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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김 생원의 운수 좋은 날

(출처: 픽사베이)


“꼬끼오-꼬끼오-”

아직은 어둠이 늦잠을 자는 시간, 김 생원은 암탉 소리에 반가움을 느끼며 눈을 떴다. 시원하게 쭉 내뽑는 암탉의 울음소리는 오늘 밤에도 닭들이 보물을 낳았다는 기쁜 소식이다.

“하나, 두이, 섯, 넛…”

종종걸음으로 닭장으로 다가간 김 생원은 허리를 굽힌 채 닭장 안을 쏘다니는 병아리의 수를 셌다. 밖은 여전히 캄캄한 데다, 병아리의 모양새는 온통 그놈이 그놈 같은지라, 김 생원은 처음부터 다시 세기를 반복했다. 네 번째가 돼서야 그는 다행스러운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오늘 밤도 무사했구나. 요 녀석들. 게다가 제 어미는 달걀을 또 낳았으니, 이 얼마나 기특한 녀석들이로고”

늦손주의 재롱을 지켜보던 표정으로 김 생원은 달걀을 조심스레 꺼냈다. 암탉 몰래 달걀을 빼내는 것은 익숙지 않으면 된통 당한다. 그러나 그는 능숙하고 차분하게 달걀을 꺼내, 걸노가 들고 있는 소쿠리로 넣었다.


달걀꾸러미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걸노야. 이제 달걀이 몇 개더냐.”

“예, 어르신. 이제 두 꾸러미는 됩니다.”

“그 개새끼 단속은 잘 하고 있더냐.”

“예. 어제도 쇤네는 못 보았습니다.”

“다행이로구나. 다행이야”

김 생원은 다시금 희고 긴, 그래서 계모임 때마다 뭇 사람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닭장을 쳐다보았다. 제 알을 잃어버린 것을 암탉의 원망어린 시선을 외면하며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김 생원은 텅 비어 나란히 서 있는 벌통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1년 간, 애지중지 키운 벌들이었다. 백면서생 선비가 벌에 쏘여가면서도, 날이 추우면 벌들이 얼어 죽지는 않을까, 날이 더우면 벌들이 더워 죽지는 않을까, 큰아들을 낳을 때처럼 밤낮으로 정성을 다했다. 안 사람이 ‘자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벌들만 끼고 돈다’라며 흉을 보아도, 그에게 이 벌들이 십수 년간 눈독 들인 부로골 논을 살, 소중한 종잣돈이었다. 그렇게 공을 들여 드디어 수확한 벌꿀을 모두 모아 시세가 좋은 함흥으로 보낸 것이 보름 전 일이다. 이 추운 겨울, 눈보라가 치던 날도 여러 날인데, 길 떠난 덕노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벌통의 꿀을 따는 모습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걸노가 말했다.

“오늘 밤에는 덕노가 돌아올 것입니다요.”

“그러하느냐. 흠흠.”

짐짓 모른 체했다만, 그는 귀환 경과를 보고하는 덕노의 편지를 받은 일주일 전부터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다만, ‘선비가 돼서 시문에는 관심이 없고 살림에만 사활을 건다’라는 소문이 동네에 돌고부터는 그도 설렘과 기대를 숨기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때, 김 생원의 뒤편에서 푸드덕하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김 생원의 눈이 길게 찢어졌다. 한 마리를 물고 쏜살같이 튀어나온 것은, 하얗고 풍성한 털을 가진 조카의 개였다.

“저, 저, 저놈의 개새끼가…!”

김 생원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달려나갔으나, 그의 허리는 그의 의지를 쫓기엔 너무나 노쇠했다. 주인어른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밥 굶는 것보다 두려워하던 걸노도 부리나케 쫓는다. 그러나 흰 개는 야속하게도 언덕을 튀어 올라 숲속으로 번개처럼 사라졌다.

“고놈의 개새끼가 또 사단을 내다니…!”

