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조선혼사추리극 - 연풍의 신부 2

박씨네 세 딸들

글 이외숙 / 삽화 이다



2화 박씨네 세 딸들

효문이 미인촌 소문을 듣고 경기에서 충청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들어선 그때였다. 미인촌의 한 처자가 산 중턱에 있는 열녀비에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다.
‘열녀연풍박씨지비… 정절 한 일이 뭐 그리 훌륭하다고…….’
처자는 더 큰 돌덩이를 던지려다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열녀비에 당돌하게 돌을 던진 여인은 채옥이었다. 막 스물세 살이 된 참이었다.
“어허… 고약하게 무슨 짓이오?”
채옥은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뒤돌아섰다.
‘동헌 사람들이잖아… 하필 여기서 만날 게 뭐람…….’
“어찌 열녀비에다 험악한 짓을 했소?”
‘현감이 새로 왔다더니 이 사람인가… 일이 복잡해지기 전에 얼른 정리해야겠어.’
채옥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실수입니다. 어찌 일부러 그리했겠습니까?”
“참하게 생겨서는 조심스럽지 못하게…….”
“아이구, 현감님이 이 처자를 몰라서 하는 말이구먼유. 얼굴만 말쑥허지 행동은 얼마나 과격하다구유.”
채옥은 현감 홍권탁 뒤에서 이기죽대는 이방 장영의 얼굴을 째려보았다.
‘뵈기 싫다 뵈기 싫다 했더니 정말 꼴 보기 싫은 짓만 골라 하는구나…….’
현감은 묘한 표정을 짓는 이방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처자인가?”
“아이구, 알다마다유. 저짝 미인촌에 사는디유, 지랑 아~주 인연이 깊지유.”
‘잘났다. 잘나셨어…….’
채옥은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현감은 목화밭을 향해 뛰어가는 채옥을 바라보았다.
“쯧쯧, 사내처럼 뛰어가는구만. 저 처자는 누구인가?”
“박씨 집안 막내딸이구먼유… 큰딸 허구 작은딸두 미모가 엄청났지유. 미인촌이라고 불리는 것두 저짝 집안 딸들 덕이구먼유. 근디 얼굴이 이쁘면 뭐혀유. 저리 행동이 방정맞으니께 스물을 한참이나 넘겼는디도 독수공방하고 있지유. 그나저나 길을 잘못 들어섰네유… 이짝 방향이 아니고 폭포 쪽으로 가야 하는디…….”
이방은 앞장서서 현감을 안내했다. 하인 두 명이 그 뒤를 따랐다.
현감 일행은 공정산 절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길이었다. 몇 달째 비가 내리지 않으니 백성들은 살기가 힘들었다. 영험하다는 곳을 찾아서 기우제를 열 번도 넘게 지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어서 비가 와야 할 텐데…….”
“걱정 마셔유. 현감님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디유. 하늘도 이제는 모른 척 안 할 거구먼유.”
현감은 마흔이 넘어 겨우 벼슬자리를 얻었다. 고향을 떠나 처자식까지 데려온 마당에 가뭄 때문에 벼슬을 잃을 수 없었다.

며칠 뒤 형방청 앞에서 이방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자꾸만 서성이고 있었다.
‘아이구, 아이구… 이눔의 주둥이 때문에 결국 사단이 나는구먼…….’
이방은 느티나무 앞에서 현감에게 했던 말 때문에 손가락 하나를 잘라야 할 처지에 놓였다.
‘비는 하늘이 내리는 것인디 워찌께… 제정신이 아니었나벼…….’
새로 온 현감에게 잘 보이려다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이틀 안에 비가 올 거라며 손가락 하나를 걸고 장담했던 것이다. 기우제를 지내러 산에 올랐던 게 엿새, 오늘이 열여드레, 아직 하늘은 비를 내리지 않고 있었다.
마침 하인에게서 현감이 찾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방은 현감이 자신에게 죄를 물을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보게, 내가 찾는다는 얘기 못 들었는가?”
현감은 동헌에서 이방을 기다리다가 깜깜무소식이자 형방청까지 직접 나선 참이었다. 이방은 갑자기 튀어나온 현감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슈. 지가 뭘 안다고 비가 온다 안 온다…….”
“됐으니까 어이 나를 따르게.”
현감은 이방을 데리고 동헌 깊숙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네도 알다시피 기우제를 지내도 비소식이 없으니 큰일 아닌가…….”
“참말로 할 말이 없구먼유.”
“내 다른 방법을 찾았으니 서둘러 진행해주게나.”
“그라믄 지 손가락은 안 잘라도 되는 거쥬? 어떤 방법인디유?”
“옛말에 노처녀는 재앙을 부른다고 했지.”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겄는디…….”
“음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재앙의 원인이 되어 가뭄이 오고, 비난리도 나는 것일세. 하여 지난번 본 박씨네 막내딸 있지 않은가. 내 직접 나서서 그 처자를 시집보낼까 하네. 음양의 조화를 꾀하면 하늘이 감동할 것이고, 그럼 비도 내리지 않겠는가.”
“흉악스런 소문 때문에 혼처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을 텐디유……. 아니어유. 비가 온다믄야 뭘 못하겄슈.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다 지가 열심히 해 보겄구먼유.”
“지금 당장 신랑감을 찾아보도록 하게. 연풍뿐만 아니라 근처 문경, 상주 고을에도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게나.”
“예, 그리하겠어유.”

