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민가의 주거공간은 크게 안방, 사랑방, 부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안채와 안마당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부녀자를 중심으로 한 가족들만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외부와 거리를 둔 공간이며, 사랑채와 사랑 마당으로 구성되는 공간은 외부와 소통될 수 있도록 배치되어 거실 및 손님맞이 공간으로 사용되므로 비교적 개방적이라 할 수 있다. 부엌은 바닥 면이 지면보다 낮고 별도로 독립되어 있어 음식을 만들어 마당을 거쳐 실내로 운반해야 하는 구조로 여기에 따른 적절한 가구가 발달하였다. 이처럼 안방, 사랑방, 부엌 등 각각의 공간에서 사용되는 가구 또한 개성 있는 여러 가지 형태로 그 모습이 나타난다.
광산김씨 쌍벽당종택 원경(출처: 한국국학진흥원 한국의 편액)
이곳에 사용되는 가구는 대부분이 화려한 장식이나 조각 등을 배제하고, 자연스러운 나뭇결을 살린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목재가 나뭇결이 아름다운 이유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으로 목재의 수종이 다양하고,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여 나이테가 선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무로 제작된 조선조 가구에서 드러나는 맞춤의 구조와 실용성은 최소주의의 간결한 면 분할에 의한 잘 정리된 조형미로 장인의 숨결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가구를 만든 장인들의 노력과 땀이 스며있는 조선조 가구를 마주할 때 우리는 표면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물론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숙연해지는 마음을 가진다. 그러므로 겉모습의 아름다움만을 강조하기보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비례에서 우러나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자연에 순응하는 정신과 삶을 가구에 담아내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유럽이나 중국의 가구는 입식 생활과 넓고 높은 실내공간으로 인하여 가구 또한 크고 육중하며 장식적인 면을 띄고 있다. 반면 한국은 차분하고 아담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기질과 온돌로 인한 좌식생활의 영향으로 천정이 낮고 비교적 실내도 좁다. 그래서 가구들은 생활공간을 조금이라도 많이 확보하기 위해 키가 작고 간결하게 제작되었다. 그리고 방의 가운데에 놓이는 가구들도 효율적인 공간 활용성을 위해 이동성을 고려하여 제작되었다. 예를 들어 서안과 연상, 문갑, 반닫이, 소반 등이 모두 키가 작고 세로 폭이 좁은 것은 평좌 자세에서의 실용성을 고려한 결과이다.
조선조 가구의 안방 가구를 대변하는 장(欌)과 농(籠)의 기본 틀인 기둥과 쇠목, 동자, 마대, 족대 부분은 느티나무, 참죽나무, 소나무를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가구의 구성 중 아름다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앞면의 복판과 쥐벽칸 그리고 머름칸 등은 가장 좋은 나뭇결을 선택하여 행여 단순할 수도 있는 조선조 가구의 조형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반닫이는 두껍고 폭이 넓은 판재로 주로 구성되어 있어 장이나 농보다 그 크기는 작지만 무거운 편이다. 구조는 천판, 앞널, 뒷널, 측널, 문판 등으로 단순하게 제작되어 있지만, 수납을 염두에 둔 짜임새로 그 구조에 맞게 야무지게 구성되어 있다.
반닫이(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문갑(文匣)은 안방에서 사용되던 여성용 문갑과 사랑채에 사용되었던 남성용으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재료와 장식이 화려하고, 후자는 남성의 공간에 어울리게 검소하고 소박하게 제작되었다.
사랑채의 문갑(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안방의 문갑(출처: 경기도박물관)
소반(小盤)은 우리나라가 좌식생활이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가구로 평평한 통판의 널과 여기에 연결되는 다리로 이루어진다. 반의 바로 밑에는 여러 가지 조각이나 구름 문양 등으로 장식한 운각(雲脚)이 있고, 대부분은 다리를 견고하게 잡아 주는 중대(中臺)와 족대(足臺)가 있다.
이동이 쉬운 자그마한 소반이 조선 시대에 사용된 것은 그 당시 남녀유별·장유유서의 유교 사상으로 겸상보다는 독상이 주로 쓰였고, 부엌과 방이 분리되어 있고 규모가 작은 공간적 구조와 좌식생활을 하는 온돌방에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소반의 종류는 산지·형태·용도에 따라 수십여 종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명칭과 구조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각 지역은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목재와 생활양식에 따른 지방색을 띠며, 그중에서도 지역성, 형태, 구조 등 특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통영반·나주반·해주반으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소반을 만들 때 쓰인 목재는 가래나무·느티나무·오동나무·은행나무·피나무·호두나무 등이 반의 윗면에 주로 사용되었고, 다리에는 단풍나무·버드나무·소나무 등이 많이 쓰였다.
소반 1(출처: 최용신기념관)
소반 2(출처: 미리벌민속박물관)
조선 시대 유교 사상의 윤리관은 그 당시 예술에 판연히 반영되어 있다. 특히 남녀유별의 유교 관념에 따라 주택의 공간구조도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었고, 그곳에서 쓰였던 가구들도 제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며 발전해 왔다.
조선조 목가구는 우리 선조의 얼이 고스란히 스며있으며, 일상 속에서 사용되고 다듬어지면서 주변 환경에 적합한 비례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간직하고 있다. 나지막한 키와 간결함으로 생기는 내부 벽면의 여백과 조화를 이루며,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기물과도 부담 없이 어우러지도록 제작되어 한국적이면서 단순하고 가지런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
목재는 계절에 따라 수축과 팽창이 커서 함수율이 높거나 폭이 넓은 판재는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등, 변형이 심해 가구의 재료로 사용할 때는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전면의 넓은 면은 좁게 나누어 재구성함으로써 수축과 팽창을 줄였으며, 좁은 면이기에 아름다운 무늿결의 나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가구 전체에서 받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도 겸하였다. 이로써 여러 가지 조건에 맞는 구조와 역학을 고려한 시각적 효과를 살린 격조 높은 기법으로 발전되었다.
