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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와 목금

망허산에 전쟁 날 뻔

바람이 심하게 부는 소리라 생각했다. 낡은 문짝이 바람에 흔들리며 귀신 우는 소리 같은 걸 낸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으, 대체 뭐야?”

목금은 눈을 비비며 베개 위로 손을 올려 옷부터 찾았다. 어둠 속에서 옷을 꿰어 입은 뒤 등잔불에 불을 붙였다. 문고리가 덜컥거렸다.

“누구야?”

대답은 들리지 않고 바람 소리만 거세게 났다. 하지만 잘 귀를 기울이니 그 안에 어떤 소리가 섞여 있었다.

“크… 은… 일… 저… 어… 언… 재… 앵….”

큰일? 전쟁? 갑자기 정신이 쨍하고 들었다. 목금이 후다닥 달려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누구야? 어딨어?”

고함을 질렀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립문 밖으로 흐릿하게 사라지는 검은 그림자가 얼핏 보인 것 같았다.

“뭐야? 전쟁이란 말만 하고 가버리면 어떡해? 어쩌라고?”

그때였다. 손목의 팔찌가 부르르 떨더니, 뱀으로 모양을 바꾸었다.

“초록이…?”

초록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문지방을 넘었다.

“따라오라는 거야?”

초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금이 짚신을 꿰차고 초록이 뒤를 따라갔다. 초록이는 망허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목금아!”

“어? 백이야?”

먼저 보인 건 불의 신 양수의 새 불돌이었다.

“너도?”

둘이 같은 말을 내뱉었다. 백이도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깼더니 불돌이가 따라오라고 해서 쫓아왔다가 목금이와 초록이를 보았다는 거였다. 목금이 물었다.

“그러니까… 전쟁?”

백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소녀는 서로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손을 꼭 붙잡고 초록이와 불돌이 뒤를 따라 망허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리로 가면 망허정 나오는 거 아냐?”

백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따뜻해진 지 오래였지만 산속은 여전히 추워서 손발이 덜덜 떨렸다. 평소보다도 더 추운 것 같았다.

망허정에 불이 켜져 있는 것 같았다. 불빛이 비치는데 조금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불빛이 가만있지 않고 많이 흔들리는 것 같았는데, 바람이 심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사실은 바람은 전혀 불지 않았다. 더구나 그 불빛은 흔들리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중이었다. 백이가 목금의 손을 꽉 쥐었다.


(출처: Google 이미지 검색)


“도깨비불 아냐?”

“그런가 보다.”

백이가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때 수풀 속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한 백이는 간신히 두 손으로 입을 막는 데 성공했다.

“더 가면 안 된다.”

검은 그림자는 조금씩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는데, 소금장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목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윤 초시네 소금장수예요, 아니면…”

“윤 초시는 누군지 모른다. 넌 전에 날 보지 않았니? 평서대장군에게 죽은 갑돌이다.”

윤 초시네 소금장수는 몸만 여우 귀신에 빙의되었으니 아닐 것 같긴 했다. 일전에 망허산 초입에서 한 사또와 함께 만났던 홍경래 난리 통에 죽은 무사귀신이었다. 그때 다른 무사귀신은 악귀인 그슨대로 변해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었다.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왔었어요?”

백이의 물음에 소금장수 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큰일 났다. 저기 불빛 보이지? 저거 다 도깨비불인데 지금 우리 마을로 쳐들어온 거다.”

“도깨비불이요? 왜요?”

“도깨비불은 도깨비들이 날아다닐 때 변해서 되는 건데…”

목금이 급히 소금장수 귀신의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도깨비들이 왜 우리 마을로 온 건데요?”

“그건 여기 망허정 때문이야.”

“네?”

점점 더 알 수 없는 말들이었다.


(출처: Google 이미지 검색)


“이럴 때가 아니야. 도깨비들이 망허정을 차지하면 마을 사람들에게도 난리가 난다. 도깨비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장난꾸러기들이고, 특히 저 도깨비들은 평서대원수 난리 통에 생긴 것들이어서 더 사납거든.”

