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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과 곽산 사이 기름진 곡식, 청에 바치는 공물로 쓰이다
곽산(郭山)서부터는 산이 낮고 나무가 없으며 돌덩어리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 사람 얼굴의 사마귀 같다. 선천(宣川)과 곽산 사이에는 땅이 비옥하고 곡식이 기름져 연경(燕京 : 북경)에의 공물로 바치던 쌀은 반드시 이곳에서 취한다. 또 몇 고을의 주민 가운데는 본래부터 부호가 많다고 알려져 왔다.
구곡령(九曲嶺)을 통과하자 한 굽이 바다 빛이 신미도(薪彌島) 남쪽에 은은하게 나타나는데, 마치 100여 필 비단이 편평한 평지에 깔려, 가벼운 바람이 한번 지나가면 뒤흔들리곤 하여 가라앉지 않는 것 같았다.
능한산성(凌漢山城)은 고려 때에 쌓은 것으로 지금은 별장(別將)이 그곳을 관할한다. 읍 사람의 말에 의하면 땅이 좁아서 많은 군사를 수용하기 어렵고, 또 산중에는 수원(水源)이 아주 적어, 만약에 병란이 생기면 여러 날 동안 버티고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곽산(郭山) 땅에 들어가니 높은 산과 가느다란 성벽이 멀리서 시야에 들어온다.
저녁에 선천(宣川)의 관아(官衙)에 도착하였는데, 그것은 곧 어목헌(禦牧軒)이었다. 의검정(倚劍亭)은 어목헌 동쪽에 있는데 웅장하고 활짝 트여 역시 서도(西道) 고을의 명승이라고 하겠으나, 시야가 그리 넓지 못하고 단지 나지막한 산, 토막난 산기슭이 있을 뿐, 자그마한 물조차도 없다. 밤에 이 정자에서 기악(妓樂)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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