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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이슈

〔제7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최종 8팀의 오리엔테이션 현장 스케치

〔제7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은
전국 44개 대학교 63개 팀이 지원을 했습니다.
각기 다른 소재와 장르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최종 8팀을 소개합니다.


(*최종 8팀의 소개 순서는 작품명의 가나다순입니다)


〔제7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의 오리엔테이션은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정신연수원’에서 진행했습니다. 그 현장 속으로 함께 가실까요?



첫째 날: 6월 25일 금요일



공모전 참가 학생들은 잠실종합운동장에 모여, 발열 체크를 하고 문진표를 작성한 후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정신연수원으로 출발했습니다.



〔환영인사〕


한국국학진흥원 김동룡 부원장님의 환영인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습니다.


〔기관 답사〕


콘텐츠개발팀 이상호 선생님과 기록유산센터 김형수 선생님이 인솔해 주셨습니다. 학생들은 질문도 하고 메모도 하며 ‘장판각’, ‘세계기록유산 전시체험관’, ‘유교문화박물관‘을 관람했습니다. 기관 답사는 역사멘토님을 통한 전문적인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어 더 좋았습니다.


〔공모전 소개〕


콘텐츠개발팀 임근실 선생님이 공모전 교육 일정, 홍보채널, 전년도 공모전 등 공모전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아이스브레이킹〕


하원준 피칭 멘토님이 진행한 아이스브레이킹은 공모전 참가팀들이 사전에 준비한 팀별 소개 영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팀별 인사가 끝난 후 얼어붙은 분위기를 녹여줄 ‘역사퀴즈장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웠는지, 오답이 많았습니다.

다음으로는 진짜 ‘우리 멘토를 찾아라!’ 시간을 가졌습니다. 닉네임이 공개된 8명의 멘토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 팀의 멘토를 찾아보는 시간, 과연 결과는?!

멘토님들의 연기력으로 8개 팀 중 ’소동동‘팀만 ’진짜 우리 멘토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멘토 찾기에 실패한 팀이 많았지만, 멘토와 멘티의 첫 만남이 기분 좋게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팀별 회의 및 역사자문〕


팀별 회의 및 역사자문은 기획안에 대해 팀원 간 회의를 진행하고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기획안이 탄탄하게 구성될 수 있도록 담당 멘토님들의 열정적인 멘토링과 역사자문 멘토링이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특강1: 스토리테마파크 소개 및 활용법〕


단아코퍼레이션 김기해 대표님께서 스토리테마파크 홈페이지 활용 방법과 구축, 멘티들에게 유용한 다양한 사이트까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둘째 날: 6월 26일 토요일





〔선성현문화단지 답사〕


콘텐츠개발팀 임근실 선생님의 안내로 ‘야외미션게임: 나는 조선의 공무원이다’ 콘텐츠 체험을 시작했습니다. 게임을 끝낸 후 ‘선성수상길’을 걸었습니다. 뷰 맛집 ‘선성수상길’에서 인생 사진 찍기에 바쁜 학생들! 비 오는 이른 아침에도 즐겁게 답사에 참여해준 8팀 감사합니다.


〔도산서원 답사〕


콘텐츠개발팀장 이상호 선생님의 전문적인 설명과 함께 도산서원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도산서원 앞 넓은 공터 오른편에 있는 우물의 이름을 알고 있나요? ‘열정(洌井)’ 우물입니다. 퇴계에게 있어 열정의 우물물은 혼탁한 세상을 씻는 정화수가 아니었을까요. 대학생 공모전에 참가한 8팀 모두의 열정(熱情)이 떠올라 우물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좋은 콘텐츠로 세상을 정화시켜 줬으면 합니다.


〔특강2: 전통 기록 자료를 활용한 기획서 작성법〕


경성대학교 김민옥 선생님께서 공모전 기획서 작성법, 역사기록물의 유형과 특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답니다. 울산광역시의 ‘울산큰애기’ 캐릭터 이야기 등 역사적 사실을 콘텐츠화 시킨 작품들을 예시를 통해 설명해 주셔서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특강3: 팀별 기획사 심사의견 검토 및 발전 방안 모색〕


파란미디어 편집주간 이문영 선생님께서 다양한 역사 콘텐츠들의 예시를 들어주시면서 기획안 작성 시의 유의점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기획안을 바탕으로 기획안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팀별 피드백을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날카로운 피드백에 혹여 학생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선생님의 염려와 달리 학생들은 부정적 피드백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갖고 필기를 하고 질문을 하며, 완성도 높은 기획안을 위해 열정적인 모습으로 강의를 들었답니다.



셋째 날: 6월 27일 일요일





〔만다라트〕


하원준 피칭 멘토님께서 ‘우리 팀의 만다라트’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팀별 ‘만다라트’, 그들의 최종목표는?