평서대원수는 소금장수를 죽인 병사들의 우두머리인 홍경래를 가리킨다. 지금부터 20년쯤 전에 일어났던 난리였다. 저 멀리 북변은 모두 평서대원수 손에 들어갔고 그 난리 통에 사람들이 수없이 죽었다고 했다.

“그때 사람들이 뿌린 피가 묻은 물건들이 도깨비가 되었어. 그래서 그렇게 사나운 거야.”

목금이 다시 물었다.

“망허정이 그렇게 중요한 곳이에요? 저길 차지하면 마을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간다고요?”

소금장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저긴 원래 음기가 가득한 곳이라 요괴와 정령들이 모이는 곳이야. 삼한 시대에는 저기에 소도라는 게 있었대.”

“소도요?”

“응응. 소도에는 큰 나무가 있는데, 거기에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 귀신을 섬겼대. 귀신들이 해코지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미리 치성을 드리는 거야.”

“섬기는 방식이 따로 있었어요?”

“응. 춤을 췄대. 이렇게 땅을 한 번 밟았다가 들어 올리고 손뼉을 치고 다시 땅을 밟고… 그러면서 둥글게 맴을 도는 거야.”

소금장수는 갑자기 신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백이와 목금이 소금장수를 주저앉혔다.

“지금 춤출 때가 아니잖아요. 도깨비들이 다 쳐다보겠어요.”

“아참, 그렇지. 그래서 지금 망허산의 영괴들이 모두 모이는 중이야. 저것들을 막아야 하거든.”


〈도깨비 형상의 기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쿵 소리가 나더니 홀연히 노루 요괴인 장선생이 등장했다.

“너희 도깨비들은 듣거라. 어찌 우리 땅에 나타나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이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도깨비불 하나가 흔들리더니 험악한 모습의 도깨비가 되어 나타났다. 장대처럼 커다란 키, 퉁방울 같은 눈, 커다란 귀, 큼지막한 입을 가지고 있었다. 푸른 옷을 입고 커다란 절구공이를 들고 있었다.

“무슨 권리로 우리에게 떠나라는 거야?”

“나는 이 산 영괴들의 우두머리다. 썩 물러가라.”

“여긴 소도고 소도에 온 이는 내쫓기지 않는 법이다. 그것도 모르는 주제에 우두머리 행세를 하는 거냐?”

“소도…?”

장선생은 정말 소도가 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오래 산 걸 자랑하는 염소 요괴가 얼른 달려가 장선생에게 귓속말을 했다.

“음… 음… 그러니까 천오백 년 전에 있던 거라고? 이것들이 어디서 옛날 고릿적 이야기를 들고 와서 소란이야?”

장선생이 다시 한번 쿵 하고 발을 구른 뒤에 고함을 내질렀다.

“인간들이 만들었던 소도 같은 건 없어진 지 천 년도 넘었다. 이제 와서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들 꺼져라.”

장선생의 말에 도깨비불들은 하나둘 사람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도깨비들은 자기들끼리 웅성대기 시작했다.

“소도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 오면 안전하다고 해서 온 거 아니었냐?”

“그럼 우리 지금 속은 거야?”

“어차피 이판사판이야. 이제 와서 어쩔 거야? 여길 차지하는 수밖에 없어.”

뿔이 나 있는 도깨비가 여기를 차지하자는 말을 하자 도깨비들이 그 말에 따르려는 것 같았다.

“맞아. 갈 데도 없잖아. 여긴 음기가 충만해서 우리 살기 좋은 곳인 것 같아.”

“무주공산이라고 했잖아. 이제부터 우리가 주인하면 되지.”

장선생이 듣다가 못 참겠다는 듯이 꽥 소리를 질렀다.

“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냐! 썩 꺼져라.”

도깨비들이 일제히 장선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선 텃세 부리는 저 노루부터 때려잡자.”

“때려잡자!”


〈낙동강변에 세워진 솟대. 솟대는 소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출처: 양산신문)


그러자 장선생 뒤에 있던 요괴들도 일제히 고함과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숫자로는 전혀 밀리지 않는 상태였다.

“한판 하자면 쫄 줄 알았냐? 어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고 해?”

