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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

슬기롭거나 혹은 공교롭거나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사본〉 (출처: 위키피디아)


사람들은 의사라면 응당 슬기롭기를 바란다. 시니컬하거나 순수하거나 아재 유머라도 괜찮으니 어쨌든 약간의 웃음을 갖추고, 무엇보다도 환자에 대한 연민을 갖추기를 바란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인류에 봉사하고 환자의 비밀을 유지하며 인종·종교·국적·정치·재산 여부나 지위 고하를 초월하기는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는다. 병원에 들어가면 무사히 살아 나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원하는 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뮤지컬 《Little Shop Of Horrors》의 한 장면〉
(출처: Matthew Murphy and Evan Zimmerman)


뮤지컬 《Little Shop Of Horrors》에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치과의사 오린이 그러하다. 병원에서는 하얀 가운에 하얀 마스크, 하얀 장갑에 하얀 모자를 쓰는 오린이지만, 병원만 벗어나면 검은 가죽 자켓을 입고 무거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위험하게 모는 그는 사디스트 사이코패스다.

어릴 때부터 이웃의 반려동물의 씨를 말리던 오린을 보고 이 사이코패스의 어머니는 생각한다. “아들아, 고통에 특화된 너는 치과의사가 딱이다!” 어머니 덕에 일찌감치 소년원에 들어갔어야 했을 오린은 멀쩡하게 치대를 들어가 정말로 치과의사 면허를 따냈다. 그리고 환자 앞에서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발산하며 가까운 사람들의 눈두덩이에 퍼런 보랏빛 멍을 그려주는 나날을 보내며 다시없을 쾌활한 인생을 살아간다.

이런 오린에게는 가스라이팅을 통해 자신감을 팍팍 죽여 놓은 여자친구 오드리가 있다. 그리고 오드리를 일편단심 바라보며 짝사랑하는 남자주인공 시모어가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린은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웃음가스를 본인이 흡입하고 넋이 나가 있다가 자신을 찾아온 시모어를 바라보며, 이미 지나치게 들이마신 웃음가스 때문에 박장대소 하면서 죽어간다.

오린은 시모어에게 가스를 끄라 명령하지만, 소심한 시모어는 그를 죽이러 온 터라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오린이 오들오들 떨면서 구석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본다. 그리고는 죽은 오린을 잘 싸서 자신이 일하는 꽃집의 지하실로 끌고 가 토막 낸 뒤 식인식물 오드리2의 먹이로 던져준다.

극중 가장 웃긴 노래를 부르는 오린이 그렇게 죽은 후, 바로 식인식물 오드리2의 습격이 이어지면서 뮤지컬은 죽고 죽이고, 먹고 먹히는 끔찍한 엎치락뒤치락 호러가 이어지는데 그 와중에 시모어와 오드리는 서로의 숨겨왔던 사랑도 고백하고 식인식물로부터 지구도 구하고 행복한 해피엔딩에 이른다.


〈동명의 영화 《Little Shop Of Horrors》(1960)의 한 장면〉 (출처: Imdb)


이 작품은 훗날 디즈니의 상징이 되는 작곡가 알란 맨켄(Alan Menken)의 1982년 오프-브로드웨이 초연작으로 반전의 유머감각이 뛰어났던 작사가이자 대본작가 하워드 애쉬먼(Howard Ashman)과의 합작이다. 원작이 되는 흑백영화(1960)에는 치과를 찾아오는 마조히스트 환자로 잭 니콜슨(Jack Nicholson)이 등장한다. 소위 말하는 ‘정상’의 인물은 한 명도 없지만 그들 안의 어느 한 면모는 보는 사람과 반드시 닿아 있다. 그 부분은 부끄럽게도 사람들이 가장 숨기고 싶어하는 허영심이나 나약함이다. 이 작품은 이런 부분을 죄책감 하나 없이 웃으며 드러낸다.

오린은 등장인물 가운데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한 인물이다. 모두가 브루클린의 가난한 거리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을 때 오로지 그만 맨하튼의 멋들어진 건물에서 일한다. 그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불경한데 심지어 나쁜 사람이니 소중한 식인식물의 배를 채워줄 첫 인물이 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그렇게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소름 돋는 치과의사는 오드리2의 뱃속으로 깔끔하게 소화된다. 환자로 만나면 참으로 공교롭고 난처하고 무서울 치과의사 오린은 그렇게 사라지지만, 이 세상에 그런 의사가 정말 코믹 뮤지컬 속 오린 한 명뿐일까?


