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골 정생이 큰마음을 먹고 청량산으로 떠난 것은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 삼짇날이었다. 사군자의 하나라는 매화는 지나갔지만 신록이 돋는 봄철에 진달래와 벚꽃이 피는 산을 보러 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정생이 하고많은 산 중에서도 저 멀리 경상도에 자리한 청량산을 굳이 가보려 한 것은 물론 그곳에 퇴계 이황 선생의 자취가 서려 있기 때문이었다.
퇴계가 누구인가?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의 으뜸이요, 종묘에도 종사된 조선 유학의 대들보 아니신가. 그런 분이 평생을 사랑한 산이 바로 청량산이요, 그래서 본인 스스로도 ‘청량산인’이라 칭하셨다. 이 때문에 조선의 선비 되는 자, 청량산을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 할 만큼 많은 문인들이 이 산을 다녀왔다. 정생이 비록 그 흔한 생원진사시도 통과하지 못한 처지이기는 하였으나 글줄을 읽어 성리학의 말학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터라 청량산을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일생의 한이었다.
ⓒ송동근
하나 선비가 한 번 산행을 하려고 하면 준비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일상생활 중에야 하루 두 끼면 충분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몸이 고되어 중화(점심)를 먹어야 하니 식비가 올라가고, 가는 길을 기록하여 ‘유산기’를 남기려면 붓과 벼루와 먹과 종이 즉 문방사우를 같이 가져가야 하니 하인을 아니 데려갈 도리가 없다. 양반의 행차인데 초라하게 둘이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먹을 것을 할 숙수(요리사)를 데려가야 하고 가는 길의 풍류를 위해 악사를 고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노래를 불러줄 기생 역시 필수가 아니겠는가. 지나가는 멋진 경치가 있다면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기록해야 하니 화공도 데려가야 한다. 이들의 시중을 들 하인들 역시 있어야 하고, 의복과 식량 같은 것만 챙길 것이 아니라 선비의 체통을 유지하기 위한 책 역시 반드시 갖춰야 하니 십여 명이 최소한의 인원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돈도 그만큼 들어가는데, 거리가 멀수록 더 경비가 많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런 이유로 십 년을 별러 드디어 청량산으로 출발하게 된 정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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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삼짇날 출발하여 청량산에 도착한 것은 삼월 보름이었다. 마침 보름날 산에 도착하고 보니 산마루에 올라 달맞이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피곤하여 산 아래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일찍 산으로 오르자는 수하들의 바람 따위는 싹 무시하고 정생은 산을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연대사(蓮臺寺)를 들러 그곳에 짐을 푼 뒤에 석각을 하는 중을 잡아다가 멋진 바위에 왕양주정생(往楊州鄭生)이라 새겨놓을 생각이었다.
“에라, 게으른 놈들아, 어서 올라라. 이러다 해가 지면 만사휴의니라!”.
하지만 너무 서두른 탓에 동티가 났다. 산행을 아는 백성 하나를 붙잡아 향도를 시켰어야 하는데, 하필 근처에 인가도 아니 보이고, 지나가는 촌로 하나도 없어서 대충 들은 것만 가지고 길을 잡아 올랐더니 아무리 가도 절이 나오질 않았다.
퇴계 선생이 몸과 마음을 닦던 산에 왔으니 이제부터는 걸어서 올라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 평지에서는 그래도 따뜻한 기운이 있었으나 산에는 냉기가 한 가득이어서 처음에는 땀도 나지 않고 몸이 덥혀져 좋구나 하는 생각이었으나 잠시 오르다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면서 몸이 척척해질 정도가 되니 이제는 추위가 엄습했다. 그렇다고 사방이 트인 곳에서 옷을 갈아입자 할 수도 없으니 죽을 맛이라는 게 이런 것 같았다. 보름달이고 뭐고 간에 빨리 구들장 뜨끈한 곳에서 몸을 좀 누여야 살 것만 같았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이냐?”
가져온 물도 떨어져 짜증이 상투 끝을 통과할 지경이었는데, 절벽 틈새로 물이 흘러나오는 곳을 발견했다.
“오호라, 이곳이 바로 총명수렷다!”
