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콘텐츠코리아랩 BI (출처: 제주콘텐츠코리아랩 홈페이지)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다. 시대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콘텐츠는 이제 시대를 만드는 키워드가 되었다.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은 그 규모가 크고 파급력이 매우 높아 오늘날 경제의 핵심 키워드이자 미래의 대표적인 먹거리로 손꼽힌다.
일찍이 대한민국 정부는 콘텐츠 산업 진흥을 통한 문화강국 실현과 지역 주도형 콘텐츠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고자 “지역기반형 콘텐츠코리아랩 운영사업”을 추진하였다. 필자가 총괄하고 있는 사업이 바로 ‘제주’ 지역기반형 콘텐츠코리아랩 운영사업이다. 지역의 여건에 맞게 지역의 문화자원을 콘텐츠로 가공하고 분야별 성장 및 전·후방 산업 동반성장을 도모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최상의 인프라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콘텐츠 창작‧창업자들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가교(架橋) 구실을 하는 것이다. 실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 산업 기반을 조성하는 이곳. 이곳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해양문화 콘텐츠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변화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제주는 섬이다. 섬이란 특정의 바다나 물로 둘러싸인 특별하면서도 독립적인 의미를 지닌 땅이다. 땅이면서도 바다이기도 한 섬은 저마다 고유하면서도 독자적인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 독특하면서도 특별한 민담 설화, 신화를 포함한 민속 관행과 다채롭고 풍성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다(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2023). 이러한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우리는 ‘문화원형’이라고 부른다. 경쟁력과 파급력을 모두 갖춘 콘텐츠의 공통점이 탄탄한 문화원형이라는 사실은 제주가 콘텐츠의 보고(寶庫)로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화탐정AR 제주 용궁 올레편 (출처: 주렁주렁스튜디오 홈페이지)
1만 8천 신들이 있다는 ‘신들의 고향’ 제주는 특히 해양을 둘러싼 다양한 스토리가 즐비하다. 해양을 둘러싼 신화와 민담을 보존·전승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거니와 나아가 이를 원천 IP로 적극 활용해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하는데 이르렀다. 하나의 소재를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해 파급효과를 높이는(OSMU) 웹툰, 웹 소설 콘텐츠는 물론이고, 실감형 뮤지컬 〈신비로운 여신수업(2019)〉, 〈그림책 속 제주이야기(2022)〉나 각종 게임을 제작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제주와 관련 있는 인물과 전설을 기반으로 AR 캐릭터 동화 〈설화탐정AR: 제주 용궁 올레편〉과 같은 다각도의 결과물이 도출되어 해양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해녀의부엌 북촌점 해녀의바다 (출처: 해녀의부엌 홈페이지)
제주의 바다에는 삶이 살아있다. 제주의 바다와 함께 공존한 수많은 이들의 삶을 콘텐츠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들의 삶을 해양문화라는 커다란 범주에서 설명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사회해양교육 및 해양문화 활성화 조례(시행 2021.2.19.)]에는 “해양문화”를 해양과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난 정신적‧물질적 산물의 총체로서 해양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전승되어 온 전통과 유산 및 생활방식 등을 지속해서 보존하고 계승하며 해양을 활용하여 보고,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인간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바다에 깃든 삶을 녹여낸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해녀의 부엌(대표 김하원) 있다. 제주의 힘과 해녀의 정신이 깃든 식문화를 상생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해녀의 부엌〉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 어촌계와 연계해 마을의 유휴공간(어판장)을 공연장으로 탈바꿈해 마을을 활성화했다. 공연장에는 프로젝션 맵핑 등의 실감 콘텐츠를 접목해 해녀의 삶을 콘텐츠화한 공연을 선보이고, 해녀와 제주 바다가 만나 차려낸 청정 제주 원물 한 상을 제공한다. 이곳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일구었던 해녀의 삶을 만나고 제주를 오롯이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Covid-19) 이후 달라진 시대 분위기 속 제주는 치유와 회복의 메카가 되었다. 제주지역 기반 콘텐츠 분야 창업‧성장 지원사업을 운영하며 가장 많은 지원 및 선정 장르가 웰니스(Wellness)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웰니스는 ‘웰빙(well-being)+행복(happiness)+건강(fitness)’의 합성어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한경 경제용어사전, 2013).
섬을 ‘힐링(healing)’이라는 치유 공간이자 ‘유토피아(Utopia)’로 보는 오늘날 많은 이들의 인식과 부합한다. 이는 여러 지자체에서 섬을 휴식과 힐링의 장소로 여기고 시행하는 다양한 관광시책과도 맞물린다.
