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7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일에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선호라는 제 이름은 ‘장군님의 선량한 호위전사가 돼라’는 뜻으로 아버지께서 지어주셨지요. 저는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평양을 떠나본 적 없는 평양 토박입니다. 제가 자랑스러운 평양시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조국 해방전쟁 때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신 할아버님 덕분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재간둥이였더랍니다. 지금은 만수예술단의 호른 연주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호른을 불어도 한 사람 얼굴만 떠오릅니다. ‘얼굴도 성격도 동치미처럼 쩡 하고 시원한’ 연화라는 여성이지요. 한눈에 반해서 따라다녔었는데 알고 보니 연화도 제게 반했었더라고요. 저번에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으며, 내년 봄쯤 결혼하자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연화 쪽에서 먼저 결혼하고 싶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역시나 시원스러운 연화 아닙니까? 그날 전 연화와 수줍은 입맞춤으로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가족에게 뜻하지 않은 위기가 닥쳤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전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조선에서 꽤 많은 재산을 일구며 살아계셨고, 몇 해 전 우리에게 연락을 취해오셨지요. 그렇게 몇 년간 할아버지와 서신 왕래를 했는데, 그것을 당에서 알아챈 것입니다. 이제 우리 가족은 도망치느냐 아니면 수용소행을 받아들이느냐 두 가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 아버지께서는 다 같이 남조선으로 탈출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저는... 사랑하는 연화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것만이 걱정입니다.“
영화<국경의 남쪽> 중 호른 연주자 ‘선호’(차승원)와 동치미 같은 여자
‘연화’(조이진)의 놀이공원 데이트 장면.
2006년 개봉한 영화 <국경의 남쪽>의 이야기다.
차승원이 분한 김선호라는 인물은 평양의 호른 연주자에서, 남한의 이방인으로 순식간에 신분이 바뀐다. 그는 탈북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누가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강원도라 거짓말을 하고, 연화의 탈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치킨 배달을 하고, 나이트클럽 문 앞에서 가슴에 ‘김정일’이라는 배지를 단 채 손님들에게 부킹을 주선한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돈마저 몽땅 사기당해 잃게 된다. 평양에서 온 호른연주자가 남한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내기란 퍽 어려운 일이었다.
제목인 ‘국경의 남쪽’은 김선호에게 단순한 남쪽이 아니라 ‘이상한 나라’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그는 ‘동치미같이 시원한 그녀가 없는 이상한 세상’에 뚝 떨어져 동분서주한다. 후에 연화와 재회하지만, 이상한 나라에서 더 이상 그들의 사랑은 허락되지 않는다. 김선호의 눈으로 본 남쪽이 이상하다는 것은 곧, 남한 사회에서 북한을 보는 시각 또한 ‘더없이 이상한 나라’라는 말과 동일하다. 북한과 평양을 묘사하는 방식은 언제나 이렇게 이상하거나, 저 먼 브라질이나 칠레를 묘사하는 방식보다도 생경하다. 그것은 물론 북한 자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의 제한된 정보 탓이기도 하다.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근현대사에서 평양이라는 공간은 그 중요성에 비해 미디어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일종의 금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평양은 청나라와의 길목에 위치한 데다 중공업 발전 잠재력이 뛰어나 일본인들이 잔뜩 눈독을 들였다. 결국 평양은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신시가지와 조선인들이 거주하는 구시가지로 나뉠 정도로 일본인들의 진출이 활발했고, 중국인도 예외가 아니어서, 평양 시내에서 이름난 중국음식점을 찾기 어렵지 않았다.
그 시절의 평양이 간혹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등장할 때가 있다. 평양이 기독교사에서 특히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불길이 활활 타올라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고 평양은 기독교의 성지나 마찬가지였다.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부르기까지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평양 기생학교’ 구경이 외국인 관광객의 코스였을 정도인 색향(色鄕) 평양의 이면에는 이런 영성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평양이라는 도시는 그 안에 복잡다단한 이야기와 성격을 품고 있다.
1940년, 일본잡지 <모던일본>에 조선의 도시를 소개하는 난이 있었는데, 그곳에 소개된 평양의 모습은 이렇다.
먼저 모란대를 구경하고 기생과 놀잇배로 대동강을 돌고 나서
기생학교를 방문하는 것이 유경(柳京) 평양의 상식이 되어 있다.
낙랑, 고구려 이래의 고도이다 보니 일단 당연한 상식이기는 하지만
서선(西鮮) 자원지대의 한복판, 약진하는 조선을 약 사등분하는
일대 상공업센터로서의 평양을 모르면 병참기지가 운다.
만포선, 매집선이 연결되었고, 평원선 전 구역 개통도 머지않다.
어떤 중요시설도 착수되었고, 인구도 최근 1, 2년 사이에 30만이다.
