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결심 공판_서울남부지방법원(출처: 연합뉴스 2021.4.14.)
‘정인이 사건’으로 한동안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지만, 양부모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정인이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묻힌 감이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23세 아기아빠가 17세 아내와 부부싸움을 벌이던 중, ‘도움이 안 된다’며 아내가 안고 있던 아기를 빼앗아 바닥 매트에 집어던진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10년 쯤 전에도 역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온라인게임의 채팅으로 만난 부부가, 결혼 후에도 매일 PC방에 가서 하루에 9시간에서 12시간 게임에 몰두하다, 결국 자신들이 낳은 신생아를 방치해 굶겨 죽인 사건이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아기의 시신이 미라처럼 바싹 말라있는 것을 수상히 여겨 부검을 의뢰했고, 부부는 부검이 진행되는 도중 도주했다가 붙잡혔다.
이런 일들을 볼 때마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산후 호르몬 불균형으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받아(?)내기 위해 늘 거즈손수건을 손목에 감고 잠들었던 일이며,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짜증이 나 아기 침대를 발로 밀어버렸던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당시 남편도 바빴으니, 나 혼자 고스란히 육아를 담당해야 했다면, 연약한 아기에게 순간적으로 폭력 비슷한 일을 행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그때의 내겐 친정어머니가 계셨다.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면 얼른 아기를 안아 데려가셨고, 따뜻한 우유를 타 오셨다.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줬는데 대체 왜 아이가 우는 건지 몰라 힘들어할 때, 코가 막혀 그렇다며, 아기의 작은 콧구멍에 더운물 몇 방울을 넣어 스스로 코딱지를 배출하도록 하셨다. 그야말로 어머니는 육아와 살림에 관한 지혜와 경험의 보고였다.
결혼 전 친정을 생각해보면 더 왁자지껄했다. 이모네와 함께 살던 우리는 꽤 대가족이었는데, 사촌오빠와 사촌언니가 결혼해 차례로 아기를 낳아 집에 데려올 때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 기쁨과 신기함에 아기 곁엔 늘 가족들이 북적거렸다. 밥을 안 먹는 아이도, 우리 어머니에게 걸리면(?) 영락없이 한 그릇 뚝딱이었다. 요리도 잘 하시는 데다, 먹이는 기술도 일류라, 오빠 언니의 아이들이나, 나의 두 아이들 모두 우량아로 자란 것이 이상하지 않다.
아기를 학대한 이들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어쩌면 그들에게 육아를 돕는 든든한 지원군, 혹은 파도를 완충시켜줄 방파제 역할을 할 식구들이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았다고 모두 바로 부모가 되는 건 아니다. 나 자신, 너무도 어리고 옹졸한 인간에서, 아이와 함께 자랐다는 느낌이다. 때문에 우리에겐 언제나 우리보다 큰 어른이 필요하다. 가르쳐주고, 품어주고, 때로는 혼도 내주는 어른의 존재가 필수적인 것이다.
지금은 굳이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찌감치 혼자 먹는 밥(혼밥)이 일상화되고, 직접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물어진 시대다. 오죽하면 온라인채팅으로 만난 남녀가 결혼해서도 시간의 대부분을 PC방에서 각자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게임하는 데 썼을까. 분명 서로 끌리고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그런 두 사람이 서로 소통하는 일조차 힘겨워진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나온 새로운 ‘사람’을 키우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생경하고 귀찮은 일이었을지 생각해보라.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베티 B.영즈(저,) 이레출판사, 출처: 교보문고)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entire village to raise a child)’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그 마을의 의미는 참으로 다양해서, 그저 부모, 혹은 교사 같은 훌륭한 존재들만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오지랖을 부리는 간섭쟁이 할머니도 있고, 매일같이 화를 내며 배를 득득 긁으며 걸어 다니는 술주정뱅이 아저씨도 있고, 무뚝뚝하게 생겨도 덤 잘 주는 시장 아주머니도 있고, 머리에 꽃 꽂고 비오는 날 괜히 뛰어다니는 청년도 있다.
이 마을에서 크는 아이들은 그래서 오지랖 넓은 사람을 보면 수다쟁이 간섭쟁이 할머니 생각이 나서 웃어넘기고, 아무데서나 잠들어있는 취객을 보면 어릴 때 봤던 주정뱅이 아저씨 생각이 나 옷도 덮어주고 “아저씨! 이런 데서 잠드시면 입 돌아가요.”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나의 가족은 마을사람으로 확대되고, 마을사람은 나아가 내가 속한 모든 사회로 확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넌 에미 애비도 없냐?”다.
1750년 10월 17일. 오늘은 아침 일찍 마을의 동회가 열렸다. 고을의 불효자 김만갑이란 자를 징계하기 위해서였다. 이 김만갑이란 자는 평소 불효와 악행으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였는데, 이제 동회의 규약에 따라 벌을 내린 것이다.
