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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Issue

한국국학진흥원 파견활동
예술가들을 만나다




웹진 ‘담談’ 30호에 스토리이슈에서는 ‘조선의 예술가’라는 주제에 맞춰,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예술 창작 활동을 하고 계신 4인의 대구 여성 예술가들과 특별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김재경(설치미술), 박진미(한국무용), 오정향(미디어아트), 장정은(국악-해금) 예술가들께 감사드립니다.

파견 활동 예술가 (왼쪽부터) 박진미, 장정은, 김재경, 오정향


1. 먼저, 한국국학진흥원에 예술 활동 파견을 오신 예술가 선생님들의 각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재경
안녕하세요. 김재경입니다. 저의 예술분야는 미술이며, 세부 장르는 회화와 설치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구에서 작업하고 있으며, 저에게 있어서 대구는 일상의 뿌리이며 또한 작업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보고 듣고,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을 통해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며 또한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요즘은 일상의 속도에 관한 ‘산책’ 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박진미
반갑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무용가로 활동하는 박진미 입니다. 창원시립무용단 부수석, 진주교육대학교 외래강사를 역임하였고, 현재 예술 강사 및 파견예술가로 활동 중입니다.

오정향
안녕하세요. 저는 영상설치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미디어아티스트 오정향이라고 합니다. 3D 프로그램을 활용한 영상과 이미지를 기반으로 인간의 기억에서 출발한 공간의 이야기에 주목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장정은
저는 해금연주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정은입니다. 현재 대구를 비롯하여 전국의 각종 공연에서 연주 활동을 주로 하고 있고 작곡, 기획, 연출, 교육 등 다양한 영역으로의 진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2.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원하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대표적으로 한 분이 정리하여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정향
말 그대로 예술인을 기관, 기업에 파견하여 특정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사업으로, 예술인은 자신이 가진 예술적 역량을 활용하여 기관과 기업에 필요한 창의적인 업무를 수행합니다. 이를 통해 예술인은 본업(Main Job)인 예술 활동에서 터득한 예술가로서의 능력을 활용한 서브잡(Sub-Job)을 개발할 수 있고, 기관과 기업은 파견된 예술가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사업입니다.

오정향 예술가의 설명에 보충하여,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 대해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은 각각의 이슈(고민)와 혁신의 욕구가 있는 기업‧기관에 예술인을 보내드리고 예술인만이 지닌 독특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개입을 통해 이슈와 욕구에 대한 해결 방안을 함께 찾아보는 사업입니다. 2015년 498명의 예술인이 190여개 기업*기관에서 활동하였고 2016년에는 약 1,000여명의 예술인이 본 사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이 공모를 통해 참여를 희망한 기업‧기관과 8개월 간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예술인은 이 기간 동안 새로운 방식의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해볼 수 있고 기업‧기관은 새로운 부가가치, 문화예술경쟁력, 산업의 문화화 등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3. 처음엔 생소하셨겠지만, 한국국학진흥원이라는 기관을 방문하여, 현재까지 활동하신 소감을 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김재경
저는 늘 새로운 공간을 접하게 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몇 백 년 전의 시간과 접속한다는 것은 흥미 외에도 잊혔던 정신적인 가치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방문 했을 때, 복도를 지나면서 문이 열려있는 연구실을 잠시 구경하였는데,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전통문화유산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러한 연구는 꼭 필요하며 계속 지속되어야 할 과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간을 처음 방문했을 땐 아무래도 낯선 곳이라 다소 긴장을 하였지만, 기관 담당하시는 연구원 선생님들께서 편하게 대해주시고, 질문에 관해서도 잘 설명해주시고 여러모로 배려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박진미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소재가 너무나 많은 곳이며, 방문하면 할수록 한국의 유교문화가 세계적이라는 것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기관에 파견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면서 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오정향
저는 미술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국학 분야에는 문외한이다 보니, 지역의 문헌이나 기록에 대해서는 생소한 느낌이었습니다. 기관을 방문하고, 각종 자료를 관람, 열람하다보니 그 안에 있는 미적 요소도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지요. 특히 저는 현판에 많은 관심이 갔습니다. 아무래도 조형적인 것에 눈이 많이 갔던 것도 이유일 것 같습니다. 기관에 계시는 선생님들께서 예술가들과의 작업에 있어 개방적이고 우호적으로 대해주셔서 생소한 장르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어요. 같이 협업하는 작가들과의 협업 역시 기대해볼 수 있어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장정은
처음 한국국학진흥원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낯설었고 어떤 일을 하는 곳일지 전혀 예상 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서치를 해보고는 그저 ‘고문서를 연구하는 곳’이라고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기관을 알고 보니 연구뿐만 아니라 예상외의 다양한 사업들을 하는 것에 놀랐습니다. 특히 이야기 할머니 사업이나 스토리 테마파크 사업은 전통 소재로 이렇게 독창적인 사업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파견 활동 예술가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및 현판전시실 관람


