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어르신, 가시지요?”
접장이 마당에서 외쳤다. 정생이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여니 쌉쌀하지만 상큼한 봄바람이 꽃향기를 머금고 버드나무가지 휘어지듯 부드럽게 밀려들어왔다.
“날씨가 참 좋구나.”
하늘에는 서기가 어리듯 구름조차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저 남쪽 하늘 아래서는 과거가 열리고 있을 것이었다.
“과거날이라 그런지 날이 더 좋습니다.”
접장이 물색없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정생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루지 못한 꿈이 저 남녘에 있었다.
사계절마다 특별한 날에 과거를 치는데 그것을 절제(節製)라 부른다. 겨울에는 정월 초이레에 치는데 인일제(人日製)라 하고, 봄에는 바로 오늘인 삼월 삼짇날에 치는데 그것을 화제(花製)라고 한다. 여름은 칠월칠석날 치르는 오제(梧製), 가을은 구월 구일 날에 치르는 국제(菊製)가 있어 계절마다 한 번씩 치르게 되는 것이다.
야망을 가진 선비들이 먹을 갈고 붓을 적실 오늘 이젠 그런 희망도 모두 사라진 채 꽃구경이나 가는 자신의 신세가 어쩐지 처량했다. 정생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렇지. 천하의 명필 왕희지(307~365)가 삼월 삼짇날에 명사 마흔 명과 더불어 회계 산음에 있는 정자 난정(蘭亭)에서 물가에 모여서 놀았는데, 이때 지은 시들을 모아 왕희지가 글을 썼으니 그것을 「난정집서(蘭亭集序)」라 부르지. 이 글씨를 가리켜 천하제일의 행서(行書)라 부른다네.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누가 왕희지와 같은 글씨를 써보고 싶지 않겠나.”
〈난정회서도(蘭亭會序圖)〉(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접장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제가 듣기로는 그때 왕희지는 많이 취해 있었다고 하던데, 오늘 훈장 어르신도 대취한 후에 일필휘지를 남겨보시죠!”
접장의 실없는 소리에 정생이 껄껄 웃었다.
“그래, 어디 그럼 답청놀이를 한 번 가보지.”
삼월이라 삼짇날.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라고 하는 이 날에 푸르러지기 시작하는 들판을 지나 산에 놀러가는 것을 답청(踏靑)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푸르름을 밟는 날이다. 또는 새로 돋아난 풀을 밟는다고 하여 답백초(踏白草)라고도 부른다.
오늘은 양주 백석골의 내로라하는 양반들이 모두 모이게 되어 있었다. 홍복산에 계곡에 있는 백석정에서 만나기로 약조했는데 정생이 도착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와 있었다.
〈영남기행화첩(嶺南紀行畵帖)〉(출처: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훈장 어르신 오셨습니까?”
제일 먼저 인사를 올린 사람은 정생의 제자이기도 한 오 진사의 손자 오명하였다.
“너는 조정에 나가지 않고 어찌 이곳에 있느냐?”
오명하가 비록 꼴찌로 붙긴 했지만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답청에 온 것이 희한했다.
“아직 발령을 못 받았습니다. 명을 기다리는 중이죠.”
오명하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권세가의 자제들이 과거를 치지 않고 가문의 힘으로 관직에 나가는 문음(文蔭)이 성행하고 있어서 과거에 급제해도 벼슬을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오명하는 할아버지가 진사를 한 것이 마지막인 집안이고, 진사는 대과를 치지 못한 것이라 집안이 기울대로 기운 상태였다. 그러니 아직 벼슬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걱정 말게. 곧 더 좋은 자리로 가겠지.”
“네!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명하가 정자 안쪽으로 정생을 안내했다.
“어서 오십시오.”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는 사람은 배 정승네 손자 배진구였다. 배진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자리에 앉으라 이야기하고 문간 자리로 옮겨 앉았다. 정생은 먼저 와 있던 황 초시와 오 진사에게 인사를 했다. 일각도 지나지 않아 배 정승네 주인인 배 첨지가 와서 제일 상석에 앉았다. 배 정승네라고 부르지만 배씨 가문이 정승을 배출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다. 동네에서는 대대로 그 집을 배 정승네라고 불렀고 마을의 제일 큰 집으로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 제일 커다란 집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첨지라는 것은 본래 벼슬이지만 배 첨지가 환갑을 넘자 나라에서 붙여준 이름만 있는 허직(虛職)이었다.