다음 날 아침, 이 사실을 꿈에도 알 리 없는 채옥은 한가하게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그곳에서 주막을 운영하는 어을할매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할매, 안에 있어?”
“우리 옥이 왔는가?”
채옥이 방문을 열자 어을할매는 산통에서 대나무 하나를 꺼내고 있었다.
“뭐 해?”
“아이구야… 금슬이 좋겄어. 떡두꺼비 겉은 아들을 여섯이나 낳겄구먼.”
“또 궁합 봐 주는 거야?”
“가뭄 때문에 막걸리 만들기가 힘드니께 어떡하겄어. 이거라도 해야 먹고살제.”
“할매가 사주며, 궁합이며,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 합격점까지 이 근방에서 제일이니까.”
“역시 옥이밖에 없구먼. 옴마, 이마에 상처는 또 언제 난겨. 조심 좀 하라니께… 고운 얼굴에 흉 생기면 어쩔려그려.”
채옥은 상처를 만지며 멋쩍게 웃었다.
“참 옥아, 니 나 몰래 시집가는겨?”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사정 잘 알면서…….”
“그려. 내가 니한테는 엄니고 할민데 너 혼인하는 걸 워찌께 모르겄어. 근디 이상한 말을 들었다니께.”
“뭐?”
“엊저녁에 연풍현 사람들이 왔었는디말여. 아, 그짝 사람들이 여기 단골이잖여. 너 신랑감 찾는다고 현감이 상주며 문경까지 사람을 보냈다잖여.”
“아닐 거야. 내 혼인을 내가 모르고 있는 게 말이 돼?”
“말이… 안 되지. 암만, 말이 안 되고말고. 벌써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하나벼. 아이구, 마음은 아직 이팔청춘인디…….”
채옥은 열녀비 앞에서 현감 일행을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이방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할매, 나 간다.”
“벌써? 말린 나물 맛나게 무쳤는디 밥이나 묵고 가여.”
“가 볼 데가 생겼어.”
어을할매는 급하게 뛰어가는 채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에효, 불쌍한 것…….”



채옥은 산길을 서둘러 내려가느라 숨이 찼다.
‘설마… 그럴 리가 없어.’
마음과는 다르게 밉살스럽게 웃던 이방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생각할수록 정말 악연이야…….’
채옥은 오늘따라 언니들이 보고 싶었다. 가난한 선비 집안에 시집온 채옥의 어머니는 채옥을 낳자마자 죽었다. 아버지는 첫째 채선과 둘째 채영 그리고 막내 채옥까지 홀로 키웠다. 채옥은 엄마 대신 살뜰하게 챙겨주는 언니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채옥의 아버지는 혹여 어머니 없이 자란 티가 날까 싶어서 딸들의 몸가짐에 신경을 많이 썼다. 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채옥은 언니들과 달랐다. 행실도를 읽을 때면 너무 따분했다. 책에 있는 여인들 이야기에 감동을 받기는커녕 바보 같다 여겼다.
큰언니와 작은언니의 혼례를 지켜보면서 채옥은 이제 혼인이라는 글자만 보아도 억하심정이 생겨버렸다. 그러나 채옥도 봄바람에 흔들리는 여인이었다.
‘연모한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가끔씩 마음이 간질간질거리고 풀어질 때면 언니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채옥은 이제 평생을 홀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왜 이리 불안하지…….’
채옥은 자꾸 조바심이 났다. 서둘러 동헌이 있는 아랫마을로 향했다. 우연인지, 우연을 가장한 운명인지, 열녀비 앞에서 더 큰 시련을 만나리란 걸 알지 못한 채 채옥은 발길을 재촉했다.


