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금의 집은 세책방을 하고 있다. 책을 빌려주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세책방이라 늘 사람들이 북적였다.
“어서 오세요, 무슨 책을 찾으시나요?”
〈영화 《음란서생》에서 표현한 세책방의 모습〉 (출처: CJ ENM)
목금이 문간에 들어서는 손님을 보고 늘상 하듯이 인사를 했다. 그런데 삿갓을 깊이 눌러쓴 이 손님은 머뭇거리며 선뜻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세책방은 서향이라 하필 해가 손님의 등 뒤에 있어 얼굴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뭘 찾으시든 다 있답니다. 쑥스러워하지 마시고 얼른 들어오세요.”
목금이 손짓을 하며 들어오라고 권했다. 아마도 처음 와서 패관잡기의 소설을 빌리려고 하니 창피한 생각이 들어 못 들어오는 거라 생각했다.
“마침 다른 손님도 없으니 얼른 들어오시면 제가 책 찾는 거 도와드릴게요.”
다른 손님이 없다는 말에 좀 안심이 되었는지 그 손님이 드디어 세책방 안으로 들어섰다.
“낭자, 잘 지냈는가?”
헉! 목금이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어떤 소설을 찾느라 저럴까 하면서 요즘 잘 나가는 『춘향전』을 찾으려던 참이었는데, 이 손님이 예사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 사또 나리!”
망허촌의 젊은 사또 한익범이 세책방에 들른 것이다. 삿갓에 도포,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본래 무관 출신이니 저 지팡이는 그냥 지팡이가 아니라 안에 칼날이 든 창포검일게 분명했다.
“누추한 곳에 어인 일로 납시셨습니까?”
목금은 딸꾹질이라도 나올 것 같아 명치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뭣 좀 물을 것이 있어서 왔다. 다행히 다른 사람이 없으니 편히 말할 수 있겠구나.”
“소녀에게 하문하실 일이 뭐 있겠습니까마는 말씀해 보시지요.”
〈무당이 사용한 부채〉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망허산에 있는 무당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느냐?”
“친분은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 아는 것만큼밖에 모릅니다.”
“나는 그것도 모르니, 한번 말해봐라.”
“우리 고을 무당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오랫동안 무당을 세습하고 있습니다. 그 집 할머니는 저도 기억을 하는 무당이고, 지금 무당을 하는 임씨도 그 손녀입니다. 제가 아는 바로만 삼대가 계승하였는데 그전에도 그 집에서 무당을 지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아프거나 흉사가 있을 때 찾아가더군요.”
“효험은 있느냐?”
“그건 모르겠지만 믿는 분들이 적진 않습니다.”
백이네 어머니도 그랬다. 근래에는 한양 친정집 아픈 오라비를 위해 부적을 부탁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면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부적을 쓰는 것은 아니냐? 부적을 그려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은 교수형에 처할 중범죄다. 효험도 없다니 그냥 둘 수는 없겠구나.”
목금이 깜짝 놀랐다. 무당이 사형에 처해질 정도라면 그걸 부탁한 백이네 어머니도 벌을 받을 일일 것 같았다. 백이네 이야기는 안 하길 잘한 것 같았다. 목금이 한 사또의 눈치를 살짝 보다가 물었다.
“부적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따로 더 하문할 것이 있으신지요?”
무당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야 관아의 아무나 붙잡아도 알 수 있을 일이었으니, 그 때문에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공부자[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논하지 말라 하였고, 나 역시 귀신 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고을에 부임하여 낭자를 만난 이후 신기하고 이상한 일들을 직접 겪었으니 어찌 귀신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런데 우리 고을엔 오래된 무당이 있어 백성들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다 하니 고을의 관장으로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느냐?”
한 사또가 짧게 한숨을 내뱉고 다시 말했다.
“그런데 낭자도 최근의 무당 일은 모르는 모양이니 실례만 하고 만 듯 하이.”
“그런 것이 궁금하면 직접 가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세책방도 닫을 때가 되었으니 무당집에 한번 가보시지요. 소녀가 안내하겠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데 그래도 되겠는가?”
“아무렴은요.”
한 사또가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사실은 그 부탁을 하고 싶어 찾아온 것이었다. 눈치 빠른 목금이 그 속셈을 재빨리 알아챈 것이었다. 하지만 한 사또에게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똑똑하고 당찬 목금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는 그런 이유가.
*
〈은입사로 화려하게 장식한 송학죽〉 (출처: 국가유산진흥원)
다들 저녁을 먹고 곰방대에 담배를 채워 넣고 이바구나 나누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무당집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어, 백이야?”
