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오늘의 삶은 일기가 되고, 그 일기로 쌓아올린 삶은 역사가 된다!”
조선시대 선인들이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을 기록한 일기를
현재의 우리에게 소개해준 박영서 작가님과의 인터뷰, 지금 시작합니다.
저는 선배 세대분들처럼 성실히 도서관을 다니면서 자료를 찾는 타입이 아니었어요. 온종일 방 안에만 있는 게으름 덩어리라, 인터넷으로 거의 모든 자료를 찾거든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을 쓸 때 전산화된 다양한 한글 편지 자료를 접했듯, 일기 자료 또한 원문과 번역문이 수록된 데이터베이스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한국국학진흥원 홈페이지를 뒤지다가 스토리테마파크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때의 기분은 마치, “심봤다!”를 외치는 심마니나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랄까요. 제가 딱 원하던 자료가 있어서 너무나 기뻤고, 한편으로는 이 사이트를 구축하셨던 많은 분들의 노고가 구석구석 보여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멀리서 볼 땐 비슷비슷하고, 가까이서 볼 땐 총천연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상의 한 사람이 맞이하는 생애주기를 나눠서 각 장의 주제를 잡고, 주제에 맞는 일기를 얽는 형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8명 이상의 삶을 통해 조선 사회에 대한 선명도를 높이고, 책 전체로는 한 사람의 삶을 재구성하는 듯한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일기 자료가 매우 많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비슷할 때가 많아서 선별하는 작업에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캐릭터가 묻어나거나, 다른 자료들을 통해 당시 사회를 풍부하게 볼 수 있는 자료를 골랐죠. 전자로는 이문건의 『묵재일기』나 오희문의 『쇄미록』이 좋았습니다. 각각 아들과 딸을 대하는 가장의 캐릭터가 극명하게 대비되었거든요. 후자로는 김령의 『계암일록』과 김광계의 『매원일기』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두 일기는 비슷한 시기, 한 집안에서 쓰인 기록이라 교차 검증이 되는 사건이 많잖아요? 한 지역의 관계망을 풍부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문학적인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진 못했습니다. 최종적으론 조선시대 사회상을 매우 농밀하게 담아내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긴 해요. 어쨌든, ‘양봉 코인’과 같은 단어를 쓸 땐 저도 고민이 많았는데요. ‘옛사람의 일기를 나의 일기처럼 읽을 수 있어야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반적으로 책이라는 플랫폼에 담기엔 적절하지 않은 편이니까요. 그런데 용기를 얻게 된 건 크게 두 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스토리테마파크 덕분입니다. 하나의 일기를 ‘정확히’ 전하기보다, 그것이 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각색하는 작업을 스토리테마파크가 먼저 하셨더라고요. ‘엄근진’할 것 같은 국학진흥원 마크가 딱 붙어 있는데도 이렇게 해주셨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냐,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두 번째는, 실록을 읽다가 느꼈습니다. 배움이 짧은 저로서는, 주석이나 한자를 풀어 봐도 도저히 그 정확한 의미를 알기 힘든 용어들이 많았거든요. 일기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그러한 용어들이 사료의 시대성을 담아내고 있듯, 제 책 또한 시대성을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용어를 모르시는 분들께는 독해의 장벽을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자체로 소중한 사회사가 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기본적으론 훌륭한 연구자 선생님들의 단행본과 논문에 많이 의지했습니다. 제가 한 작업은 연구자들의 번역과 연구 결과를 버무려서 MSG를 친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습니다. 특히, 학부생들이 교양 수준의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 자료를 찾을 때 하는 고민과 비슷했어요. 위키는 신뢰할 수 없어 쓰기 힘들고, 논문은 이해하기 어려워 쓰기 힘든.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 소개 내용을 인용하거나, 스토리테마파크의 ‘배경 이야기’ 항목을 참고하는 등, 이러한 고민을 먼저 하신 분들의 서술을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설명이 많아져야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대목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예컨대, ‘만인소’가 있죠. 만인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철학적 이념까지 파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개화에 반대했던 후기 만인소까지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거든요. 그러나 그러한 부분까지는 담아내기 힘들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맞이할 숙제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국학’이라는, 이를테면 예학(禮學)이나 도학(道學)의 학문도 우리에게 있지만, 이러한 학문이 현대의 정신문화에서는 조금씩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정함, 또는 옳음에 대한 기준이 서구의 근대적 인간관에서 발달한 ‘그 무엇’에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그렇다고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비합리적이었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이치를 탐구하고, 이치를 만드는 힘을 탐구했거든요. 그 이치에 합당한 사회상을 구현하고자 노력했고요. 그러나 우리의 눈에는 도저히 ‘합리적’이라고 이해하기 힘든 면들이 있죠. 예컨대,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가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는 부분이랄까요.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해요. 공자가 사람들에게서 인(仁)을 발견하고 그것을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베이스로 잡았던 것, 주자가 예(禮)를 ‘더 좋은 인(仁)의 공동체’를 만드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 그러한 포착은 과거의 인간이나 지금의 인간에게서나 똑같이 포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연히,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땅 투기를 하거나, 반대로 안타까운 타인의 사연을 듣고 기부하는 삶의 양상들은 비슷할 수밖에 없겠죠.