사랑방가구는 크지 않은 공간에 단순한 구조, 쾌적한 비례, 간결한 선을 지닌 목가구가 제작되었다. 종류로는 서안, 문갑, 탁자류, 책장, 연적, 향꽂이 등 문방용기가 주를 이룬다. 가구의 배치를 보면 벽면에는 고비와 문갑류 그리고 사방탁자가 배치되어 있고, 아랫목의 보료 앞에는 글을 읽거나 쓰는 용도 외에 손님과 마주 앉은 주인의 위치와 경계를 지켜주는 서안과 그 측면에 문방사우(文房四友)를 넣은 연상(硯床)이 놓였다.
공간 전체와 어떤 부분, 또는 부분들 사이의 크기의 관계가 비례이며, 이 비례의 원리와 깊은 관계를 지니는 것은 균형이다. 균형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은 고른 모습으로 서로 반대되는 힘이 평형을 유지하는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논리에서의 조선조 목가구는 나뭇결의 자연스러움이 많이 나타낼 수 있고, 수직의 상하 대칭은 시각적 착시에 의한 정확한 파악이 어려우므로 좌우대칭을 선호하였다.
사랑방(출처: 『국립민속박물관-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국립민속박물관, 2009, p.168-169)
사랑방가구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간결한 선과 정확한 면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바로 구조적인 측면과도 연관이 된다. 또한 간결한 골격 구조로 선과 면이 만들어 내는 알맞은 비례의 수수한 아름다움은 고요한 안정감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선과 면이 주를 이루는 사랑방가구의 구조적인 형태미는 골재와 판재의 짜맞춤에서 파생된 것으로 탁자, 책장 등 골재(骨材)를 기본으로 하는 가구와 농, 문갑, 반닫이, 서안 등 판재(板材)가 주가 되는 가구로 분류할 수 있다.
사랑방에서 사용되었던 가구는 우리가 눈으로 보기에 단순한 형태미를 지니고 있다. 선과 면으로 구성된 요소들은 반복과 대칭적 표현으로 질서와 통일성 그리고 조화성을 함축하고 있어 정돈된 비례의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비례미를 엿볼 수 있는 면 분할과 대칭의 형태에서는 장식을 최소화하고 순수한 자연의 나뭇결을 살린 우리만의 자연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책장의 구조는 문변자로 테두리를 두른 복판의 여닫이문이 좌우로 열리며 가로세로 같은 간격으로 면 분할된 여닫이문 양옆으로 쥐벽칸이 있어 문 안쪽으로 공간이 생기는 구조이다. 내부에는 전체적으로 상하를 구분하는 선반이 놓여 있고, 다리와 바닥은 책장의 무게를 고려하여 굵은 기둥으로 다리까지 하나로 연결된 것이 대부분이다. 책장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은 1:1~2이다. 이상과 같은 책장의 형태와 구조에서 골재의 선과 판재의 면이 만들어 내는 나눔과 더함의 면 비례를 엿볼 수 있다.
삼층 책장(출처: 2012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선의 미감, 목가구』, 2012, p.35)
삼층 책장 내부(출처: 2012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선의 미감, 목가구』, 2012, p.35)
서안(書案)은 조선 후기 사랑방 공간에서 꼭 필요한 가구로 선비들의 학문 활동에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좌식책상의 역할을 하던 서안의 크기는 책 한 권을 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이다. 서안의 형태는 평평하고 가로로 긴 판재와 좌우 면에 다리 역할의 판재로만 구성되어 단순미를 강조하고 있다. 가로와 세로 폭은 2:1에서 3:1의 비율로 나지막하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서안(출처: 2012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선의 미감, 목가구』, 2012, p.17)
조선 시대 가구 중 여백과 비례를 대표하는 가구는 당연히 사방탁자(四方卓子)이다. 사방탁자는 수직 방향으로 길게 뻗은 골재 구조 사이에 층널이 끼워진 형태를 지녔고, 층널에 사용된 판재로 상, 하 공간을 나누는 분할의 의미를 드러내었다. 골재의 기둥은 입면(立面)을 열어놓아 수평적 방향으로 주변으로의 공간 확장을 의미하고 있다. 이렇듯 네 기둥과 층널로만 구성된 사방탁자는 사방이 열려 있어 시각적으로 시원하고 그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다.
사방탁자(출처: 2012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선의 미감, 목가구』, 2012, p.49)
조선 후기의 사방탁자에 나타난 조형적 특징은 일반적으로 3∼4층으로 제작되었고, 가로와 세로의 비율은 대략 1:4로 다른 가구에 비하여 폭이 좁고 키가 높은 형태이다. 사방탁자는 면보다는 선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가구로 그 구성미는 가느다란 기둥과 가로지른 쇠목의 비례가 우수하고, 장식을 배제한 단순미를 강조하였으며, 여기에 사용된 짜맞춤 기법도 뛰어나 조선 시대의 공예미(工藝美)를 대표하고 있다.
조선조 가구의 미의식에서 우러나는 비례미는 사상적 배경과 함께 많은 연구자에 의해 연구되어왔다. 그동안 진행되어온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조선조 가구의 비례미는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 소박함에 기본을 두고 기본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는 자연관은 어떠한 원리에 의해 구성되고 있는가에 대한 논리적인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에 앞으로는 이 부분에 관한 연구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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