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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본 역사이야기

인포데믹 시대의 공포

세계보건기구(WHO)는 얼마 전 ‘인포데믹(infodemic)’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신종코로나에 대한 괴담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인포데믹은 ‘Information(정보)과 Epidemic(전염병)’을 합성한 단어로 ‘정보전염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환자 발생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는 박쥐다.’
‘아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는 천산갑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발원지는 수산시장이다.’
‘아니다. 수산시장에서 가까운 실험실이 그 시작이다.’
‘야생동물을 먹는 모든 중국인이 악의 근원이다. 중국인 아웃!’
‘모든 아시아인은 바이러스를 옮긴다. Asians out!’

전염병 그 자체의 폐해도 적지 않은데, 가짜 정보에 의한 혐오와 공포의 폐해까지... 이중 삼중고로 고통받는 이즈음이다.

이 병이 알려지기 시작한 초기, 대구의 어떤 유튜버는, ‘코로나19(우리나라에서의 공식명칭)’ 확진자를 방역 당국이 쫓아가는 상황을 연출해 촬영한 뒤 시민들의 반응을 알아보는 영상을 찍어 올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진짜로 오해하는 일이 있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유튜버를 찾고 보니, 그가 하는 말,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나? 그러나 경각심보다 공포심을 조장하고 이를 희화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창원에서도 어느 보건소에 확진자가 나타났다는 가짜 뉴스가 퍼져 확인전화가 쇄도했다고 한다. 그 전화 받느라 막상 해야 할 시급한 일들을 하지 못했다는 보건소 직원의 인터뷰를 보니 씁쓸하기만 하다.

물론 모든 것이 가짜 뉴스는 아니다. 종종 윗분들은 공포심이 필요 이상으로 확산되는 걸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언론 통제를 하곤 하는데, 그것이 지나치면 은폐가 되고, 종종 더 큰 비극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번 코로나19가 처음 발견된 우한시의 대처를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징후를 알아챘던 의사를 시 당국에서 불러 처벌하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온 세계에 재앙을 불러왔을까 의문이다.

작년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은 로맨스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지만, 마냥 말랑말랑한 퓨전사극과는 좀 다르다. 역사 속에 존재할 수도 있었지만 존재하지 못했던 ‘여자 사관’을 주인공으로 한 것도 그렇고, 결말을 흔한 ‘결혼’으로 맺지 않은 것도 그렇다. 가장 트렌디한 감각과 시대정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역사 속의 많은 것을 담으려 노력한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인다.


MBC 드라마_신입사관 구해령_2019


이 드라마 중반엔 전염병과 거짓 뉴스, 그로 인한 비극의 이야기 또한 펼쳐진다.

평안도에 두창(천연두)가 창궐하자 임금은 왕실에서 사람을 보내 백성을 위무하려 한다. 물론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고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액션이다. 그러나 자신이 아끼는 세자를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형의 소생이자 눈엣 가시같은 도원대군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도원대군과 함께 가기로 한 사관 구해령이 바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도원대군은 두창을 앓은 적이 없지만, 구해령은 어렸을 때 두창을 앓았으므로, 다소 안전한 상태이다. 그들은 황해도 해주에 도착해 관찰사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병세가 한풀 꺾였으며, 조정에서 내린 구휼미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한껏 고무된다. 그러나 밤에 비밀리에 대군과 구해령을 찾아온 송화현 현감의 이야기는 관찰사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다. 현재 두창은 전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이는 건 물론, 두창이 발견된 마을은, 병에 걸린 사람이나 걸리지 않은 사람을 무조건 격리하고 폐쇄한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약재와 돌봄이 없어 죽고, 환자 아닌 이들도 곡식이 없어 굶어죽는다고 했다. 나라에서 내린 구휼미를 관찰사들이 모두 빼돌렸기 때문이다. (우한시의 상황과 어찌 이리도 비슷할 수가!)


