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4월 10일, 아침 훈시 시간에 박연조 선생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짐]’을 주제로 말씀하셨다. (중략) 그런즉 지금 우리는 옛 성인께서 교화를 세상에 펼치신 것을 법으로 삼고, 이를 미루어 끝없이 새로운 것을 얻어, 성인의 큰 도를 이 세상에 밝히고자 하니, 이것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는 까닭이다.
『녹동일기(鹿洞日記)』, 1933년 4월 10일-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새로운 것들은 차고 넘친다. 그 새로운 것들은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언제나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인공지능, 전기차와 자율 주행차, 재생 에너지 기술, 바이오 기술, 우주 탐사 같은 거대한 신기술들은 날마다 새로워진다. 2022년 11월, OpenAI가 출시한 ChatGPT는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되었고, 중국의 딥시크(DeepSeek)도 등장했다. 신간 도서, 신곡, 올해 유행 패션, 유튜브 챌린지, 밈 등도 이제 막 알아가려고 하면 또 새로운 것들이 밀려온다. 새로운 것들은 내가 한발 다가서면 만 걸음 앞서 있다.
나는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새로움’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을 때 ‘새롭지 않은 사람이 쓰는 새로움’이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막막했다. 산책하다 문득, 밥하다 문득, 커피 마시다 문득문득 ‘새로움’에 대한 내 생각을 굴리고 굴려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ChatGPT 4-o에 물었다.
“새로움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말해줄래?”
새로움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종종 복잡하고 다층적입니다. 새로운 경험이나 변화는 기대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불확실성과 익숙함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느껴져, 불안과 저항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개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며,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결국, 새로움에 대한 감정은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부정적인 두려움이 뒤섞인 상태로, 이를 잘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개인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ChatGPT 4-o이 말한 새로움이 불러오는 긍정과 부정의 감정 중에 나는 부정의 감정이 더 짙다. 나는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보편적인 감정이라면, 선인들의 일기장에도 그에 대한 소회가 있지 않을까?
남붕은 세상이 변해 집마다 신학문을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신학문에 물든 청년들이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여 집안의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 자신의 인생도 망가트리는 일이 많아 걱정이 많았다. 이러한 염려로 며칠 전에도 아우의 집으로 가서 조카를 불러놓고 한참을 타이르고 면려했는데, 오늘 인사를 왔으니 다시 조카에게 누누이 당부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조카가 기꺼이 믿고 따를지 모를 일이었다.
-남붕(南鵬), 『해주일록(海洲日錄)』, 1927년 7월 23일-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남붕 저, 김정기 역, 『해주일록』, 한국국학진흥원, 2020〉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조선말 학자 남붕은 ‘신학문’에 대한 생각이 많다. 남붕은 서울에서 신식 학교를 다니는 조카가 방학 동안 집에 머물다 다시 서울 학교로 돌아간다고 하자 조카를 불러세우고 이런저런 당부의 말을 전했다. 조카가 신학문에 빠져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조카는 남붕의 말을 귀담아들었을까?
지금 시대의 신학문은 인공지능이다. 100년 전의 남붕이 그러하듯 나 역시 이 신학문이 두렵다. 그중에서도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이 무섭다. 딥페이크는 딥 러닝(Deep-learning)과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이미지나 비디오 영상에서 사람의 얼굴이나 음성을 조작하는 기술을 말하는데, 딥페이크 초기에는 영화나 게임 같은 분야에서 활용되었다가 점차 악의적으로 사용되어 그 피해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정치인의 딥페이크가 선거에 이용되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의 얼굴을 합성해 가짜 투자 사기나 금융 사기를 시도한 사례가 뉴스에 나올 때만 해도 나 같은 일반인들과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했다.
작년,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후 ‘스쿨 싸이렌 제1호, 딥페이크 성범죄 경보 발령’이라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가정통신문은 디지털 성범죄 유형과 수법이 다변화되고 급변하는 추세에 따라 청소년들 사이에서 성행하고 있는 범죄 유형을 신속·명확히 파악한 후, 적시성 있는 조치로 경각심 고취 및 예방·대응 체계를 마련했다는 내용을 안내하며, 딥페이크 관련 범죄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딥페이크는 학교 밖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학교 안에서 발생한 딥페이크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니 아찔했다.
