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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호외요~ 호외!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제2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을 개최합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을 비롯한 국학진흥협의체의 다양한 기관들에서 생산되고 있는 새로운 창작 소재들을 소개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창작자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입니다. 전통 기록자료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을 통해 국학진흥을 담당하는 기관들과 새로운 창작모델을 찾는 창작자(또는 창작 지원 기관)와의 협업 모델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이번 웹진 담談에서는 참가자들의 노력을 통해 새로운 역사이야기가 만들어질 <제2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이하 ‘공모전’)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스텝 0. 작년 공모전의 수상작 소개



작년인 2020년에 한국국학진흥원은 창작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통문화 창작소재(기록자료)를 활용하여,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영화 시나리오 장르의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공모전을 개최하였습니다. 2020년의 수상작은 대상 1편, 최우상 1편, 우수상 2편이었습니다.


작년 수상작 소개 및 소감 바로가기  더보기


수운상차림(출처: 수운잡방사이트)


먼저, 대상부터 살펴볼까요? 대상을 받은 강선주작가의 <수운서생(需雲書生)>은 『수운잡방(需雲雜方)』을 소재로 하여, 안동 최고의 미식가 ‘김유’와 먹는 게 제일 싫은 조선의 왕 ‘인종’의 먹방 사극입니다.



<최우수상> 류우작가


류우작가의 <안동부 체납징수반>은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조선 인조대 안동부사로 부임한 이채수가 토착 향반에게서 밀린 세금을 받아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다뤘습니다.



<우수상> 박중래 작가


우수상을 받은 박중래작가의 <역보(逆譜)의 시대 : 조선제일 족보위조단>는 안동김씨의 족보를 위조해 종친으로 탈바꿈하여 벼슬살이를 한 인물과 그에 얽힌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만들었습니다.



<우수상> 조유진 작가


또 다른 우수상 수상자인 조유진작가의 <양아록(養兒錄)>는 사화(士禍)로 가문이 몰락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손자를 키우는 선비의 이야기입니다. 다들 흥미진진한 역사 소재의 영화 시나리오이죠? 이 수상작들 중에 3편의 작품은 영화사와 계약을 하였거나 계약을 하는 중입니다. 수상작들이 하루빨리 영화로 개봉되길 기대합니다. 그럼 이번 공모전은 어떻게 지원하면 되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스텝 1. 공모 내용



전통 소재(기록자료)를 활용한 영화 시나리오로, ‘사극’ 및 전통에 기반한 다양한 형식 및 내용으로 구성합니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고 단순히 시대만 특정 시기로 끌어 올린 형식의 ‘순수한 역사 판타지 분야’는 지양합니다. 사건 전개의 주요 시대 배경은 일제강점기까지로 제한합니다. 그리고 영화로 제작이 가능한 완성된 시나리오 작품을 제출해야 합니다.


제2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포스터



공모전의 접수기간은 2021년 10월 4일(월)에서 10월 13일(수) 16시까지입니다. 본 공모전은 전통 소재에 관심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개인 또는 팀 단위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지원자가 활용할 수 있는 대상 기록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의 기록자료를 바탕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제출해주세요.

1.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서비스하는 전통문화 기록 자료

    - 스토리테마파크  더보기
    - 전통과 기록  더보기
    - 유교넷  더보기

2. 국학진흥협의체에서 서비스하는 전통문화 기록 자료

    - 한국학호남진흥원  더보기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더보기

3. 그 외 국학 관련 기관에서 제공하는 전통 소재 활용 사이트


스텝 2. 심사 일정



심사위원은 역사전문가 및 영화 관련 종사자(시나리오 작가, 감독, PD, 제작사, 투자사, 관련 협회 종사자 등) 9명으로 구성됩니다. 심사는 참가신청서, 시나리오(요약 설명자료 포함)를 대상으로 심사 기준에 따라 진행하며, 심사위원의 전체 점수를 합산하여 순위 결정합니다. 심사 내용은 공개하지 않으며, 특히 실무 전문가 및 현장, 투자사 등의 의견을 반영하여 작품화 가능성이나 활용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진행합니다.

1차 예심과 2차 본심을 통해 최종 4편을 선발합니다. 예심은 10월 15일부터 25일까지 심사위원들의 개별심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본심은 10월 27일에서 29일까지 2박 3일간 심사위원 모두가 함께 합숙을 하며 진행됩니다. 예심과 본심에서는 제출된 시나리오의 보안을 위해서 복제가 불가능한 테블릿PC를 이용합니다. 지원자분들은 안심하고 지원하세요!


