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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와 목금

손님이 찾아왔다


망허촌 사또 한익범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역병이 분명했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시작은 마을에 들렀던 나그네로부터였다. 마을 입구의 주막에 묵었던 나그네는 그날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질 못했다. 얼굴에 붉은 꽃이 피더니 열이 펄펄 끓었다고 했다. 하필 주막에는 그로부터 며칠 동안 손님도 없었고, 왕래도 없었다. 주막이 민가가 모여있는 곳과는 좀 떨어진, 마을 입구의 길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달 나뭇짐을 배달하는 임씨 형제가 갔을 때는 나그네와 주모, 주막의 머슴과 찬모 모두 죽은 뒤였다.

그리고, 며칠 후 임씨 형제가 쓰러졌다. 그들 또한 얼굴에 붉은 꽃이 피어나더니 팔다리까지 번졌다. 열이 올라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더니 고을 사람 스물이 넘게 쓰러졌고, 벌써 그 중 세 사람이 죽었다. 고을에 초비상이 걸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관아에는 역병에 걸린 사람들 소식이 속속 들어왔다.


〈아이들은 역병에 더욱 취약했다.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한 장면〉 (출처: SBS)


“예방(禮房)은 속히 들라.”

예방이 얼른 달려왔다. 예방은 머리가 허연 노인이었다.

“고을에 역병이 창궐하니 참으로 큰일이오. 우선 역병에 걸린 사람 집은 금줄을 걸어 사람의 왕래를 막도록 하시오.”

예방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건 벌써 시행하고 있습니다.”


〈허준(許浚, 1539~1615)이 1613년 간행한 『신찬벽온방』〉 (출처: 국가유산청)


“그리고 『신찬벽온방(新撰辟瘟方)』을 참고하여 약을 지어 돌리도록 하시오. 우리 고을에 의원은 몇이나 있소?”

“의원은 허인이라고 한 명이 있습니다.”

“의원이 달랑 한 명뿐이라는 거요?”

“옆 고을에도 의원이 있기는 한데, 이미 우리 고을에 역병이 돈다는 소문이 돌아서 데려올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의약에 관해 아는 이는 누구 없소?”

“정 진사 나리가 의약에 대해서 좀 아는 걸로 들었습니다.”

“그럼 한 번 들러봐야겠소. 예방도 같이 갑시다.”

“저는 『신찬벽온방』을 찾아서 허 의원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그건 이방(吏房)에게 맡기도록 하시오. 갑시다.”

예방은 울상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사또를 따라나섰다. 예방이 울상이 된 이유는 정 진사댁에 가서 알 수 있었다.

“사또 나리께서 누추한 곳에 어인 일이십니까?”

정 진사가 얼른 반겼다가 예방을 보고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형님도 오셨습니까?”

예방은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했다.

“흠흠, 사또 나리가 자꾸 같이 가자고 하시는 통에…”

사또는 어리둥절해졌다.

“형님이라니…?”

예방이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제가 서형(庶兄)입니다.”

서자라는 이야기였다. 사또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서 껄끄러워서 오기를 싫어했는데, 공연히 같이 오자고 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두 사람은 사랑방에 들어 정 진사와 마주 앉았다.

“이미 아시겠지만, 고을에 역병이 돌고 있어서 걱정이 많습니다.”


〈허준, 『동의보감(東醫寶鑑)』〉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사또는 바로 용건을 꺼냈다. 정 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듣고 있습니다. 제가 사또 나리께 도움 드릴 것이 있겠습니까?”

“정 진사께서 의약에 정통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정 진사의 눈길이 예방에 갔다가 되돌아왔다. 예방은 찔끔해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의약에 정통하다니 과찬입니다. 그저 심심풀이로 『동의보감』을 들춰보는 정도입니다.”

“『동의보감』이오? 그 책을 가지고 계십니까?”

