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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입니다

말 그대로 멈출 처, 더울 서. 더위가 멈추는 날이네요.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뭉게구름 뒤로 가을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 것 같은 기분 좋은 날입니다.

《웹진 담談》의 납량 특선도 마지막 이야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름 동안 저희가 준비한 ‘바다’, ‘귀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속신앙’ 주제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잠시나마 시원함을 전해드릴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에서는 ‘토속신앙’을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신앙과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이야기의 원천은 바로 스토리테마파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스토리테마파크는 단순한 창작물이 아닌 실제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한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어, 저희 웹진은 더 생생하고 진정성 있는 글들을 독자 여러분께 전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역사스페셜》, 《임진왜란 1592》와 《고려거란전쟁》을 연출하며, 허구의 이야기보다는 실제 역사적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들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 취향이 스토리테마파크와 깊이 맞닿아 있는 이유입니다. 역사의 진실을 담은 기록은 그 상상력보다도 더 강렬하고 생생한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서 첫 번째로 소개할 글은 「무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입니다. 무속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모호함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탐구하며, 무속의 진정성을 되새겨 봅니다. 이어서 「무당과 처녀귀신, 그리고 명탐정」에서는 민속 신앙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의 창작 과정을 통해 현실과 초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합니다.

「저승에서 살아 돌아오기」에서는 저승과 관련된 신화 및 현대적 해석을 통해, 저승에서의 모험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경외심을 다룹니다. 그리고 「접신하는 무당」에서는 혹세무민하는 무당을 잡으러 간 사또가 오히려 무당의 신통력에 감동을 받고 돌아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또에게 ‘나름의 감동’을 선사한 무당의 신통력이 무엇이었는지 기대해 주십시오.

또한, 웹툰에서는 「벼루의 위용」이 귀여움뿐 만이 아니라고 말해주네요. 이렇게 또 한 명이 고양이 집사로 채용되었네요.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에서는 만 명이 쓴 100m가 넘는 상소, 만인소를 통해 정조 시대 영남 선비들이 역사의 흐름에 남긴 깊은 자취를 조명합니다. 만인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한 한국국학진흥원에 응원 드립니다.

더불어 한국국학진흥원의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 : 청춘, 스토리테마파크에서 놀자》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전통 기록문화를 통한 창작에 대한 작은 불씨를 살려 나가려는 꾸준한 노력이 참으로 값지고 고맙습니다.

“때론 역사적 사실이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틱하다.” 제가 만든 《임진왜란 1592》의 오프닝 타이틀 문구이자 제 창작의 작은 소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토리테마파크와 《웹진 담談》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사 속 이야기를 저에게 전달해 주는 귀중한 통로입니다. 이 통로가 저만 이용하는 작고 예쁜 뒷골목으로 남았으면 하는 욕심도 있지만, 더 많은 창작자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바람이 더 큽니다. 우리 선조들이 직접 듣고 몸소 경험한 이야기들이 더 많은 창작에 활용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웹진 담談》의 마지막 납량 특선이 시원한 감동을 선사했기를 기원하며, 앞으로도 재미있고 사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전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 소개

김한솔
2004년 KBS에 입사한 공채 30기 PD. 《역사스페셜》, 《한국사 전》 등 역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팩츄얼드라마 《임진왜란 159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등 드라마를 만들었다. 현재는 KBS에서 독립해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가 볼 수 있는 사극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조선시대 특수부대 관련 드라마를 만드는 중이다. 2017년 한국방송대상 대상, 2017년 뉴욕 TV & 필름 페스티벌 작품상 금상, 2017년 휴스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2016년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연출상 등을 수상하였다.
“집터의 길흉을 점치다”

점괘패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최흥원, 역중일기, 1764-02-14

1764년 2월 14일. 맑은 날이었다. 어머니는 환후가 심해지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부쩍 음식 드시기를 싫어하시니, 애가 타고 두려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제는 송도관이 최흥원을 찾아왔는데, 이 사람은 평소 점을 잘 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송도관이 최흥원을 위하여 집터의 길흉을 점쳤는데, 관괘에서 비괘로 바뀌는 점괘를 얻었다. 이 점괘는 대단히 불길한 것으로, 그간 집안에 많았던 좋지 않은 일이 집터로 인해 일어난 것 같았다. 최흥원은 집터가 매우 불길하다는 말을 듣고는 거처를 옮겨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구에 있는 새 집터에 대한 점도 쳐 보았는데, 이 터에는 복괘가 진괘로 바뀌는 점괘였다. 꽤 길한 점괘라고 할 수 있었다. 본래 이곳에는 항진이가 새로 집을 지어 거처할 계획이었는데, 집터가 좋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었다. 항진이는 얼마 전 진사시에도 합격하였는데, 아마 집터의 좋은 기운을 받으면 대과에도 급제할지 모를 일이었다.