4. 한국국학진흥원의 연구원들께서 번역, 해석한 조선시대의 민간 보유 기록물들을 읽고, 경험하신 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김재경
그 시대나 지금이나 생활양식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인 가치관과 인간에 대한 시선 등은 비슷하다는 걸 느꼈으며, 오래된 것이라도 오늘날에 지속시킬 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연구하고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진미
큰절을 올리고 싶을 정도로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웃음) 전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기관 디지털 홈페이지 서비스를 볼 때마다 매우 재미있다는 생각을 많이 가졌습니다. 이야기 소재를 접할 때 마다 무용의 관점으로 보며 활용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정향
조선시대 기록물은 어렵고, 현대를 사는 우리와는 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없지 않았습니다. 한문 기록물에 대한 어려움과 두려움 역시 컸죠. 스토리테마파크에 수록된 번역본을 살펴보면서 과거의 기록물에 대한 거리감보다는 그것이 전하는 이야기 자체에 대한 흥미가 생겼죠. 마음을 열고 접근할 수 있다 보니 그 안에 내용을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결국, 사람이 사는 이야기는 조선시대나 현재나 다를 바가 없고, 과거와 현재 사이 시간의 틈을 생각하더라도 삶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현재 우리 삶에서 볼 수 없는 것을 과거의 기록물을 통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 사람과 공간의 이야기를 작업으로 옮기는 저로서는 흥미로운 소재를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그들의 말과 글로 볼 수 있었으니까요.

장정은
옛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게 잘 정리해두신 것이 아무래도 가장 인상 깊은 점이였습니다. 전통음악을 하는 저로서는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정서를 공감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기회였는데요. 앞으로도 창작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정보를 수집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연구원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5. 그러한 기록물들을 통해 각자 어떤 예술 활동의 가능성을 찾고 계신가요? 각자의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재경
고서들에 쓰인 글씨들이 재밌고 각자가 가진 필체의 독특함이 좋았습니다. 특히 빼곡히 쓴 필사본 책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추상회화 작품을 보는 느낌도 들었는데, 이러한 이미지들을 작업에 차용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진미
한국무용의 경우 전통이야기를 토대로 창작되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들을 소재로 무용화되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파견사업이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라 무용가의 입장에서 보면 무용화작업을 좀 더 업그레이드해서 다른 예술가들과 심화작업을 통해 예술 가치를 더욱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른 예술가들과 협의하여 서로 간 심화작업에 대한 논의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매우 즐겁게 말이죠.

오정향
아무래도 작품에서 사람의 이야기, 공간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다보니 기록물에 나타난 이야기에 흥미가 갑니다. 일기류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기록이기 때문에 인터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주관적이면서도 솔직한 표현들이 눈에 띄었어요. 하나의 기록이 아닌 과거의 삶의 이야기 즉 영상의 소재 스토리로 활용하고 현재와 조우시켜 작품에 반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정은
앞서 말씀드렸지만 전통음악을 공부하는데 선조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전통음악에는 지역별 특색이나 민속신앙, 유교의식 등이 녹아있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잊고 있었던 고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연구하고 있는 선조들의 기록물은 국악 창작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전되어 온 음악들에 이야기를 입히면 더욱 생동감 넘치는 창작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앞으로 활용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저 또한 많이 참고하여 계속 창작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6. 조선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예술가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어보시면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드시나요?