신라 시대 명유(名儒) 최치원이 이 물을 마시고 총명해졌다고 해서 총명수라 부르는 곳이다. 총명해지건 총명해지지 않건 상관없이 일단 갈증을 달래고 볼 일이었다.
“주세붕 선생께서 말씀하시길 ‘총명수를 마시고 만월암에 누워있으면 비록 하찮은 선비라도 신선이 된다.’ 하셨느니라. 마침 오늘이 만월이니 내 그곳에 가서 활개를 치고 누워보리라!”
갈증을 달랜 정생이 마치 천하를 얻은 듯 호연지기를 뽐내며 힘차게 산 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곧 절벽에 붙은 잔도가 나타나니 간신히 여기까지 쫓아온 기생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나리, 소첩은 이제 죽어도 못 갑니다. 저길 지나가라고 명하느니 차라리 소첩을 매질하소서!”
이랬더니 간이 작은 하인 녀석 하나도 나자빠진다.
“쇤네도 못 가겠사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정생은 기가 막혔지만 발버둥을 치며 못가겠다는 여인을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아래쪽을 살펴보니 절간이 내려다보였다. 놓치고 올라온 연대사가 분명했다.
“알겠다. 그러면 너희는 저기 절간에 가서 짐을 풀고 있도록 해라. 신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장삼이사에 다 가당키나 하겠느냐. 내 홀로 만월암에 올라 신선이 되리라.”
오기가 발동한 정생은 수종을 들겠다는 하인까지도 굳이 내쫓다시피 하고 혼자 산을 타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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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암 만월대에 도착했을 때는 당연히 기진맥진하여 정생은 경치고 뭐고 살필 겨를도 없이 대 위에 드러누워버렸는데, 얼마나 피곤했는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던 정생이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깜깜했는데 대 주변에 몇 사람이 모여 시회라도 여는 것 같았다.
“허허,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점잖은 인사가 오가는 것을 보니 인근의 선비들이 보름을 맞아 달맞이를 온 것이 틀림없어보였다. 정생은 조용히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그들 곁으로 가다가 흠칫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분명 선비들이 앉아 있는데 그 사이에 장삼가사를 걸치고 머리는 산발한 거사가 한 명 앉아있었다. 파계승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석각을 하거나 길 안내를 위해 온 사람은 아니었다. 앉아있는 모양새도 격식이 없이 방자하여 눈살이 찌푸려졌다. 불가의 인물이 선비들 모임에 끼어 있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불쾌했다. 그때 마치 신선 같은 모습을 하고 당나라 때 사모 같은 것을 쓴 선비가 나를 보고 손짓을 했다.
“오늘은 과객이 있었구려. 어서 오시오.”
그러자 퉁방울눈에 주먹코를 가진 선비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운 선생은 거 아무나 초대하는 버릇을 좀 버리십시오.”
고운 선생이라니? 최치원의 호가 고운이 아니던가. 그런데 되받는 말이 더 걸작이다.
“신재, 너무 뭐라 하지 마시오. 저 사람도 뜻을 이루지 못해 이 깊은 산속에 들어온 것이니.”
신재라니! 신재는 주세붕의 호가 아니던가. 주세붕은 조선 유학의 대들보인데 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장난을 치고 있는 건지 정생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주세붕은 바로 청량산 열두 봉우리의 이름을 지은 사람이 아니던가. 정생은 그제서야 여기 모인 사람들이 선현들의 이름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라 여기고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자, 이리 오시오.”
학창의에 복건을 쓴 선비가 옆으로 비키며 손으로 탁탁 자리를 쳤다. 정생은 그쪽은 보지도 않고 성질을 냈다.
“점잖게 생긴 분들이 이 무슨 허황된 노릇입니까! 선현들을 흉내 내고 있다니, 세상에 창피한 노릇입니다.”
“흉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눈에서 번갯불이 이는 것 같은 노인이 붓을 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손발도 작고 손목이 가늘어 힘이라곤 없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나는 신품사현이라 불리는 김생이다. 내가 이곳에서 봉우리들을 보며 글씨를 익혀 지금도 내가 머물던 곳이 김생굴이라 남아있거늘, 네 놈이 날 가짜라 보는 모양이니 어디 글씨로 한 번 겨뤄보자.”