아내의 묘도 불길하다고 하여 이장을 하였는데, 이제 집터마저 기운이 좋지 않다고 하니 최흥원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아내, 형제, 아들……. 귀중한 혈육들이 이 집에서 몇 명이나 죽어 나갔는지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큰일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법이고, 그럴만한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최흥원은 송도원의 점괘를 앞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거를 꿰뚫어보는 맹인 점술가 ‘김여추’”

점괘표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권문해, 초간일기, 1594-03-09

1584년 3월, 권문해는 추운 겨울을 지나 어서 봄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3월 9일, 바라본 소백산에는 겨울처럼 눈이 내려온 산이 다 하얗게 되었다. 더욱이 연일 서리가 내려 초목의 싹이 대부분 시들어 죽어가는 걸 보니 마음까지도 메마르는 듯하였다. 그러던 중 예천군 성주 류세무와 경상북도 선산부백(善山府伯) 류덕수(柳德粹)가 경상북도 의성군의 대곡사(大谷寺)에 만나기를 청하였다.

3월 14일, 권문해는 집을 나서 대곡사로 향했고 그곳에서 3일을 머무르며 류세무와 류덕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3월 15일, 이야기 중 경상북도 선산군의 부백 류덕수에게 자신의 고을에 맹인 점쟁이 김여추(金汝秋)에 대해서 듣게 된다. 앞을 못 보는 맹인이지만 그 누굴 만나도 그가 살아온 과거를 귀신같이 맞춘다는 것이다. 권문해와 류세무는 명경수(明鏡數) 김여추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여추의 이야기를 한참 듣던 류세무는 율시 한 수를 쓰는데,

화와 복은 다 이미 정해진 것 禍福皆前定
꽃 피고 시드는 것은 각기 때가 있다네 榮枯各有時
정원의 꽃은 일찍 떨어져 버리지만 花落園中早
산골짝 옆 소나무는 오래도록 산다네 松生澗畔遲
현묘한 이치 원래 수가 있는 것이니 玄機元有數
조물주가 어찌 사사로움을 용납하리오 造物豈容私
모름지기 반계(磻溪) 늙은이를 알아야 할거니 須識磻溪叟
끝내 임금의 스승이 되었네 終爲帝者師

대곡사에 모인 권문해와 류세무, 류덕수는 앞 못 보는 맹인 점쟁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몰랐다.

“자신의 수명을 점쳤던 점괘가 생각나다”

『점괘』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오희문, 쇄미록, 미상

1593년 3월, 해가 바뀌자마자 100여 일을 앓았던 오희문은 최근에야 밥을 먹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운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희문이 병으로 죽었단 소문도 돌았고, 이로 인해 아들에게는 위문편지가 날아오기도 하였다. 병이 너무나 심하여 오희문 스스로도 이제 곧 죽는구나 생각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제 이렇게 다시 살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문득 15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오희문은 양지현 농촌에 머물고 있었는데, 죽산에 사는 맹인 김자순이란 자가 점을 잘 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리하여 그를 불러다가 자신의 운명을 점치게 하였는데, 그때 김자순이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나이 54세, 그러니까 임진년에 큰 횡액이 있고, 이것을 지나면 70살 넘게 살 수 있다” 그때 오희문은 재미 삼아 친 점이라 특별히 신뢰하지 않고 있었는데, 과연 임진년에 난리가 터져 거의 죽을 뻔하게 되었다. 비록 몸의 병은 해를 넘겨 생겼지만, 김자순이란 자가 이야기한 점괘와 신기하게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오희문은 새삼 점쟁이 맹인의 신통함에 감탄하였다.

“딸이 죽은 지 백일이 되어 굿을 하다”

오희문, 쇄미록, 1597-05-11

1597년 5월 11일, 오늘은 딸 단아가 죽은지 백일이 되는 날이다. 집사람이 무당을 불러다 놓고, 이웃집에 자리를 차리고는 징과 북을 치면서 굿을 하였다. 아마 딸의 원혼을 달래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한갓 미신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오희문은 그것이 허사인줄을 알면서도 애통한 마음과 부인의 마음을 헤아려 그대로 허락하고 말았다. 어쩌면 저 굿은 딸아이가 아니라 집사람을 위한 것이리라.

