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사라졌다고?”
이방의 보고에 사또 한익범은 미간을 찌푸렸다. 망허촌은 북쪽으로 망허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망허천이 흐른다. 망허천을 건너면 갈대촌이 있다. 망허천이 깊은 강은 아니지만 그래도 배가 없으면 물자를 나르기가 쉽지 않았다.
큰 강의 나루에 있는 배는 나라에 역을 진 사람이 사공을 하게 마련이었지만(나라의 역은 평민이 지는 것인데, 사공 노릇은 다들 하기 싫어하는 천민의 일과 같아서 이러한 사람을 ‘신량역천 身良役賤’이라고 불렀다.) 지방 고을의 작은 강에 있는 배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망허촌이 갈대촌보다는 좀 더 큰 마을이라서 망허촌 사람들이 추렴하여 배를 사고 사공을 기용했다.
하지만 몇 년 전 태풍이 왔을 때 배가 날아가버린 뒤로는 배 없이 지내다가(뗏목을 놓고 줄로 연결해서 이동했다.) 정 진사가 큰맘 먹고 배를 마련하고 사공도 기용하여 강을 건너다닐 수 있게 했다. 물론 뱃삯을 내야했고, 그러기 싫은 사람들은 뗏목을 이용했다. 뗏목은 사람들이 모여야 건널 수 있으니 때가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삯을 내고 배를 타야만 했다.
정 진사는 큰 이문을 남길 생각이 없었지만, 사공은 조금씩 삯을 더 불러 뒷돈을 챙겼다. 다들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딱히 정 진사에게 일러바치지는 않았다.
「정유도선수리시하기」 표지_도산서원운영위원회 기탁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정유도선수리시하기」 내지_도산서원운영위원회 기탁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사공이 도망친 걸까요, 아니면 죽은 걸까요?”
이방이 조심스레 물었는데, 그거야 한익범도 알 길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망허천 물굽이 있는 곳에서 사공의 시신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사공의 시신 옆에는 칼에 찔려 죽은 듯한 사내의 시신도 함께 있었다. 그 사내는 호패가 없어서 신분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동네 사람은 아닌 듯싶었다.
사공은 외상이 없어서 물에 빠져 죽은 것인가 싶었지만 검시를 맡은 오작 조광수가 뜻밖의 말을 했다.
“시신이 물에 빠져서 부푼 것은 맞지만, 물에 빠져 죽은 것은 아닙니다.”
“물에서 건진 시신인데, 물에 빠져 죽은 게 아니라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조광수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위와 폐에서 물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익사했다면 폐에 물이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럼 왜 죽었단 말인가?”
“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정수리에 충격 받은 흔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사후에 생긴 상처입니다. 아마 물에 떠내려가다가 바위 같은데 부딪쳐서 생겼을 것입니다.”
한익범이 곰곰 생각하다 물었다.
“흠, 사공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그 질문에 이방이 대답했다.
“호패로 보니 올해 일흔입니다.”
“그럼 혹 노환으로 죽은 건 아닌가?”
조광수가 머리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한익범은 직접 시신을 살펴보았다. 사공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건 뭔가에 크게 놀란 것 같은 얼굴 아닌가?”
이방도 다가와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익범은 감영에 보낼 보고서에 검시 내용을 자세히 적고 밀봉을 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달이 떴다. 고된 하루였다고 생각하고 퇴청 준비를 하는데, 순라를 나갔던 나졸이 황급히 뛰어들어 와 부복했다.
“사또 나리,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가?”
“강을 건너던 양민이 갑자기 물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뭐라? 물속으로 빨려들어가? 망허천에서 벌어진 건가? 좀더 자세히 고하라. 네가 직접 본 일이냐?”
“네, 순라를 돌다가 직접 보았습니다. 오늘 사공이 없는 관계로 뗏목으로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었는데 뗏목 가에 서 있던 남자가 뭔가에 붙들린 것처럼 물에 빠지더니…. 허우적거리다가 갑자기 물귀신이 발을 잡아끈 것처럼 물속으로 쑥 빠져들어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구했느냐?”
“소인은 거리가 멀어서 구할 도리가 없었고, 뗏목 위에 있던 사람들이 장대를 내밀고 구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럼 시신도 못 찾았단 말이냐?”
“네, 그래서 빨리 수색을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다. 어서 가보자.”
한익범이 나루터에 도착하자 더 큰 일이 벌어진 상태였다. 이미 세 사람이나 뗏목에서 떨어져 물속으로 빨려들어가버렸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뗏목 가운데에 몰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날이 많이 어두워 나루에 모인 사람들은 횃불을 치켜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줄을 당겨서 이리 건너오시오!”
한익범이 큰소리로 명했지만 사람들은 움직이질 못했다. 나루에 모여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줄에 손을 대면 바로 물속으로 끌려갑니다! 줄을 당기라는 건 죽으라는 명과 같습니다!”
“뭣이라?”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말했다.
“이건 물귀신의 장난질이 분명합니다.”
“무당을 불러와 귀신을 달래야 합니다.”
