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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亂)을 넘어서는 빛과 꽃들의 이야기

2024년 12월 3일 밤 이후 계엄과 쿠데타, 내란(內亂)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유령이 어둠을 몰고 다니며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보라가 치고 비바람이 불며, 가만히 있으면 몸이 덜덜 떨리는 영하의 혹독한 추위에도 광장과 거리는 응원봉과 촛불, 깃발을 든 시민들로 가득합니다. 촛불과 깃발은 시민들의 눈 속에 빛과 꽃처럼 담겨 어둠을 넘어서는 이야기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여러 번 난이 있었습니다. 1811년 서북지역의 홍경래난, 삼정(三政)의 어지러움에 항거한 1862년 민중들의 진주민란, 1901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이재수 난 등. 한국국학진흥원의 소장 일기류와 기록 자료에도 민란, 진주, 의병, 정감록, 변란, 반란, 항쟁, 역모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은 2025년 2월 132호에서 “난(亂)”을 주제로 준비하였습니다.

성아사 선생님의 ‘조선 최대의 내란, 홍경래난은 어떻게 전국에 알려졌나’에서는 1811년 평안도에서 발생한 홍경래난이 조보를 통해 어떻게 지식인과 백성에게 공유되고, 기록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홍경래난은 체계적인 준비를 바탕으로 한 실효 지배를 통해 정부군과 대결한 조선의 유일한 내란입니다. 가산군수 정시 부자의 순절과 여러 군수들의 투항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에 관한 충격이 당시 실질적인 뉴스 미디어로 기능한 ‘조보’에 남아 있습니다. 이후 홍경래난은 개인 기록과 방각본 소설 『신미록』으로 이어지며 대중의 기억에 남게 됩니다.

정용연 작가님은 난(亂)을 주제로 여러 작품을 창작하던 그동안의 과정을 ‘난(亂)을 소재로 그린 만화들, 《정가네 소사》에서 《백정 동록개》까지’의 글로 담아 주셨습니다. 《정가네 소사》는 한국전쟁 속 가족사를, 《목호의 난 1374 제주》는 제주 역사와 비극을, 《친정 가는 길》은 여성들의 삶과 사회적 도전을, 《백정 동록개》는 동학농민운동의 기원과 민중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통해 역사적 갈등과 억압 속 인간의 고뇌와 연대를 깊이 있게 그려내며, 이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고 평온한 사회를 염원하는 작가님의 작품과 창작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서은경 작가님의 13화 ‘꽃의 세상’는 정감록을 퍼뜨려 역모를 꾀했다는 죄로 거열형을 받는 무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합니다. 혼란과 부조리의 시대를 관찰하는 독선생은 꽃을 통해 삶의 가치를 성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꽃만큼 성실할 수 있을까. 꽃만큼 절개가 굳을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꽃은 피고 지나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니 고결한 덕행의 실천자들”이라고 읊조리는 독선생의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 많은 울림을 전합니다.

이수진 작가님의 ‘존재가 역적이 된 왕, 연산’은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십니다. 이 드라마는 연산군과 홍길동의 대비를 통해 권력과 민중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노비 출신 길동과 왕 연산은 각자의 신분에서 비롯된 공통의 의문에서 출발하여 서로 다른 길을 갑니다. 길동은 민중의 힘을, 연산은 권력의 절대성을 상징하며 극단적으로 갈라진 선택을 보여줍니다. 장녹수와 가령은 각자의 욕망과 꿈을 좇아 복잡한 결을 더하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의 어두운 면을 다룬 이 드라마는 역사의 반복성을 되새기게 합니다.