이런 와중에 올해부터 초등학교 3·4학년과 중·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영어·수학·정보·국어(특수교육 대상자) 과목에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국회는 성급한 디지털 교과서 도입의 문제를 우려하여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법적 지위를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최상목 대통령 권한 대행은 해당 법안이 교육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디지털 교과서가 교과서냐, 교육자료냐 설왕설래하는 동안 3월 신학기를 앞둔 학생들과 교사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인공지능은 그만큼 새로운 파란(波瀾)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쫓아가기 바빠 기술의 진보가 가져오는 윤리적·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신중하게 고민할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없다. 알프레드 노벨은 기존의 폭약들이 불안정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보다 안전한 폭발물인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달리, 다이너마이트는 전쟁과 파괴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인공지능 기술도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매우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양날의 검과 같은 인공지능은 나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새로운 것들의 정점에 서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강압적인 개항과 개화의 바람 속에서 전해진 신학문, 그것을 마주한 남붕도 이러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 익숙한 것, 검증된 것, 안전한 것, 편안한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학교가 향교에 설립되는 것을 반대한 남붕 같은 사람도 있지만 신식 학교를 설립하는 데 적극적인 사람도 있었다.
1911년 2월, 요사이 서당이나 서원 대신 신식학교를 설립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중략) 얼마 전 들으니 상주에 사는 이경주란 사람이 경상남도 합천 부근에 수백 칸의 집을 짓고는 1천 명의 학생을 모집하여 학교를 설립하였다고 하며 이름을 농상회사, 직조회사, 융명회사, 의약회사 등으로 지었다고 한다.
학생들의 재질에 따라 가르치고 졸업시킨다는 것이며, 이경주 자신이 직접 교사가 되어 학생을 가르친다고 한다. 또 태양등을 만들어 밤을 낮과 같이 밝히는 한편, 무선전화를 만들어 천리 밖까지 사람의 말을 전하는데 묻고 대답하는 것이 마치 옆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한다는 것이다. 실로 이경주란 사람은 만고의 기재란 생각이 들 법 하였다. 또 경상도에서 이름 높은 유학자 곽종석도 이 학교에 참여하였단 소식이 들렸다. 이 소식을 듣자 박주대는 신식 학교란 것을 마냥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곽종석은 이름 높은 도학자인데, 그가 참여하였다면 그 학교의 배움이 도에 해가 되는 것들은 아닐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박한광(朴漢光), 박득녕(朴得寧), 박주대(朴周大), 박면진(朴冕鎭), 박희수(朴熙洙), 박영래(朴榮來),
『저상일월(渚上日月)』-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합천 부근에 새로 건립된 신식 학교 소식에 박주대는 귀가 솔깃하다. 그 학교에는 태양등도 있고 무선전화도 있다고 하니 놀랄 일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 유명했던 곽종석까지 신식 학교에 참여한다고 하니 더더욱 관심이 간다. 저명인사도 참여하는 학교인데, 한 번 가보는 것이 어떨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박주대는 ‘인근 고을에서 온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이경주가 세운 학교는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중략) 이른바 무선전화니 태양등이니 하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라고 일기 말미에 쓴 후 신식 학교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속내를 드러냈다.