평양은 아주 분주하다. 노래하는 기생의 수심가 같은 것에만 빠져 있을 수 없다.
1940년도 발행된 <모던일본>에 소개된 조선 기생의 하루.
일본인을 위한 잡지니만큼 기생과 병참기지라는 두 가지 요소로 평양을 바라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두 가지 모두 착취당하는 식민지 백성의 눈물이 깃들여져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딱히 ‘평양’은 아니지만,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콘텐츠는 최근 들어 더욱 많아진 느낌이다. 2년 전 웹소설과 드라마로 접할 수 있었던 ‘구르미 그린 달빛’의 여주인공 ‘홍라온’은 홍경래의 딸이라는 설정이다. 영화 <흥부>와 <고산자>의 주인공들 역시 홍경래의 난을 겪은 경험에서 출발한다. 난 이후 십여 년이 지났어도, 홍경래가 살아있다는 루머가 돌았다는 것은 지배계층에게 홍경래라는 이름이 얼마나 떠올리기 싫은 트라우마였는지를 반증한다.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서북민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데 대한 분노였다.
‘평안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처럼 평양에 부임한다는 것은 수령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지만, 그곳 백성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평양은 명, 청과의 사행단이 지나는 길목이었다. 한성을 떠나 의정부를 거쳐 개성으로 올라가, 평양, 의주를 거쳐 연경으로 가는, 현재의 경의선 루트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사행단은 전체 일정의 반 정도를 평양에서 보낸다. 그들을 접대하는 비용은 지방 자체 재정으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지방민들은 이중 삼중으로 착취당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지방수령은 자신의 주머니를 채울 기회가 많아졌다. 게다가 사행단을 끼고 장사 이득까지 볼 수 있었으니 어찌 ‘평안감사’를 마다할 수 있을까.
이즈음 사행단이 지나는 도시의 풍경은 2015년 영화 <조선마술사>에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영화 자체는, 누가 보아도 그저 예쁜, 예측 가능한 사랑 이야기를 조선의 어느 곳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 침실에 사이키 조명 달아놓은 마냥 다소 생뚱맞지만 말이다. 영화의 배경은 평양이 아닌 의주다. 하지만, 사행단을 맞는 지방 수령들과, 흥청거리는 도시 분위기, 사행을 핑계로 유흥을 즐기려는 사신들의 모습과, 그런 사행단의 주머니를 털고야 말겠다는 유흥산업 종사자들의 굳은 결심(?) 따위들은 당시 평양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영화<조선마술사> 중 평안도 최대 유곽 ‘물랑루’에서 마술쇼를 펼치는 장면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조선이, 화친과 굴복의 의미로 조선의 공주를 청나라 왕자의 첩으로 보내, 아니 팔아넘기기 위해 사신단을 보낸다. 몇 개월간의 대장정에 지칠 대로 지친 사신단은 의주에서 휴식을 갖는다. 마술사 환희와 공주가 만나게 되는 주 무대가 바로 그곳이다. 공주는 답답함을 벗어나기 위해 의주 시내를 돌아다니다 길을 잃고 변두리로 접어드는데, 길가에서 굶주림과 역병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을 보게 된다. 공주를 향해 손을 뻗으며 “아씨, 좀 도와주십시오.” 울부짖는 그들이 훗날 홍경래의 난의 주역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백성의 고충은 사신 접대뿐이 아니었다. 오랑캐들이 자주 출몰하는 탓에 방비를 든든히 한다고 성을 축조하라 들볶아댔고, 걸핏하면 군인으로 끌려갔으며, 각종 진상품을 올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 서북민들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히 자행되었으니 불만이 폭발한 것이 당연하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 삼국시대의 평양성을 돌아본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황산벌>과 <평양성>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그간 점잖게 표준어로만 싸우는 모습을 보였던 삼국이 각자 자신의 방언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국인 당나라에 굴하지 않고 시원하게 욕을 내뱉던 연개소문과 황산벌에서 처절하게 싸우던 계백의 징한 전라도 사투리는 카타르시스까지 전해주었다. 그리고 이원종이 분한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언제나 적에게 이렇게 외쳤다. 당당하게.
“우리 고구려는 700년 동안 외적에게 무릎 꿇은 적이 한 번도 없어.”
‘평양’은 이상한 곳이다. 아름다운 여성들의 분 냄새와 거룩한 영성이 공존했고, 수없이 짓밟혀도 무릎 꿇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평양은 이제 우리 옆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와 있다. 그리고 변치 않는 사실은 ‘평양’은 우리 민족이 살고 지키고 사랑했던 아름다운 땅이었으며, 앞으로도 우리의 아이들이 노닐 땅이 되리라는 것이다. 더 이상 ‘이상한 땅’이 아닌,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 숨 쉬는 땅’이 되리라는 사실이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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