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방송되었던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에서는, 30여 년 전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맞닿아 있던 골목이었습니다. 좁은 골목을 마주하고 집들이 들어선 탓에 이 집에서 하는 음식 냄새, 저 집에서 틀어 놓은 음악들이 집의 담을 넘어 골목에 가득 찹니다. 냄새와 소리만 담을 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집에서 만든 음식이, 이야기들이 담을 넘어 공유되었습니다. 1회에는 각자의 집에서 만든 음식을 나눠 먹기 위해 아이들이 분주하게 심부름을 다니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때 심부름에 지친 한 아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럴 거면 다 같이 먹어”
이 말은 홍윤정 작가님의 이번 달 글의 제목이자 내용이기도 합니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 끼니는 같이 하는 사람, 식구(食口).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집으로 한정하지 않고 골목으로 확대한다면 그들은 식구입니다. 식구의 다른 말은 가족입니다. 부모의 학대로, 방임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서, 홍작가님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던 당신의 육아 경험과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 그리고 이 드라마를 떠올리셨다고 합니다. 쌍문동 골목의 아이들은 같이 밥을 먹으면서 같이 놀고 같이 자랐고, 그 골목의 어른들은 이 아이들을 같이 보살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이 골목의 어른들 모두가 부모였고, 이 골목의 이웃들이 가족이었습니다. 이런 가족들이 그 아이들과 부모의 곁에 있었다면....이란 안타까운 가정을 해 보게 됩니다. 아마도 쌍문동 골목에 있었던 ‘같이’라는 가치가 절실하게 필요해서일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 골목은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섰고, 골목의 주민들은 그곳을 떠나 흩어졌습니다. 골목은 떠났어도 ‘같이’라는 가치를 공유한 그들은 가족으로 남았습니다. 쌍문동 골목의 풍경은 당시의 주거형태와 경제활동형태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1960년대 지방 인구의 서울 유입에 따른 서울 지역 택지개발의 결과입니다. 각지에서 서울의 그 골목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이웃이 되었고, ‘같이’ 살면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1988년 보다 더, 1960년 보다 더 옛날에는 어떠했을까요? 주거 형태와 경제 활동 형태가 달라지면, 공동체도 달라지고 그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가치관도 달라집니다. 이광우 선생님은 “조선의 모둠살이, 향약·계·두레 이야기”라는 글 속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던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성리학을 익힌 조선의 양반들은 성리학의 자치규약인 향약을 향촌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학문을 실천하고자 했고, 시행된 향약은 촌락의 자치 규범들을 대체하거나 촌락의 자치 조직에 성리학적 명분을 부여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촌락에는 구성원 상호 간의 이익을 도모하고 촌락공동체의 이익을 적극 대변하던 촌계라는 조직과 공동노동을 위한 ‘두레’라는 조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같이’ 살기 위해 ‘서로 돕는[상호부조(相互扶助)]’ 조직과 규약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동계와 동약은 양반 중심의 향촌 지배 질서 확립하던 조직이었지만, 상주 지역의 낙사계와 같이 조금 특별했던 공동체도 있었습니다. 송석현 선생님은 “존애원,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마음을 둔다”에서 낙사계와 낙사계가 운영했던 존애원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지역 상황과, 약이 부족해 비명에 죽는 백성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낙사계의 구성원들은 ‘존애원’이란 의료기관을 설립하였습니다. 존애원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은 그들의 심정을 남긴 글에서 ‘다른 사람과 나를 하나로 생각…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고 했고, 그 다른 사람을 ‘동포(同胞)’라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혈연적 의미가 내포된 동포라는 표현을 쓴 것에서 이들이 지역공동체를 확장된 가족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낙사계는 다른 지역의 동계와 비슷한 활동(강학, 경로연, 사교)도 했지만, 존애원을 통한 의료 활동으로, 그 공동체 본래의 목적을 넘어 주변 사회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공동체로 확장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공동체도 변하고 공동체를 조직하고 유지하는 가치관도 바뀌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같이 살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서로 돕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를 빛나게도 해 줍니다. 권숯돌 작가님은 “우리가 빛날 때”란 작품에서, ‘최홍원이 아내의 장례를 이웃의 도움으로 치룬 일’을 소개하며, 이들의 도움이 아내를 잃은 최홍원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슬픈 일을 서로 돕고 위로할 수 있다면 이미 가족이나 다름없을 것 같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 해도 서로에게 상처 줄 수 있듯이 가족 같은 모임이라 해도 구성원 서로에게 혹은 구성원 외의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으니, 김령의 『계암일록』에 있는 계모임 구성원과 비구성원 사이의 다툼이 그런 예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달의 편액으로 “경수당(慶壽堂)”을 소개합니다. 경수당(慶壽堂)은 박세순(朴世淳)의 당호인데, ‘경수(慶壽)’는 ‘집안에서 쌓은 업적이 선하면 경사가 자손에게 미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박세순은 임진왜란 중에 곤경에 처한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재물을 아끼지 않고 희사(喜捨)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인물입니다.
이달의 스토리이슈에는, 제6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착 콘텐츠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한국다람쥐팀의 보드게임 <난전일기: 명랑으로 가는 길>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 공개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한국다람쥐팀은 ‘보드게임으로 재밌는 한국사를 만듭니다.’라는 목표로 ‘보리밥게임즈’란 브랜드를 런칭하고, 이 보드게임의 펀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통해 역사 속의 인물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공유하고자 한다.’는 이들의 의미와 미션이 성취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달력 넘기면서 휴일과 함께 기념일들을 쭉 살펴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가족을 위해 챙겨야 할 날들이 있습니다. 근로자의 날, 스승의 날,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꼭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날들도 있습니다. 이번 달 만큼은 이런 기념일에 이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봐야 할 아이들과 어르신들, 이웃들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지갑도 마음도 두둑하게 챙겨두고 5월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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