MBC 드라마_신입사관 구해령_2019_장면


도원대군과 구해령은 위험을 무릅쓰고 두창이 창궐하는 지역을 찾아 참상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 그리고 돌아와 관찰사들을 추궁하는데, 처음엔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던 황해도 관찰사가 드디어 실토를 한다.

“제가 거짓으로 장계를 올렸습니다. 허나 백성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습니다.”
“주상전하께 거짓을 고해놓고 어찌 백성을 변명으로 삼으십니까?”
“변명이요? 평안도에서 역병이 창궐하고 달포동안 병으로 죽은 사람들보다 약탈, 방화, 도적질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갑절은 더 많았습니다. 만약에 제가 이곳의 실정을 그대로 고했더라면, 해서 도성에 역병이 다가온다 라는 소식이 퍼졌더라면 한양이 어찌 되었겠습니까. 그곳에 살고 있는 20만의 백성들은 또 어찌 되었겠습니까. 수백을 죽이면 수천을 살릴 수 있습니다. 소신은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고 말하던 황해도 관찰사의 변이다.

결국 도원대군은 우두종법을 통해 몸소 두창 예방접종을 받고,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자신의 회복을 통해 안정성을 증명해 보인다. 사실 여주인공인 구해령 역시 어릴 적에 두창 예방접종을 받았었다. 구해령의 아버지는 ‘서래원’이라는 신식 교육기관에서 의술을 행하던 의원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천주학 선교사로부터 의술을 전수받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서래원을 후원했던 이가 바로 도원대군의 아버지 이겸이었다. 현재의 왕은 이겸을 몰아내고 좌의정 세력과 함께 반정을 통해 왕이 되었던 것.

그런데 반정세력이 이겸을 몰아낸 이유가 바로 근거 없는 공포심과 가짜 뉴스 때문이었다. 서양문물과 새로운 사조가 밀려오면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릴 것을 염려한 사대부들이 ‘조선의 임금이 서양 오랑캐들에게 홀려, 조선을 통째로 뒤집으려 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명분을 획득하고 반정을 일으켰던 것이다.

거짓소문과 공포엔 반드시 피해자와 함께 수혜자가 존재한다. 서래원을 모략함으로써 왕이 된 세력도 그렇지만, 구해령과 도원대군이 송화현으로 가던 길에서 만난 두 명의 상인도 수혜자다. 그들은 폐쇄된 송화현을 오가느라 위험한 절벽을 오르내리며 목숨을 걸고 있었다.

“헌데 그리 위험한 곳을 어찌 다니는 거요?”
“뭐 우리라고 가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니고, 우리가 장사치긴 해도, 사람들이 굶어죽는다는데 두고 볼 순 없지 않소.”
“그래서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주고 오는 것이오?”
“생각은 그랬습죠. 좁쌀이며 보리며 챙겨가지고 가서 평소보다 살짝만 더 받고 팔아보자 그랬는데 들어가니까 서로 자기한테 팔아달라고 울고불고 빌고, 그러다 보니 가격은 두배 세배 열배.. 내가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졸지에 돈을 왕창 벌었지 뭐요, 그것도 일년 치를 단 사흘 만에.”

희희낙락하던 상인의 모습이 매우 익숙하지 않은가!

MBC 드라마_신입사관 구해령_2019_장면


작년 6월, 북한이 돼지열병 발병 사실을 공표했을 때, 북한과 지척의 거리에 있는 우리의 많은 돼지농가에선 제발 병이 남으로 내려오지 않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테마주를 찍어주고 정보를 나누는 주식투자자들 대화방에선 이런 대화들이 오갔다. (이후 대화는 19.11.13 한겨레신문 기사 인용)

“북한 전역 감염 발표 속보. 남한에 하나 나오면 바로 점상(상한가로 시작한 주가 차트가 일자로 점을 찍으며 상한가로 마감).”
“북한 전역 퍼지는 데 며칠 안 걸렸습니다. 남한도 준비는 해야 할 듯. 나오면 바로 급등해서 개미는 잡을 수가 없어요.”
9월17일 오전 8시32분 “아프리카돼지열병 국내 첫 발병 1보.”
“관련주 급등 축하합니다. 오늘도 잘 골라서 크게 드세요.”
“수익 축하드립니다.”
“님도 빅수익 축축축.”