김재경
그 시대의 그림들은 그 시대 예술가의 혼과 정신, 사상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아무리 똑 같이 따라 그린다고 해도 그 느낌을 그대로 드러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의 본질적인 것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가슴 뛰는 기쁨도 있지만, 무에서 유를 만드는 작업이라 힘든 점도 있습니다. 예전에 화가 장승업에 관한 영화인 <취화선> 을 본적이 있는데, 화가로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갈등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예술가로서의 숙명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박진미
옛날이나 현재를 비교하면 시대나 환경이 많이 다르지만 예술에 대한 갈망이나 추구하는 바는 현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예술에 대해 찾고 있는 중이라, 어려운 질문입니다. (웃음)

오정향
조선의 예술작품에는 서민의 삶이 반영되어있습니다. 예술가가 자신이 사는 시대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 안에 담는 것이지요. 조선의 예술가들은 자신이 사는 시절의 삶을 관찰하고 작품으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현대의 작가들과의 연관성이 느껴집니다. 저 역시도 사람의 이야기, 삶의 공간을 다루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예술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이라는 말처럼 예술작품은 삶을 담는 다른 모양의 그릇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만, 여성의 사회진출과 활동이 극히 제한되던 시기이다보니 여성 예술가의 시선과 표현을 많이 찾을 수 없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네요. 이것 역시 제가 여성예술가이기 때문일까요? (웃음)

장정은
스토리 테마파크 내 이야기 소재 중 ‘밀양 기생 보금을 연주하다’와 같은 이야기들을 보면 기생들이 악기연주를 많이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궁궐 밖 민간에서 풍류를 즐기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국악사에서 보면 아주 흥미로운 자료들입니다. 궁에서의 악가무는 정확한 자료들이 많이 있어서 체계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반면 민간의 풍류는 자세한 자료들이 부족한데 대부분의 기록들이 감상을 하며 느낀 점을 간략하게 서술한 형식입니다. 현대의 연주자들은 이러한 기록의 해석에서 감성을 더하여 선조들이 즐겼던 풍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고 창작 작품에도 자연스레 녹여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 10월 달에 함께 기획한 창작물을 발표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한국국학진흥원 파견 예술 활동가 스토리 테마파크 이야기 소재 활용한 콜라보 공연을 위해 매주 회의 진행


김재경
파견사업과 관련하여 협업공연의 무대배경이 될 이미지 작업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0월 달에 대구의 스페이스 129(대안 공간)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어서 개인전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진미
콘퍼런스를 위한 회의와 함께 본인은 움직임연구에 몰두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사업관련해서 주제와 부합되는 몇몇 공연들을 관람 후 본인의 기본적인 생각도 있지만, 다른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주제에 충실하며 역할에 맡는 느낌을 제대로 찾자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결국, 타 예술과의 협업이기에 개인의 이기심을 버리는 것이 제일 중요할 것으로 봅니다.

오정향
우선은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예술가분들과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10월에 발표를 잘 마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8월부터는 구체적으로 이미지(미디어 영상)을 만들고 다른 영역 예술가분들과 조율해 나가야하기 때문에 8월부터는 작업에 속도를 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각과 국악, 무용의 접점을 찾아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예술가간의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각 분야의 완성도 뿐 아니라 서로 합을 맞추는 것에 주력할 예정입니다.

장정은
저희는 이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서 이번 창작물을 발전시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작활동도 계속 할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기회를 만나 이런 창작활동을 할 수 있어서 매우 행복하고 항상 많은 관심주시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기관 담당 선생님들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질문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빼셔도 됩니다. ^^

“ 조선시대의 디자이너, 철학에 기초하여 옷을 짓다 ”

서찬규, 임재일기,
1849-06-15 ~ 1859-07-17
1849년 6월 15일, 안동의 신재기(申在箕)[자는 범여(範汝)]씨가 서찬규를 찾아와서 위문하고 제복(祭服)을 만들었다.
1853년 1월 19일, 안동의 신재기 씨가 내방하였다.
1854년 2월 24일, 춘당대에 국왕이 친림하는 인일제를 설하여 시제(詩題)에 내었는데 근래에 없던 것이었다. 과거에 응시한 후에 곧 노량진에 가서 선생의 제사상에 조문을 드리고 곧바로 성균관에 들어갔다.