절간에서 살다 보면, 정말 가지각색의 사연을 어깨너머로 접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불가의 언어로 표현하면, 고해(苦海)를 어떤 사람들은 자유영으로, 어떤 이는 배영으로, 어떤 이는 호화유람선을 타고 건너는데, 그 각양각색의 방법들이 제게는 흥미로운 주제였어요. 자연히, 같은 역사라도, 정치사보다 일상사에 보다 관심을 두게 된 것 같습니다.
예컨대, 호주제가 2007년에 폐지됐잖아요? 그런데 호주제가 담고 있는 제도적 한계 때문에 발생한 각종 안타까운 사연이 절간으로 밀려 들어왔어요. 원래 절간엔 행복한 분들보다 고통 받는 분들이 오시는 곳이니까요. 훗날, 〔한국사〕 과목에서는 ‘호주제는 2007년에 폐지되었다’라는 한 줄의 문장으로 기술되겠지만, 그 한 줄의 문장 속에 담긴 오만 개의 사연을 밝혀내는 것 또한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되겠죠. 그래서 『일기들』은 저의 ‘절간 속의 삶’ 덕분에 맺어진 인연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절에 갔을까?’라는 질문을 담아내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감로도」와 조선시대 일기 및 편지 자료를 구성해서 당시의 사회상을 조명해나가는 책이나, 또, 유생들과 승려의 기묘한 공생 관계를 야무지게 뜯어보는 책도 재밌을 것 같아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일기들』도 제 맘대로 윤색하고 편집한 일기가 좀 많은데요. 일기보다는 편지가 조금 더 가벼운 매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은 그러한 ‘장난’을 두 배쯤 더 많이 한 책입니다. 특히, 사람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성을 더 강하게 조명했어요. ‘삼송’ 중 한 명이었던 송규렴이 노비 기축이에게 쩔쩔매는 편지나, 정약용이 아들들에게 잔소리하는 편지, 혹은 양반과 기생이 주고받았던 러브레터 등을 각색해서 수록했죠. 우리가 조선시대 사람들을 생각할 때 가지게 되는 어떠한 인식적 틀에서 벗어나, 역사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기들』의 후속 시리즈로는 『상소들』을 쓰려고 합니다. 물론, 상소에 국한하지 않고 격쟁, 민소장, 소송 문서 등을 종합적으로 인용하여, 조선시대의 법적 테두리와 사회상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갔는지 보고 싶거든요. 이해하기 어려운 상소 용어를 살펴볼 생각에 벌써 손발이 덜덜 떨리고 현기증이 납니다만, 꼭 쓰고 싶습니다.
역사라는 주제가 저변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구자의 수도 점점 줄고 있고, 사극 또한 비중이 크게 줄었고요.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역사 유튜브 콘텐츠는 섹슈얼한 이슈를 담고 있거나 어떤 사건을 매우 비난하는 류의 자극적인 콘텐츠가 장악하고 있죠. 저 또한 학부생인데, 역사 관련 교양 과목의 비중도 점차 줄어만 가는 듯합니다.
저는 『일기들』이 역사 교양서를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분들께도 재미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서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꽤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제 책이 ‘역사 입덕 포인트’가 된다면, 그것보다 더 값진 결과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정민, 강명관, 안대회, 정창권 선생님 등의 책을 읽고 ‘입덕’했던 것처럼 말이죠.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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