탐사기획_돼지열병 비극과 테마주_한겨레신문_2019-11-13


물론 주변의 모든 사건 사고가 주식시세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분석해 투자하는 것이 주식투자의 기본이긴 하다. 하지만 까놓고 말해 ‘양돈논가의 눈물’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이상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으며, 누군가의 공포가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는 서글픈 부조화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전엔 민망해서 쉬쉬하기라도 했던 것들이 합법적 경제활동이란 이름 아래 매우 떳떳하고 당당하게 전시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씁쓸할 뿐.

이 원고를 쓰는 도중, 대구 등지에서 무더기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두려운 건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박수를 치고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또 누군가는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매점매석해 부자가 되는 꿈에 부풀어 있겠지.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호재다 싶어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바이러스는 점점 확산돼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고, 공포 또한 팽배해질지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모으고, 행동을 조심하는 것. 바른 정보를 공유하고 예방하는 것, 박수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잠시 누르고 걱정해주는 것, 언론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사회를 비추는 태도가 절실하다.

코로나19와 다른 모든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빠른 회복을 기도하며.




집필자 소개

홍윤정
홍윤정
1999년에 KBS 시트콤 작가로 데뷔, 드라마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은 영화 <수상한 그녀>, <반창꼬>, <블랙가스펠>, <최강로맨스> 등이며, <수상한 그녀>로 춘사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전염병으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와 넋을 잃은 아들”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6-07-17 ~ 1616-07-21

1616년 7월 17일, 저녁때였다. 정희생(鄭喜生)이 발광하여 김택룡의 집으로 뛰어들어 난동을 부렸다. 온 집안이 놀라고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택룡은 정희생을 겨우 달래서 돌려보냈다. 택룡이 듣자하니, 그의 집안에 전염병이 크게 발생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하고 상대를 해주지 않아 이런 뜻밖의 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했다. 택룡은 너무 놀라 어찌 할지 고민했다. 상황이 진정되자 아들 각 등은 모두 사랑에서 머무르고 나머지는 모두 안으로 들어왔다. 다음 날 7월 18일, 정희생이 또 택룡의 집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바깥에만 있다가 들어오지 않고 바로 돌아갔다. 밤에 정희생의 어머니가 밤나무에서 목을 매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택룡은 너무 참혹스럽다고 생각했다.
7월 19일, 택룡은 아침에 정희생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놀라고 슬퍼했다. 그래서 심씨 일가의 여러 사람들을 역정(櫟亭)으로 불러 모이도록 한 후, 정희생의 모친상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의논했다. 모두들 말하길, “정희생이 지난번처럼 크게 광란하면 범접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모두 힘을 합해 그의 손을 등 뒤로 단단히 묶어 두고 나서야 일을 치를 수 있을 듯한데요.”라고 했다. 택룡의 아재 심인이 택룡을 찾아와 정희생의 어머니를 어떻게 염습(殮襲)할 지에 대해 의논하고 갔다. 다음 날 20일에 심운해 등이 정희생을 묶어 결박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누가 와서 택룡에게 전하길, 정희생은 묶어 두었더니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아 그 사이에 정희생의 어머니를 입관하고 염했다고 하였다.

“문안 인사마저 두렵게 만드는 전염병”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7-04-27 ~ 1617-05-03

1617년 4월 27일, 김택룡은 구찬숙 일가가 전염병을 피하여 와운서재에 와서 묵은 지 이미 수삼일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문안을 보내려 했는데, 다시 생각하기를 ‘병가(病家)에서 나온 사람들이라 접촉하기가 어려우니 그만두어야겠다. 이 병은 부포에서 크게 번진다고 하는데... 몹시 두렵구나!’
라고 하였다.
6일 뒤 5월 3일, 김택룡의 아들들인 김숙과 김각 형제가 와운서재에 가서 구찬숙의 아내를 만났다. 병을 피해 와서 임시로 거처하기 때문에 이제야 비로소 가서 만난 것이었다.