“다들 이렇게 답청절 꽃놀이에 모여 주셔서 감사하오.”
배 첨지가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배 정승네 하인들이 개다리소반에 음식을 담아 모인 사람들에게 돌렸다.
접시에는 진달래 꽃잎을 넣어 지진 화전과 탁주를 담은 술병이 올라 있었다. 술이 일순배 돌고 나자 분위기가 무척 좋아졌다. 이때 기생과 악공들이 올라왔다.
〈수갑계첩(壽甲稧帖)〉(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사람들이 반색을 했는데 배 첨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 주빈들보다 기생이 더 늦었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이다. 기생과 악공들이 문안 인사를 올렸다. 나이가 스물댓쯤 되어 보이는 기생이 눈웃음을 치며 절을 올렸다.
“소첩, 춘절 인사 올리옵니다.”
정생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삼월 삼짇날이 춘절인데, 기생의 이름도 춘절이니 참 묘한 인연이구나.”
정생은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풀어볼까 해서 한 말이었지만, 노기가 사라지지 않은 배 첨지는 인사도 없이 명령하듯 말했다.
“어서 노래를 불러라.”
춘절은 시조창을 불렀는데 소리가 낮고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절창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초장을 부르고 중장으로 들어가는 차에 배 첨지는 붉어진 얼굴로 꽥 소리를 질렀다.
“집어치워라! 그게 무슨 창이란 말이냐!”
배 첨지가 화를 냈지만, 춘절은 놀라지도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아니 드시는 곳을 말씀해주시면 다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배 첨지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연초에 양주 관아에 들러 너희가 노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때는 큰 소리로 시원하게 창을 뽑더니 어찌 오늘은 이렇게 느려터지고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쥐어짜고 있는 것이냐!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어머, 어찌 소첩이 나리를 무시하겠습니까? 다른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춘절이 악공을 바라보며 눈짓을 하고 새로 노래를 불렀는데 이번에는 〈춘향가〉의 한 대목을 불렀다.
조선의 기녀 시인들(출처: 유튜브_아리랑TV)
“만첩청사안~ 느을근 범이~ 살진 암캐를 물어다 놓고~ ”
사설도 없이 대뜸 우조(羽調)로 소리를 질러댄 것인데, 목청껏 노래를 지르자 배 첨지의 안색이 펴졌다. 배 첨지는 연신 탁자를 두들기며 좋아라 했다.
“좋고 좋도다. 노래란 마땅히 이래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정생이 듣기에는 그저 소리를 높이 질러대는 것일 뿐, 노래가 갖는 울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기생이 단단히 삐쳐서 대충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배 첨지가 인상을 쓰면 같이 인상을 쓰고, 배 첨지가 웃으면 같이 웃을 뿐 노래를 즐기는 사람도 보이지가 않았다.
노래를 잘하는 기생을 불러다 놓고 아무 소리나 하게 만든 것이니, 정생은 입맛이 썼다. 그 쓴 입맛을 달래려 탁주를 계속 마시다가 깜빡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일어나게.”
정생은 누가 흔드는 통에 정신을 차렸다. 잔치가 언제 파했는지 달이 둥실 떠 있는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정자관을 쓴 낯선 양반이 눈앞에 있었다.
“뉘신지요?”
“허허, 나를 모른다고? 이 눈썹을 보면 누군지 알겠나?”
그 양반이 가리키는 눈썹은 세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눈썹… 세 조각이니, 삼미… 삼미자… 아니, 다산 선생님이십니까?”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 분명했다.
정약용 초상(출처: 다산박물관)
“선생님은 20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자네가 삿된 노래를 듣고 불쾌히 여기는 것을 보고 장차 음악에 대해 내 뜻을 이을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들렀네.”
“잠시 들르다니… 지금 어디 계시는데…”
하지만 정약용은 정생의 말은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말만 했다.
“음악은 귀를 통해 그 마음으로 들어가 사람의 혈맥을 움직이고 흔들어서 화평하고 화락한 뜻을 고동치게 하는 것일세. 자네도 금방 보지 않았나. 화가 나 있던 배 첨지가 비록 잘못된 음악이긴 하지만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듣자 금방 즐거워지는 것을.”
맞는 말이었다. 노래가 어떻든 간에 배 첨지는 흥겨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사람이 즐거웠으니 그것으로 된 것 같기도 했다.