『동의보감』은 광해군 때, 어의(御醫) 허준이 만든 책으로 동양 의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책이다. 『신찬벽온방』도 허준이 만든 것으로 『동의보감』에 조금 앞서서 편찬한 책이었다. 당시 함경도 지방에 역병이 퍼졌으나 막지 못하여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되자 이를 예방하겠다고 편찬하였다.

“『동의보감』에 이번 역병에 대해서 참고할 것이 있을까요?”

정 진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역병에 대한 것은 『신찬벽온방』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결국 정 진사가 집 안에 있는 약재를 모두 모아 이번 사태 진정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선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사또가 사랑을 나서는데 안채 쪽에서 나오는 뜻밖의 사람과 마주쳤다.


〈남양주시 불암사(佛巖寺) 《감로도(甘露圖)》에서 환자를 살피는 의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아래로는 굿을 드리는 무당의 모습도 보인다.〉 (출처: 국가유산청)


“아무 걱정하지 말아! 이 집엔 마마신께서 한 걸음도 안 할 터이니! 그리고 이번 달 제사는 지내면 안 돼!”

무당 임씨였다. 무당은 안채의 백이 모친에게 큰 소리로 말하고 뒤돌아섰는데, 사또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이, 깜짝이야! 두창신이라도 납신 줄 알았습니다요.”

사또가 뒷짐을 지고 말했다.

“마마니, 두창신이니 그게 다 무슨 소리냐?”

임씨가 눈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아이, 참. 사또 나리도. 뭘 다 아시는 걸 묻고 그러십니까?”

“알기는 뭘 안다는 거냐? 물볼기라도 쳐야 대답할 것이냐?”

“고을에 손님이 오지 않았습니까. 큰 굿을 해서 내보내 드려야 합니다.”

“손님? 무슨 손님이 오셨다는 게냐?”

임씨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가렸다.

“아이구야,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 지금 고을에 돌고 있는 얼굴에 빨간 꽃이 피는 역병이 뭔지? 그게 다 마마신이 내린 벌이에요.”

사또가 휘청했다.


〈오명항(吳命恒, 1673~1728)의 초상 얼굴 부분. 오명항의 초상화에는
그가 천연두를 앓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두창… 그럼 고을에 도는 역병이 천연두란 말이냐?”

“맞습니다. 호환 다음으로 무서운 역병입죠.”

그랬다. 사또도 그제야 기억났다. 빨간 꽃이 피었다가 화농이 일고 고열에 시달리다 죽는 전염병! 천연두였다.

“막는 방법을 아는 게냐?”

“물론입죠. 치성을 드려야 합니다. 굿판을 벌여야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쉿! 마마신은 질투가 심한 분이십니다.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돼요.”

“무슨 놈의 병이 질투한다고 그러느냐!”

임씨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마마신께선 질투가 심해서 제사 때 오는 조상신도 싫어하거든요.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건 사또 나리도 들으셨죠?”

“됐다.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썩 나가거라.”

임씨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대문을 나가버렸다. 그때였다.

“사또 나리.”

귀가 밝지 않았으면 못 들을 뻔한 소리였다. 뒤돌아보니 이 댁 소저인 백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서 있었다.

“낭자, 무슨 일이오?”

“이 병이 정말 두창이 맞는 거죠?”

“그런 듯하오.”

“그럼 목금의 집을 한 번 들러보세요. 목금이가 드릴 말씀이 있을 거예요.”

사또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예방은 아직 정 진사네 창고에서 나오지 않아서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흠흠, 알았소. 내 들러보겠소.”


〈천연두 예방을 위한 종두 시술에 쓰였던 도구. 우리나라 종두법 보급에 앞장섰던
지석영(池錫永, 1855~1935) 집안에서 소장했던 것이다.〉
(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


“목금 낭자, 잘 지냈는가?”

목금이의 집은 세책방을 하고 있다. 낮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사또는 안심하고 목금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었다.

“악!”