이문영 작가님의 ‘난리 통에 죽은 귀신을 달래다’는 역병을 달래기 위해 여제를 준비하는 한 사또와 세책방 낭자의 이야기를 그린 글입니다. 여제의 전통과 역사를 중심으로, 죽은 자의 혼령과 그들을 구천으로 보내는 의식에 대한 상상력이 어우러져 흥미로운 서사를 펼칩니다. 죽음과 제사의 의미를 탐구하며 백성의 안위를 책임지는 관료의 고민과 미스터리한 사건을 유쾌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빛나는 불꽃처럼 솟아오르는 마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Demian)》에 나오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불꽃은 과거의 자신을 태우고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는 상징입니다. 2025년 겨울, 우리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갈등과 폭력을 극복하고 과거를 태우고 길을 찾으며 새로운 자아로 재탄생할 것입니다. 이 과정은 어둠의 유령이 아니라 빛과 꽃들의 이야기이자 서사입니다.

난(亂)을 넘어서는 빛과 꽃들의 이야기가 새로운 봄을 열 것을 기다리며 일제강점기의 시대와 감정을 담아 독립과 깨달음, 사랑의 대상을 ‘님’을 나타낸 한용운(韓龍雲)의 〈님의 침묵〉을 시(詩) 선물로 배달합니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편집자 소개

공병훈
서강대학교에서 미디어경제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자와 대중을 연결하는 독립언론 《반디뉴스》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광고는 어떻게 세상을 유혹하는가?』, 『4차 산업혁명 상식사전』 등이 있다. 기술혁신 환경에서의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진화를 주제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진주에서 민란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저상일월, 박한광·박득녕·박주대·박면진·박희수·박영래 등, 미상

1862년 2월 29일, 올해는 봄부터 각처에서 화재가 일고, 역병 또한 곳곳마다 돌았다. 진주에서는 백성들이 크게 난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 시초는 토지 1결당 관아에서 배정하는 역 때문이었는데, 본래 큰 부담이 아니었던 결역이 근년에 이르러서는 해마다 대여섯 배, 많게는 일곱 여덟 배로 늘어나자 백성들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성난 진주 백성들이 군수와 영장, 아전들을 결박하고 모두 살해하였다고 한다.

인근 고을 사람들도 집집마다 죽음을 각오하고 무리를 모았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8천 명이라고도 하고 8만 명이라고도 하였다. 그들은 모두 흰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었는데, 곧바로 관아를 습격하고 불을 질렀다. 또 민들은 영장, 이속들을 마당에 끌어내어 결박하였는데, 이 때문에 관아에 속한 사람들은 달아나기에 바빴다.

소문이 사방으로 퍼지자, 다른 지방에서도 민들이 부호가에 몰려가 불을 질렀으며 관아에 쳐들어가 수령, 이속, 영장들을 결박하고 불을 질렀다. 조정에서는 박규수를 안핵사로 임명하여 진주 지방으로 급파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성난 민심이 들불같이 일어나 박규수도 차마 관아로 들어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배회했다고 한다.

몇 십 년간 수령들의 침학이 지속되더니, 결국 터질 일이 터지고 만 셈이다. 박득녕은 민란의 책임이 썩은 관리들에게 있음을 통감하였다. 한편 민란의 불길이 예천까지 번지면, 우리 집안은 무사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되었다.

“정감록을 믿다가 역모에 연루된 사람들”

노상추일기, 노상추,
1785-03-23 ~ 1785-03-24

끔찍한 날이었다. 노상추를 비롯한 문무백관은 서수문 밖에 차례로 늘어서 역모를 꾀한 죄인 이율(李瑮)이 능지처참당하는 것을 보아야 했다. 다음날에는 술사 주경채(朱絅采)가 모래밭에서 목이 베였다. 이율을 역모죄로 고발한 것은 전 현감 김이용(金履容)이었다. 그는 현재 관직이 없었기에 전 판서 김종수(金鍾秀)와 훈련대장 구선복(具善復)을 통해 조정에 역모를 알렸다.

