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진사네 아들 오명하가 살 집을 짓게 되었다. 이미 장가는 든 지는 이미 여섯 해가 넘었다. 이제 나이가 서른이 넘었고 아이들도 벌써 다섯 살, 세 살로 누나와 남동생이 있었으니 처가에서 식구들을 데리고 나와 독립할 때가 되기도 했고, 당당히 출사하여 춘추관의 한림이기도 하니 가장으로 집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안동에서 터를 보러 유명한 풍수가 올라왔다. 안동에 있는 오 진사의 사촌이 특별히 행하를 넉넉히 주고 하인까지 딸려서 보내준 사람이었다.
허관이라는 이름의 풍수는 패철(佩鐵)을 쥐고 오 진사네 땅을 두루 살펴본 끝에 산자락 밑의 남향 터를 명당이라고 골라주었다.
패철(출처: 서울대학교박물관)
새집을 짓는다고는 하지만 집을 지을 목재를 갑자기 찾기란 어려운 일이고 큰 나무를 가져오려면 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예전에 폐가가 된 이웃집을 헐어서 쓸 만한 나무 기둥과 서까래, 대들보를 모두 옮기기로 했다
“그 폐가를 헐기로 했다고? 빈집이라면 그 달아난 이가네 집이나 윤가네 집도 있지 않던가?”
정생이 마뜩찮은 표정으로 접장에게 말했다. 접장이 퀭한 눈을 들어 정생을 보다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벌써 밤이 꽤 깊었는데 일을 시키고 있는 정생에 대한 원망이 살짝 비치는 것 같았다.
정생이 배 정승 댁에서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을 빌려왔는데 빨리 필사하고 돌려줘야 한다고 접장을 불렀던 것이다. 정생과 접장 둘이서 나눠서 필사를 하는 중이었는데, 달랑 등잔불 하나만 켜놓고 빽빽한 책을 필사하고 있으려니 접장은 눈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등잔(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그러게요. 그런데 허 풍수가 그 집 목재가 단단하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집에 사람이 안 산 지 벌써 오래되었는데도 나무들이 멀쩡하다니 그거 참 신기한 일이네. 설마 기둥이 꼼짝도 안 한다든가 하는 건 아니었겠지?”
“그럴 리가 있겠어요? 무슨 귀신 들린 것도 아니고.”
“귀신이라…자네, 그거 모르나? 그 집 별칭이 귀신 집이야.”
“네에? 귀신 집이요?”
“흠, 오래 된 일이라 자네는 모르는가 보군.”
접장은 원래 양주 출신이 아니라 옆 동네인 고양에서 컸다. 그러니 오래 된 마을 일은 모를 수도 있긴 했다.
“그러니까 나도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지. 그 집에는 다섯 식구가 살았었다고 해. 할머니와 아들 부부, 그리고 손자, 손녀.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갑자기 안 보이게 되었다지. 소문이 여러 가지였어. 시어머니가 미웠던 며느리가 우물에 밀어 넣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런 흉흉한 소문이 나니까 이웃들도 그 집에 가기를 꺼려했어. 시체가 들어있는 우물물로 밥 해먹고 싶은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으… 정말 할머니가 우물 속에 빠져 죽은 거예요?”
“들어봐. 할머니가 없어진 후로 그 집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리곤 했대. 색색거리는 숨소리 같기도 하고, 흑흑 숨죽여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용하다는 스님을 불러 반야심경 독경도 하고, 신통하다는 무당 불러다 해원 굿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대.”
무당의 굿(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어째 무시무시합니다.”
“뭘 해도 안 되자 아들은 별채를 짓기 시작했어. 그 집이 언덕 아래서 보면 별채는 안 보여. 본채 뒤편에 지은 거라서. 아들은 혼자 아름드리나무를 베어 와서 예쁜 별채를 지었지.”
“본채는 무서우니까 별채서 살려고 한 건가요?”
“그런 것 같아. 그런데 별채를 지은 걸 축하하러 간 사람들이 이상한 걸 알게 된 거야.”
긴장한 접장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뭔가요?”
“그 집 남매가 안 보이더라는 거지. 남매가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니까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다가 친척 집에 보냈다고 둘러댔다는 거야.”
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요. 친척 집에 보냈겠죠. 자기 자식들을 해코지 하진 않잖아요? 설마 친자식이 아니었나요?”
“당연히 친자식이었지. 그런데 그 후 며칠 동안 아무 기척이 없어서 사람들이 어느 날 그 집을 찾아가봤더니…”
“가봤더니요?”
정생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무도 없더래. 방금까지 사람이 살았던 것 같은 흔적만 남고 아무도 없었다는 거지. 그렇게 해서 폐가가 된 거야. 우리 어릴 때 개구쟁이 녀석 하나가 담력을 시험한다고 그 집에 가서 잔 적이 있었는데, 한밤중에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었지.”