동네에 사는 임봉래라는 사내가 있는데, 김만갑은 그의 조카였다. 그런데 그의 행실이 어찌나 패악스러운지, 그만 참지 못하고 임봉래의 아내가 관아에 김만갑의 행실을 적어 불효하고 불순한 죄를 고하였다. 이 일은 삼강오상과 관련된 중요한 죄이므로, 사유를 갖추어 관아에 보고하도록 하였고, 아울러 동약책을 제출하였다. 동약에 따라 이 김만갑이란 사람의 죄를 징치할 테니, 그 규약을 보고 허락해 달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관아에서 이를 확인하고는 어제 답이 도착하였다. 초저녁에 관아의 답장이 도착하였는데, 거기에 적힌 말투가 매우 엄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만하였다. 불효의 죄를 엄히 물으라는 관아의 말에, 온 동네 사람들이 두려워 떨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리하여 오늘, 그의 죄를 징치하는 자리가 고을에서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죄를 징치하려니, 김만갑의 삼촌인 임봉래란 사람이 나서서 부디 선처해 주기를 울면서 애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마을 사람들도 다소 심정이 누그러졌다. 게다가 이 만갑이란 자는 아직 나이도 어렸는데, 오늘 엄히 벌을 받는다면 그의 장래도 밝지는 못할 터였다. 이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소지를 올린 임봉래의 아내로 하여금 만갑이를 다스리도록 하고, 엄한 벌은 면해 주었다. 죄를 지은 만갑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가 동네 사람들의 선처로 한숨을 돌린 표정이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최흥원은 만갑에게 엄한 목소리로 일렀다.
최흥원의 『역중일기(曆中日記)』 중에서
이렇게 불효자가 있다면 온 마을 어른이 나서서 다스렸다. 내 아이가 아니라도 나서서 교육하고 끌어주고, 먹이고 씻기는 일이 그저 늘 있는 평범한 일이라, 내 부모가 아니라도 순종하고 이해하고 넘어가줬는데... 이제는, 없다. 우스갯소리처럼, 있는데... 있었는데... 없다. 버젓이 있는 부모도 바빠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아이들은 학원으로 PC방으로 노래방으로 돌아치고, 혹 자신만의 방에 고립된다. 공간이 분리되면서 마음도 분리된다. 부모도 못하는 일을 이웃이 할 리 없다. 아무리 우리 아빠랑 비슷한 넥타이 메고, 양복 입고, 같은 차를 타고 다니는 이웃이고 해도 우리 아빠와 동일시 할 순 없다. 그저 우리 아빠 연배의 사람일 뿐. 그러니 젊은 사람에게 ‘넌 에미 애비도 없냐.’는 말은 이제 그만. 혹 실수로라도 하면 돌아오는 건 대부분 “있다 그런데 뭐!”가 되지 않을까.
이번 호 주제를 듣고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사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응답하라 1988>이었다.
“정환아, 아랫집 가서 밥 한 공기 얻어와.”
집주인 치타여사(호피무늬를 즐겨 입어서 생긴 별명)가 아들에게 스테인리스 대접 가득 마요네즈 과일 샐러드를 내밀며 말한다. 아랫집엔 정환과 같은 학년 덕선네가 세 들어 사는데, 덕선엄마는 손이 크기로 유명하다. 밥 한 공기 달라는 정환의 말에 “옴마야, 사라다 했나! 느그 아버지 오늘 늦게 들어오신다카드이만 일찍 들어오시는갑네.” 하며 밥을 꽉꽉 눌러 퍼주던 덕선엄마는, 빈 그릇에 깍두기를 가득 채워 내민다.
정환이가 깍두기를 받아가지고 집에 가니 치타여사는 또 다시 불고기 한 그릇을 내주며 옆집에 혼자 아이 둘 기르는 진주엄마 갖다 주란다. 정환이 불고기를 들고 나가려 할 때, 바로 그 진주엄마의 장남이자, 정환의 친구인 선우가 “아줌마, 엄마가 카레 좀 드시래요.”하며 대접을 들고 들어온다. 정환은 진주네에 불고기를 갖다 주고, 또 다시 진주엄마로부터 귤 한 쟁반을 받아 온다. 이렇게 서로 보답을 하다간 절대 오늘 저녁내로 배달이 끝 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에 아득해지는 정환의 표정. 그런 중에도 선우는 덕선네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에게도 카레를 나르고 있다. 그러니 받은 집에서도 가만있을 수 없어, 결국 네 집의 아이들은 주고 보답하고 또 다시 주고받으며 저녁도 못 먹고 반찬그릇을 든 채 골목길을 뛰어다닌다. 그런 네 사람이 골목 한 가운데서 그릇을 손에 든 채 마주치자 정환이 한 마디 한다.
“이럴 거면 다 같이 먹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2015~2016(출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2015~2016(출처: tvN)
정환이에겐 힘든 저녁이었겠지만, 아버지랑 둘이 사는 택이네의 저녁 식탁은 덕분에, 찌개 하나만 덩그러니 올려져 있던 데서, 샐러드, 불고기, 깍두기, 카레, 김과 상추가 차례대로 그득하게 채워진다.
어디 밥뿐이랴. 콩나물을 다듬거나 멸치 똥을 빼거나, 마늘을 까는 그 모든 순간에 이 골목의 엄마들은 함께 있다. 어느 집 애가 시험을 못 봐서 얼굴이 안 좋으면 함께 위로해주고, 어떤 아이가 아프다면 함께 간호해준다. 엄마 없이 자라는 택이와, 아버지 없이 자라는 선우, 진주 남매가 느낄 빈자리를 서로의 주책없음과 떠들썩함으로 채워주며 말이다.
물론 그 시대의 모든 골목길이 같은 모습일 리는 없지만, 불과 삼사십년 전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 빙그레 웃음이 지어지다가도, 작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허전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혼밥이 편하고, 전화보다 문자가, 오프라인 모임보다 온라인이 편한 누군가도, 외로울 때가 있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기 싫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거울로 삼고 살 만한 어른이 주변에 부디 많아지기를, 어른들이 함부로 살고 싶어도 초롱초롱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 때문에, 조금은 바르게 살고 싶어지는 그런 작은 공동체들이 많아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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