“헉, 헉, 아이고 어르신, 송구합니다요.”

돌아온 걸노는 연신 얼굴을 묻은 채 송구함을 표했으나, 김 생원은 개새끼도 걸노도 다 미웠다. 그 병아리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데, 차후에 소중한 달걀을 낳아줄 기특한 것들인데! 그놈은 벌써 세 마리나 절단을 내놓은 것이다. 말 안 듣는 금수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개새끼 간수를 잘 해두라고 신신당부를 해두었거늘, 이놈의 걸노 녀석은 어찌 이리도 무능할꼬. 매를 쳐야지, 암. 그런 생각을 하던 김 생원이 분노를 표하려던 순간,

“이보게, 무슨 일 있는가.”

때마침 새벽 명상을 끝내고 뒷산에서 내려오던 과거 동기 박 진사가 담벽 너머로 그의 호를 불렀다. 노년의 나이에도 선비의 기상이 서원을 다니던 시절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고 명성이 자자한 박 진사였다. 왜 하필이면 박 진사란 말인가. 김 생원의 속은 낭패로 가득 찼다. 자자한 명성만큼이나 소문내는 실력도 출중한 박 진사는 분명 또 그의 흉을 볼 것이다.

“아, 별일 아닐세. 별일 아니야. 걸노야. 됐다. 가서 조반이나 들여 놓으라 전하거라.”

“예? 예, 어르신.”

불길한 예감에 가득 차 몸을 떨던 걸노는 흰 개가 그랬던 것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개새끼 잡을 때나 저렇게 날래 보지’ 김 생원은 걸노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혀를 끌끌 찰뿐이었다.

의관을 정제한 그가 대문을 나선 것은 진시(7시~9시) 무렵이었다. 시큰시큰하는 무릎을 부여잡으며 정 참봉의 집에 도착했건만, 그는 한 시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정 참봉이 아침에 급하게 출타했다는 것이다. 오시(11시~13시)나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그는 사랑으로 김 생원을 들게 했다.


땅의 소유자를 구분하는 푯말을 세우고 있는 모습(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큰 결례를 보였습니다. 생원 어르신”

정 참봉의 얼굴이 보이기만 하면, 어른으로서 한마디 단단히 하려던 김 생원은 이내 꾹 참고 웃음을 보였다. 어떻게든 부로골의 논을 한 푼이라도 아껴서 사야만 했다.

“아닐세, 아닐세. 그럴 수 있지. 그래서 부로골의 논을 얼마에 팔겠는가?”

“음, 어르신. 송구합니다만, 무명 50필 정도는 주셔야겠습니다.”

무명 50필이라니, 너무 비쌌다. 덕노가 꿀을 판 돈이 무명 60필이 정도인데, 남은 10필로 한 해 살림을 꾸리기엔 너무나 적었다. 김 생원은 흥정을 시작했다.

“이보게, 50필은 너무 비싸네. 게다가 우리 집엔 무명 100필이 있지도 않아. 대신에 소 두 마리에, 새로 지은 옷 2벌, 그리고 무명 20여 필은 어떤가?”

“어르신.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무명 20필은 너무 적습니다. 그 조건에 무명 30필은 어떻습니까?”

“엣헴, 무명 20필일세”

“30필은 어떠신지요.”

“20필!”

“에잇, 알겠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무명 20필을 승낙한다는 말에 김 생원의 표정에 미소가 들 뻔했지만, 아직은 기뻐할 수 없었다. 내일, 가쾌의 공증 아래 잔금처리와 계약서 작성을 마무리하기로 약속하고 정 참봉의 집을 나온 김 생원은,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미소를 띄웠다.