스텝 3. 시상식과 상금



시상은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입니다.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은 1편을 선정하며 상금 2,000만원을 지원합니다. 최우수상(한국국학진흥원장상)은 1편을 선정하며 상금 1.000만원을 지원합니다. 우수상은 2편(한국학호남진흥원장상, 충청남도역사문화원장상)을 선정하며 각 500만원을 지원합니다.


스텝 4. 접수 방법



공모전의 접수 방법은 중요하니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제2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의 모집 요강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공모전의 접수 방법은 아래 링크를 통해 지원서 양식을 다운로드 받아 ‘시나리오 양식’과 ‘지원신청서’를 작성한 다음 [스토리테마파크 홈페이지-전통 기록문화 활용 영화시나리오 공모전-온라인접수]란에 제출하면 됩니다. 접수기간은 10월 4일(월)부터 10월 13일(수) 16시까지이니 유의하세요.


전통 기록문화 활용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사이트 바로가기  더보기


(※ 일정은 다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심사 결과에 따라 수상작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집필자 : 임근실

“조선시대 군인들의 강무”


마상재(馬上才)는 달리는 말 위에서 사람이 행하는 갖가지 재주로, 농마(弄馬), 희마(戱馬), 마희(馬戱), 곡마(曲馬), 원기(猿騎), 무마(舞馬), 표기희(驃騎戱), 마기(馬技), 마기(馬伎), 입마기(立馬技), 마술(馬術) 또는 말광대, 말놀음 같이 다양한 용어로 불린다. 이들 용어 가운데 훈련된 말에게 여러 기예를 익히게 하는 무마(舞馬)를 제외하고, 그 나머지 용어는 기수가 달리는 말 위에서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여 재주를 부리는 기예를 뜻하는 말이다. 특히 마상재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붙여진 명칭으로 민간에서는 주로 마기(馬伎)라 불렀다. 하지만 마기가 아니라 희마(戱馬)가 옳다는 주장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미루어 희마가 옳은 표현으로 보인다.

“사족의 필수교양, 활”

금난수, 성재일기,
1592-11-20 ~ 1592-12-29

금난수와 그 벗들은 젊을 적부터 간간히 활을 쏘며 놀았다. 활쏘기는 사족들이 반드시 익혀야 할 교양 중 하나였다. 나라에서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도 향사례(鄕射禮)를 「군례(軍禮)」 의식으로 규정하여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여러 도, 주, 부, 군, 현에서 행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성종 때 까지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다가, 이후 향촌사회의 안정을 도모하는 정책이 논의되면서 향사례가 시행되었다. 활쏘기는 단순히 화살로 과녁을 맞히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뜻을 바로 하는 예의와 덕과 선을 권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그리하여 금난수를 비롯한 사족들은 젊을 때부터 활을 쏘는 데 익숙하였다. 비록 평소엔 붓보다 무거운 것은 들지 않는 백면서생이라 할지라도 모두 활은 쏠 줄 알았던 것이다. 금난수는 활쏘기를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는데, 11월 20일에는 이성여의 집으로 가서 활쏘기를 구경하였다. 활을 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아니었다. 젊은이들은 왜적에 대항하기 위해 의병으로 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향촌을 지키고 있는 것은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은 오랜만에 활을 들어 보았다. 모인 사람들은 금응훈, 이공숙, 박몽담 등 10여 명이었다.
활쏘기 구경만 하고 돌아왔던 금난수는 12월 29일에는 직접 아들들을 거느리고 집 뒤 정자에서 활쏘기를 익혔다. 오랜만에 활을 든 이유는 둘째 아들 금업이 두 손자 정일(貞一)과 일생(一生)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었다. 어린 손자들과 세 아들 앞에서 금난수는 노익장을 가감 없이 발휘하였다. 손자들은 과녁에 화살을 꽂아 넣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천진하게 박수를 쳤다..

“활 입문자에게 무과응시는 아직 먼 이야기”

노상추, 노상추일기,
1770-11-03 ~ 1770-11-11

무과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5월부터 활쏘기에 여념이 없었던 노상추는 슬슬 좋은 활을 가지고 싶었다. 마침 공성(功城)에 사는 궁인(弓人) 김룡(金龍)이 노상추가 활을 쏘러 다니는 고남(古南)에 왔다고 하기에 김룡을 만나러 갔다. 노상추는 김룡과 더불어 한동안 활 이야기며, 무과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노닥거렸다. 하지만 노상추는 지금 노닥거릴 때가 아니었다. 곧 과거시험이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왕이 한동안 병환에 시달리다가 얼마 전 병을 털고 일어났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정시(庭試)의 초시가 열흘 뒤인 11월 17일에 치러진다는 소식이 횡성(橫城)으로부터 전해졌다. 노상추와 함께 활을 쏘며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동접(同接)들이 모두 술렁였다. 신포(新浦)의 활터에서 언제 과거를 보러 출발할 예정이냐는 등, 지금부터 출발하면 도성에서는 어디에서 묵을 것이냐는 등 서로 대화를 나누는 동접들을 보면서 노상추는 자신도 과거시험을 보러 가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아직 무과를 위한 준비를 한 지가 반년밖에 안 된 터라 자신이 없었다. 노상추는 잠자코 활을 집어 들고 과녁을 향해 활을 쏘면서 상념에 빠졌다.