김이용은 자신의 사촌이 이율과 친하게 지냈기에 자신도 그와 교제하였으나, 이율이 가진 불순한 사상들 때문에 오래 가까이 지내기는 꺼려졌다고 미리 선을 그으면서 그의 불순한 사상에 대해 왕에게 진술하기 시작하였다. 이율이 어느 날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사주팔자를 잘 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기에 김이용은 이율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사주팔자를 점쳐달라고 하였다. 이율이 가져온 김이용의 사주풀이는 ‘이 사주팔자는 마땅히 사업(事業)이 있을 것이다. 10년 동안 쭈그리고 고생하다가 하루아침에 제후로 봉해지게 된다. 흉악한 해(害)가 사방으로 이를 것이니, 남방으로 가는 것이 유리하다.’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김이용은 제후로 봉해지는 것은 무엇이며, 흉악한 해는 또 무엇이냐고 이율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율은 “제후로 봉해진다는 말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어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상한 사람의 말을 들으니, 내년 이후에는 도적들이 사방에서 일어날 것인데, 북쪽의 도적들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는 나라가 장차 셋으로 갈라진다고 하니, 나는 장차 가족을 데리고 일찌감치 난리를 피하려고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김이용은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냐고 물었지만 이율에게 답을 들을 수는 없었고, 하동에 갔을 때 유가(劉哥), 정가(鄭哥), 김가(金哥) 세 사람이 난리가 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들과 연관이 있는 듯한 양(梁)씨 성을 가진 사람은 서울에 살면서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한다.’, ‘잔악한 것들을 없앤다.’ 등 《수호지(水滸志)》에 나오는 송강(宋江)의 말을 편지에 써서 보냈으며, 홍국영의 사촌 동생이 얽혀 있는 듯하였다.

또한 하동에는 250살이라고 하는 도인 이현성(李玄晟)이 있어서, 군사를 일으킬 방향을 지시하고, 500년 된 사슴과 400년 된 곰이 사람으로 변했다는 녹정(鹿精)과 웅정(熊精)이 있다고 했다. 녹정이 말하기를 ‘동국(東國)은 말기에 셋으로 갈라져 100여 년간 싸우다가 비로소 하나로 통합된다. 통일할 사람은 정가(鄭哥) 성을 가진 사람이고, 그 싸움은 나주(羅州)에서 먼저 일어난다. 유가(劉哥), 이가(李哥), 구가(具哥) 성을 가진 세 사람이 거사하여 반정(反正)할 텐데, 거사 시기는 을사년 7, 8월이 아니면 병오년 정월이나 2월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김이용의 증언 이외에도 전국적으로 도인이니 진인이니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정감록」과 「진정비결(眞淨秘訣)」의 전복적 내용이 비밀스럽게 퍼져나가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여기저기에서 자신을 대도독 등의 자리에 올려 군사를 일으키겠다고 했다는 사람들의 명단이 나왔다. 왕은 전국의 지방관들에게 이 사건을 면밀히 수사하도록 지시하였다. 하지만 대규모 군사 조직은 실상이 없는 허무한 것들이었다.

왕은 이율을 심문하고는, 대대로 녹을 먹던 집안의 후손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고 하며 능지처참을 선고하였다. 일종의 본보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정감록」 신앙은 늘 조정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역모사건으로 번져나갔다..

“대북의 잔당이 관직에 제수되었단 이야기를 듣다”

계암일록, 김령, 1631-04-05

1631년 4월 5일, 날은 맑은데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예안 현감이 안부를 묻는 편지를 꿩 한 마리와 함께 보내왔다. 그리고 조보를 함께 보내주었는데, 안동 부사 홍명구가 어제 예안현에 들렀을 때 가져다준 것이라 하였다. 조보에는 가도의 소식과 함께 새로운 인사 소식이 실려 있었다.