부로골의 논은 김 생원이 십수 년 전부터 노렸던 곳이었다. 토질도 좋고 수확량도 많아 황금 들녘을 볼 때마다 속으로 군침을 흘렸다. 그런 땅들은 사두면, 땅값이 필시 오르면 올랐지, 절대 내릴 일이 없는 곳이리라,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연이은 흉년에 종잣돈을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땅을 팔아야만 했던 김 생원이었다. 그런데 작년, 김 생원은 정 참봉의 큰아들이 과거 도전 10년째라 돈이 부족해졌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김 생원이 대뜸 양봉을 시작한 것도 물론 그즈음이다.

‘안 사람이 이제는 기뻐하겠지. 그동안 내 속도 모르고.’

마을 선비들의 흉과 안 사람의 구박, 벌들이 죽어 나가는 크고 작은 실수들을 겪으며 버틴 1년이었다. 드디어 오늘 밤, 걸노가 가져온 돈으로 땅값 판매 대금을 치르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이제는 마음 놓고 아들에게 가계를 넘겨줘도 될 만큼, 부로골의 논은 그야말로 든든한 자산이었다. 김 생원은 흐뭇한 마음을 다스리면서 다시 지팡이를 짚었다.


안동 충효당의 솟을대문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김 생원의 다음 행선지는 문중 회의였다. 김 생원이 종가의 솟을대문을 지나는 순간, 이미 마루에서 벌어진 열띤 토론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런 일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문중이 떡하니 있는데 관청에 먼저 고하다니요. 세상 사람들이 우리 문중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자기 식구도 제대로 못 챙기는 곳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문중의 법도를 세워야 합니다. ”

“그 말이 가하지만, 먹을 것이 얼마나 없었으면 그랬겠습니까.”

“그들의 사정을 참작해야만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서얼이라 하여 문중의 아량을 베풀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 생원이 문중의 회의 소집을 받은 것은 사흘 전이었다. 윗동네에 사는 문중의 서얼, 김성인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관아에 탄원서를 냈다는 소식이었다. 원래 이런 문제는 문중에 먼저 알려야 했으나, 김성인은 문중을 거치지 않고 관아로 바로 향했다. 관아에서는 이 문제를 문중에 알려왔고, 그 때문에 회의가 열린 것이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김 생원이 들어서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인사를 올렸다.

“대강의 사정은 다 읽어보았네. 그래서 처분은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김 생원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직은 결정을 못 내렸습니다. 이 자의 처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또 그의 굶주림은 어떻게 도와줄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 생각은 어떠신지요.”

김 생원은 눈을 감았다. ‘선비란 자고로 모은 것을 베푸는 인정을 우선해야 하는 법인데, 인정보다 법도를 우선하는 자들이 많구나.’ 잠시간의 침묵 후에 그는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논어(論語)』에서 이른 충서(忠恕)의 가르침을 잊었는가. 서얼이라 하여 법도를 모르는 자들이 아닐 걸세. 얼마나 사정이 절박했으면 그리했겠는가. 그들도 우리 문중의 자식들이니, 충서의 마음으로 대해야 하네.”

“그 말씀이 옳습니다, 어르신.”

“하여, 우리 문중 창고를 열어 그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럴 때 긴히 쓰자고 모아온 것이 아니던가. 김성인을 비롯해, 그동안 우리가 돌보지 않은 서얼들에게 곡식을 베푸는 게 좋겠네.”

늦은 밤, 녹초가 된 몸으로 김 생원은 사랑에 들었다. 지팡이를 짚는 몸으로 온종일 바깥일을 보았으니, 몸은 지칠만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부풀어있다. 오늘은 오랫동안 눈독 들이던 부로골의 논을 싸게 얻지 않았는가. 게다가 문중 회의에서도 선비의 도리를 행할 수 있었다. 병아리 한 마리가 또 죽기는 했다만, 이보다 더 뿌듯한 하루는 그의 평생을 돌이켜봐도 흔치 않았다. 선비 된 자가 약간의 이득을 취했다 하여 기뻐하는 것도 법도가 아닌 법, 그는 『중용』을 펴 읽었다. 그러나 가장의 책임을 현명하게 해냈다는 뿌듯함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윽고 기다려 마지않던 목소리가 그의 사랑문을 두드렸다.