“전염병을 피해 도망 다니다”

장흥효, 경당일기, 1618-02-25 ~

1618년 2월 25일, 평소 잘 찾아오지 않던 이즙이 장흥효를 찾아왔다. 그는 다른 일이 있어 그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지나는 길에 들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장흥효를 그가 왜 이곳에 왔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온 것은 다음 아닌 전염병 때문이었다.
장흥효가 살던 당시에는 전염병이 너무 흔했다. 그가 살던 일생 동안에도 그가 사는 마을에 수차례 전염병이 마을을 휩쓸기도 했다. 어쩌면 당시의 삶 자체가 전염병과 더불어 살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일 지도 몰랐다.
이즙이 살고 있던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다. 당시 전염병이 마을에 돌기 시작하면 별다른 대체 방법은 없었다. 도망 다니는 것이었다. 백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후기에는 전염병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너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병도 당시에는 너무 무서운 질병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병이 발생했다는 말을 들으면 무조건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즙도 마을에 병이 돌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집을 나와서 다른 마을로 피신하는 도중에 장흥효의 집에 들르게 되었다. 그는 장흥효에게 하직인사를 드렸다. 도망 다니다 보면 언제 다시 찾아뵐지 몰랐기 때문이다. 짧게는 한 달이면 돌아올 수도 있지만 길어지면 수개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역이 사람을 가리지 않다”

권상일, 청대일기,
1720-03-03 ~ 1720-03-07

1720년 3월에 홍역(紅疫)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번 발생한 홍역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보통 소아에서 발생하여 20세까지 생존자의 거의 90%가 이 병에 걸리는데 일생 동안 걸리지 않는 자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홍역은 한번 발생하면 전염성이 아주 강한 질병이었다. 그러다 보니 성역이 없었다.
세자에게서 발열 증세가 나타났다. 발열 증상이 다소 오락가락 하기도 했다. 홍역이었다. 홍역은 처음에 열이 나기 시작하여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는데 세자의 경우에는 얼굴과 등 가슴에 물집이 났고 후에는 팔과 다리에도 나타났는데 열이 떨어진 뒤에는 물집이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한다.
몇일 뒤 세자의 홍역은 거의 다 사라지고 점차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고향에서 전해졌다. 우리 집은 편안했고 권상일의 아들인 만도 홍역을 순조롭게 잘 치렀는데 사촌인 천응이 7일 동안 크게 앓고도 아직 반점이 나타나지 않아 매우 걱정스럽다는 소식이었다. 세자든 일반 백성이든 모두 홍역을 잘 치루었지만 유독 사촌인 천응만 그러지 못했으니 속상할 만했다.

“흉년과 전염병으로 인해 군사훈련을 연기할 것을 요청하다”

조재호, 영영일기, 1752-02-10 ~

1752년 2월 10일, 통제사와 좌우병사(左右兵便)가 올봄 수군과 육군의 훈련은 전례대로 거행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조재호 경상감사는 계속되는 흉년과 전염병으로 군사훈련을 연기할 것을 청하는 장계를 올린다.
지난해에 보리 흉년이 매우 심했고 가을보리 역시 한발로 말라죽어서 전혀 싹트지 못한 까닭에 곤궁한 백성이 바라는 것은 봄보리를 때맞춰 다시 파종하는 것이니 그 시기를 놓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또한 전염병이 근래에 또 더욱 퍼져서 사망하는 참혹함과 전염병에 대한 근심이 고을마다 심각한데 이런 때에 수만 명의 군사가 섞여서 훈련하게 되면 전염병이 더 창궐하게 될까봐 걱정되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앓다가 겨우 소생된 부류들이 열흘 넘도록 바깥에서 잠을 자며 뒤섞여 처하다 전염되면 큰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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