안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 사또는 깜짝 놀라 세책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세책방에 목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서적들이 놓인 뒤쪽으로 작은 방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장부를 작성하는 등의 일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사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아…”

목금은 사또가 찾아온 것을 알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연둣빛 치맛자락에 핏자국이 있었다.

“무, 무슨 일이냐? 어딜 다쳤느냐?”

그 순간 치마 위로 피가 또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시 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코피가 난 것이다.

“코피가 나는데 어찌 고개를 숙이고 있느냐? 고개를 젖혀야지.”

사또는 이제 방 안으로 들어올 기세였다. 목금이 얼른 손을 휘저으며 사또를 못 올라오게 막았다. 목금은 코를 손가락으로 꼭 잡아 누른 채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별일 아닙니다. 갑자기 부르는 소리에 놀라서 제가 코를 찔렀을 뿐입니다.”

사또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사람이 갑자기 찾아왔다고 코를 찔렀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휴, 멎었다.”

목금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사또가 유심히 보니 목금의 얼굴에 뾰루지도 몇 개 보였다.

“뭘 그리 빤히 보십니까?”

목금의 말에 사또는 공연히 얼굴이 달아올라 뒤돌아섰다.

“어? 사또 나리, 얼굴이 붉어지셨는데요? 혹시 역병에…”

“아, 아니다. 나는 멀쩡하다.”

사또가 당황해서 다시 되돌아섰다. 목금이 방에서 나왔다.

“흉한 꼴을 보여 민망합니다. 지금 온 고을에 두창이 창궐하니 예방법을 시행해 보았습니다.”

“예방법이라니? 그런 게 있단 말이냐?”

목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약용이 저술한 『마과회통(麻科會通)』〉 (출처: 디지털 장서각)


“사또 나리는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을 아십니까?”

“알다마다. 다산 선생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분이 쓰신 책 중에 『마과회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책에 두창을 막는 방법이 적혀있습니다.”

“그런 게 있단 말이냐? 어찌하면 되는 것이냐?”

“두창에 걸린 사람의 얼굴에 생긴 딱지를 일고여덟 개 떼어냅니다. 도자기로 된 종지에 넣고 손톱으로 맑은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립니다. 단단한 공이로 으깨어 즙을 내는데 너무 묽어도 아니 되고, 너무 진해도 아니 됩니다. 진하면 두창의 기운이 일어나지 않고, 묽으면 두창의 기운이 너무 손상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대추씨 만 하게 만든 누에고치 솜에 묻혀서 남자는 왼쪽 콧구멍에, 여자는 오른쪽 콧구멍에 넣습니다.”

“그럼 그걸 어찌 꺼낸단 말이냐?”

“아참, 빼먹었습니다. 솜에 미리 실을 달아둡니다. 예리하십니다.”

“하하, 그거야, 뭐.”

사또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웃으니까,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

“여섯 시진을 넣어두고 이렇게 2~3일을 하면 약간 몸이 아프고 몸에 발진이 살짝 생깁니다. 걱정할 일은 아니고 금방 딱지가 생겨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리되면 더 이상 두창에 걸리지 않습니다.”

사또가 저도 모르게 목금의 얼굴 쪽으로 손을 올렸다가 스스로 화들짝 놀라 손을 내렸다.

“그러니까 지금 낭자 얼굴의 그 뾰루지가…”

“네, 두창 딱지입니다.”

사또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책에 나온다고 그게 진짜 될지 어찌 믿고 이런 일을 했단 말이냐?”

목금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두창은 본래 열이 높은 병입니다. 소녀는 지금 열이 없습니다.”

“그럼, 정말 두창이 예방되었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어서 이 방법을 사람들에게 널리 시행케 해야 합니다.”

“알겠다. 혹시 그 『마과회통』을 가지고 있느냐?”

목금이 얼른 방안의 서탁에 펼쳐져 있던 책을 가져왔다. 사또는 크게 기뻐 대체 목금이 어디서 두창의 딱지를 얻었는지는 물어보지도 않고는 동헌으로 달려갔다.