“어르신, 덕노입니다. 함흥에서 이제 도착해 인사 올립니다.”

김 생원은 들뜬 마음을 숨기기 위해 짐짓 헛기침을 몇 차례 한 뒤, 문을 열어 내려보았다.

“그래. 고생했다. 눈보라를 뚫고 갔다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나.”

“아닙니다요, 어르신. 고생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덕노는 고개를 숙인 채 손사래를 치면서 김 생원의 치사를 마다했다. 그런데 가타부타 이어지는 말이 없었다. 어서 결과를 듣고 싶은 김 생원이 헛기침을 몇 차례 하자, 그제야 덕노는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어르신. 그게, 글쎄…….”

“무슨 일이냐?”

“저희가 애를 쓰긴 했습니다만, 함흥의 상단이 저희가 갖고 간 꿀을 제대로 측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글쎄, 그들이 쓰는 되가 우리 것보다 적었고, 게다가 시세도 서울보다 그리 좋지도 않았습니다. 하여 무명 60필이 아니라 37필만 쳐줬습니다. 그것도 저희가 ‘이대로 돌아가면 저희는 주인어른께 죽습니다요’라고 사정사정해서 받아낸 것입니다.”

“되를 작은 것으로 쓰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라지만, 시세가 서울과 별 차이 없다니. 내 분명 잘 아는 사람에게 들은 정보였다. 네 이놈! 네가 또 중간에서 장난질을 친 것 아니더냐?”

“아닙니다요. 참말로 아닙니다요. 여기, 문서를 받아왔습니다.”

덕노는 다급히 품 안에서 거래 문서를 꺼내, 두 손으로 김 생원에게 올렸다. 초조한 마음으로 김 생원은 문서를 읽었다. 걸노의 말이 맞았다. 서울과 함흥의 시세가 큰 차이가 없었다. 상단의 도장이 찍혀 있으므로 걸노가 장난질을 친 게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이로다. 37필은 받아냈지 않았는가.’

그랬다. 그가 20필로 깎지 않았더라면, 애써 얻었던 부로골의 논을 도로 내주어야만 했을 것이다. 김 생원은 애써 위안하며 마당으로 내려왔다.


무명천(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이번에 받아온 37필의 무명이 이것이냐.”

“예. 어르신”

김 생원은 실망을 달래면서, 봇짐을 직접 풀어 무명을 살펴보았다. 촛불에 의지해 무명을 살펴보던 그는 별안간 불호령을 뿜었다.

“아니, 무명 꼬락서니가 이게 무엇이야!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 하품 중에서 하품이 아니더냐!”

“어르신. 저희는 그저 상단에서 내주는 것을 받아지고 왔을 뿐입니다.”

또 매를 맞을까 벌벌 떠는 덕노의 말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이런 무명으로는 37필이 아니라, 그 반값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내가 당했구나’

그랬다. 그가 철석같이 믿었던, 정보를 건네준 ‘아는 사람’은 사실 함흥 상단 소속의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지금은 그런 세세한 정보는 몰랐지만, 자신이 속아 넘어갔다는 것만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약간의 이득에 눈이 멀어 엄동설한에 노비들을 고생시킨 결과가 이것이라니’

그날 밤, 사랑에 누운 김 생원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부로골의 논을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으면 살 수는 있겠지만, 남은 한 해 동안 식구들을 굶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두운 천정을 바라보며 그는 수없이, 이렇게, 되새겼다.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 이상하게 운수가 좋더라니…….’