지난회 보기

작품소개

유교시대 싱글의 삶을 꿈꾸는 채옥과, 미인촌 소문을 파헤치려고 신분을 위장하여 채옥의 혼인을 진행하려는 효문이 만나 벌어지는 <조선혼사추리극>

등장인물

  • 박채옥 미인촌 박씨 집안 막내딸로 자매 가운데 가장 미모가 뛰어나다. 머리보다 행동이 앞서는 탓에 걷는 것보다는 뛰는 게 일상이다. 치마는 흙투성이, 얼굴에 상처 하나쯤은 장식으로 여긴다. 어릴 적부터 행실도 읽는 일을 제일 싫어했으며, 마을 어귀에 세워진 열녀비에다 아무렇지 않게 돌을 던진다.
  • 김효문 한양 명문가의 아들이나 서출의 신분. 규장각 각신으로 검서관 자리에 있다가 충청 지역에 가뭄이 들자 위유사(천재지변이나 병란이 났을 때 지방의 사정을 살피고,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 관리) 로 임명받는다. 채옥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육촌 오라버니 행세를 하면서 미인촌 소문을 파헤친다.
  • 어을할매 고갯길에서 주막을 운영하는 노과부. 할매의 나이와 과거는 아무도 모른다. 궁녀 출신이다, 수십 년 전 남편에게 소박맞았다 등 갖가지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남자들에게는 팜므파탈, 채옥에게 친할머니 같은 존재.
  • 박채선과 박채영 미인촌 박씨 집안의 큰딸과 둘째 딸.
  • 박광헌 채선, 채영, 채옥의 아버지.
  • 홍권탁 연풍 현감.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지 않고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하다.
  • 장영 연풍현 이방. 형방청에서 하는 일이라곤 새로 온 현감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고민하는 것이다. 아들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아들 바보(?).
  • 장병수 연풍현 이방의 아들. 혼인날 일어난 사건 때문에 박씨 집안을 저주한다.
  • 이경박 문경 현감의 둘째 아들로 채옥의 중매남이다. 한마디로 계집 팔아 명당 살 놈.
  • 소진 미인촌에 사는 여자아이. 효문을 좋아한다.
  • 그 외 어정개 주막의 주모와 선비들, 연풍현 하인 돌쇠, 오작인, 노비 막동이 등.

작가의 말

‘연풍의 신부’는 지난해 ‘스토리 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스토리 테마파크의 자료들 가운데 선인 박재현이 쓴 서정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서정일기를 보면 “연풍(延豐)의 미인촌(美人村)은 미인이 많은 곳이지만, 혼인하는 날 모두 죽게 되는 괴이한 전설이 있었고⋯⋯.”라는 내용이 나오지요.
전설이란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일기를 보자마자 미인촌 전설에 숨은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그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유학 군주’라 불렸던 정조의 시대를 배경으로 일기에 미처 담지 못한 미인촌 전설의 시작을 스토리로 만들었어요. 조선 시대 싱글의 삶을 꿈꾸는 처자 박채옥과 미인촌 소문을 파헤치는 위유사 김효문의 만남을 통해 조선 시대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려고 했습니다.

작가소개

이외숙
이외숙
전방위 작가가 되고 싶어서 하루하루 고군분투합니다. 지름길보다는 에움길을 가는 마음가짐으로 이 길을 가려 합니다.
이다 (박은희)
이다 (박은희)
순정만화가. 2003년 만화계 데뷔.
드라마 원작 만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 차기작 ‘향’ 작품 준비 중.
작품으로는 ‘why not?’, ‘포도밭 그 사나이’ 등이 있다.
“세곡선이 난파되면 뒷감당은 모두 불쌍한 백성들의 몫이다”

조재호, 영영일기(嶺營日記),
1751-07-10
1751년 7월 10일, 쌀과 콩을 합하여 1872섬 13말 6되 3홉 8작을 실은 배가 김해(金海) 명지도(明旨島) 아래 웅천(熊川) 정거리 위에 도착했을 때 풍랑을 만나 난파되었다. 두 고을에서 건져 올린 것이 쌀이 1101섬, 콩이 45섬이고 건져 올리지 못한 것은 쌀이 419섬 1말 4되 4홉 2작이고 콩이 307섬 2말 1되 9홉 6작이니 사분의 일의 손실을 본 것이다. 조재호는 법령에 따라 하룻길 거리에 있는 밀양부(密陽府) 백성들에게 건져 올린 건열미(乾劣米)를 개색(改色)하도록 하였으며, 가을에 다시 받자[捧上]하라 하고 건져 올리지 못한 쌀의 수량만큼은 기간을 정하셔서 거두어 올릴 것이며, 건열미와 아울러 같은 시기에 상납하도록 하겠음을 장계로 써서 올렸다.