사또의 뒷모습을 보던 목금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따라가려고 했냐?”

세책방 구석의 짙은 어둠 속에 흐릿한 형체가 있었다. 형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낮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었다.

“마마신이라고 해도 약해지면 그 꼴이구나. 이제 내가 소천 시켜 주마!”

목금이 팔을 걷어 올린 뒤에 두리번거리다가 묵직한 서진을 들어 올렸다.

“마, 마마신 살려!”

목금이 신나게 패준 뒤에 흐릿한 형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마마신은 다 타고 난 재가 바람에 사라지듯이 없어져 버렸다.

목금이 씩 웃었다.

“이제 마마신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럼 청하지도 않은 불청객 사냥이나 나가볼까?”

서진을 탁탁 손바닥에 쳐보는 목금이었다.




집필자 소개

이문영
이문영
역사, 추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문서 쪽으로도 출간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의 소설게시판지기로도 활동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을 겸하고 있다. 역사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어린이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역사동화 『역사 속으로 숑숑』, 어린이 인문서 『그게 정말이야?』, 역사인문서 『만들어진 한국사』를 비롯해서 MMORPG 『무혼』 등 여러 편의 게임 시나리오도 만든 바 있다.
“마마를 피해 안동 집으로 보낸 아내가 마마에 걸리다”

마마배송굿 김경철, 경상도하양현일록,
1761.05.04.~1761.06.25

근래 하양현감 김경철의 근심은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과 또 하나는 가뭄으로 보리와 밀이 모두 말라버린 것, 그리고 얼마 전부터 경상감영이 있는 대구부와 하양현 일대에 마마가 퍼져 여러 사람이 마마에 걸려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 등이다.

고민 끝에 김경철은 일단 자신을 따라 하양현에 와 있는 아내를 안동 집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말을 꺼냈을 때 아내는 아픈 남편을 두고 떠날 수 없다며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김경철은 거듭 설득했고, 침 치료를 받기 위해 사람을 부르자 아내는 김경철이 침을 다 맞고 나면 떠나겠다고 했다.

4월 26일부터 시작한 김경철의 침 치료가 5월 3일에 끝났는데, 확실히 하루가 다르게 증세가 나아진 듯하였다. 김경철은 바로 다음 날인 5월 4일에 아내의 행차를 출발시켰다. 아들인 갑동이가 모시고 가고, 손자인 쾌득(快得)도 따라갔다. 행차가 떠나가는데 김경철의 아내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계속 김경철을 돌아봤다. 김경철은 자신의 오랜 병환으로 아내의 고생이 더욱 많았던 것을 알기에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4일에 아내의 행차를 따라갔던 사람과 말은 10일에 돌아왔는데, 여기서 출발한 지 나흘 만에 집에 무사히 도착하였다고 했다. 조카들이 모두 내려오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웠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 김경철은 다시 약을 먹으면서 비를 간절히 기다리며 하양의 높은 산마다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이틀에 한 번씩 하양현의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다 보니 김경철의 병증이 다시 악화하였다. 너무 아픈 날은 직접 산에 오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보내서 기우제를 지내야 했다.

한 달 정도 지난 6월 14일에 며칠 전 안동 집에 보냈던 태몽(太蒙)이 돌아와서 집안 식구들의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김경철의 아내는 몸이 아파 종일 신음하고 있고, 며느리의 병도 차도가 없다고 했다. 마마에 걸릴까 봐 아내를 안동 집으로 보냈는데, 신음이 나올 정도로 몸이 아프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김경철은 여름 고과에서 최하의 평가를 받고 파직되고 말았다. 모함을 받아 파직을 당하게 되니 기가 막힐 지경이었으나 어차피 병이 낫질 않아 여러 번 사직을 청했던 상황이니 차라리 잘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게다가 아내와 며느리의 병증이 심상치 않아 마음이 온통 집으로 가 있었으니 빨리 정리하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즉시 집에 소식을 알리고 곧 출발하겠다고 전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아들 갑동이 20일에 하양현에 도착했다. 아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17일에 출발하였으나 물에 막혀 이제야 도착했다고 했다. 김경철은 먼저 식구들의 소식을 물었는데, 아내는 계속 아픈 상황인데 두창(頭瘡)과 상풍(傷風)의 병증이라고 했다. 근심과 염려가 끝이 없었다.