“ 20년만에 만난 관기 몽접, 그녀의 노래실력은 여전하다 ”

양경우, 역신연해군현잉입두류상쌍계신흥기행록,
1618-05-05 ~
1618년 5월 5일, 남도일대를 유람중이던 양경우가 수령에게 접대를 받았다. 관기인 몽접(夢蝶)이란 이가 들어와 인사를 드리는데, 이 기생은 젊었을 때 노래를 잘 불렀다. 난리를 만나 떠돌아다니다가 용성에 이르러 내가 거처하는 촌사(村舍)에 3년 동안 붙어살았는데, 그 이후로 20년간을 어디에서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문득 만나니 또한 세상사는 사람의 우연한 일이다. 서로 옛날이야기를 하였고 그녀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아직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한들한들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른다. 태수가 나를 위하여 술자리를 마련하니 밤늦도록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파하였다.

“ 음악과 시로 어울렸던 광대와 양반, 눈물로 헤어지다 ”

서찬규, 임재일기,
1846-09-16
1846년 9월 16일, 서찬규는 며칠 간 망설였던 일을 하고 말았다. 창부(倡夫)들을 내보낸 것이다. 사실, 반년 동안이나 와서 의지했던 터라 그의 마음도 참으로 서운하고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창부 일행의 마음도 착잡하긴 마찬가지였다. 모두 돌아간다고 말해놓고 행장은 이미 꾸렸음에도 눈물이 앞을 가려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간 서찬규 생원 댁에서 편안하게 지냈는데, 이제 어디로 가서 입에 풀칠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비라도 오면 좋으련만, 맑은 날씨가 발길을 재촉하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 아름다운 노랫말과 슬픈 과거를 지닌 여인, 시희(詩姬) 얼현을 만나다 ”

김령, 계암일록,
1625-01-03 ~
1625년 1월, 추운 겨울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된 나그네 신세의 김령에게 아침 일찍 지인들이 찾아왔다. 김령은 놀랍고 기쁜 마음으로 회포를 풀고, 날이 저물 때까지 그들과 함께 했는데, 무리 중에는 김령을 찾아온 시희(詩姬) 얼현(乻玄)이 있었다.
그녀는 천성(川城)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의 여종이었다. 20년 전에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다가 서울에 들어와서 어떤 자의 첩이 되었는데, 미모가 시들자 이별을 당했다. 이때 와서 시권(詩卷)을 가지고 김령을 찾아왔는데, 그 시어(詩語)가 매우 맑고 아름다웠다. 창석(蒼石) 이준(李埈) 어른이 때마침 왔다가 그 시를 보고 칭찬하면서 그것을 소매 속에 넣어서 돌아갔다.

“ 밀양 기생 보금을 연주하다 ”

황사우, 재영남일기,
1519-02-04 ~ 1519-07-09
1519년 2월 4일, 황사우는 밀양의 수산현과 금동역을 거쳐 밀성(密城)에 들어갔다. 집무를 마친 황사우는 저녁에 기녀를 불러 거문고를 연주하게 하고 회포를 풀었다.
7월 8일, 아침 일찍 양산군을 출발하여 밀양에 이르렀다. 춘추 포폄 때문에 감사가 좌수사와 우수사와 함께 집무를 보았다. 황사우는 이들을 뵙고 저녁 식사를 함께 하였다. 그리고 이날 황사우는 밀양에 처음 왔을 때 만났던 기녀를 다시 불렀다. 그녀를 보자 황사우의 가슴이 뛰었다. 그녀의 이름은 보금(寶琴). 보배로운 거문고라는 뜻이었다.
7월 9일, 밀양. 감사와 좌수사, 우수사가 누각에서 집무를 하고, 여러 사람들이 모두 머물렀다. 여러 훈도를 고강하였다. 황사우는 저물 무렵 방으로 내려와 밀양현감과 전 고령현감과 잠깐 술자리를 하고 잤다. 좌수사와 우수사가 감사에게 고기를 먹고 술 마시기를 권하여 밤중까지 이르렀다. 황사우는 그 자리에 끼지 않았는데, 내심 다행으로 여겼다. 칠원현감과 영산현감에게 대전(大典)을 고강했다. 이날도 황사우는 보금을 몰래 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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