1)
소동동 팀의 최종목표 : 공모전 대상(실천방안 엿보기: 무단횡단하지 않기)
2)
궁중악사 팀의 최종목표: 게임출시(실천방안 엿보기: 크라우드 펀딩)
3)
단짠단짝 팀의 최종목표: 공모전 대상(실천방안 엿보기: 영양제 챙겨먹기)
4)
승전보 울려라 팀의 최종목표: 승전보 울리기(실천방안 엿보기: 하루 한 끼는 무조건 밥 챙겨 먹기)
5)
청춘보따리 팀의 최종목표: 월하 상담소 제작 확정(실천방안 엿보기: 말조심하기)
6)
수라간 사(四)인 팀의 최종목표: 조선왕조食록 제작 실현(실천방안 엿보기: 힘들 때 팀장에게 고양이 사진 요구하기)
7)
삼재탈출 팀의 최종목표: 공모전 1등(실천방안 엿보기: 지나가는 시민에게 게임참여 요청하면서 자신감 높이기)
8)
한빛 팀의 최종목표: 즐겁게 대상 타기(실천방안 엿보기: 김칫국 마시기)


〔공모전 그것이 알고 싶다〕


콘텐츠개발팀 임근실 선생님께서 최종 기획서 작성법과 홍보부스 구성, 향후 일정 안내 등 앞으로의 공모전 계획을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공모전 Q&A를 통해 학생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들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팀별 소감 발표〕


오리엔테이션의 마지막 프로그램, 팀별 소감 발표 시간입니다.

“멘토님과의 만남이 가장 좋았어요.”
“다른 팀들과 더 친해지지 못해 아쉬워요.”
“세계에서 최고로 예쁘신 멘토님과 함께해서 좋았어요.”
“열정적으로 저희를 찍어주신, 촬영팀 감사합니다.”
“오리엔테이션 중 생일이라, 멘토님께 케이크와 선물을 받아서 행복했어요.”
“인문정신연수원 밥이 맛있어서 살 찐 것 같아요.”
“장르가 변경되었지만, 끝까지 집중해 좋은 결과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멘토님의 열정, 저희도 남은 기간 더 열심히 해서 꼭 대상 받겠습니다.”


〔단체사진〕


제7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의 오리엔테이션은 단체사진 촬영을 끝으로 종료되었습니다. 2박 3일간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달려와 준 모든 참가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집필자 : 이복순

“토지세 과다부과사건의 전말 - 담당 아전의 농간으로 드러나다”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7-03-13 ~ 1617-03-25
1617년 3월 13일, 김응희가 문단(文壇)으로 가서 그 편에 충의위 이절과 좌수 황열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김택룡에게 답장이 왔다. 김응희의 전세[田稅, 논밭의 세금 즉 토지세]를 결정할 때 경작한 수량을 지나치게 많게 하였는데, 이것은 서원[書員, 세금담당 아전] 김국(金國)이 농간을 부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황열과 김개일이 김택룡을 찾아 와서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5일 뒤 3월 18일, 김택룡은 별감 김개일에게 편지를 보내어, 세금담당 아전 김국이 시경[時耕, 진전이 아니라 현재 경작하고 있는 토지]의 수량을 지나치게 많이 책정한 것에 대해 그 사정을 물어봐달라고 했다.
3월 24일, 김택룡은 풍종을 영주 군내로 보내 별감 김개일에게 말을 전하도록 했다. 세금담당 아전인 김국을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3월 25일, 아침에 풍종이 영주 군내에서 와서 김택룡은 별감 김개일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편지에는 세금담당 아전 김국을 보내 전결[田結, 논밭의 조세]의 부풀린 수량을 조사하라고 시키겠다는 말이 있었다. 김택룡의 답세(畓稅)는 읍인(邑人)이 75복(卜) 7속(束), 명이(命伊)가 28속(束)을 속여서 숨기고 명산호(命山戶)에게 이송하였는데 지금 되돌려 보낸다고 하였다. 이것은 김응희와 호노[戶奴, 중요한 일을 도맡아 하는 노비]의 일인데,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으므로 김택룡은 매우 통탄스러워했다. 시기[時起, 현재 농사를 짓고 있는 논밭]도 역시 30여 복(卜)을 더 부풀려 기록해놓았으므로 모두 없애버리기로 하였다. 세금담당 아전 김국은 유숙하였다. 김택룡은 김응희와 상의해 처리하려 하였지만, 김응희가 김 참판 장례에 석회를 굽는 일 때문에 미움을 받아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세한 상의는 미룰 수밖에 없었다.