그중에는 목금의 동무 백이도 있었다. 목금이 반갑게 불렀지만 백이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진 채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저기, 내가 올라고 온 게 아니고, 어머니가 꼭 물어볼 게 있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온 거야.”
“누가 뭐래니? 못 올 곳에 온 것도 아닌데 뭘 그래?”
“근데 뒤에 있는 삿갓 쓴 사람은 누구야?”
백이가 물었다. 한 사또는 놀라서 말하지 말라고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으나 등 돌리고 서 있는 목금이 볼 리가 없었다.
“사또 나리셔.”
“뭐? 사또 나리가 왜 너랑 여길 온 거야?”
“무당 조사해야 한다고 오셨어.”
한 사또는 삿갓을 더 깊이 눌러썼다.
“유 낭자, 정 낭자, 내가 온 건 비밀로 하도록.”
두 소녀는 그 말에 깜짝 놀라 킥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당을 만날 때 두 낭자도 옆에 있는 게 좋을 것 같네.”
백이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온 터라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으면 같이 있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목금이 얼른 입을 열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랑 있는다고 하면 되지.”
그때였다.
“백이야, 뭐하니? 어서 와라. 우리 차례다.”
백이의 어머니가 백이를 찾고 있었다. 백이가 배시시 웃으며 어머니 쪽으로 뛰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백이는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목금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무슨 일로 무당집에 오신 거야?”
“몰라!”
목금이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오호, 이것 봐라? 선이 들어온 모양이구나?”
“몰라! 어머니가 사주단자인지 뭔지 두툼한 종이봉투를 임 무당한테 건넨 것만 봤어.”
백이의 어머니가 선 자리의 궁합을 보려고 무당집을 찾은 것이었다.
“누구야? 그 행운의 사나이는?”
“나도 몰라. 어머니가 ‘너도 선 볼 나이가 다 되었구나.’ 이러면서 데리고 온 거야. 이제 한 마디만 더 하면 난 집에 간다.”
아무래도 한 사또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 목금도 더 캐묻지 않았다. 나중에 둘이만 있을 때 살살 캐내면 될 일이었다.
“다음!”
안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무당이 다음 손님에게 들어오라고 하는 말이었다.
“가자.”
〈최근 티빙에서 방영한 《샤먼 : 귀신전》의 한 장면〉 (출처: 티빙)
한 사또가 삿갓을 다시 눌러쓰며 대청마루에 올라섰다. 백이와 목금도 따라 들어가 옆에 얌전히 앉았다.
“허허, 이건 또 웬일인가?”
무당 임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사또에게 넙죽 큰절을 올렸다. 한 사또가 당황해서 물었다.
“무, 무슨 짓인가?”
“우리 고을을 관장하는 수령께서 이 누추한 곳에 오셨으니 어찌 인사를 아니 올릴 수 있겠습니까?”
한 사또는 뜨끔한 마음이었다. 신기가 있는 것일까?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알아보지 않는가? 사또는 삿갓을 살짝 위로 밀어 올리며 임씨를 바라보았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다고 들었는데, 겉보기에는 이십 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앳돼 보였다.
“나는 고을의 관장으로 삿된 것을 금지하라는 왕명을 받들고 있다. 네가 혹세무민한다 하여 직접 보고자 온 것이니라.”
“그건 터무니없는 모함입니다. 무당에도 가짜가 있고 진짜가 있는데 소첩은 진짜 무당입니다.”
“어처구니가 없구나. 네가 진짜 무당이라고? 그렇다면 귀신을 부를 수 있느냐?”
“물론입니다.”
“좋다. 내겐 죽은 동무가 있다. 한양 조 판서의 아들이지. 그 혼령을 불러올 수 있느냐?”
“어렵지 않습니다. 사또 나리의 물건 하나를 내어주십시오. 의관이면 좋습니다.”
한 사또가 삿갓을 벗어주었다. 임씨는 찌그러진 갓을 대신 내주었다. 임씨는 삿갓을 쓰고 술과 안주가 올려진 상을 하나 장만하더니 잘그락거리는 칼을 휘두르고 방울을 소리 내어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길 얼마나 했을까? 갑자기 남자 목소리를 내었다.
“어허, 풍산, 그대를 다시 보니 참으로 반갑구나.”
한 사또가 깜짝 놀랐다. 풍산은 그의 자였는데 무당이 그의 자를 알 리가 없었다.
“우리가 북한산을 올라가던 날이 생각나는구만. 사모 바위를 지나 진흥왕이 세운 순수비를 보러 갔었지.”
