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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나무 물 마시러 봄비 온 뒤 지리산에 가자 - 독서로 얻은 요통을 치료하다
1906년 3월 30일 김교준은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의 나이 스물 셋에 대략 독서(讀書)하는 방법을 알고 안석(앉아서 몸을 뒤로 기대는 데 사용하는 방석)에 기대어 글을 읽은 지 몇 년 만에 요통이 더욱 악화되고 다리에 습진이 더욱 심하여 앉아서 척추를 세우지 못하고 오랫동안 걷지도 못하였다.
하루는 그의 내종형(內從兄) 황직현(黃直顯)씨가 와서 말하기를,
“종질(從侄) 김현주(金賢周)가 김헌주(金獻周) 등과 거재수〔椐梓水, 곡우(穀雨) 무렵에 산다래나 자작나무 또는 거자수, 박달나무 등에 상처를 내어 거기서 나오는 물을 말하는데, 그 물을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하여 약수로 먹음. 흔히 ‘곡우물’이라 함.〕를 마시려고 근래 지리산(智異山) 달궁(達宮, 지리산 산내면 심원계곡에 있는 자연마을로 달궁〔月宮〕이라 부르기도 함. 마한(馬韓)의 효왕(孝王)이 진한의 침략을 받아 이곳으로 피난하여 별궁(別宮)을 두고 살았다고 함.)으로 들어가려 한다네.”
라고 하였다. 김교준이 묻기를,
“재수(榟水)가 가장 좋다고 하지만 무엇 때문에 또 달궁이며, 또 함께 가려합니까?”
라고 하였다. 형이 말하기를,
“재수는 요통과 골습(骨濕, 습기가 스며들어 정강이뼈 속이 아프고 저린 병)에 가장 신속한 효험이 있고 게다가 재종제 김규현(金奎顯)이 올해 달궁 서재(書齋)에서 아들을 가르친다고 하네.”
라고 하였다. 김교준이 이 말을 듣고 답하기를,
“저 역시 요통과 골습으로 고생한 지가 지금 몇 년이나 됩니다. 스스로 헤아려보건대 이 다음 뒷날에 재수를 마시렵니다.”
라고 하였다.
이 무렵에 세심정(洗心亭) 족손(族孫) 김만식(金萬植)이가 옥천(玉川)에서 적막하게 지내는 김교준을 방문하였다. 서로 손을 잡고 눈을 비비면서 족히 몇 달 쌓였던 회포를 풀 수 있었다. 말을 마치자 재수(梓水)가 골습에 좋음을 상세하게 말하고, 요사이 지리산에 갈 의향이 있다고 하였다. 김만식이 말하기를,
“저도 골습으로 고생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라고 하기에 김교준이,
“이 같이 좋은 기회에 같이 가서 마시고 골습도 치료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게다가 지리산은 온 세상의 소인(騷人, 시인)과 묵객(墨客, 글씨나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등지지 않던 곳이니 그대는 사양하지 말게나.”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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