“활쏘기 시합에서 첨사에게 멋지게 복수하다”

박계숙, 부북일기,
1606-04-03 ~ 1606-04-04

1606년 4월 3일, 함경도 최북단 회령에도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박계숙(朴繼叔)이 이곳 보을하진에서 근무한지도 어언 4개월이 되었다. 부임 초 몸에 병도 들고, 습진에 참석하지 못해 곤장도 맞아 곤경에 처한 일도 있었지만 이제 이곳에서 생활도 제법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어제 3일에는 보을하진의 무사들과 박계숙(朴繼叔)처럼 남쪽에서 온 일당백장사들 사이에 큰 내기가 벌어졌다. 바로 활쏘기 시합을 하기로 한 것이다. 보을하진에서는 첨사 민열도가 주장이 되고, 남쪽 장사들 중에서는 박계숙(朴繼叔)이 주장이 되었다. 한 사람이 활 5순씩 쏘아 종일토록 쏘았다. 시합 결과 박계숙(朴繼叔)과 남래장사들이 14발을 더 맞추어 이겼다. 박계숙(朴繼叔)은 총 48발을 명중시켰고, 첨사는 46발을 명중시켰다. 항상 원칙을 내세워 부하들을 엄하게 다루는 첨사(僉使)이지만, 활쏘기에서 지고 나니 크게 멋쩍어 하였다.
어제의 패배가 분했던지 오늘 첨사가 다시 한번 활쏘기 시합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오늘도 역시 박계숙(朴繼叔)과 남래장사들이 11발을 더 맞추어 이겼다. 첨사가 3순씩만 더 쏘아 승부를 겨루자하여 하는 수 없이 3순씩을 더 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래도 남래장사편이 4발을 더 맞추어 이겼다. 첨사는 분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였다. 보을하진 소속 무사들 중에 토병군관인 서기충이란 자가 있는데, 두 번 시합에서 모두 꼴찌를 하였다. 가뜩이나 분한 마음이 들었던 첨사는 서기충에게 곤장 5대를 치도록 지시했다. 박계숙(朴繼叔)은 쌀 1석과 콩 1석을 상으로 받았다. 몇 달전 첨사에게 곤장을 맞고 분해했던 것을 멋지게 복수한 것 같아 박계숙(朴繼叔)은 마음이 뿌듯해졌다.

“김덕령의 군대 구성과 그의 복장”

정경운, 고대일록,
1594-02-07 ~ 1594-02-08

1594년 2월 7일, 김덕령(金德齡)은 함양에 이르렀다. 김덕령의 군대는 왼쪽에는 충용기(忠勇旗)를 세우고, 오른 쪽에는 익호기(翼虎旗)를 세웠으며, 또 삼군사명표(三軍司命標)를 세웠다.
군(軍)은 충용군(忠勇軍)이라 하고, 군관(軍官)은 부절사(赴節師)라 부르고, 대장 밑에 있는 군사인 아병(牙兵)은 첩평려(捷平旅)라고 불렀다. 군의 모습이 매우 엄숙했고, 호령이 엄정하고 분명하여 참으로 옛 양장(良將)의 풍모가 있었다.
2월 8일, 김덕령의 복장과 그의 풍모를 기록하였는데, 철립(鐵笠)을 쓰고 두 겹의 갑옷을 입었으며, 철혜(鐵鞋)를 신었고 철상(鐵裳)을 둘렀고, 칠척의 장검을 쥐었다고 한다. 또한 말에 뛰어올라 앞서 달리면서 스스로 진법(陣法)을 펼치고 몸소 지휘한 연후에, 산으로 올라가 명령을 내려 싸우고 달리고 격돌하는 것을 익히게 하니, 그 진법은 그가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김덕령의 사람됨은 매우 무게가 있으며, 완력이 뛰어나, 그의 날랜 용맹은 비할 데가 없어서 사람들이 한계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낮엔 흐리고 비가 내렸지만 저녁에는 날이 개고 달빛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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