〈국립창극단의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2024)〉 (출처: 국립창극단)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의사는, 특히나 무대 위의 의사들은 죽은 자를 소생하는데 더 관심이 많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주인공 옹녀는 장승을 땔감으로 쓴 남편 변강쇠가 동티가 들어 시름시름 앓자 일단 점집으로 향한다. 굿으로 어떻게든 이 액운을 풀어볼 참이나 장승의 기운이 워낙 세 도저히 풀지 못하자 결국 의원을 찾아간다. 그것도 아무나 찾아가는 게 아니고 함양의 명의를 찾아 가진 돈을 다 내놓고 사정사정 하여 데리고 온다. 이 의원은 드러누워 끙끙 앓는 변강쇠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야말로 오만가지 정성을 들인다. 원작에 따르면,

좌수맥(左手脈)을 짚어본다. 신방광맥(腎肪胱脈) 침지(沈遲)하니 장냉정박(臟冷精薄)할 것이요, 간담맥(肝膽脈)이 침실(沈失)하니 절늑통압(節肋痛壓)할 것이요, 심수맥(心水脈)이 부삭(浮數)하니 풍열두통(風熱頭痛)할 것이요, 명문삼초맥(命門三焦脈)이 이렇게 침미(沈微)하니 산통탁진(酸通濁津)할 것이요, 비위맥(脾胃脈)이 참심(참심)하니 기촉복통(氣促腹痛)할 것이요, 폐대장맥(肺大腸脈)이 부현(浮弦)하니 해수 냉결(冷結)할 것이요, 기구인영맥(氣口人迎脈)이 내관외격(內關外格)하여 일호륙지(一呼六至)하고 십괴(十怪)가 범하였으니 암만해도 죽을 터이나 약이나 써보게 건재(乾材)로 사오너라. 인삼(人蔘), 녹용(鹿茸), 우황(牛黃), 주사(朱砂), 관계(官桂), 부자(附子), 곽향(藿香), 축사(縮砂), 적복령(赤茯笭), 백복령(白茯伶), 적작약(赤芍藥), 백작약(白芍藥), 강활(羌活), 독활(獨活), 시호(柴胡), 전호(前胡), 천궁(川芎), 당귀(唐歸), 황기(黃기), 백지(白芷), 창출(倉朮), 백출(白朮), 삼릉(三稜), 봉출(蓬朮), 형개(荊芥), 防風(방풍), 소엽(蘇葉), 박하(薄荷), 진피(陳皮), 청피(靑皮), 반하(半夏), 후박(厚朴), 용뇌(龍腦), 사향(麝香), 별갑(鱉甲), 구판(龜板), 대황(大黃), 망초(芒硝), 산약(山藥), 택사(澤瀉), 건강(乾薑), 감초(甘草). 탕약(湯藥)으로 써서 보자.

형방패독산(荊防敗毒散),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방풍통성산(防風通聖散湯), 자음강화탕(滋陰降火湯), 구룡군자탕(구龍君子湯), 상사평위산(常砂平胃散), 황기건중탕(黃기建中湯), 일청음(一淸飮), 이진탕(二陳湯), 삼백탕(三白湯), 사물탕(四物湯), 오령산(五靈散), 륙미탕(六味湯), 칠기탕(七氣湯), 팔물탕(八物湯), 구미강활탕(九味羌活湯), 십전대보탕(十全大補蕩). 암만써도 효험(效驗)없어 환약(丸藥)을 써서 보자.

소합환(蘇合丸), 청심환(淸心丸), 천을환(天乙丸), 포룡환(抱龍丸), 사청환(瀉淸丸), 비급환(脾及丸), 광제환(廣濟丸), 백발환(百發丸), 고암심신환(古庵心腎丸), 가미지황환(加味地黃丸), 경옥고(瓊玉膏), 신선고(神仙膏)가 아무것도 효험없다. 단방약(單方藥)을 하여 볼까.

지렁이집, 굼벵이집, 우렁탕, 섬사주(蟾蛇酒)며 무가산(無價散), 황금탕(黃金湯)과 오줌찌기, 월경수(月經水)며 땅강아지, 거머리, 황우리, 메뚜기, 가물치, 올빼미를 다 써 보았지만 효험없다. 침이나 주어보자.