김경철은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가기 위해 며칠 동안 서둘러서 하양에서의 신변을 정리하고 25일에 아들과 함께 하양을 출발했다.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의 병세를 살펴보고 병이 나을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자신의 병도 깊고, 온 가족이 이리 아프니 답답하기만 했다.

“소실의 만성 복통”

이우석, 하은일록,
1884-10-03~1884-12-09

한겨울이다. 오늘도 저물녘에 눈이 내렸다. 이우석(李愚錫)이 며칠 집을 비웠다가 저녁 즈음에 집에 돌아와 보니, 그저께부터 소실이 복통이 나서 고통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집에서는 계양탕(桂養湯)을 달여 복용시켰으나 증세에 차도가 없다.

소실이 아픈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두 달 전인 10월에도 밤중에 자다가 닭 울 때쯤 복통이 도져 앉으나 누우나 불편하다면서 고통을 호소하였다. 그때는 평진탕(平陳湯)을 달여 먹였는데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복통에 잘 듣는 약이 무엇일까. 그때도 한 사흘 잠을 못 잘 정도로 고생을 했다. 정기산(正氣散)이니 소체환(消滯丸)이니 하는 약들을 연이어 먹여봐도 효험이 없었다. 애꿎은 아내는 그 후에도 며칠간 밤새도록 괴로워했다. 보다 못한 이우석은 임경운(林慶雲)이라는 사람을 시켜 의원 박생(朴生)에게 증세를 기록해 보냈다. 다음날 돌아온 임경운은 처방을 가지고 왔지만, 이미 아내의 병은 조금 나아진 상태였다. 처방 덕분인지 병이 나을 때가 되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복통은 차도를 보였다. 대신 이우석 자신이 감기로 드러눕는 바람에 집안에 약 냄새는 그칠 날이 없었다. 그렇게 두 달쯤 아무 일이 없었는데 다시 아내의 복통이 도진 것이다.

이번에는 그때 임경운을 통해 받아온 처방대로 초기부터 약쑥을 달여 아내에게 먹여보았다. 과연 의원이 처방이 효험이 있었는지 조금은 증상이 덜한 것 같았다. 연일 추운 날씨에 아내까지 몸이 좋지 않아 참으로 걱정스럽다. 부디 당분간은 복통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우석은 하염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근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약복용이 효험이 없어 침 치료를 시작하다”

김경철, 경상도하양현일록,
1761-04-26~1761-05-03

김경철은 그동안 몸이 아파서 여러 처방으로 약을 먹은 지 벌써 5달이 넘었다. 그러나 도무지 효험이 없었다. 아무래도 약만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듯하여 침술에 능한 최윤정(崔允貞)을 불렀다. 4월 26일 최윤정이 와서 침을 놨고, 그 후로 매일매일 최윤정에게 침을 맞았는데 5월 3일까지 침 1도(度)를 다 맞았다.

이렇게 꾸준히 침을 맞은 이후에 김경철은 가슴이 막힌 것 같은 증상이 약간 줄어든 듯했다. 효과가 지속되면 앞으로 침 치료를 더 받아볼 생각이 들었다.

“눈병으로 세상이 온통 흐릿하다”

김광계, 매원일기, 1643-05-17~07-18

1643년 5월 17일, 아침에 밖에 나가니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세상이 온통 흐릿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안개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광계는 눈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 날이 맑게 갰지만, 김광계의 눈앞은 말끔하지가 않았다. 김광계가 마지막으로 눈병을 앓았던 것은 1609년, 34년 전이었다.