정생이 대꾸를 할 새도 없이 김생은 풍월(風月) 두 글자를 바위 위에 썼는데 그 가는 손목에서 어찌 이런 힘찬 글씨가 나오는지 글씨가 바위를 뚫고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움머~ 보름날을 맞아 속세에 내려왔으니 풍진이 없을 수 있겠소. 해동서성은 진정하시오.”
움머? 정생이 그때서야 한바퀴 둘러 살펴보니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황소 하나가 앉아 있었다. 뿔이 세 개 달린 황소라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움머~ 좀 놀란 모양이군. 나는 삼각우(三角牛)라네. 본래 중이었으나 연대사를 창건할 때 소로 변신하여 하루 동안 온 힘을 다해 일한 끝에 죽어서 묻혔지. 그 공으로 천상에 올라 이렇게 보름날에 명사들과 즐길 수 있게 되었지.”
정생은 분개하여 말했다.
“최치원 고운 선생과 신필 김생 선생, 주세붕 선생은 모두 일세의 명현인데 어찌 이런 소나 저런 불가의 거사와 어울리고 있습니까? 무릇 중이란 속세의 인연을 끊는다고 하여 불효를 일삼는 자로 마땅히 세상에서 없애야 하는 말종들입니다! 불상을 헐고 중들을 매질해서 깨우침을 내려야 합니다!”
최치원이 말했다.
“허허, 좀 진정하게나. 자네는 유생인 모양인데 이곳에는 어찌 온 것인가?”
“죄송합니다. 소인은 양줏골 정생이라 하옵는데, 평소 퇴계 이황 선생의 높은 이름을 흠모하여 평생을 별러 이곳에 온 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마외도와 어울리는 선현들을 볼 줄...”
주세붕이 손을 흔들어 정생의 입을 막았다.
“이보게, 퇴계, 자네가 말 좀 해줘야 하겠네.”
정생에게 자리를 권하던 학창의에 복건을 쓴 선비가 고개를 들었다. 정생은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정말 선생이 퇴계 이황이시란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이황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일찍이 청량산 백운암의 승려 부탁으로 ‘백운암기’를 쓴 적이 있으니 나 역시 매질을 당해야 마땅하겠는가?”
정생은 철푸덕 자리에 엎드려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말했다.
“어, 어찌 소인이 감히...”
“자네가 말한 거사는 당으로 가던 유학길에 해골의 썩은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어 돌아온 뒤에 신라의 삼국통일에 큰 기여를 한 원효대사일세. 저 분 역시 청량산에서 도를 닦았지. 아, 사람들이여, 행여 뒷사람이 먼저 온 뜻을 알면(後來欲識先游意) 묘한 곳으로 함께 가리니 어찌 차이 있으리오(妙處同歸豈二三).”
주세붕이 말을 받았다.
“청량산의 산세를 보고 선비의 정신을 깨우쳐야 마땅하거늘 허례허식만 가득한 썩은 선비들이 사람들을 괴롭힐 요량으로 이곳을 오니 말세가 다가온 모양이외다.”
원효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의 말씀이 참으로 옳소이다.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 찼으니 유가의 선비가 불가의 중을 괴롭히는 것이야 구우일모(九牛一毛)에 지나지 않으니, 굳이 따져 무엇하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
삼각우도 소울음을 내며 웃었다.
“구우일모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여기 소는 나 하나밖에 없지 않소. 일우구모라고 하시오!”
웃음소리들이 점점 커지더니 천둥벽력처럼 변하였다. 정생은 벌벌 떨다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보니, 명현들은 간 곳이 없고 하인들이 자신을 찾는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송동근
정생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날 바로 하산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정생은 처음엔 고개도 못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작은 소리에도 놀랐으나,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기운을 차리더니 고향에 도착한 뒤에는 크게 서당을 열고는, “내가 청량산에서 주세붕 선생과 퇴계 선생을 만나지 않았던가. 그분들께 받은 가르침을 기꺼이 후학들에게 베푸리라.”라고 말하였다. 정생의 소문은 인근 고을까지 퍼져나가 서당의 문턱이 닳을 지경이었다고 전해온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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