이러다가 정말 크게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는데, 갑자기 백이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앞으로 뛰쳐나갔다. 목금은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라 어어, 하다가 백이를 붙잡지 못했다.

“왜들 그렇게 싸우려고 그래요? 말로 해요.”

도깨비와 요괴들 모두가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사람이다.”

“사람이 왜 여기 있어?”

그러거나 말거나 백이가 계속 말했다.

“듣자니 도깨비들은 씨름을 좋아한다면서요. 그럼 씨름을 해서 결정하는 게 어때요?”

도깨비들이 반색했다.

“씨름을 하자고? 좋지, 좋아.”

하지만 요괴들 얼굴은 좋지 못했다.

“안 돼, 안 돼. 그건 도깨비들한테만 좋은 거야. 저것들은 맨날 씨름만 한다고.”

쉽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았다. 목금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백이 옆에 가서 섰다.

“도깨비 여러분들. 저 먼 북방에서 어쩌다 여기 망허산까지 오게 된 건가요?”

도깨비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우물우물 이야기를 꺼냈다.

“그건… 누가 여기 가면 편히 살 수 있다고 해서… ”

“우리는 보통 도깨비가 아니야. 전쟁터에서 흘린 피로 만들어졌지. 성질이 급하고 난폭해서 웬만한 곳에선 살 수가 없거든.”

“깊은 산들 속에 있는 조용한 곳이 우리한테 필요해.”

“그래서 여우 누이가 알려준 곳에 온 거야.”

“소도가 있어서 가면 무사할 거라고 했지.”

“맞아, 맞아.”

목금이 깜짝 놀라 도깨비들의 말을 잘랐다.

“여우 누이라고요?”


〈AI로 생성한 망허산의 영괴들 이미지〉


폐가에서 달아난 여우가 도깨비들을 이리 보낸 것이 틀림없었다. 망허산에서 망허촌의 영괴들과 도깨비가 싸움을 벌여 어지러워지만 돌아올 속셈이었을 것이다.

“여우 귀신은 망허촌에서 나쁜 짓을 저지르다 내뺀 못된 요괴예요. 도깨비 여러분은 여우 귀신에게 속았네요.”

도깨비들이 그 말에 잘못을 알고 물러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깨비들은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바보라는 거야? 속긴 뭘 속아!”

“여긴 우리가 살 수 있는 땅이야. 빼앗으면 그만이지.”

“노루니 염소니 저 딴 것들한테 질 것 같냐? 때려잡자고!”

도깨비들은 부지깽이니, 빗자루니, 절구공이니 하는 것들을 들어 올리며 포효를 내뱉었다. 금방이라도 큰 싸움이 벌어질 판이었다. 목금이 급히 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을 콱 깨물었다.

“물러들나세요!”

목금이 외치면서 손을 홱 뿌리치듯이 흔들었다.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피다! 피야!”

도깨비들이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목금은 책에서 도깨비가 피를 무서워한다는 말을 본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그 말이 진짜였다.

“빨리 물러들 나세요. 손가락이 아직 아홉 개나 남았다고요!”

백이도 큰소리로 거들었다.

“내 손가락 열 개도 있어요!”

도깨비들은 분한 표정이었지만 피에 이길 수는 없었는지 도깨비불로 변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장선생이 두 소녀에게 다가와 치하를 했다.

“덕분에 우리 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선생 뒤의 요괴들도 다 같이 고개를 조아렸다.

“낭자들이 부탁하실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꼭 보답하겠습니다.”

백이와 목금이 서로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두 소녀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집필자 소개

이문영
이문영
역사, 추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문서 쪽으로도 출간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의 소설게시판지기로도 활동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을 겸하고 있다. 역사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어린이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역사동화 『역사 속으로 숑숑』, 어린이 인문서 『그게 정말이야?』, 역사인문서 『만들어진 한국사』를 비롯해서 MMORPG 『무혼』 등 여러 편의 게임 시나리오도 만든 바 있다.
“오랑캐가 압록강을 넘어왔다는 소식을 듣다”