“지방 수령과 양반의 기싸움”

김광계, 매원일기,
1634-10-08 ~ 1634-11-23

1634년 김광계가 살던 예안 지역은 큰 사업을 앞두고 있었다. 토지의 비옥도와 면적을 조사하는 조선시대의 토지 조사, 양전(量田)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양전 결과에 따라 납부해야 하는 세금 액수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양전 사업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고 지방관과 거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쉬웠다.
양전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예안 현감 남연은 양전 실무를 담당할 사람으로 김광계의 친척 김확을 지명하려 했다. 김확은 김광계와 촌수는 멀어도 자주 왕래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기에 김광계와 친지들은 크게 걱정한다. 일단 양전 사업과 연관되면 농민 및 지주들과 현감 사이에 끼어 고생하며 비난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확은 양전도감 지명을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10월 들어 양전 사업이 실제 실시되는 과정에서 역시 토지 측량 문제로 양전도감 측과 지역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김확과 김광계의 형제들은 조정에서 내려 보낸 양전사와 직접 이 문제를 상의하려 시도했다. 특히 김광계의 동생 김광악은 양전 결과에 대해 불만이 컸는지 현감 남연에게 함부로 주사를 부리기까지 했다. 분노한 예안 현감 남연은 김광계의 동생이자 김광악의 형인 김광보를 양전도감으로 임명하고, 이어서 다음 달에는 김확을 좌수로 삼겠다는 임명서 까지 내려 보냈다. 현감은 예안 지역의 유력 가문 출신들을 활용해 양전으로 동요된 분위기를 통제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노비를 죽인 것은 재산을 줄인 것이니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조재호, 영영일기, 1752-03-17 ~

1752년 3월 17일, 진주(晉州)의 토호(土豪)인 하수륜(河壽崙)이 병인년(1746) 2월 17일 밤에 그의 계집종 만단(萬丹)의 남편인 유대은악(劉大隱岳)을 구타하여 그 자리에서 죽이고 시신의 목을 매달았다가 만단의 방 안에다 끌어다 두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러다가 유대은악의 형인 유봉안(劉奉安)의 고소장으로 인하여 전례에 따라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그러나 유대은악은 노비로서 주인이 식구를 줄이려 계획한 것이니 하수륜의 죄악은 전례에 따르면 살인(殺人)은 될 수 없고 독란(瀆亂)의 죄에 해당하였다.

“소작료가 걷히지 않는 논, 상황 조사를 시작하다”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7-09-27 ~ 1617-10-08

1617년 9월 27일, 김택룡이 종손(從孫)이를 농사짓는 논이 있는 마평(馬坪)에 보냈다. 또 그 곳에는 다른 사람이 농사짓는 전답 두 곳도 있는데 그 동안 대가는 커녕 요역과 부세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김택룡은 김응희에게 양전행심책(量田行尋冊)을 가지고 가서 살펴보라고 청했다. 아울러 별감 이여함에게 사표(四標)를 찾아 조사해보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양전[量田, 논밭을 측량]할 때 복만(卜萬)의 전답으로 측정되었던 것을 다른 사람이 경작하여 먹고 있었음을 알았다. 김택룡은 서서히 찾아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0월 4일, 김택룡은 아침에 풍종을 도촌에 보냈다. 마평(馬坪) 전답 두 곳을 권굉(權宏)의 노비 윤복(允卜)과 이성간(李成榦)의 노비 일년(一年), 그리고 김 서방이라고 칭하는 여러 사람이 갈아 먹은 지 오래 되었는데 세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서 부르게 한 것이다. 풍종이가 와서 고하길, 모두 모레 오겠다고 했다 하였다.
10월 8일, 아침에 김호학(金好學) · 윤복(允福)이 마평 전답 일로 왔기에, 상황을 깨우쳐 보내며 부세(賦稅)를 내라고 명령했다.

“매 그물을 쳤으나 허탕을 치다”

오희문, 쇄미록, 1598-10-08

1598년 10월 8일, 오희문은 아침 일찍부터 앞뜰에 있는 밭에서 수확한 팥을 두드렸다. 모두 1석 2두가 났는데, 이 중 2두는 언명의 집에 주었다. 언명이는 춘금이를 데리고 아침에 황촌으로 건너가서 둔전 곡식 두드리는 것을 손수 감독했다.
팥 타작을 마치자 오희문은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지난달 이맘때쯤 매 그물을 쳐 놓았는데 여태까지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그나마 최근에는 매가 잡혔는지 여부도 확인해 본지 오래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종 한 명을 데리고 매 그물을 친 곳에 가 보았다.
가서 확인해 보니, 매를 유인하기 위해 메어 놓은 닭 두 마리가 모두 죽어버렸다. 요 며칠 사이 일이 많아 가보지 못하였으니 아마 먹이를 먹지 못해 굶어 죽은 것이리라. 이 그물에다 미끼로 메어 놓은 닭이 모두 5마리였는데, 그 닭을 모두 잃고 한 마리 매도 잡지 못하였으니 억울하고 분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물을 치고 묶고 하는 수고까지 더하면 이 얼마나 허망스러운 것인가. 오희문은 화가 나서 사람들을 시켜 그물을 모두 걷어 오도록 하였다. 미끼로 쓴 닭이라도 잡았으면 5일 동안 어머니 밥상은 근사하게 차렸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더더욱 아까운 생각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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