무당이 한창 북과 징을 울려대며 푸닥거리를 하니, 옆에서 집 사람 역시 무당의 말을 듣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통곡하였다. 그것을 바라보는 오희문 역시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미신인줄이야 알지만, 무당이 딸아이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대목에서는 콧등이 시큰거려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오희문 딸의 백일 기일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이 고을의 품관과 교생 등 15명 남짓 사람들이 술자리를 베풀고는 오희문과 아들 윤겸을 초청하여 위로의 자리를 가졌다. 비록 오희문은 얼마 전에 난 입병 때문에 술을 마실수가 없었으나, 그들의 호의는 무척 감사하였다. 이곳은 사람들의 품성도 순박한데, 음식도 사람들을 닮아서 모두 담백한 맛이었다. 이런 순박한 맛이야말로 선현들이 말한 후하고 아름다운 풍속이 아니었겠는가. 위로해 준 사람들은 모두 술에 취하여 저마다 시끄럽게 떠들고, 노래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였다. 맨 정신의 오희문은 자리에 앉아 살아있던 시절 딸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미신인줄 알면서도 기도를 올리다”

오희문, 쇄미록, 1597-01-16

1597년 1월 16일, 딸 단아의 증세가 날로 심각해져갔다. 지난 해 10월부터 병을 앓기 시작하더니, 해가 넘기고도 병세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오래도록 누워있고 씻지를 못하니 온 몸에 이가 끓고 피부병마저 앓게 되어 그 형상이 참혹하였다. 약을 써도 듣지를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단아의 병으로 피난 길에 오른지 한 달이 되었건만 아직 충청도 아산 고을에 머물러 있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가르쳐주기를, 병자의 생기복덕일을 가려서 글 아는 중을 불러가지고 쌀 3되로 밥을 지어 세 그릇에 담고, 정화수 한 그릇에 백지 한 장으로 깃대 5개를 만들어 세운 이후, 징을 치고 경을 외우면서 빌면 자못 효험이 있다고 한다. 오희문은 듣는 순간 그것이 허망한 일인 줄은 알았지만, 딸아이의 병이 어떻게 해도 효험이 없자 이거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하여 사람을 시켜 중을 불러다가 물었더니, 다행히 내일이 딸 단아의 생기일이라고 한다. 이에 들은 대로 준비해서 그 암자로 보내어 내일 새벽에 기도를 올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종 개질지를 시켜서 짐을 가지고 가도록 하고 아울러 등유 반종지도 함께 보냈다.

중의 이름은 인천이란 자였는데, 호남 출신의 중으로 이 암자에 머물고 있으면서, 이러한 기도로 일을 삼는다 하였다. 오희문은 영 믿음이 가지 않았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가 효험이 있기를 빌었다.

“몇 자 되는 뱀을 때려죽이다”

오희문, 쇄미록, 1596-06-16

1596년 6월 16일, 오늘은 종일 음산하게 비가 내렸다. 말더듬이 계집종과 개금이, 그리고 품삭일꾼 두 명으로 하여금 어제 끝내지 못한 김매기를 시켰는데, 역시 오늘도 끝내지 못하였다. 밤에 창 앞에 누워 있는데, 처마 끝에서 잠자던 새들이 놀라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이상한 생각에 올려다보니 뱀이 새집을 찾으며 처마에 걸려 있었다. 깜짝 놀란 오희문은 종 덕노를 시켜서 갈고리로 뱀을 걸어 내려서 때려죽였다.

뱀이 오희문 집에 나타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10일경 그날도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처마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올려다보니 처마 끝에 뱀이 걸려 있었다. 그 뱀은 길이가 무려 몇 자나 되고 검붉은 반점 무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독사가 분명하였다. 새집을 찾아서 새끼를 잡아먹기 위해서 지붕에 올라갔던 것이다. 만일 잡아 죽이지 않으면 필경 사람을 해칠 뻔했으므로, 뱀을 잡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 잡은 뱀을 보니 얼룩진 무늬가 먼젓번 죽였던 뱀과 똑같은 것이었다. 독이 있는 뱀이 이와 같이 자주 출몰하니 매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며칠 사이에 이와 같은 큰 뱀을 두 마리나 잡아 죽였으니, 혹 집안에 이상한 변고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오희문은 마음에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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