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할리우드 영매, 타일러와 후광효과

영매와 영매력의 새로운 부상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에서는 다수의 저명한 학자, 작가, 예술가들이 초자연적인 현상, 특히 영적 세계와 서구 무당인 영매(medium) 및 영매의 능력을 연구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초월적’ 현상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하려고 노력했으나, 이 연구들은 대부분 영매와 영매력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사기와 부정을 드러냈다. 이러한 연구들로 인해 영매와 영매력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의 현대과학 이론이 등장하면서, 인간이 실재로 여겼던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인 개념이며, 세상은 절대적인 법칙이 아닌 확률적 존재라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인간의 일상적인 경험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나 현상, 의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도 사회에 퍼졌다.

자연스럽게 영매와 영매력은 다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현대 서구 사회에서 이성과 합리성이 주도적인 패러다임이지만, 상당수의 사람은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초자연적이거나 영적인 현상을 경험하고, 이를 믿거나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정부가 ‘미신 타파’를 다방면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현재 유튜브에는 무당과 관련된 콘텐츠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으며, 일부 무당은 이러한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부와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일부 무당은 앞날이 불확실한 정치인이나 경제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들 무당의 점지 능력은 정치와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영매나 무당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느낌이 든다.


‘실화탐사대'’ 점집을 대신하는 무속 유튜브, 믿어도 될까?(출처: MBC)





영매와 영매력에 대한 회의


로(Chris A. Roe)는 영매와 영매력에 대해 장기간 연구한 바 있다. 그의 연구 대상 중 30%가 영매들이 주최하는 리딩(reading) 모임에 참석한 경험이 있으며, 그중 절반 정도는 영매가 제시한 리딩 내용이 구체적이고 정확하다고 평가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영매 모임의 일반인 참가자인 시터(sitter)들이 영매의 리딩 내용에 감동하여서 영매와 영매력, 그리고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 형성하고 강화한다고 주장했으며, 이에 관한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쇼우텐(S. A. Schouten)은 실증 연구를 통해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는데, 그는 "영매가 당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우연히 추정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진술을 할 이유는 거의 없다"라고 주장했다. 서구에서 영매와 영매력을 바라보는 시각과 연구 결과는 각자 다른 대조적인 시각과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며, 이러한 ‘초월적’ 또는 영적인 현상 자체를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영매와 영매력을 콜드리딩(cold reading)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새로운 이해에 도달할 수도 있다. 영국의 탐정소설 작가 코난 도일은 이러한 의미에서 콜드리딩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미 19세기에 이 기법을 사용하여 다양한 범죄를 해결하였다.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
(출처: https://www.arthurconandoyle.com/)더보기





콜드리딩이란


하이맨(R. Hyman)은 “콜드리딩은 심령술사(또는 영매)와 의뢰인 사이의 양자관계 역동성을 이용하여 의뢰인에 맞춘 스케치(sketch)를 개발한다.”라고 언급하였다. 즉, 영매 독해자(reader)는 빈틈없는 관찰력과 언어적, 비언어적 피드백, 그리고 의뢰인의 적극적인 협력을 활용하여 의뢰인에게 자신의 영혼의 핵심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는 인상을 주는 묘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022년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실제로 콜드리딩이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출처: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 영화는 사회적, 경제적인 성공에 목마른 스탠턴이 유랑극단에서 독심술가 부부를 만나 사람 마음을 읽는 기술을 배워서 뉴욕 상류층을 대상으로 부와 명예를 얻으려 하다가 몰락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인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거지”라는 영화 속 대사는 이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콜드리딩은 ‘무대 설정’, ‘특정 사소함’, ‘특정 보편성’, 그리고 ‘포러의 진술’ 등 몇 가지 단계로 구성되며, 이 문맥에서는 ‘무대 설정’의 후광효과를 중심으로 영매를 살펴보고자 한다.




넷플릭스의 《타일러 헨리: 죽음 너머를 읽다》와 무대설정


넷플릭스는 2022년 3월 11일에 《사후의 삶》 시즌 1을 공개했다. 이 시리즈는 총 9개의 약 45분 분량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사후의 삶》은 죽은 사람들이 사후세계에서의 인식과 소통을 다루는 것을 중심으로 하며, 여기서 죽음의 원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리즈에서 다루는 죽음의 원인은 크게 자연사 3건, 사건 및 사고사 8건, 병사 6건, 자살 2건 등 4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영상에서 나타나는 리딩은 평균적으로 15분 정도 소요되지만, 타일러는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 리딩한 것으로 추정된다.