순금장식(純金粧飾) 대모침통 절렁절렁 흔들어서 삼릉(三稜)을 빼여들고 차차 혈맥(穴脈) 집퍼 줄 때, 백회(百會) 짚어 통천(通天) 주고, 뇌공(腦空) 짚어 풍지(風池) 주고, 전중(전中) 짚어 신궐(神闕) 주고, 기해(氣海) 짚어 대맥(帶脈) 주고, 대저(大저) 짚어 명문(命門) 주고, 장강(長强) 짚어 간유(肝兪) 주고, 담유(膽兪) 짚어 소장유(小腸兪) 주고, 방광(膀胱) 짚어 곡지(曲池) 주고, 수삼이(手三里) 짚어 양곡(陽谷) 주고, 완골(腕骨) 짚어 내관(內關) 주고, 대릉(大陵) 짚어 소상(小商) 주고, 환도(環跳) 짚어 양능천(陽陵泉) 주고, 현종(懸鍾) 짚어 위중(委中) 주고, 승산(承山) 짚어 곤륜(崑崙) 주고, 신맥(申脈) 짚어 삼음교(三陰交) 주고, 공손(公孫) 짚어 축빈(築賓) 주고, 조해(照海) 짚어 용천(涌泉) 주어, 만신(萬身)을 다 쑤시니, 병에 곯고 약에 곯고 침에 곯아 죽을 밖에 수가 없다.

의원은 결국 못 고친다며 가버린다. 하지만 이 의원이 이리 저리 들쑤신 덕에 말 한 마디 못하고 끙끙대던 변강쇠가 용을 써서 입을 열고 옹녀에게 마지막 작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창극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이 장면에는 의녀들까지 등장해서 여기에 춤과 노래를 곁들이는데, 어쨌거나 이 의사는 원작인 판소리에서도, 새로 만들어진 창극에서도 자기 역할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 아드레날린을 끌어올려준다.

살리지는 못해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진짜 의사다. 심지어 이 의사는 극중의 모든 남자들이, 눈이 안보이는 봉사까지 포함해서 옹녀만 보면 껄떡이느라 정신을 못 차리건만 유일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작별을 고하는 유일한 남성이기도 하다. 그는 아마도 변강쇠를 살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다음에 비슷한 환자를 만나면 어떻게 살릴까 고민하며 자신의 의원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옹녀의 진짜 삶은 변강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시작되겠지만 우리는 그 이후 옹녀의 삶은 아직 알 수 없다. 난봉꾼에 노름꾼인 변강쇠를 서방으로 맞아 삯바느질부터 남의 집 일까지 온갖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며 억세게 살림을 꾸려갔던 옹녀의 뒷이야기가 진정으로 슬기로운 옹녀의 싱글 라이프였기를 바란다. 그 당시에 자신의 죄도 아닌데 박대를 당하며 고향 땅을 떠날 때, “오냐 옹녀, 어서 가자! 흥!” 하고 떠났던 그 기개에 어디로도 떠나지 못했던 동시대의 수많은 여성들이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참으로 슬기로운 옹녀다.

1986년 개봉 영화 〈Little Shop of Horrors - Dentist Song〉
코미디언/배우인 스티브 마틴이 사디스트 치과의사 오린으로 분했다.   더보기


국립 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2014 초연   더보기





집필자 소개

이수진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 〈그리스〉, 〈넌센스〉, 〈에비타〉 등 번역하고,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등을 썼습니다.〈뮤지컬 스토리〉 저자 / 더 뮤지컬 어워드 심사위원 역임 등
“마마를 피해 안동 집으로 보낸 아내가 마마에 걸리다”

마마배송굿 김경철, 경상도하양현일록,
1761.05.04.~1761.06.25

근래 하양현감 김경철의 근심은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과 또 하나는 가뭄으로 보리와 밀이 모두 말라버린 것, 그리고 얼마 전부터 경상감영이 있는 대구부와 하양현 일대에 마마가 퍼져 여러 사람이 마마에 걸려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 등이다.

고민 끝에 김경철은 일단 자신을 따라 하양현에 와 있는 아내를 안동 집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말을 꺼냈을 때 아내는 아픈 남편을 두고 떠날 수 없다며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김경철은 거듭 설득했고, 침 치료를 받기 위해 사람을 부르자 아내는 김경철이 침을 다 맞고 나면 떠나겠다고 했다.