이러한 경향에 맞춰 섬의 역사와 문화를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를 발굴하고 응용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해양을 둘러싼 섬이라는 특별한 존재를 치유라는 테마를 접목해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제주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질그랭이센터 (출처: 비짓제주)
제주에서 치유의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콘텐츠는 눈과 귀로 담는 바다를 매개로 진행되는 요가나 명상도 있지만, 제주 곳곳의 작은 마을과 연계한 로컬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마을에 느긋하게 머물며 일상과 분리되어 치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가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제주 방언으로 작은 마을을 뜻하는 ‘카름(가름)’이라는 단어와 머뭄을 뜻하는 영단어 ‘스테이(stay)’를 접목한 ‘카름스테이’가 있다. 지난해 카름스테이를 운영한 해안마을은 해녀체험학교와 연계한 웰니스 관광콘텐츠를 발굴해 마을의 활성화와 방문객의 치유를 도모하였다. 금년부터는 콘텐츠 산업 저변을 확대하여 마을 고유의 해녀문화에 청년 창업가의 아이디어를 결합, 다양한 콘텐츠를 양산하는 로컬브랜드 활성화 지원사업을 추진중이다. 이와 함께 민관이 조성한 워케이션(workation) 공간, ‘질그랭이센터’를 운영하며 사무공간과 더불어 해녀여행, 오름, 용천수와 당, 다크 투어 등 해양자원을 활용한 휴식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해양자원을 활용해 몸과 정신을 치유하는 “제주 해양치유 센터”가 들어선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어 그 기능이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해양치유센터는 2023년 완도에 첫 개소를 알린 데 이어 제주도·충청남도 태안, 경상남도 고성, 경상북도 울진에 건설될 예정이다. 제주도의 해양자원을 활용해 도민과 관광객을 치유함으로써 관광산업과 해양치유를 접목한 신성장 해양산업으로 육성하는 로드맵을 구성하고 있다. 지금, 제주의 해양은 ‘치유’라는 키워드로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 바다를 둘러싼 콘텐츠 산업에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기존의 콘텐츠가 해양을 무대로 한 삶과 이야기를 ‘활용’하는데 주목했다면, 최근에는 해양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무분별하게 해양을 활용한 인간에서 비롯된 각종 부산물이 해양생태계를 넘어 인간의 삶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제주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제주 또한 2021년 기준 해양폐기물이 2만t을 훌쩍 넘어선 이래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해양 문제에 주목한 도내 콘텐츠 창작자와 기업은 문제 해결을 위한 다채로운 콘텐츠를 도출하고 있다. 공급된 콘텐츠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충족할 수 있는 대상을 소비하는 ‘가치소비’ 트렌드 수요와 맞물려 산업환경을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제주 해안가에 버려지는 해양쓰레기를 주우며 건강과 제주바다를 지키는 비치코밍(Beachcombing), 소위 플로깅(Plogging)은 캠페인 문화를 넘어 대표적인 기업의 ESG 실천 전략이 된 지 오래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必터: 제주바다”는 우리의 놀이 ‘터’이자 반드시 지켜야 할 ‘터’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해양쓰레기 팝업 전시 스토어를 개최하고 환경‧음악‧문화가 결합한 문화관광 축제 ‘필터(filter/必터) 페스티벌’을 매년 개최하는 등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인스타툰 홍주비 (출처: 홍주비 인스타그램)
도담스튜디오 패션제품 (출처: 도담스튜디오 인스타그램)
JEMI페스타 팝업놀이터 (출처: 342워크 홈페이지)
콘텐츠 창업 시장도 해양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창업한 쓰담패밀리(대표 이홍주)는 제주도 내 해양폐기물 문제를 환기하는 인스타툰을 연재하고 캐릭터를 발굴해 친환경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제주 해안가에 버려진 폐플라스틱을 모아 업사이클링 패션소품을 제작하는 도담스튜디오나, 어업에서 발생하는 부표 등 각종 쓰레기를 활용한 놀이 콘텐츠를 만드는 342워크와 같은 초기 창업 기업의 꾸준한 활동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유명 패션·레저스포츠·코스메틱 브랜드가 각종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제주 해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폐자원 활용 제품을 출시하고 있어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해양쓰레기 수거부터 재활용에 이르는 자원순환 관리 솔루션을 제시하는 해양문화 콘텐츠 산업은 제주의 해양문화를 새로이 쓰고 있다.
첨언: 제주 지역의 해양문화를 기반으로 한 다채로운 콘텐츠와 그 산업을 조망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해양을 주제로 한 콘텐츠 산업 경향을 살펴보면, 해양은 더 이상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배경지(背景地)가 아닌 콘텐츠 장르 그 자체가 되었다. 지구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넓고 큰 바다 그 정의 자체는 해양문화콘텐츠의 잠재력을 설명하기 충분할 것이다. 해양을 맞댄 지역 간의 교류와 네트워킹 활성화를 통해 새로이 탄생할 콘텐츠는 앞으로 해양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한편, 이 글에 언급된 콘텐츠 창작‧창업 사례의 다수는 (재)제주콘텐츠진흥원(前, (재)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지원한 기업을 대상으로 해 전체를 세밀하게 조망하기에 한계가 있음을 안내하는 바이다. 지역 곳곳에서 콘텐츠 창작·창업 선순환구조를 구축하고 건강한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는 콘텐츠 분야 창작‧창업자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관계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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