《타일러헨리: 죽음 너머를 읽다》(출처: 넷플릭스)


무대 설정은 영매와 시터들이 만나기 전부터 본격적인 리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과정을 의미한다. 무대 설정에서는 후광효과, 영매의 외모와 태도, 그리고 첫인상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리딩을 수행하는 영매는 시터에게 자기 능력을 확신시키고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무대 설정의 목적 중 하나는 영매가 자신이 사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이비’나 무자격자가 아닌, 실제로 리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진짜’ 영매로서 인정받거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영매와 시터 사이에 초기 신뢰 관계가 형성되며, 이 관계는 시터가 리딩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며, 리딩 결과가 틀리거나 부족한 경우에도 탈출구를 제공하여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




타일러의 후광효과


타일러의 후광효과 형성에는 경력과 사회적 이미지가 중요하다. 그는 이미 10살 때부터 할머니의 죽음을 예견하고, 이를 어머니에게 알려,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교사, 동료 학생 및 지역주민들을 리딩하면서 사회적인 인정을 받았다. 그의 명성은 고향에서 약 100km 떨어진 로스앤젤레스까지 알려졌고, 많은 사람이 리딩을 받기 위해 그를 찾았다. 타일러는 특히 시터들에게 고인이 죽음의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 생각 등을 항상 리딩에서 전달하는데, 이는 많은 시터들이 그를 찾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러한 타일러의 독특한 점은 그가 2년 동안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많은 관련 경험과 지식을 축적한 결과라고 추정된다.

미국의 연예 채널인 〈E! Entertainment〉는 타일러의 이름을 사용한 영매 리딩 프로그램을 방영하여 그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매로 만들었다. 이 케이블 채널은 2016년 1월부터 《할리우드 영매, 헨리 타일러와 함께》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인기를 얻어 2022년까지 4시즌 동안 총 50편의 에피소드를 방영하였다. 타일러는 이 프로그램에서 미국의 유명 인사들을 리딩하였는데, 이들 중 일부는 리딩 후에 타일러의 능력을 믿게 되었다.

타일러가 영매로서 인정받게 된 계기는 알란 딕크(Alan Thicke)의 리딩이었다. 딕크는 타일러의 영매 능력에 회의적이었지만, 타일러는 딕크에게 가족들이 대대로 심장 문제를 겪었고, 딕크 자신도 곧 심장 두근거림과 순환기 문제를 겪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딕크는 자기 가족력에 그런 문제가 없다며 타일러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러나 몇 달 후에 딕크는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타일러의 이 리딩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고, 그를 “용한” 영매로 알려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타일러의 이러한 경력이 그의 후광효과 형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타일러가 발간한 두 권의 책은 후광효과 형성에 중요하다. 현재 미국에는 약 10만 명 이상의 영매가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 중 사후세계 또는 영적 현상을 소개하는 책을 발간한 경우는 드물고, 이런 종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는 거의 없다. 타일러는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된 2016년에 『두 세계 사이에서』라는 책을 출간했고,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영매 능력을 발견하게 된 계기와 이를 수용하고, 성장시킨 과정, 그리고 이 능력이 할리우드에서 인정받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리딩하면서 느낀 감정과 책임감에 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타일러는 《사후의 삶》이 방영되기 전에 자신의 두 번째 책인 『여기 그리고 여기 이후: 망자로부터의 지혜가 당신의 현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출간했다. 이 책은 종교적, 철학적 관점에서 사후세계를 이야기하지만, 이전 책보다는 세인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사후의 삶》이 제작될 당시 타일러의 나이는 26살이었지만, 10년 이상을 리딩하였다. 타일러의 외모와 태도, 그리고 말투도 무대 세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갈색 머리의 백인인 타일러는 백인 중산층이 좋아하는 단정한 옷을 입고 리딩에 임한다. 그는 많은 인터뷰에서 자기 외모가 〈나홀로 집에〉(1990)의 주인공, 맥컬리 컬킨과 닮았다고 소개하는데, 참석자들 모두 이를 인정한다. 영화 속 컬킨처럼, 타일러의 얼굴은 선한 느낌을 주며,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로 시터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 시터들의 말을 경청하고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진지하게 공감하는 태도는 시터들이 첫 만남과 촬영에서 가지는 긴장감과 어색함, 그리고 부담스러움을 안도감과 편안함, 그리고 친밀감으로 변화시키고 시터들의 상호작용과 협력을 쉽게 한다. 그는 리딩 시작 전 A4 크기의 메모장을 꺼내 볼펜으로 사후세계로부터 받는 느낌과 감정 등을 여기에 끄적인다. 타일러만 독해할 수 있는 낙서는 리딩마다 모양이 달라서 이러한 행동은 타일러가 사후세계의 의식과 접속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타일러가 리딩 시작 전 메모장에 볼펜으로 사후세계로부터 받는 느낌과 감정 등을 남긴 스케치
(출처: 타일러헨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tylerhenrymedium/)더보기