100년 전의 무선전화나 태양등은 지금의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자동차 이상으로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1887년 3월 6일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가 들어온 때에 스위치 하나로 밤을 낮과 같이 밝힌 순간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얼마나 기대에 차 있었을까? 박주대는 풍문으로 들은 신식 학교 소식이 말짱 거짓말이었다고 하지만 그 당시 돈 있고 빽 있는, 지금의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 같은 사람들은 이미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가 큰 사람들은 아마 마트 장을 볼 때도 나와 다르지 않을까? 신상품 홍보용 할인 판매가 있을 때 어쩌다 구매하면 모를까 언제나 나는 늘 먹던 라면, 늘 먹던 과자, 늘 마시던 우유를 산다. 나와 달리 새로움이 주는 설렘과 기대가 큰 사람들은 아마도 남들보다 먼저 신상품을 맞이할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신상품일지라도 새로움이 주는 매력에 남들보다 먼저 구매하는 얼리 어답터와 얼리 버드(early bird)인 사람들이 남긴 리뷰(review)는 나 같은 사람에게 큰 힘이 된다.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긴 옷들은 내 옷장 속 옷들과 너무나 비슷하다. 송혜교의 단발머리를 하고 싶어 단발머리 영상만 수십 개를 봐도, 막상 단발머리로 변신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옷장 속의 옷을 바꾸는 것과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별것 아닌 듯 쉬워 보이지만,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은 반품하면 되고 머리카락은 자고 일어나면 다시 자랄 텐데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스타일은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만약 내가 일제 강점기에 살았다면, 단발머리에 양장을 입고 자유연애를 외치는 ‘신여성’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나라고 해서 왜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없을까?
〈단발령은 1895년(고종 32) 김홍집 내각이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내린 명령이다.〉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능히 고금의 일에 밝게 통한 연후에야 선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옛일을 잘 알고, 요즘 일을 모른다면 굳게 막혀서 쓸데가 없고, 요즘 일은 잘 아는데 옛것을 모른다면 경박하여 도를 잃게 되니, 이에 여러분들 마땅히 고도(古道)에도 밝고 시무(時務)에도 능통해야 할 것이다.”
-심상석, 『녹동일기』, 1933년 5월 17일-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심상석 저, 황영례 역, 『녹동일기』, 한국국학진흥원, 2023〉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경상남도 의령군에 살았던 심상석은 녹동서원에 입학하여 6개월 전 과정을 수료하는 동안, 서원의 일과와 교수 학습 내용을 기록하여 『녹동일기』를 남겼다. 1933년 5월 17일, 아침 훈시 시간에 해창 송기식 선생은 녹동서원 제자들에게 ‘능히 고금의 일에 밝게 통한 연후에야 선비가 될 수 있다’라고 하며 온고지신(溫故知新)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너무 익숙하여 식상한 표현인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나처럼 새로운 변화에 주저하는 사람을 위해 해 주는 인생의 조언 같다. 옛것을 버리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옛것을 뭉근하게 끓이라고[溫] 한다. 온고지신은 옛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다 보면, 결국엔 새로운 것을 깨닫고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역동적인 말이다.
옛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 뉴트로(New-tro)가 대세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결합한 신조어로, 과거의 문화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새롭게 창작해 즐기는 현상을 말한다. 사람들은 ‘오래된 새로움’에 열광하며, 진로 이즈 백과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 편의점 오픈런을 하기도 한다. 진로 소주의 두꺼비 캐릭터와 포켓몬 빵의 띠부띠부씰은 과거에 이들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향수와 편안함을 선사하고, 그렇지 않은 세대에게는 신선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익숙한 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 뉴밀리어(New-miliar)가 떠오르고 있다. CJ온스타일은 ‘2024 올해 소비 키워드’로 ‘뉴밀리어’를 선정했다. 뉴밀리어는 새로움[new]과 익숙함[familiar]을 합친 신조어다. 와플 기계에 크루아상을 눌러 ‘크로플’을 만들고, 물걸레 청소기에 세척이나 건조 기능을 더한 상품이 출시되기도 한다. 뉴트로가 특정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한다면, 뉴밀리어는 특정 시대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기존의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다. 나같이 완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익숙한 새로움’이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적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옛것[故]과 새로운 것[新]을 공존하게 만드는 힘은 ‘낯설게 보기’에서 나온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며 의문을 품고 질문할 때,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우리에게 무엇이든 대답해 줄 것 같은 ChatGPT도 우리가 질문하지 않으면 답해주지 않는다. 내게 익숙한 것을 조금만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면 새로움에 좀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온고지신의 자세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것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성장한 나 자신이다. 매일매일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며, 나는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를 희망한다.
1933년 4월 10일, 아침 훈시 시간에 박연조 선생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짐]’을 주제로 말씀하셨다.
-심상석, 『녹동일기』, 1933년 4월 10일-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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