어제 홍명구에게 가도의 반란 수괴 유흥치가 부하의 손에 죽었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조보에는 그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유흥치가 자기의 어미를 오랑캐 진중에 인질로 보내어 연합을 맹세하였는데, 그것이 발각되면서 부하들이 심하게 동요한 듯하였다. 그의 부하 중 심세구, 장도라는 자들이 6-7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유흥치와 그의 형제들을 모두 죽였다고 한다. 이들 중 장도가 임시로 유격장이 되었는데, 조보에는 그가 글도 잘하고 의리를 아는 인물이라고 하였다. 반란 수괴 유흥치가 죽고 의리를 아는 인물이 가도의 새 수장이 되었으니, 서쪽 변방의 근심은 조금 풀리지 않겠는가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실린 인사 소식은 기가 막힌 것이었다. 박경범이란 자가 가평 군수가 되었는데, 이 박경범은 과거 대북의 잔당이었다. 그는 대북 중에서도 골수였는데, 반정 이후에 죄를 면한 것만 해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다시 관직에 서용(敍用)되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게다가 군수란 자리는 목민관으로 백성들을 어루만져야 할 자리인데, 백성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 폐조의 신하를 다시 그 자리에 앉히다니! 과연 이 나라의 인사권자들이 제정신인지 의심이 들었다.

내막을 살펴보니, 원주 목사인 이영도가 이조 판서인 정경세에게 천거하여 박경범을 천릉의 감역관으로 삼도록 권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러 인사들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가평 군수로 낙점된 듯하였다. 정경세란 자는 남인들 사이에서도 중망이 있는 인사였는데, 이렇듯 망령된 인사를 자행하다니, 김령은 심히 실망스러웠다.

“선산에서 익명서 사건이 발생하다”

계암일록, 김령, 1628-10-08

1628년 10월 8일, 어제 오전에 류시원과 종조카 김광철이 왔다. 김광철이 어제 선산에서 돌아왔는데, 선산에서 큰 사건이 터졌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산의 아전이 익명서를 발견하였는데, 거기에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도모하기로 한 8명의 이름이 쓰여 있고, 그중 안동부사도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김령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틀림없이 부사를 증오하고 원망하여 예측할 수 없는 함정에 빠뜨리려고 이러한 계획을 세운 것 같았다. 세상이 말세여서 인심이 이와 같으니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이 사건을 선산부사 신광립이 감사에게 보고했다 하던데, 감사는 벌써 조정에 계를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들으니, 안동의 심부사가 익명서 변고 때문에 관직을 사직하려 한다고 한다. 이 사건이 극히 무리하다는 것은 아주 조금의 식견만 있어도 훤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심부사는 비록 청렴성과 조심성은 모자란 사람이지만, 천성이 너그러워 주변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또 백성들에게 세금 거두는 것도 예안현감처럼 각박하지 않아서, 지난번에는 삼수량을 면포로 바꾸어 납부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가격도 면포 4필당 쌀 1석씩으로 쳐주어 백성들이 모두 편하게 여긴 바 있었다. 볼만한 치적이 있는 수령인데도 이런 불측한 일로 수령직을 내놓으려 하고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안타까워했다.

“변란에 발을 담근 왕족을 처벌하라”

김령, 계암일록,
1624-03-18 ~ 1624-05-10

1624년 3월 18일, 반정공신 이귀는 이괄의 난이 평정된 후 차자(箚子)를 올려 난중 그의 10가지 죄를 스스로 헤아려 고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공을 믿고 임금에게 몇 가지 요구를 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인성군(仁城君)을 벌하도록 청한 것이었다. 이귀는 그 뒤로도 세 차례에 걸쳐 여러 가지 쓸데없는 말을 섞어 인성군을 치죄할 것을 청했다.

3월 29일, 임금은 이에 대해 “경의 말이 지극히 잘못되었다. 의혹을 분별해야 마땅할 것이다.”라고 비답을 내려 그의 청을 거절했다.

5월 10일, 이귀는 세 차례의 차자로 인성군을 공격하고는, 심지어 갑옷 입은 병사들까지 동원하여 그의 집을 에워쌌다. 이에 정 부제학이 인성군의 결백을 고하는 차자를 올렸다가 이귀에게 배척을 당해 강상(江上)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임금은 이귀와 정부제학에게 화해하라고 하였지만, 부제학은 곧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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