“왜 그랬답니까?”
“밤중에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거야. 도망치는데 누군가 뒷덜미를 잡는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고 하지. 그 후론 그 집이 있는 길은 절대로 안 가게 되었다네.”
“그게 누군가요? 설마 훈장 어르신?”
“어허, 이 사람이. 공자 가라사대 괴력난신은 논하지 않는 거라고 했네. 난 그런 건 믿지 않아.”
정생이 정색을 하자 접장이 얼른 잘못했다고 사과를 올렸다.
“당연히 나는 아니고… 배 첨지였다는 말이 있긴 하지.”
“그거 정말 으스스한데요. 그런 집 목재를 가져다 써도 되는 걸까요?”
“글쎄, 유명하다는 풍수가 괜찮다고 했으니까 가져다 쓰는 거 아닐까?”
정생의 생각이 맞았다. 허 풍수는 귀신 집이라는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치면서 그건 그 집의 풍수가 잘못 된 탓일 뿐, 목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빨리 집을 허물어야 귀신이 머물 곳이 없어져 마을에도 복이 된다고 하니 모두들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풍수서(風水書)』(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그런데 집 주인은 따로 있었던 건데, 오 진사 나리라고 해서 막 허물어도 괜찮은 건가요?”
“괜찮고말고. 그 집 사람들이 없어진 다음에 오 진사네가 그 집 땅을 다 사들였지. 그 집안 친척들도 그 집이라면 고개를 흔들었으니까 아주 헐값에 사들인 걸로 아네.”
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였군요. 왜 사람 무섭게 그런 이야기를 하신 거예요?”
“글쎄. 귀신 집 이야기하니까 문득 생각이 난 것뿐일세. 사실 그 집은 환곡을 못 갚아서 야반도주 한 거라는 말도 있고 역병이 돌 때 아이들이 죽는 바람에 상심한 부부가 집을 버려둔 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난 거라는 이야기도 있긴 하네.”
“그건 또 그것대로 슬픈 이야기군요. 그런데 아이들이 죽었으면 마을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지 않나요?”
“역병이 돌면 집집이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다른 집 사정까지 일일이 알 순 없지. 아무튼 내가 어릴 때 그 집 한 번 둘러보고 오기 같은 담력 시험도 하곤 했어. 그럴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아이들이 있었고.”
“아유, 또 무서워지네요. 아무튼 이젠 그 집은 없습니다. 벌써 다 해체해버렸더라고요. 일손들이 참 빨라요.”
“아, 그래? 자네 손도 좀 빨랐으면 좋겠구만.”
“제 손이 빨라지려면 초를 하나 더 켜주시면 됩니다만…”
정생은 그 말은 못 들은 척 다른 말을 했다.
“다 해체했다는 건 나무 기둥감을 다 가져갔다는 이야기겠지?”
“네, 아까 해 질 녘에 오다가 봤는데, 언덕 위로 아무것도 안 남았더라고요.”
정생의 눈이 왠지 모르게 반짝였다.
“그렇군. 오늘 필사는 마치도록 하지. 자네 눈을 보니까 이제 옮겨 쓰다가 잘못 쓸 일만 남은 것 같아. 나머지는 내일 마저 하지.”
“네? 네.”
접장이 보기엔 내일 종일해도 필사를 마칠 수는 없을 것 같았지만, 당장 눈앞의 화를 모면할 수 있는데 굳이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었다. 접장은 얼른 정리를 마치고 정생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부리나케 내빼버렸다.
정생은 접장이 대문을 나서는 걸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등롱을 챙겨서 문간방에서 자는 마당쇠도 모르게 살그머니 집을 나섰다. 다행히 날이 맑아 달빛이 아주 어둡지는 않았다. 정생은 귀신 집, 아니 귀신 집터에 도착한 뒤에야 등롱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부시를 챙겨오는 걸 깜빡했다.
정생은 이마를 툭툭 치며 자책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필요도 없어진 등롱(燈籠)은 옆으로 밀쳐놓고 집터를 가로 질렀다. 정생은 별채 자리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섰다.
등롱(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그러니까 여기가 가운데면 저쪽일 텐데…”
정생이 귀퉁이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졌다. 조금 전까지 맑았던 날씨가 돌변해서 먹구름이 밀려들더니 달빛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아, 이것 참.”