김령, 계암일록, 1627년 1월 20일

1627년 1월 20일, 김령은 조카 김광적에게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김광적이 아버지인 김호의 묘를 옮기는 일 대문에 안동 관아에서 감사와 만나고 온 길이었다. 감사가 산송 문제로 당사자들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전관이 말을 달려 관아에 당도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서북쪽 오랑캐 수만 명이 의주를 포위하고 또 선천에 들어왔으니, 감사는 군마를 불러 모으고, 호패어사 또한 머물지 말고 급히 서울로 돌아오라는 명령이다’ 라고 하였단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 뒤 자세한 내막을 들으니 오랑캐가 이달 13일에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포위하였는데, 의주성은 매우 공고하여 방어할 준비가 다 되었으나 안에서 내통하여 문이 열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의주부윤 이완은 스스로 불에 타 죽고, 의주 판관 최몽량은 피살되었으며, 한명련의 아들 한윤 및 박난영 같은 이들은 모두 돌아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장수와 군사들 중 저들에게 투항한 자들도 많이 왔는데, 그 가운데 강홍립도 있었다고 한다. 적의 군사들이 무인지경으로 우리나라를 침입하고, 또 안주를 함락시켰으며, 여섯 가지 항목을 들어 조선에게 죄를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랑캐들 스스로 대금이라 칭하고 황제를 자처하였다고 한다.

임진년 왜구들이 조선 산하를 한바탕 피로 물들인 것이 30년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금 이런 병란을 겪게 되다니... 김령은 이러한 전란을 초래한 조정의 무능력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명과 여진의 대립,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간신들 탓에 어지러운 조선”

김령, 계암일록, 1618년 8월 1일

1618년 8월 1일, 도성이 술렁거렸다. 모두 큰 난리가 일어날 것이라고 하며 백성들이 다 도망쳐 나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사대부의 집들도 줄을 이어 성을 빠져 나오니 성은 이미 비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르하치가 명나라와 대치하고 있어서 조선에는 금방 닥칠 급한 일이 없을 텐데도, 백성들의 불안한 마음은 달랠 도리가 없었다.

성 안은 모두 비었고 교외 강가는 사람들로 가득 차 분잡한데, 재물로 부녀를 바치거나 혹 절취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임금 또한 행행(行幸)을 8월 13일에 나가려다가 아직 못나갔는데 27일에 나갈 것이라고 모두들 말하였다. 이 소문의 근원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권세를 가진 간신들이 나라를 그르친 죄를 이루 다 벌할 수가 없다.

“위아래를 가리지 않는 전란중의 굶주림”

금난수, 성재일기, 1593년 3월 2일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전 국토는 황폐화되고 농민들은 전란의 화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 다녀야 했다. 그 덕분에 농토는 모두 버려져 농작물이 자라지 못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593년 봄, 춘궁기가 되자 굶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보리를 심으려 해도 남자들은 왜적을 막기 위한 군대에 차출되어 나아가고, 향촌에 남은 것은 지난 전염병 유행에서 근근이 살아남은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여성들뿐이었다. 금난수의 집은 그나마 조금 사정이 나았다. 비록 향병으로 나아간 사람들을 위해 군량미를 대느라 전처럼 풍족하지는 못하였지만 적어도 굶지는 않을 정도였다.

이런 금난수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령(開寧, 현 경북 김천)에서부터 온 김익휘(金益輝)는 염치불구하고 그의 어버이를 위해 양식을 나누어 달라 청하였다. 자기 한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연로한 어버이를 위해서라는 말에 금난수는 빠듯한 살림을 나누어 주었다. 어찌 이런 전란 중에 홀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여름이 되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춘궁기에 종자까지 모두 먹어버린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자연히 수확할 것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나마 형편이 나은 사람들의 곡식을 훔치는 좀도둑도 발생하여 문제가 되었다.

결국 8월 3일에는 관아의 창고를 열어 진휼미(賑恤米)를 분배하였다. 관아의 곡식은 곧 나라의 재산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해 순찰사에게 올려야 했다. 구휼을 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농민들을 정착시켜 농사를 짓게 한다고 해도 당장의 양식을 구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한 해 동안 충분한 양식을 재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음 해인 1594년 봄에는 사족들도 굶기 시작하였다. 금난수의 처남 조목은 자신의 서자 조수붕을 보내와 자신의 궁색함을 구휼해 달라고 청하였다. 처남의 성격을 생각해 보았을 때 체면을 고려하여 한참 동안 굶으며 참다가 가솔들을 위하여 겨우 청한 것일 터였다. 금난수는 그를 딱하게 여기며 곡식을 보내 주었다.

