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모나 전쟁은 격렬하다. 주도자들은 목숨을 걸고,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고 주변의 사람은 피 말리는 눈치싸움에 전전긍긍하며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영문도 모르고 휘말려 목숨을 잃는다. 그나마 다른 나라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은 명백한 적이라도 있지, 권력을 두고 싸우는 내란이나 임금을 끌어내리기 위한 역모일 때는 피아식별도 쉽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반정으로 인해 왕위를 잃고 묘호(廟號)조차 받지 못한 왕이 둘 있다. 설명도 필요 없는 인물, 연산군(燕山君)과 광해군(光海君)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세자시절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순하거나 영민했던 세자시절을 거쳐 왕위에 오른 뒤 급격한 흑화를 겪는다.
〈2017년 방영한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출처: MBC)
연산군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꽤 특이한 작품이 바로 홍길동과 연산을 동전의 양면처럼 그린 2017년 드라마인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이다. 드라마의 주인공 홍길동은 허균(許筠)의 소설에 나오는 허구의 인물로 유명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홍길동의 모델이 있었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드라마의 모델이 된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그 홍길동이 아니다. 이 홍길동은 양반의 핏방울이 혈관에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은 진짜배기 노비 소생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 홍길동이야말로 허균이 후대에 그린 『홍길동전』의 모델이었음을 이야기한다. 소설 속 주인공의 진짜 주인공을 다시 드라마로 만들어낸 셈이다. 드라마 속 홍길동의 아버지는 성도 없이 그저 이름이 아모개라는 것에서 이 홍길동이야말로 ‘민중’ 그 자체의 아들임을 천명한다. 그리고 이 홍길동 이야기에 하나 더 붙은 설정이 ‘아기장수’ 설화다.
〈아기장수 설화를 동화로 만든 『아기장수 우투리』〉 (출처: 보리출판사)
아기장수는 태어나면서부터 괴력을 지녔고 겨드랑이 밑에는 날개가 돋아 범상치 않았다. 하지만 아기장수의 부모는 이를 기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을 망하게 할 징조라 여겨 후환을 없애고자 아기장수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죽여도 안 죽을 듯 괴력을 발휘하던 아기장수도 결국 죽는데, 이 이야기의 비극성은 아기장수가 죽은 뒤에야 도착한 용마(龍馬)가 서럽게 울며 아기장수의 뒤를 따르는 데 있다. 용마가 조금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부모는 포기하는 심정으로나마 아기장수의 운명을 따랐을지 모를 일이었기에 신물(神物)인 용마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제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 보자. 《역적》의 주인공 길동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타고난 괴력을 봉인했다가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각성하며 믿을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길동과 연산군〉 (출처: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은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다. 주인공인 길동과 그 맞은편에 있는 연산군. 그리고 길동을 사랑한 두 여인 녹수와 가령이 각각 대구를 이룬다. 길동과 연산군은 같은 때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무거운 짐을 지는 공통점이 있고 ‘사람이란 왜 태어나는가.’, ‘왜 신분이 존재하는가.’라는 공통의 질문을 지닌다.
“왜 반상이라는 것이 있어 여자와 남자, 양반과 천민을 나누어 여자는 여자답게, 종은 종답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길동은 이에 대해 여자다움도 노비다움도 양반다움도 없고 사람은 그 자체로 존귀하다는 결론을 내기에 이르지만 연산은 다르다. 세자 시절 품었던 이 의문에 그는 왕이 된 뒤에 결론을 내린다. “양반이든 천민이든 여자든 남자든 다 똑같은 인간이다. 유일하게 다른 이가 있다면, 하늘님의 자식인 왕 하나뿐이다. 왕 외의 모든 이들은 왕의 종일 뿐이다.” 노비출신 길동과 왕자출신의 연산이 낸 결론이니 언뜻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나라’라는 측면에서 보면 나라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은 길동이 아니라 왕인 연산이다.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녹수와 가령〉 (출처: MBC)
길동과 연산이 손바닥의 양면처럼 명확하게 입장이 갈리며 완전히 반대 입장의 길을 간다면 장녹수와 가령은 좀 더 복잡하고 섬세한 결을 지닌 인물이다. 장녹수에게는 폭군의 길로 접어드는 연산을 부추기는 인물임에도 단순하게 악인이라고 할 수 없는 여러 결이 존재한다. 이는 장녹수의 몸종이었으나 길동의 아내가 된 후 길동이 사망한 줄 알고 복수를 꿈꾸며 궁녀로 궁에 들어가는 가령도 마찬가지다.
이 둘은 선·악으로 갈라지지 않고 각자의 욕망과 꿈으로 갈라진다. 각자의 욕망에 무엇을 먹이로 주느냐에 따라 이들의 길이 달라질 뿐이다. 장녹수는 장악원(掌樂院)에 들어가기 전, 옛 기억을 잃은 길동을 거두었다가 길동과 사랑에 빠져 인생의 짧은 행복을 맛본다. 가난으로 사무치고 무시당했던 이전의 삶에서는 단 한 번도 꿈꾸지 못했던 진짜 감정 덕분에 녹수는 길동을 가지고 싶어 한다. 길동과의 알콩달콩한 일상을 꿈꾼다. 녹수는 길동을 만나기 전 임금을 가지고 싶다고 말하던 그 여자를 스스로 잊는다. 하지만 길동이 잊었던 기억을 되찾고 돌아오겠다 약속하고 가족을 찾아가 돌아오지 않자 녹수는 잊고 지낸 복수심과 야망을 회복한다.