“난파된 세곡선의 일로 세금을 징수하려는 것에 대해 법을 근거로 선처를 요청하다”

조재호, 영영일기(嶺營日記),
1751-09-30 ~
1751년 9월 30일, 호조(戶曹)에서 관문이 내려왔는데 그 내용인 즉, 병인년(1746)에 감관(監官) 신윤보(辛胤寶)와 색리(色吏) 김윤택(金允澤) 등이 납부할 것이 각각 쌀 34섬 8되 3홉과 콩 16섬 10말 9되라는 것이었다.

이에 조사하고 심문해 보니 감관 신윤보는 작년 3월에 전염병으로 온 집안이 몰사하였고, 색리 김윤택은 정묘년(1747) 5월에 대동미 실은 배에 탔다가 8월 22일에 남양(南陽) 경내의 창도(倉島) 앞바다에 이르러 배가 난파되어 사공과 격군 3명이 물에 빠져 죽었고 감관과 색리 및 격군 8명은 요행이 살아났으나 침몰한 곡물은 끝내 1섬도 건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경우였다.

“잠수부를 많이 동원하여 시신을 건지도록 하였다”

조재호, 영영일기(嶺營日記),
1752-02-18 ~
1752년 2월 18일, 창원부 병선의 사공과 격군으로서 북관에 운반해갈 곡식으로 진주(晉州)의 곡식을 받아서 싣고 색리, 사공, 격군 모두 15명이 같이 배를 타고 출발하였다가 풍랑을 맞아 난파되어 곡물은 모두 물에 빠지고 8명은 죽고, 7명은 살아남게 되었다. 죽은 사람은 진주 색리 김순은(金舜殷) 나이 25세, 사공 물선군(物膳軍) 임악(林岳) 나이 42세, 격군 양인 유선(劉先) 나이 58세, 금위군(禁衛軍) 정정의(鄭正儀) 나이 43세, 사노(寺奴) 시돌이(時乭伊) 나이 43세, 칠장보(漆匠保) 김석제(金石諸) 나이 18세, 봉군(烽軍) 박선학(朴善鶴) 나이 32세, 봉군(烽軍) 장귀발(張貴發) 나이 25세 등 8명인데, 그 가운데 사노인 시돌이의 시신이 떠서 나왔기에 나룻가에 임시로 매장하였고 나머지 7명의 시신은 끝내 건져내지 못했기에 잠수부를 많이 동원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수색하고 건지도록 지시를 내린다.

“조선시대의 소방관, 도처의 화재에 대응하다”

서찬규, 임재일기(林齋日記),
1847-01-16 ~ 1858-02-09
1847년 1월 16일, 서찬규는 영천 은해사에 불이 났다는 것을 들었다.
1853년 12월 4일, 밤에 순영(巡營, 감영)의 방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1858년 2월 9일, 정군백의 편지에 답장을 썼다. 요즘 도처에서 화재가 많으니 괴이하다.

“임금의 능에서 발생한 화재, 왕릉을 지키던 자 모조리 잡혀가다”

김종, 임진일록(壬辰日錄),
1592-03-24
1592년 3월 24일 저녁, 명종(明宗)의 능인 강릉(康陵)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화재는 강릉을 감싸는 담장 안에서 발생하였는데, 왕릉에 입힌 무덤의 떼까지 태웠다. 다음날(3월 25일) 강릉을 지키고 있던 참봉(參奉) 이귀(李貴)가 궁으로 들어와 지난밤 화재를 아뢰었다. 선조(宣祖)와 조정에서는 이를 불미스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또 행여 왕실에 거역하는 무리가 있을까 하여 우선 왕릉을 지키고 있었던 사람들부터 잡아들였다. 이귀는 물론이고 능을 지키고 있던 수호군(守護軍)인 경국(敬國)과 그의 아비 홍순(洪順)을 모두 붙잡아 가두었다. 그리고는 선조는 조정의 당상관(堂上官)들과 예조의 당상관, 해당 관사의 제조(提調), 승지(承旨) 이정형(李廷馨)과 내관(內官)들을 파견하여 곧장 강릉으로 가서 왕릉을 살피도록 하였다.

“안동 태사묘만 화재를 면하다”

권상일, 청대일기(淸臺日記),
1721-03-23
1721년 3월 23일, 권상일이 들은 이야기였다. 안동에서 일주일 전 큰 바람이 일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문 밖에 어느 작은 집에서 불이 났는데 그로 인하여 불이 성 벽을 넘어 성 안쪽으로 옮겨 붙었다고 한다. 성안으로 옮겨진 불은 삽시간에 400여 채를 모두 불태우고 관아도 피해를 입어 객사와 공수청 이외에는 모두 불타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태사묘(太師廟)만은 살아남았다고 한다.

닫기
닫기
관련목록
시기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장소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