“귀국길에 오르자마자 굶주린 백성들을 보다”

이기헌, 연행일기계본, 1802년 2월 8일 ~

1802년 2월 8일, 이기헌(李基憲)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에 있었다. 동지사로 청나라에 들어와 주어진 임무를 마치고 그리운 고국을 향해 가던 길이었다. 이틀간 길을 따라오니 반산이란 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곳은 바로 청나라의 중흥을 이근 강희제와 건륭제 두 황제의 능이 있는 곳이었다. 멀리 푸른 소나무 사이로 궁전같은 건물이 비쳤는데 바로 청나라의 별궁(別宮)이었다.

저녁 무렵에 계주란 곳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 고장은 중국 역사의 곳곳에 자취를 남기고 있는 유명한 고을이었다. 진나라와 한나라 시대는 어양군에 속했고, 위나라와 진나라 시대는 유주에 속하였다. 당나라 천보 연간에 다시 명칭을 어양군으로 고쳤다. 금나라 때는 이곳을 중도(中都)로 삼아 매우 번성했던 곳이었다. 한나라 광무제 때 반란을 일으킨 팽총도 이곳을 근거로 했고, 당나라 현종 때 반란을 일으킨 안녹산과 사사명도 이곳을 근거로 난을 일으켰다. 이곳 여양의 돌기병은 매우 용맹하여 천하무적으로 소문난 병사들이었다.

계주 성 북쪽에는 전설 속의 통치자인 황제(黃帝)가 광성자란 사람에게 도를 물어본 곳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계주성을 들어올 때 성 밖에는 굶주린 백성들이 들판에 가득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그릇을 들고 나와 있었다. 그곳 사람 이야기가 매일 500~600명에게 식량을 나누어주는데, 그 양이 매우 많다고 하였다. 청나라 수도와 이틀거리이고, 한때 천하의 중심이기도 하였으며, 숱한 영웅호걸들이 낳다가 사라진 땅이건만 정작 배고픈 백성들을 구원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과거의 찬란한 영광이 저 백성들에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런 생각이 미치자 이기헌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통신사 부사 임수간의 배포”

조선통신사병풍(강호성내응접도)
(출처: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엄경수, 부재일기, 1712년 3월 1일

1712년 3월 1일. 작년 일본으로 떠났던 통신사 일행이 돌아왔다. 그런데 조선과 일본 사이에 피휘와 관련된 시비가 발생했고, 사신단은 그 일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귀국과 함께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통신사의 부사였던 임수간은 상당한 기개를 보여주었다. 정사가 탄 배는 무사히 일본에 도착하였으나, 부사가 탄 배는 떠날 때 바다 한가운데에서 배가 부서져 거의 뒤집힐 뻔하여 일본 사람들이 급히 작은 배를 불러 부사에게 옮겨 타게 하였는데, 이때 부사 임수간이 “내가 한 번 동요하면 배에 탄 수백 명 모두는 살 수가 없다.”라고 말하며 완강히 거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굳게 앉아 지휘하였는데, 겨우 배가 전복되지 않고 부산으로 돌아와 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사의 고생은 일본에서 돌아올 때도 계속되었는데, 바다 한가운데서 비바람을 만났다고 한다. 깜깜하고 어두운 시간에 절영도에 급히 정박하려는데 날씨가 너무 어두워 도저히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배가 부서지려 하자 급히 사람을 시켜 물의 깊이를 살피게 하니 아주 얕았다고 한다. 등이 잠길 정도의 깊이임을 확인하고 일행을 모두 내리게 하였는데, 깜깜한데다 비가 강하게 쏟아부어 어디로 향할지 모르다가 겨우 길을 찾아 언덕에 오르고, 그길로 수십 리를 걸어서 비로소 인가를 찾아 폭풍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날이 밝아서 살펴보니 겨우 몇 리 길을 한참 돌아온 것이었고, 배에 있던 물건은 모두 쓸려가 남은 것이 없었다. 그래도 절체절명의 순간 부사의 용기와 침착한 지휘로 사람은 한 명도 다치지 않았으니, 부사의 배포와 냉철함은 참으로 감탄할 만한 일이었다.

