 평론을 붙여 마치 옛날의 『사기史』의 사례와 같이 글을 쓴 것에 관해 감탄하였다. 또한 남인(南人)과 노론(老論)이 벌인 당론의 시비에 대하여 더욱 분명하게 분석하여 놓았으니, 실로 남인의 보배이고 서인에게는 눈엣가시임이 분명했다고 생각했다.

남붕은 『동소만록』을 눈에서 떼지 못할 정도로 푹 빠져있었다. 누가 찾아오기라도 하면 함께 보거나, 책 속의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족제 호의(浩義)가 왔을 때도 함께 보았고, 백우길이 찾아왔을 때도 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늘 빠짐없이 밤마다 경문을 외우는 일도 그만두고 『동소만록』을 보았다.

11일에는 8대조 통덕랑공(通德郞公)의 묘소, 부곡(釜谷)의 조부 부군의 묘소, 도동(道洞)의 부모님의 묘소를 참배하고, 뒷산의 여러 묘소와 위 봉우리 뒤 증조부 묘소까지 찾아 가 참배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그 행낭 속에도 『동소만록』 1책을 챙겨 넣었다. 2~3일간 오고 가는 짬짬이 아직 다 보지 못한 것을 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길을 나선 남붕은 긴 고개에 이르러 아들의 묘소를 둘러본 후 8대조 통덕랑공(通德郞公)의 묘소를 참배하고, 부곡(釜谷)으로 가서 조부 부군의 묘소를 참배하고, 정오에 도동(道洞)에 도착하여 부모님의 묘소를 참배한 후 그날 밤에 재사에서 잠을 잤다. 잠들기 전까지 『동소만록』을 보다가 자려고 하였는데, 금계(金溪) 종숙이 찾아와서 또 함께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아침에 뒷산의 여러 묘소와 증조부 묘소를 참배하고 재사에 머무르며 드디어『동소만록』을 다 보았다. 그리고 오후에는 금계 족숙의 집에서 머무르며 다시 『동소만록』을 보았다.

남붕은 몇 년이 지난 후 『동소만록』을 또다시 보았는데, 다시 보아도 이 책에서 기록한 국가와 조정의 고사나 의론은 정밀하고 분명하며 문장이 간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책이야말로 참으로 썩지 않고 오래도록 전해질 글이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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