집필자 소개

박영서
박영서
무능한데다가 게으르기까지 한, 무늬만 작가(aka 백수). 보통의 삶이 역사가 되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한국사, 문화재, 불교 분야 담당 필진으로 기사를 쓰고 있으며,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을 출간했다. 대학에서 불교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죄를 많이 지어 대학원에 끌려갈 예정이다. 여담. 「웹진 담談」을 발행하는 스토리테마파크의 팬을 자처하는 중.
“토지세 과다부과사건의 전말 - 담당 아전의 농간으로 드러나다”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7-03-13 ~ 1617-03-25
1617년 3월 13일, 김응희가 문단(文壇)으로 가서 그 편에 충의위 이절과 좌수 황열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김택룡에게 답장이 왔다. 김응희의 전세[田稅, 논밭의 세금 즉 토지세]를 결정할 때 경작한 수량을 지나치게 많게 하였는데, 이것은 서원[書員, 세금담당 아전] 김국(金國)이 농간을 부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황열과 김개일이 김택룡을 찾아 와서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5일 뒤 3월 18일, 김택룡은 별감 김개일에게 편지를 보내어, 세금담당 아전 김국이 시경[時耕, 진전이 아니라 현재 경작하고 있는 토지]의 수량을 지나치게 많이 책정한 것에 대해 그 사정을 물어봐달라고 했다.
3월 24일, 김택룡은 풍종을 영주 군내로 보내 별감 김개일에게 말을 전하도록 했다. 세금담당 아전인 김국을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3월 25일, 아침에 풍종이 영주 군내에서 와서 김택룡은 별감 김개일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편지에는 세금담당 아전 김국을 보내 전결[田結, 논밭의 조세]의 부풀린 수량을 조사하라고 시키겠다는 말이 있었다. 김택룡의 답세(畓稅)는 읍인(邑人)이 75복(卜) 7속(束), 명이(命伊)가 28속(束)을 속여서 숨기고 명산호(命山戶)에게 이송하였는데 지금 되돌려 보낸다고 하였다. 이것은 김응희와 호노[戶奴, 중요한 일을 도맡아 하는 노비]의 일인데,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으므로 김택룡은 매우 통탄스러워했다. 시기[時起, 현재 농사를 짓고 있는 논밭]도 역시 30여 복(卜)을 더 부풀려 기록해놓았으므로 모두 없애버리기로 하였다. 세금담당 아전 김국은 유숙하였다. 김택룡은 김응희와 상의해 처리하려 하였지만, 김응희가 김 참판 장례에 석회를 굽는 일 때문에 미움을 받아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세한 상의는 미룰 수밖에 없었다.

“지방 수령과 양반의 기싸움”

김광계, 매원일기,
1634-10-08 ~ 1634-11-23

1634년 김광계가 살던 예안 지역은 큰 사업을 앞두고 있었다. 토지의 비옥도와 면적을 조사하는 조선시대의 토지 조사, 양전(量田)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양전 결과에 따라 납부해야 하는 세금 액수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양전 사업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고 지방관과 거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쉬웠다.
양전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예안 현감 남연은 양전 실무를 담당할 사람으로 김광계의 친척 김확을 지명하려 했다. 김확은 김광계와 촌수는 멀어도 자주 왕래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기에 김광계와 친지들은 크게 걱정한다. 일단 양전 사업과 연관되면 농민 및 지주들과 현감 사이에 끼어 고생하며 비난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확은 양전도감 지명을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10월 들어 양전 사업이 실제 실시되는 과정에서 역시 토지 측량 문제로 양전도감 측과 지역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김확과 김광계의 형제들은 조정에서 내려 보낸 양전사와 직접 이 문제를 상의하려 시도했다. 특히 김광계의 동생 김광악은 양전 결과에 대해 불만이 컸는지 현감 남연에게 함부로 주사를 부리기까지 했다. 분노한 예안 현감 남연은 김광계의 동생이자 김광악의 형인 김광보를 양전도감으로 임명하고, 이어서 다음 달에는 김확을 좌수로 삼겠다는 임명서 까지 내려 보냈다. 현감은 예안 지역의 유력 가문 출신들을 활용해 양전으로 동요된 분위기를 통제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노비를 죽인 것은 재산을 줄인 것이니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조재호, 영영일기, 1752-03-17 ~