“서울 사람이 전한 전란 소식에 비통함에 빠지다”

오희문, 쇄미록, 1597년 8월 23일

1597년 8월 23일, 요사이 다시금 전란의 소식이 들려와 오희문은 종일 마음이 어수선 하였다. 얼마전 들으니 내 건너 안협 고을에 서울 사람이 와서 살고 있다 하여, 민시중, 김언실 등을 시켜 만나보고 적의 소식을 들어오게 하였다. 오늘 민시중과 김언실이 찾아와 서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자니, 적은 이미 남원성을 함락시켰고, 중전은 장차 관서땅으로 피난을 간다고 한다. 비록 서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사실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았다.

만일 사실이라면, 이제 날씨가 점차 추워지고 있는데, 늙은 노모와 병든 아내를 데리고 깊은 산골짜기로 피난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옷도 변변치 않은데 반드시 추위와 굶주림에 고생할 것이 뻔하였다. 이런 생각이 미치니 오희문은 죽을 때까지 편안한 날이 없겠구나 싶어 하늘이 원망스러워졌다.

6년 동안의 전쟁에 백성들이 모두 파리해졌는데도 하늘이 화를 뉘우칠 줄 모르고 흉한 전란을 다시 만들어 호남과 호서의 백성들이 장차 도탄 속으로 들어가게 생겼으니, 참으로 탄식스러운 일이었다. 하늘은 어질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어루만지는 법이거늘, 어찌 조선의 백만 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불타는 곳으로 몰아넣고 하나도 남기지 않으려 한단 말인가! 정녕 믿기 어려운 것이 하늘이 아니던가! 탄식한들 무엇 하겠는가!

“병자호란을 겪은 거지 이야기”

엄경수, 부재일기, 1714년 9월 1일

1714년 9월 1일. 오늘 엄경수의 집 앞에 헤진 갓을 쓰고 누더기를 걸친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문에서 구걸하였다. 몸은 구부정했고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안으로 들여 밥을 주며 살펴보니 일개 노인네였다. 밥과 함께 한기를 물리치도록 술도 조금 따라 주었다.

나이를 물어보니 “병자년 호란 때 강화도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벗어났는데, 그때가 아홉 살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엄경수가 손으로 헤아려 보니 올해 여든일곱이었다. 말로만 듣던 호란을 직접 겪었다고 하니 궁금증이 일었다. 그리하여 그가 겪은 호란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성이 함락되고 우리 가족들은 갈대숲 속으로 달아나 사람마다 각각 한 곳을 찾아 숨도록 하여 집안 식구들이 온전하였지만 나만 포로가 되었습니다. 머물러 있을 때는 늘 군진에 구속되어 있었고, 행군할 때는 말을 타고 달렸는데, 어리고 약하여 안정에 붙어 있지를 못하고 곧잘 떨어지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래 지내다 보니 싫어하여 오랑캐에게 다시 버려져 다행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활쏘기에도 재주가 있어 효종 때 내금위에서 군졸을 하였고, 천인은 아니었으나 어떠한 일에 연좌되어 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아내가 있었는데 20년 전에 죽고 흉년에 땅마저 팔게 되었으며 이후 걸식을 하며 목숨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다만 과거 군졸 생활 때 같이 생활하던 자의 손자가 옛일을 기억하고는 그에게 자주 음식과 잠자리를 내어주고 있다고 한다.

엄경수는 아직 병자호란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본 것도 신기하였지만, 한 사람의 인생역정이 너무나도 기구하여 그의 이야기에 한참 빠져들었다. 그리고 조부의 친구를 잊지 않고 돌보고 있는 사람 역시 참으로 어질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엄경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가, 이를 이야기 형식으로 일기에 적어두곤 거기에 ‘거지전’이란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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