이 날부터 7월 중순이 되어서까지 눈병이 낫지를 않았다. 7월 16일에는 눈이 아파서 결국 책도 보지 않고 온종일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가로운 것도 좋았지만 눈을 써서 섬세하게 해야 할 일들도 있는데, 몇 달간 눈병 때문에 처리를 하지 못하였으니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김광계는 눈병 치료를 위해서 의원을 만나보지도 않았고, 젊을 때처럼 초정의 약수에 눈을 씻으러 가지도 않았다.

“약 짓다가 약 짓는 연기에 중독되다”

군관청(軍官廳)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노상추, 노상추일기,
1787-12-25~1787-12-28

아침식사를 하고 있던 노상추에게 갑산 부사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별말 없이 단지 갑산부 관아에 와 달라는 말만 간략히 적혀 있었다. 부 관아에 가 보니, 갑산 부사가 얼마 전 함흥에서 만병환(萬病丸)을 만드는 약재를 사 왔으니 함께 약 짓는 것을 의논하고 약을 달여 보자는 것이었다. 정말 약 이름처럼 만병통치약인지 그 처방을 알 수는 없었으나 하룻밤 동안 꼬박 달여야 하는, 공이 많이 들어가는 약인 듯했다.

노상추는 결국 갑산 부사가 붙드는 바람에 밤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부 관아의 군관청에서 약 달이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약탕기에 피어오르는 김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자던 방과 다른 방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신음하는 노상추를 돌보던 하인이 말하기를, 해가 떠도 부르시지를 않기에 방에 들어가 보니 쓰러져 계시더라며, 연기를 마신 것 같다고 했다. 해가 질 때까지 정신을 도무지 차릴 수가 없었다. 함께 약을 달이며 한방에서 잤던 책방의 황조언(黃調彦) 석사(碩士)도 노상추 옆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래도 하루 만에 증상은 나아졌지만, 약을 달이자고 했던 갑산 부사는 미안했는지 다음날 연회를 열어 주었다.

“의국 사람을 불러 약을 조제하다”

약탕기 김광계, 매원일기,
1642-05-11~1642-05-13

나이가 들어갈수록 김광계의 약에 대한 관심은 깊어져만 갔다. 자신이 직접 약을 조제하기도 하고, 서울에서 약장수가 오면 귀한 약재를 받아놓기도 했다. 아들과 조카들을 모아놓고 환약을 만들게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역시 조제법이 어려운 것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1642년 5월 11일, 김광계는 이날 몸이 아파서 일과를 접고 쉬었다. 하던 일을 하지 못해서 더욱 마음이 찜찜하였는데, 이게 모두 건강 때문이다 싶었는지, 결국 안동 읍내에 있는 의국(醫局)에서 막숙(莫叔)을 불러와서 자음지황환(滋陰地黃丸)을 조제하도록 하였다. 자음지황환은 숙지황환(熟地黃丸)이라고도 부르는데, 빈혈과 신허(腎虛)로 눈앞이 아찔하며 잘 보이지 않을 때 쓰는 약이다. 하루 만에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약이 아닌지 막숙은 여러 날 김광계의 집에 머물러야 했다.

김광계가 글을 읽으며 몸조리를 하고 있는 동안, 막숙은 자음지황환 2첩을 조제하고, 추가로 소풍산(消風散) 15첩을 조제하였다. 소풍산은 풍간(風癎)을 치료하기 위해 먹는 약인데, 풍간은 간질이나 뇌혈관장애 후유증의 일종이다. 김광계가 조제하라고 한 두 약이 치료하는 병의 공통적인 특징은 기가 허해서 걸리는 병이라는 것인데, 김광계가 스스로 허약해졌다고 느꼈던 것 같다. 작업은 그 다음날인 5월 13일 오후에서야 겨우 끝났고, 마침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의국 사람은 비로소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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