길동을 가슴에 묻고 장악원으로 나아가 연산 앞에 선 녹수는 왕이 마음을 달라 하자 그 마음은 이미 다른 사내에게 주고 없다고 단언하며 자신에게서 사랑을 끊어내지만 권력을 통해 복수를 할 기회를 얻기 위해 왕의 마음은 가져온다. 어린 자신과 어미를 끊어내어 불행의 시초를 제공한 양반을 찾아내 복수한 이후의 녹수는 이전의 녹수와는 달라진다. 한 번 손에 넣은 권력을 유지하고 더 많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 그리고 그 권력을 잃을까 봐 몸서리를 친다.
녹수의 몸종이었으나 길동에게 반해 녹수를 따라가지 않고 길동을 기다린 가령은 녹수와 다른 길을 걷는다. 가령도, 녹수도 길동을 가지고 싶어 하지만 가령에게는 ‘복수’라는 어두운 욕망이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길동의 곁을 지키며 그저 옆에 있지 않고 길동과 함께 성장한다. 드라마에서 눈 깜박할 사이에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녹수는 마침내 왕의 마음을 훔치는데 성공하고 가령은 이야기꾼이 되어있다. 결국 이 이야기는 가령이 쓴 길동의 이야기다.
녹수와 궁에서 다시 만난 가령은 길동과의 혼례를 들키고 녹수는 질투의 화신이 된다. 가령은 길동을 죽음으로 내몰 인질이지만, 길동에게 항복하지 말라고 소리지르는 옹골찬 사람이다. 길동이 죽었다고 생각했음에도 인생을 놓지 않으며 더 강하고 단단한 인물이 되어갔기에 가능한 외침이었다.
가령의 반대편에서 비난을 받아야 할 녹수이건만, 온갖 악행에도 불구하고 녹수가 차근차근 흑화 되어가는 모습에 오히려 녹수를 힘껏 응원을 하게 되는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인물이라는 점이 놀랍다. 이는 녹수라는 캐릭터가 잘 구축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연산과 길동이 서로 복수를 주고받는 동안 녹수와 가령은 뚜벅뚜벅 자신의 욕망과 꿈을 단단하게 다져가며 한 명은 악인으로, 또 다른 한 명은 글쟁이로 탄탄하게 성장해 나간다. 잘 성장한 녹수는 민중의 돌에 맞아 돌더미에 묻힌다. 가령에게는 해피엔딩이 남았다.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으로 따지자면 녹수가 결코 불행하다고는 못할 것이다. 이토록 다층적인 장녹수를 드라마에서 만나기를 기대한 적이 있었던가.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마지막회의 한 장면.
길동은 연산을 향해 “진짜 위가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한 죄,
하여 위를 능멸한 죄, 능상(凌上)이다.”라고 말한다.〉 (출처: MBC)
15화에서 연산은 내관에게 “내 진짜 성군이 되어볼 참이다.”라고 말한다. 무오사화(戊午士禍)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연산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사실은 연산의 광기의 시작이다. 그는 성군이 되겠다는 말 뒤에 성군의 단서조항을 바로 덧붙이는데, 군주로서의 위엄을 갖추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군주로서의 위엄은 어떻게 갖추는가. 그는 마치 루이 14세처럼 화려한 연회를 열었고 헨리 8세처럼 신하들을 윽박질렀다. 신하가 왕에게 유학을 가르치는 경연(經筵)을 아예 폐지하고 채홍사(採紅使)를 통해 전국 팔도의 미인을 불러들이게 만들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 모든 것의 소유주가 자신이라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종말은 우아하지 않았다. 녹수는 연산에게 술을 따르며 자신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렸지만 연산은 귀로 들은 말과 눈으로 본 것을 믿지 않았다. 돌무더기에 깔린 녹수의 꽃신을 보고도 그는 아직 자신의 시대가 남아 있다고 믿고 싶었다. 폐위되고도 장수한 편이었던 광해와 달리 폐위된 이후 그의 삶은 짧았다. 전염병으로 죽었다지만 화병으로 미쳐 죽었다고 드라마는 기록했다. 그것으로 ‘나라’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친 왕이 죗값을 치르기라도 한 듯이.
왕이 왕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 제정신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세종에게 위를 물려준 태종 이야기가 아니다. 헛짓거리로 세월을 보내다 끌려 내려온 왕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우아하게 오라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던가. 역사는 한치도 어긋남 없이 되풀이되지만 인간은 오만하여 나만은 그 수레바퀴를 피해 갈 수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오늘도 역사는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있다.
누가 역적인가. 미래에 묻지 말고 오늘 당장 대답을 듣고 싶다.
|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