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거북선이 있습니다. 이 동상은 1968년에 건립되었는데, 이순신 장군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으로 인해, 오래도록, 오래될수록 우리에겐 호국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에 관한 기록은 《난중일기(亂中日記)》를 비롯해서 당시의 기록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거북선의 승전 소식뿐만 아니라 그 외부 형태와 전투력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구조나 건조를 위한 치수 등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고 1795년(정조 19)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서야 관련 기록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전라좌수영 거북선’ 및 ‘통제영 거북선’의 그림과 함께 건조에 필요한 부분적인 치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종 때 간행된 이덕홍(李德弘)의 『간재집(艮齋集)』에서 거북선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덕홍이 1592년에 호종 중이던 ‘세자에게 올린 글[上王世子書]’에는 호남의 장수들이 건조한 귀갑선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이를 전쟁에 활용하자는 내용이 있고, 1593년 영천에서 ‘선조에게 올린 상소[上行在疏]’에는 귀갑선의 구조를 그린 그림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덕홍과 류성룡이 퇴계선생님의 제자였다는 인연을 고려하면 거북선을 두고 이덕홍-류성룡-이순신 이 세 사람이 정보와 생각 그리고 마음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보게 됩니다. 왕을 모시고 피난길에 떠난 재상, 전장을 누비는 장군, 전장을 수습하는 지방관이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거북선을 만들어 나라를 지켰고 기록으로 남겼다고 생각됩니다. 그 마음에서 왕과 조선 조정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허인욱 선생님은 〈무예를 익혀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글에서 임진왜란 중에 명의 무예와 일본의 검술을 익히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 조선의 노력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조선은 왜구를 막는데 효과적인 척계광의 『기효신서(紀效新書)를 받아들였고 낙상지(駱尙志)와 같은 명나라 장수들에게 가르침을 청했으며 무예훈련을 전담하는 훈련도감(訓鍊都監)을 만들었습니다. 적국인 일본의 총술과 검술, 무기까지도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항왜인들에게 군직을 주고 총과 검을 만들게 하고 검술과 총술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특히 “그들을 얕보거나 무시하지 말고 착실히 익히라”는 선조의 비망기에서 나라를 위해 자존심도 굽힌 선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익힌 무예들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공유하기 위해 각종 무예서들을 남기는 일도 계속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왜란 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권병훈 선생님은 〈등투구 유물로 보는 조선 말기 군사 복식 이야기〉란 글에서 조선 고종 때 열강의 침략을 대비하던 조선의 노력을 ‘등투구와 면제배갑’이란 유물을 통해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병사들이 군장을 스스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징병으로 인한 노동력 손실도 큰 데 군장까지 마련하려면 부담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습니다. 병사들의 군장 부족이나 부실은 그대로 군사력의 부족과 부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것은 나라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 고종 때 대원군은 외세 침략에 대비해 무기와 무구를 개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재정 상태가 매우 안 좋았던 조선 조정에서는 어느 것 하나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등투구와 면제배갑 또한 백성과 나라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무구로 개발된 것이었지만 결국 실전에서는 쓸모가 없었습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두 전투에서 조선의 병사들은 군사력 열세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투항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습니다.
성패를 떠나 나라를 지키기 위한 조선의 왕과 관리들의 노력은 계속되었고, 그런 관리가 되기 위해 백성들의 노력도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권숯돌 작가님은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에 있는 노상추(盧尙樞)의 무과도전기를 〈이달의 일기-김일병에게〉에 담아주셨습니다. 노상추는 이런저런 이유로 번번이 낙방을 거듭했지만 결국에는 등과하여 훌륭한 무관이 되었습니다. 이분도 류성룡이나 이순신, 이덕홍과 같이 나라라는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을 지키는 일을 사명으로 생각했던 분들 중에 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노상추일기』는 노상추의 일생뿐만 아니라 그가 무관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 무관이 되려던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이분께서 일기를 남겨주신 덕분에 몰랐을 뻔 한 조선시대 무관을 일기를 통해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름이나 기록을 남기지 못한 채 임진왜란의 전장에서, 신미양요와 병인양요의 전장에서, 그리고 수많은 전장에서 사라진 이들이 더 많다는 걸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홍윤정 작가님은 영화 속에서나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그들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6․25 전쟁터에서의 지게부대, 황산벌과 평양성에서의 거시기, 명랑 바다에서의 수군, 3․1 만세 현장에서의 여성들. 그들은 왕도, 재상도, 장군도, 지방관도, 무관도 아니지만 그들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들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라고 묻는다면 왕도, 재상도 그리고 거시기까지 모두 한 마음으로 이렇게 대꾸할 것 같습니다. “그럼 누가합니까?”(홍윤정 작가님 글 제목입니다.)
〈이번 달 편액〉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간재 이덕홍 선생과 선생을 모신 오계서원(迃溪書院)을 소개합니다.
〈스토리이슈〉에서는 제2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을 소개합니다. 제1회 공모전 수상작들의 내용과 제2회 공모전의 내용과 응모요령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 담길 기록들과 그 기록들 사이에 담길 목소리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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