그래도 그 전에 위치는 대충 확인했다. 정생은 별채 귀퉁이 자리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별채의 오른쪽 귀퉁이 주춧돌은 어느 절터의 석등 받침돌을 집어온 것인지, 연꽃잎 조각이 새겨진 아름다운 돌이었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돌 아래 숨겨놓은 보물이 있다는 말이 무성했다. 유리왕이 기둥 아래서 동명성왕의 보검을 찾은 것처럼 그 안에 뭔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정생이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믿은 건 아니었다. 주춧돌 아래 보물이 있다면 그 집 사람들이 그렇게 사라질 리가 없을 테니까. 정생은 그 주춧돌이 탐이 나서 몰래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분명 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의 절터에 있던 물건일 것이다.
집은 다 해체했으니 그 주춧돌을 챙겨간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래도 밝은 낮에 와서 가져갈 수는 없으니 한밤중에 몰래 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 어디 있을 텐데. 있어야 하는데…”
정생은 주춧돌이 있음직한 곳을 무릎걸음으로 옮겨가면서 손으로 더듬었다. 그러다 갑자기 허방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 안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사, 사람 살려!”
정생이 떨어진 구덩이는 그리 크진 않았다. 크지 않은 게 또 좋지도 않았던 것이 발목을 심하게 접질렀는데, 부러진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팠다. 정생은 몸 반절은 구덩이 밖에 있다는 걸 알고서야 간신히 그 안에서 빠져나왔다. 그때 발아래서 뭔가가 팍삭 소리를 내는 걸 들었다.
뭔가가 있기는 있는가 싶었다. 설마 전설의 보물인가 하는 생각도 같이 떠올랐다. 정생은 엎드려서 손을 집어넣어 구덩이 안에 있는 걸 꺼내 올렸다. 손가락에 간신히 걸려서 잡아 올렸는데, 가벼운 것이어서 보물일 리는 없는 것 같았다. 옛날 도자기 같은 것인지 뭔가 둥근 형태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이리저리 만져보는데 번쩍 벼락이 쳤다. 그 빛에 손에 들고 있는 게 뭔지 보였다. 정생은 비명을 지르며 그것을 내던지고 말았다. 해골바가지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해골조각상(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기절해 있던 정생은 다음날 그곳을 지나가던 접장이 귀신 나온다는 집터는 어찌 생겼나 궁금해서 올라온 바람에 다행히 발견되었다. 밤새 내린 비에 홀딱 젖어서 심하게 고뿔이 걸린 것 말고 다른 탈은 나지 않았지만 접장이 흔들어 깨웠을 때는 완전 혼이 나간 사람 같았다.
“기둥 아래 아이를 묻었어! 기둥 아래 아이를 묻었다고!”
고려 때 무신정권의 최충헌이 십자각이라는 별당을 지었는데, 이때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잡아다가 색동저고리를 입혀 네 모퉁이에 묻어 액운을 방지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필 정생이 『고려사』에서 필사를 하고 있던 부분이 바로 그 「최충헌 열전」이었다. 그러니 그가 기절초풍할 수밖에.
『고려사』, 「최충헌 열전」(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오 진사네 일꾼들은 집안 목재를 다 옮긴 뒤에, 정생이 노렸던 예쁜 주춧돌도 챙겨갔다. 집터를 살펴본 허 풍수도 그 주춧돌에 눈독을 들였었다. 때문에 허 풍수가 특별히 그 주춧돌을 가져오라고 명을 내려놨던 터였다. 일꾼들은 주춧돌 아래 구덩이가 있는 건 알았지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빈집이었으니 너구리나 여우가 굴을 팠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어차피 집도 허물고 남은 것도 없는데 구덩이가 있거나 말거나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 구덩이는 여우가 파놓았던 것이다. 여우는 그 근방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다가 사람들이 없어지자 얼른 들어와 집을 차지해버렸다. 여우는 본래 온갖 소리를 다 낼 줄 알아서 여우에 홀렸다는 말까지 있는 요물이다. 사람들이 귀신 소리라 여겼던 것은 여우가 낸 소리였다.
정생이 집어 들었다가 기겁을 하고 내던진 해골은 사람 해골이 아니라 여우 해골이었다. 수구초심이라고 하더니 자기 굴 안에서 죽었던 모양이었다.
“에추! 이 이야긴 절대 밖에 하지 말게.”
정생이 재채기를 하며 접장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접장이 약간 거드름을 피며 말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고뿔이 드셨으니 서당은 제게 맡기고 필사만 하면서 몸조리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고뿔 옮으면 안 되니까 서당에 있다가 돌아가겠습니다.”
“그, 그, 그…”
정생은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하고 손짓만 해서 접장을 내보냈다. 속이 쓰려도 이번에는 방법이 없었다. 정생은 이불을 뒤집어쓰며 투덜댔다.
“지난번에는 산 여우한테 희롱을 당하더니, 이번엔 죽은 여우한테 희롱을 당했구나. 풍수가 어쩌고 저째? 다 허풍이었… 에, 에취!”
정생의 기침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집 앞을 지나던 나그네까지 깜짝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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