타일러가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저서, 그리고 수많은 미디어 인터뷰를 통해 유명해지자, 그를 만나길 원하는 사람들의 수요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타일러가 이들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게 되자, 그는 유명 영매들처럼 수천 명이 참석하는 대형 라이브쇼를 개최하고 일부 참석자만을 리딩한다. 《사후의 삶》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이러한 라이브 쇼를 볼 수 있으며, 그는 여기서 자기 성장 과정과 할리우드 진출 과정, 그리고 사후세계 의식들과 소통에서 얻은 교훈을 소개하면서 사후세계에 대한 이해가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그것이 어떻게 자아 성취에 도움이 되는지를 강조한다.

타일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매 중의 한 명이며, 그로부터 리딩을 원하는 홈페이지상의 대기자는 현재 30만 명이 넘었다. 타일러의 화려하고 성공적인 경력, 외모와 태도, 그리고 말씨 등은 무대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타일러는 《사후의 삶》에서 시터들과 사후세계 의식의 고통에 공감하고, 재치와 진지함을 가지고 이들을 위로하며, 사후세계 의식들의 감성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좀 더 편하고 알기 쉽게 시터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타일러의 화려한 경력과 활동으로 형성된 후광효과와 말씨, 태도, 의상, 외모 그리고 그의 출판과 미디어 활동 등이 결합하여 본격적인 리딩 무대가 형성되는데, 타일러는 이런 점들을 잘 이용해 “용한” 영매가 되었다.




집필자 소개

조관연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시각 콘텐츠 들여다보기』, 『영상인류학: 이론과 방법론』, 『와인에 담긴 역사와 문화』, 『춘향전과 한옥』(공저) 등이 있다. 이외에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주로 시각 콘텐츠와 문화변동 그리고 정체성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둘째 아우가 집에서 굿을 하다”

최흥원, 역중일기, 1759-05-01 ~

1759년 5월 1일. 어머니께서 갑자기 등에 한기를 느끼는 증상이 있으셨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깨끗이 낫지 않으셨다. 이 때문에 최흥원은 하루하루 애가 타고 두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아우들에게 편지가 왔는데, 거기 놀라운 소식이 적혀 있었다.

둘째 아우가 손자 복생의 병 때문에 마음이 흔들려서, 어제 무당인 계집종을 시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굿을 집에서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집에서 머물던 일족 할아버지가 밖으로 나가 있으셨다고 하니, 어찌 유학자의 문하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몹시 통탄할 일이었다.

사실 둘째 아우는 손자 복생이 병에 걸릴 때부터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몇 해 전 아들 상진을 병으로 잃고 나서, 이 손자마저 잃게 되면 둘째 아우는 영영 대가 끊길 참이었다. 그래서인지 손자의 병에 좋다면 무엇이든 할 기세였고,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실성한 것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본래 사람의 인명이야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거늘, 둘째 아우의 최근 행보는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이리하여 최흥원을 비롯한 문중의 어른들도 둘째 아우에게 여러 번 이러한 이야기로 타일렀으나, 둘째 아우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급기야 집에서 굿까지 하다니……. 최흥원은 둘째 아우가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굿판, 한해 농사를 마무리 하는 잔치”

오희문, 쇄미록, 1600-08-06

1600년 8월 6일, 오늘은 마을이 떠들썩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술과 안주를 모아가지고 냇가에 모여서 무당을 불러다가 북을 치면서 신에게 빌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고을에 호랑이가 출몰하여 사람을 해치고 가축을 물어가니, 무당을 불러 이러한 걱정을 없애달라고 굿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들은 노래하고 춤추면서 종일 놀이를 하였는데, 오희문 집의 계집종들도 가서 참여하였다. 참여했던 계집종들이 오는 길에 술 한 동이와 떡 한 행담을 가져왔기에 온 집안사람들이 모여 함께 먹었다. 굿을 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오희문 집에 이렇게 음식을 보내어왔으니 마을 사람들의 인심에는 감사할 일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런 굿판은 해마다 초가을이면 한 번씩 의례히 하는 일이라고 한다. 꼭 호환을 없애려는 것은 아니고, 한 해 농사일이 끝났으므로 호미를 씻는 의미로 놀고먹는 잔치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희문 역시 전란이 일어난 이후 해마다 농사일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고, 일 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충분히 알 법도 하였다. 허황된 굿이 아니라 마을사람들이 한번 쉬고 노는 의미라면, 이러한 굿도 꼭 나쁠 것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오희문이었다.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다”

