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에서는 조선시대 수령의 직무 공간이자 생활공간이던 관아와 수령이 업무와 관련해 사용한 물건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관아는 지역의 정치, 행정, 교육, 사법 등을 총괄하던 곳으로 다양한 기능의 건물로 구성되었는데, 수령의 주요 업무 공간으로 동헌과 객사가 있고, 개인 공간으로 내아가 있습니다. 관아에서 수령의 주요 활동 공간과 업무와 관련한 물건에 관해 한국국학진흥원 김형수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 조선의 건축 (http://hanok.ugyo.net) 에 구축된 관아 구성도
관아(官衙)는 중앙이나 지방의 관원(官員)들이 정무를 보는 건물의 총칭으로, 관서(官署)라고도 합니다. 또한 순수한 우리말로는 '마을'이라고 하는데, 이는 좁은 의미로 관아에 해당합니다. 관아 안에는 수령이 집무하는 정청(政廳)인 동헌(東軒)과 그의 식솔이 거주하는 사적 공간인 내아(內衙), 국왕의 위패를 모시고 사신 및 여행자를 맞이하는 객사(客舍), 지방교육을 담당한 향교(鄕校), 그리고 좌수(座首), 별감(別監) 등의 지방양반이 고을의 업무를 자문한 향청(鄕廳), 향리인 육방(六房)의 우두머리와 아전이 근무하던 질청(作廳), 회계 사무를 관장하던 공수청(公須廳), 노비들의 관노청(官奴廳), 죄인을 가두는 형옥(刑獄)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동헌과 객사, 내아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조선시대 전주부 관아 동헌 ‘풍락헌’ ⓒ전주전통문화연수원
관아의 중심이었던 동헌은 관할 지역의 중요한 업무가 행해지는 곳이었습니다. 수령이 동헌에서 치른 중요한 업무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수령이 부임 후부터 정기적으로 시행했던 군정(軍政)에 대한 점고가 있습니다. 점고(點考)는 수령이 명부에 점을 찍어 가면서 수효를 조사하는 것입니다. 군사에 대한 점고는 군사의 수를 점검하거나 군기(군대 물품)의 개수와 사용이 가능한지 점검이었습니다. 그리고 관노비에 대한 점고도 이루어졌습니다. 둘째는 양전, 호적, 호패 등의 성책(成冊)업무였습니다. 성책 업무 중에 토지조사 및 측량 업무와 관련해서는 유척이 사용되었습니다. 셋째는 사송(민사의 소송) 관련 업무로 관할 지역민의 소지(所志)에 대한 처리 등 여러 소송에 대한 처리 업무였습니다.
유척(鍮尺)은 놋쇠로 만든 자이며 조선시대 도량형제도상 척도의 표준이었습니다. 당초에는 주척이라고 하였다가 육전조례에서 유척이라 규정하였습니다. 암행어사에게는 2개의 유척이 주어졌는데요. 하나는 죄인을 매질하는 태(笞)나 장(杖) 등의 형구 크기를 통일시켜 법에 의거하지 않고 함부로 형벌을 가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쓰였습니다. 하나는 도량형을 통일해서 세금징수를 고르게 하는 데 쓰였습니다. 수령과 암행어사가 유척을 쓰는 용도는 같았으나 감시대상이 달랐습니다. 수령은 향리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였고 암행어사는 수령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찰하였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어사가 도량형을 감찰했던 것은 지방수령의 자의적인 세금징수를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척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소지(所志)는 민사의 소송(사송)에서 주로 쓰였습니다. 소지는 사서(士庶), 서리(胥吏), 천민(賤民)이 관부에 올리는 소장, 청원서, 진정서입니다. 모두 소지라고 하나 그 내용은 소송, 청원, 진정 등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당시의 사서들이 생활하는 중에 일어난 일로서 관부의 결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민원에 관한 문서입니다. 소지를 수령이나 관계 관부에 올리면 해당 관원은 그 소지에 대한 처분을 내리게 되는데 이를 제음(題音, 간략하게 판결을 내리는 것) 또는 제사(題辭, 판결을 길게 내리는 것)라고 합니다.