한 사또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북한산에는 비석이 서 있는 바위가 있어서 비봉이라 부르는 봉우리가 있었는데, 그 비석은 무학대사가 세운 것이라 알려져 있다가 추사 김정희가 비석을 읽고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라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아직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 사실을 들은 한 사또가 친구 조정한과 함께 그것을 확인해 보러 비봉을 찾아갔었다.
“우리가 그 어려운 길을 올라가 비석을 보았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자네는 그곳에서 한양 도성을 내려다보며 그림을 그렸지.”
한 사또는 소름이 쫙 끼쳤다. 그런 일을 어찌 알고 있는가? 정말 정한이 온 것이 아니라면 이 무당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나?
“내려오다가 그만 절벽에서 내가 미끄러졌지. 자네는 자책하지 말게. 자네가 나를 붙잡으려 애쓴 것을 다 알고 있네. 순식간에 내가 떨어졌으니 자네가 무슨 수가 있었겠나?”
한 사또는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보게, 정한이, 내가 얼마나 그대를 그리워했는지 모르네.”
한 사또는 임씨의 손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임씨가 사또를 포근히 안았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나는 이곳에서 편안하네. 옥황 옆의 한림 자리에 앉아 아무 걱정이 없네.”
“참으로 다행이네, 다행이야.”
한 사또는 한참을 울고 마음이 후련해졌는지 개운한 얼굴이 되었다. 임씨가 다시 건네준 삿갓을 쓰고 의관을 정제한 뒤에 말했다.
“그대가 진짜 무당인 것을 알겠네. 하지만 선을 넘지 말도록 부정한 일이 밝혀지면 절대 가만 두지 않을 테니. 하지만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네.”
임씨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언제든지 친구 분이 보고 싶으면 찾아오십시오.”
*
한 사또는 백이를 집에까지 바래다 주었다. 목금도 백이네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말하고 한 사또에게 배웅해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렸다. 오랜만에 목금이와 같이 자게 된 백이는 신이 났다.
“그런데 우리 동네 무당이 그렇게 접신까지 할 정도로 신기가 넘치는 사람인 줄은 몰랐네. 오늘 정말 대단했어.”
“흐흠, 그랬어? 대단하긴 했지. 사또 나리가 통곡하는 걸 언제 보겠어.”
백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야, 그 이야긴? 너 뭔가 아는구나?”
“알긴 너도 알지.”
“뭘 말이야?”
“우리 동네 무당이 신기라곤 없다는 거 말이지. 언제 신통한 모습 보인 적이 있어? 그냥 대대로 무당이라 그러려니 하는 것 뿐이잖아.”
“그, 그렇긴 하지. 그래서 오늘 아주 새로 봤어.”
“사람이 갑자기 바뀔 리는 없지. 오늘 일은 임씨가 아주 교묘한 계략을 펼친 거야. 사또 나리는 거기 넘어간 거고.”
“교묘한 계략? 어떤 계략인데? 어떻게 한 건데?”
〈사주단자는 간지를 7번 또는 5번 접어서 봉투에 넣고 청·홍겹으로 모서리에
청실·홍실을 단 사주보자기나 함에 넣어 보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우선 위로부터 할게. 너한테 선이 들어온 거 아냐. 어머니가 임씨한테 볼 일이 있는데 혼자 가기 무서워서 네 핑계를 댄 거야.”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어머니가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왜?”
“사주단자를 종이봉투에 보낼 리는 없지. 최소한 너희 집안에 그런 무례를 범할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그 봉투는 사주단자가 든 봉투가 아니야.”
“어? 그, 그건 다행이네.”
“그럼 그게 뭐였을까? 그건 오늘 들은 사또 친구 이야기를 적은 종이였던 거야. 무당이 조만간에 사또가 찾아올 것을 알고 한양 소식을 전해달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해 놓은 거지.”
“어머니가 왜? 무당 부탁을 왜 들어주신 거야?”
“외삼촌이 아프시다고 했잖아? 뭔가 비방을 받으려 하셨을 거야.”
“하아.”
백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지? 사또 나리가 완전 깜빡 속아 넘어갔으니.”
“어쩌긴 뭐. 무당이 별거야? 그저 사람들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것이고 딱히 마을에 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그냥 내버려 둬도 별 상관없을 거야.”
“정말 별일 없을까?”
“잘못하면 사형이라는데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잖아.”
그건 그랬다. 무당 임씨 아줌마는 백이도 어려서부터 자주 본 사이였으니 그저 나쁜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한 마을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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