김택룡, 조성당일기,
1616-10-16 ~ 1616-10-18

1616년 10월 16일, 김택룡은 이 날 운심이를 군내(郡內)로 보내 무당[巫史(무사)]을 찾아보게 하였다. 김택룡은 또 복이(福伊)를 둘째아들 김적이 있는 산양(山陽)으로 보내 그 편에 편지를 써서 아들의 병을 물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18일에 푸닥거리[사신(祀神)]를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10월 17일, 아침에 군내로 갔던 운심이가 돌아왔다. 돌아와서 전하길, 순좌(舜佐)의 처를 부르려고 했는데 사정이 있다고 핑계대고 오지 않으려 한다고 하였다. 김택룡은 ‘순좌의 처는 무당이긴 해도 꽤 영리해서 운수도 점칠 줄 알아[추수(推數)] 괜찮건만. 그리고 우리 집에 오랫동안 출입하였으니 그 점도 안심인데...’라고 생각하였다.

10월 18일, 이 날 김택룡은 예정대로 영주 산장(山庄)에서 푸닥거리를 하며 아들 김적의 병이 낫기를 기도하였다.

“하늘과 부처와 귀신의 힘을 모두 모은 기우제”

노상추, 노상추일기,
1764-05-21 ~ 1764-05-27

7년째 농사철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을 졸여야 했다.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판에 어린 벼를 심어 놓았다가 논에 물을 채운 뒤 옮겨 심는 이앙법(移秧法) 역시 충분한 양의 물과 수리시설이 필요한 농법이었다. 올해 역시 매우 가물어서 여름이 되어도 비가 온 날이 5~6일에 지나지 않았다. 또 비가 온다 해도 흙을 충분히 적실 정도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에 황폐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콩 모종마저 말라죽을 정도였다. 논의 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안 오는 비를 사람의 힘으로 내리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저 손가락을 빨며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국왕 이하 모든 백성은 가뭄이 든 이래 7년간 매년 기우제를 지내왔다. 기우제를 지낸다고 반드시 비가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비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풀어주는 효과는 있었다. 올해 역시 기우제가 거행되었다. 수령은 선산 근처의 큰 산인 금오산(金烏山)에 승려와 무당, 소경까지 모두 불러 모아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하늘과 산신, 부처, 그리고 귀신에게까지. 빌 수 있는 대상에게는 모두 빈 셈이다.

“과거를 꿰뚫어보는 맹인 점술가 ‘김여추’”

점괘패(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권문해, 초간일기,
1584-03-09 ~ 1584-03-15

1584년 3월, 권문해는 추운 겨울을 지나 어서 봄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3월 9일, 바라본 소백산에는 겨울처럼 눈이 내려온 산이 다 하얗게 되었다. 더욱이 연일 서리가 내려 초목의 싹이 대부분 시들어 죽어가는 걸 보니 마음까지도 메마르는 듯하였다. 그러던 중 예천군 성주 류세무와 경상북도 선산부백(善山府伯) 류덕수(柳德粹)가 경상북도 의성군의 대곡사(大谷寺)에 만나기를 청하였다.

3월 14일, 권문해는 집을 나서 대곡사로 향했고 그곳에서 3일을 머무르며 류세무와 류덕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3월 15일, 이야기 중 경상북도 선산군의 부백 류덕수에게 자신의 고을에 맹인 점쟁이 김여추(金汝秋)에 대해서 듣게 된다. 앞을 못 보는 맹인이지만 그 누굴 만나도 그가 살아온 과거를 귀신같이 맞춘다는 것이다. 권문해와 류세무는 명경수(明鏡數) 김여추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여추의 이야기를 한참 듣던 류세무는 율시 한 수를 쓰는데,

화와 복은 다 이미 정해진 것 禍福皆前定
꽃 피고 시드는 것은 각기 때가 있다네 榮枯各有時
정원의 꽃은 일찍 떨어져 버리지만 花落園中早
산골짝 옆 소나무는 오래도록 산다네 松生澗畔遲
현묘한 이치 원래 수가 있는 것이니 玄機元有數
조물주가 어찌 사사로움을 용납하리오 造物豈容私
모름지기 반계(磻溪) 늙은이를 알아야 할거니 須識磻溪叟
끝내 임금의 스승이 되었네 終爲帝者師

대곡사에 모인 권문해와 류세무, 류덕수는 앞 못 보는 맹인 점쟁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몰랐다.

닫기
닫기
관련목록
시기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장소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