4월 26일부터 시작한 김경철의 침 치료가 5월 3일에 끝났는데, 확실히 하루가 다르게 증세가 나아진 듯하였다. 김경철은 바로 다음 날인 5월 4일에 아내의 행차를 출발시켰다. 아들인 갑동이가 모시고 가고, 손자인 쾌득(快得)도 따라갔다. 행차가 떠나가는데 김경철의 아내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계속 김경철을 돌아봤다. 김경철은 자신의 오랜 병환으로 아내의 고생이 더욱 많았던 것을 알기에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4일에 아내의 행차를 따라갔던 사람과 말은 10일에 돌아왔는데, 여기서 출발한 지 나흘 만에 집에 무사히 도착하였다고 했다. 조카들이 모두 내려오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웠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 김경철은 다시 약을 먹으면서 비를 간절히 기다리며 하양의 높은 산마다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이틀에 한 번씩 하양현의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다 보니 김경철의 병증이 다시 악화하였다. 너무 아픈 날은 직접 산에 오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보내서 기우제를 지내야 했다.

한 달 정도 지난 6월 14일에 며칠 전 안동 집에 보냈던 태몽(太蒙)이 돌아와서 집안 식구들의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김경철의 아내는 몸이 아파 종일 신음하고 있고, 며느리의 병도 차도가 없다고 했다. 마마에 걸릴까 봐 아내를 안동 집으로 보냈는데, 신음이 나올 정도로 몸이 아프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김경철은 여름 고과에서 최하의 평가를 받고 파직되고 말았다. 모함을 받아 파직을 당하게 되니 기가 막힐 지경이었으나 어차피 병이 낫질 않아 여러 번 사직을 청했던 상황이니 차라리 잘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게다가 아내와 며느리의 병증이 심상치 않아 마음이 온통 집으로 가 있었으니 빨리 정리하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즉시 집에 소식을 알리고 곧 출발하겠다고 전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아들 갑동이 20일에 하양현에 도착했다. 아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17일에 출발하였으나 물에 막혀 이제야 도착했다고 했다. 김경철은 먼저 식구들의 소식을 물었는데, 아내는 계속 아픈 상황인데 두창(頭瘡)과 상풍(傷風)의 병증이라고 했다. 근심과 염려가 끝이 없었다.

김경철은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가기 위해 며칠 동안 서둘러서 하양에서의 신변을 정리하고 25일에 아들과 함께 하양을 출발했다.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의 병세를 살펴보고 병이 나을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자신의 병도 깊고, 온 가족이 이리 아프니 답답하기만 했다.

“소실의 만성 복통”

이우석, 하은일록,
1884-10-03~1884-12-09

한겨울이다. 오늘도 저물녘에 눈이 내렸다. 이우석(李愚錫)이 며칠 집을 비웠다가 저녁 즈음에 집에 돌아와 보니, 그저께부터 소실이 복통이 나서 고통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집에서는 계양탕(桂養湯)을 달여 복용시켰으나 증세에 차도가 없다.

소실이 아픈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두 달 전인 10월에도 밤중에 자다가 닭 울 때쯤 복통이 도져 앉으나 누우나 불편하다면서 고통을 호소하였다. 그때는 평진탕(平陳湯)을 달여 먹였는데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복통에 잘 듣는 약이 무엇일까. 그때도 한 사흘 잠을 못 잘 정도로 고생을 했다. 정기산(正氣散)이니 소체환(消滯丸)이니 하는 약들을 연이어 먹여봐도 효험이 없었다. 애꿎은 아내는 그 후에도 며칠간 밤새도록 괴로워했다. 보다 못한 이우석은 임경운(林慶雲)이라는 사람을 시켜 의원 박생(朴生)에게 증세를 기록해 보냈다. 다음날 돌아온 임경운은 처방을 가지고 왔지만, 이미 아내의 병은 조금 나아진 상태였다. 처방 덕분인지 병이 나을 때가 되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복통은 차도를 보였다. 대신 이우석 자신이 감기로 드러눕는 바람에 집안에 약 냄새는 그칠 날이 없었다. 그렇게 두 달쯤 아무 일이 없었는데 다시 아내의 복통이 도진 것이다.

이번에는 그때 임경운을 통해 받아온 처방대로 초기부터 약쑥을 달여 아내에게 먹여보았다. 과연 의원이 처방이 효험이 있었는지 조금은 증상이 덜한 것 같았다. 연일 추운 날씨에 아내까지 몸이 좋지 않아 참으로 걱정스럽다. 부디 당분간은 복통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우석은 하염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근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약복용이 효험이 없어 침 치료를 시작하다”

김경철, 경상도하양현일록,
1761-04-26~1761-05-03

김경철은 그동안 몸이 아파서 여러 처방으로 약을 먹은 지 벌써 5달이 넘었다. 그러나 도무지 효험이 없었다. 아무래도 약만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듯하여 침술에 능한 최윤정(崔允貞)을 불렀다. 4월 26일 최윤정이 와서 침을 놨고, 그 후로 매일매일 최윤정에게 침을 맞았는데 5월 3일까지 침 1도(度)를 다 맞았다.