“인간에게는 오욕칠정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쉽게 일어나고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분노일세. 분노와 원한을 형벌을 통해 일시 없애줄 수는 있는데, 음악으로 그 마음을 풀어주는 것만 못한 것일세.”
정약용이 슬픈 얼굴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진정한 음악은 사라지고 말았네. 인간 세상에 제대로 된 음악이 없으니 형벌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전쟁 역시 자주 일어나게 된 것이라네. 자네도 들어서 알다시피 오늘날의 음악은 음란하고 슬프고 바르지 못한 소리일 뿐이네. 예를 바르게 세우려면 먼저 음악이 바르게 서야 하는 것일세.”
정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오늘날 음악이 바르지 못한 소리라는 건 잘못 아신 겁니다. 본디 노래란 정(情)입니다. 기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졸렬한 음악?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악을 잊어버리고 자연스러움에 기대어 하늘의 기운을 표현하면 되는 것입니다. 본래 『시경(時經)』의 노래 역시 민간의 노래에서 나온 것이잖습니까. 노래로 덕성을 함양할 수도 있는 것이고, 세상을 풍자할 수도 있는 것이죠.”
『시경』(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정약용은 깜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은근히 노여움을 담아 말했다.
“그래서, 춘절의 노래가 훌륭했던가?”
“춘절의 노래는 배 첨지 어르신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이 음악이 가진 큰 힘 아니겠습니까?”
정약용이 혀를 찼다.
“그건 자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네. 옛날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할 때 음악을 다룬 책들도 전부 없어졌네. 참된 음악이 망실되고 이후 망령된 음악들이 세상을 채우게 되었네. 내가 그것을 올바로 잡아 고쳐놓은 바 있네. 진나라 시대 이전의 음악을 찾아내야 음악으로 세상의 예법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네.”
“어찌 옛 중국의 음악만이 올바른 것이라 하겠습니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면 농부와 나무꾼의 노래라고 해도 사대부의 음악보다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의 음악과 옛날 음악이 곡조는 다르다 해도 그 마음만은 같은 것입니다.”
정약용이 멍한 얼굴로 정생을 바라보았다.
“조선에는 조선의 노래가 있습니다. 억지로 뜯어고쳐 중국 것에 맞추려 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은 『시경』의 원 뜻과도 맞지 않습니다.”
정약용이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중국 고대의 황종(黃鐘: 동양음악의 기본 음률)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런 노력이 의미가 없었던 건가…”
정생이 쐐기를 박듯 말했다.
“왜 굳이 우리나라의 황종을 중국 것에 맞춰야 하겠습니까?”
정생의 말에 정약용의 얼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흔들리다니? 그러더니 그 얼굴은 접장의 얼굴로 점점 바뀌었다.
“훈장 어르신, 정신 좀 차리십시오.”
개다리소반에 처박힌 얼굴을 들어보니 침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다산 선생님은… 다산 선생님은 어디 가셨지?”
그 말에 주변에서 폭소가 터졌다. 배 첨지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꿈에서 다산 선생을 만났나? 자네, 술이 참 약해졌군 그래. 보약이라도 한 재 지어먹게.”
“아니, 저, 분명히 다산 선생님이… 제가 다산 선생님을 논쟁에서 이겼는데…”
그 말에 더 큰 폭소가 터졌다.
“인물 났네, 인물 났어. 시나 한 수 지어놓게나. 몽배정다산(夢拜丁茶山)이라고 하면 되겠구만.”
정생은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어서 분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답청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접장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자 접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거 홍대용의 『담헌서(湛軒書)』에 나오는 이야기 아닙니까?”
“뭐?”
“지난달에 읽어보라고 빌려주셔서 제가 지금 읽고 있습니다.”
“아, 그게… 그, 그랬던가?”
“네, 『담헌서』에 있는 ‘대동풍요서’와 ‘황종고금이동지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담헌서』(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정생은 민망한 나머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접장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갑자기 왜 웃으십니까?”
“즐거워서 웃지! 선현의 말씀을 잘 익혀서 내가 말했으니 그 아니 훌륭한가! 공자 가라사대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 하셨지.”
하지만 정생은 접장의 얼굴은 바라보지 않고 밤하늘만 올려다보며 하산 길을 재촉했다. 접장도 더는 묻지 않았다.

|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