1752년 3월 17일, 진주(晉州)의 토호(土豪)인 하수륜(河壽崙)이 병인년(1746) 2월 17일 밤에 그의 계집종 만단(萬丹)의 남편인 유대은악(劉大隱岳)을 구타하여 그 자리에서 죽이고 시신의 목을 매달았다가 만단의 방 안에다 끌어다 두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러다가 유대은악의 형인 유봉안(劉奉安)의 고소장으로 인하여 전례에 따라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그러나 유대은악은 노비로서 주인이 식구를 줄이려 계획한 것이니 하수륜의 죄악은 전례에 따르면 살인(殺人)은 될 수 없고 독란(瀆亂)의 죄에 해당하였다.

“소작료가 걷히지 않는 논, 상황 조사를 시작하다”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7-09-27 ~ 1617-10-08

1617년 9월 27일, 김택룡이 종손(從孫)이를 농사짓는 논이 있는 마평(馬坪)에 보냈다. 또 그 곳에는 다른 사람이 농사짓는 전답 두 곳도 있는데 그 동안 대가는 커녕 요역과 부세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김택룡은 김응희에게 양전행심책(量田行尋冊)을 가지고 가서 살펴보라고 청했다. 아울러 별감 이여함에게 사표(四標)를 찾아 조사해보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양전[量田, 논밭을 측량]할 때 복만(卜萬)의 전답으로 측정되었던 것을 다른 사람이 경작하여 먹고 있었음을 알았다. 김택룡은 서서히 찾아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0월 4일, 김택룡은 아침에 풍종을 도촌에 보냈다. 마평(馬坪) 전답 두 곳을 권굉(權宏)의 노비 윤복(允卜)과 이성간(李成榦)의 노비 일년(一年), 그리고 김 서방이라고 칭하는 여러 사람이 갈아 먹은 지 오래 되었는데 세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서 부르게 한 것이다. 풍종이가 와서 고하길, 모두 모레 오겠다고 했다 하였다.
10월 8일, 아침에 김호학(金好學) · 윤복(允福)이 마평 전답 일로 왔기에, 상황을 깨우쳐 보내며 부세(賦稅)를 내라고 명령했다.

“매 그물을 쳤으나 허탕을 치다”

오희문, 쇄미록, 1598-10-08

1598년 10월 8일, 오희문은 아침 일찍부터 앞뜰에 있는 밭에서 수확한 팥을 두드렸다. 모두 1석 2두가 났는데, 이 중 2두는 언명의 집에 주었다. 언명이는 춘금이를 데리고 아침에 황촌으로 건너가서 둔전 곡식 두드리는 것을 손수 감독했다.
팥 타작을 마치자 오희문은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지난달 이맘때쯤 매 그물을 쳐 놓았는데 여태까지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그나마 최근에는 매가 잡혔는지 여부도 확인해 본지 오래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종 한 명을 데리고 매 그물을 친 곳에 가 보았다.
가서 확인해 보니, 매를 유인하기 위해 메어 놓은 닭 두 마리가 모두 죽어버렸다. 요 며칠 사이 일이 많아 가보지 못하였으니 아마 먹이를 먹지 못해 굶어 죽은 것이리라. 이 그물에다 미끼로 메어 놓은 닭이 모두 5마리였는데, 그 닭을 모두 잃고 한 마리 매도 잡지 못하였으니 억울하고 분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물을 치고 묶고 하는 수고까지 더하면 이 얼마나 허망스러운 것인가. 오희문은 화가 나서 사람들을 시켜 그물을 모두 걷어 오도록 하였다. 미끼로 쓴 닭이라도 잡았으면 5일 동안 어머니 밥상은 근사하게 차렸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더더욱 아까운 생각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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