을축년 11월 이조영이 장종욱에게서 논 값을 추심해달라고 관에 청원한 소지(출처 : 옛문서생활사박물관)
전월 장종욱에게 논 값을 도로 되찾고자 하는 소지를 올려 성주께서 장종욱과 거간인 구갑손을 잡아
10월 27일내에 갚겠다는 다짐을 받았는데, 기한을 기다려주었으나 지금까지 갚지 않아 소지를
올리니 종욱과 갑손을 다시 잡아 엄히 다스려 이를 받아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소지의 종류는 발괄(白活) 등장(等狀) 원정(原情) 상서(上書) 의송(議送) 등이 있습니다. 등장은 다수가 연달아 이름을 적어 올린 문서이며, 원정과 상서도 진정서의 성격을 가진 문서입니다. 특히 상서는 등장처럼 다수가 연달아 이름을 적어 관찰사 수령 암행어사에게 올렸습니다. 의송은 소지와 같은 종류의 문서이나 소지는 수령에게 올린 문서이고, 의송은 순찰사나 관찰사에게 올린 문서라는 것이 다릅니다. 의송은 대개 소지로 민원이 해결되지 못하였을 때 올렸습니다.
안동 선성현 객사 ⓒ스토리테마파크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객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1712년(숙종 38)
객사(客舍)는 조선시대 지방의 행정을 담당하는 곳에서 중앙집권적 왕권을 상징하는 대표적 시설이었습니다. 이 시기 객사는 전패(殿牌)의 봉안과 의례적인 기능을 수용하는 정청(正廳)과 손님의 숙박과 접대라는 실용적 기능을 담당하는 좌우 익헌(翼軒)이 일체화되어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객사에 봉안되어 있는 전패는 ‘殿(전)’자를 새긴 나무패이자 왕을 상징하는 일종의 위패(位牌)입니다. 객사는 완전한 제사시설도 아니며 직접적인 통치시설도 아닌 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수령들은 부임하게 되면 먼저 객사에 들려 예를 갖추어 인사하였고,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나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를 통해 임금에 대한 충성과 목민관으로서의 소임을 다짐하였습니다. 객사는 외국에서 온 사신들과 공무를 위해 파견된 중앙 관리들이 숙소로 사용하거나 고을의 인사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푸는 기능도 하였습니다.
임금의 궐패를 모셨던 선성현 객사의 정당(좌) 임금의 궐패 봉안 모습(우) ⓒ스토리테마파크
내아는 수령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수령의 개인공간입니다. 내아의 건축구조는 당시의 사대부 집안의 안채와 같은 모습을 하였습니다. 안방 대청 건넌방 부엌 찬방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주위에 곳간 등의 부속 건물이 딸려 있었습니다.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이나 다듬은 돌 초석을 놓고, 네모난 기둥을 세웠습니다. 대청은 연등천장(천장을 만들지 않고 서까래가 그냥 노출되어 보이도록 한 것)을 하고, 온돌방은 종이천장을 하였습니다. 지붕은 대개 팔작지붕으로 단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관아는 수령들에게 정무를 보는 장소이자 생활의 공간이었습니다. 수령들은 자신이 살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관직을 받아서 내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관아 안에 수령들이 생활 할 수 있는 내아를 마련한 것입니다. 내아에서 부모를 모시고 같이 사는 경우들이 존재하였는데,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는 방법 중에서 최고는 지방관이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관아는 수령의 생활의 터전이었을 것입니다. 생활하는 장소이자 일을 하는 장소였습니다. 수령은 관아 외에도 업무상 많은 곳을 다니며 일했습니다. 마을마다 수령의 일은 다르지만 대표적으로 수령은 ‘유척’을 통해 토지조사 및 측량을 진행하였고 마을 사람들에게 ‘소지’를 받아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해야했습니다. 그리고 객사에서는 정해진 날짜마다 망궐례를 진행하여 조선의 왕에게 예를 갖추어야했습니다.
수령의 임기는 보통 60개월이었으며 10개월을 1기로 해서 6기제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수령들 중에서는 5년 임기를 채운 사람은 드뭅니다. 그리고 지방관이 마지막 관직인 사람이 많으며 지방관을 연이어하는 수령에 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령들은 자신이 권력을 이용하여 많은 이익을 챙긴 경우가 많았고, 지방관으로 근무하고 난 이후 상당히 큰 부를 축적한 수령도 상당히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피해들은 대부분은 백성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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