이렇게 꾸준히 침을 맞은 이후에 김경철은 가슴이 막힌 것 같은 증상이 약간 줄어든 듯했다. 효과가 지속되면 앞으로 침 치료를 더 받아볼 생각이 들었다.

“눈병으로 세상이 온통 흐릿하다”

김광계, 매원일기, 1643-05-17~07-18

1643년 5월 17일, 아침에 밖에 나가니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세상이 온통 흐릿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안개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광계는 눈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 날이 맑게 갰지만, 김광계의 눈앞은 말끔하지가 않았다. 김광계가 마지막으로 눈병을 앓았던 것은 1609년, 34년 전이었다.

이 날부터 7월 중순이 되어서까지 눈병이 낫지를 않았다. 7월 16일에는 눈이 아파서 결국 책도 보지 않고 온종일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가로운 것도 좋았지만 눈을 써서 섬세하게 해야 할 일들도 있는데, 몇 달간 눈병 때문에 처리를 하지 못하였으니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김광계는 눈병 치료를 위해서 의원을 만나보지도 않았고, 젊을 때처럼 초정의 약수에 눈을 씻으러 가지도 않았다.

“약 짓다가 약 짓는 연기에 중독되다”

군관청(軍官廳)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노상추, 노상추일기,
1787-12-25~1787-12-28

아침식사를 하고 있던 노상추에게 갑산 부사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별말 없이 단지 갑산부 관아에 와 달라는 말만 간략히 적혀 있었다. 부 관아에 가 보니, 갑산 부사가 얼마 전 함흥에서 만병환(萬病丸)을 만드는 약재를 사 왔으니 함께 약 짓는 것을 의논하고 약을 달여 보자는 것이었다. 정말 약 이름처럼 만병통치약인지 그 처방을 알 수는 없었으나 하룻밤 동안 꼬박 달여야 하는, 공이 많이 들어가는 약인 듯했다.

노상추는 결국 갑산 부사가 붙드는 바람에 밤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부 관아의 군관청에서 약 달이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약탕기에 피어오르는 김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자던 방과 다른 방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신음하는 노상추를 돌보던 하인이 말하기를, 해가 떠도 부르시지를 않기에 방에 들어가 보니 쓰러져 계시더라며, 연기를 마신 것 같다고 했다. 해가 질 때까지 정신을 도무지 차릴 수가 없었다. 함께 약을 달이며 한방에서 잤던 책방의 황조언(黃調彦) 석사(碩士)도 노상추 옆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래도 하루 만에 증상은 나아졌지만, 약을 달이자고 했던 갑산 부사는 미안했는지 다음날 연회를 열어 주었다.

“의국 사람을 불러 약을 조제하다”

약탕기 김광계, 매원일기,
1642-05-11~1642-05-13

나이가 들어갈수록 김광계의 약에 대한 관심은 깊어져만 갔다. 자신이 직접 약을 조제하기도 하고, 서울에서 약장수가 오면 귀한 약재를 받아놓기도 했다. 아들과 조카들을 모아놓고 환약을 만들게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역시 조제법이 어려운 것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1642년 5월 11일, 김광계는 이날 몸이 아파서 일과를 접고 쉬었다. 하던 일을 하지 못해서 더욱 마음이 찜찜하였는데, 이게 모두 건강 때문이다 싶었는지, 결국 안동 읍내에 있는 의국(醫局)에서 막숙(莫叔)을 불러와서 자음지황환(滋陰地黃丸)을 조제하도록 하였다. 자음지황환은 숙지황환(熟地黃丸)이라고도 부르는데, 빈혈과 신허(腎虛)로 눈앞이 아찔하며 잘 보이지 않을 때 쓰는 약이다. 하루 만에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약이 아닌지 막숙은 여러 날 김광계의 집에 머물러야 했다.

김광계가 글을 읽으며 몸조리를 하고 있는 동안, 막숙은 자음지황환 2첩을 조제하고, 추가로 소풍산(消風散) 15첩을 조제하였다. 소풍산은 풍간(風癎)을 치료하기 위해 먹는 약인데, 풍간은 간질이나 뇌혈관장애 후유증의 일종이다. 김광계가 조제하라고 한 두 약이 치료하는 병의 공통적인 특징은 기가 허해서 걸리는 병이라는 것인데, 김광계가 스스로 허약해졌다고 느꼈던 것 같다. 작업은 그 다음날인 5월 13일 오후에서야 겨우 끝났고, 마침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의국 사람은 비로소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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