“그건 아니지! 지엄한 관장의 명으로 귀신들을 내쫓아야 합니다!”
한익범은 목청을 가다듬고 강물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고을의 관장 한익범이다. 너희 물속의 귀신은 듣거라. 어떤 불만이 있어서 무고한 백성을 괴롭히는 것이냐? 할 말이 있으면 이리 나와서 내게 말하라.”
그 순간 물이 순간적으로 핏빛으로 변했다가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강물이 크게 요동치는 바람에 뗏목에 있던 사람들은 꺄악 비명을 질렀다. 한익범은 침착하게 다시 말했다.
“강이란 땅과 땅을 갈라 구역을 나누는 것이기도 하지만, 저 먼 산으로부터 물을 날라와 땅을 윤택하게 만드는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강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니 겸손함을 알고, 어떤 일이 있어도 위로 올라가지 않아 순리를 따른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어찌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흉물이 되어버렸단 말인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조용해져야 마땅하리라.”
한익범의 말이 끝나자 강물이 크게 요동쳤다. 뗏목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뗏목이 거칠게 흔들렸지만 다행히 사람들이 떨어지진 않았다.
한익범은 사람들의 비명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 같았다.
“사또 나리~ 사또 나리~”
그 소리는 강가에서, 아니 강물 속에서 들리고 있었다. 한익범이 강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또 나리~ 억울하옵니다~”
“무엇이 억울하단 말이냐?”
한익범의 발이 강물 속으로 한 발, 두 발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향이 그립습니다~ 만리 타향에서 돌아갈 길이 없사옵니다~”
“자세히 고하라.”
한익범은 우렁차게 소리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웅얼거리는 소리로밖에 나오지 않아서 주위 사람들은 사또가 왜 강으로 자꾸 걸어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용감한 나졸 하나가 한익범의 팔을 붙들었다.
“사또 나리, 왜 강으로 들어가십니까?”
“놓아라! 나를 부르고 있다!”
한익범이 팔을 뿌리치고 계속 강 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제 무릎까지 물이 찼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초록색 뱀이 한익범의 허리를 감싸더니 강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한익범이 용을 쓰며 강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초록색 뱀의 힘이 너무 강해서 결국은 강물 밖으로 끌려나오고 말았다.
“초록아, 수고했다.”
초록색 뱀이 한 소녀의 손목으로 올라가는 듯하더니 순간 초록색 팔찌로 변했다. 한익범은 자신이 꿈을 꾸는가 싶었다.
“큰일 날 뻔하셨습니다.”
“어? 어?…. 세책방 낭자 아닌가?”
초록색 팔찌를 차고 있는 소녀는 세책방의 목금이었다. 그 옆에 정 진사댁 백이 낭자도 함께 있었다.
“어찌 이곳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백이가 대답했다.
“물귀신들의 저주에 걸리셨습니다. 물속으로 빨려들어갈 뻔 하셨어요.”
“물귀신? 그럼 저 뗏목이 오도가도 못하게 된 것도 물귀신 때문인가?”
목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물귀신들이 화가 났어요.”
“무슨 일로 화가 났단 말이냐?”
“저 물귀신들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주러 온 명나라 군사들입니다.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30명 군사가 모두 수장되었지요.”
『고대일록』(1593년 10월 11일)에 있는 ‘명나라 군사 30명 익사(낙동강 도하 시)’ 기록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그럼 우리나라의 은인 아니더냐? 왜 지금 와서 해꼬지를 하는 것이냐?”
“물에 빠져 죽은 사공 때문입니다. 사공은 그동안 배삯을 조금씩 착복해 왔는데 그걸 들고 달아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급히 배를 건너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배를 몰았는데, 그 사람의 행낭에 두둑한 엽전 꿰미가 있는 것을 보고 욕심이 동해 그 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한익범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허, 마치 본 듯이 말하는구나.”
“강 속으로 사람의 피가 흘러내리자 깊이 잠들어있던 고혼들이 깨어났습니다. 그들은 명나라의 강남 사람들로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고,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배를 모는 사공을 불러 고향으로 배를 저으라 했는데,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사공은 자기가 칼로 찔러 죽인 사람의 혼령이 복수를 하러 온 줄 알고 놀라서 죽고 말았습니다.”
“자업자득이었군.”
“낮이 되자 힘을 잃었던 고혼, 그러니까 물귀신들은 해가 지자 다시 깨어났습니다. 뗏목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붙들었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물속으로 끌려들어가 죽고 만 것이군.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하느냐? 아니, 그 전에 낭자는 대체 이 일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목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배씨 자매를 기억하시지요?”
“그럼, 기억하다마다.”
배씨 자매는 한익범이 망허촌에 사또로 처음 부임했을 때 만난 귀신들이었다.
“사공과 한 사람이 물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서 배씨 자매에게 내막을 알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군. 그럼 어찌 해야 하겠나? 여제를 크게 벌여 저 고혼을 위로해야 하겠나?”
백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봐야 잠깐 마음이 식을 뿐이겠죠. 결국은 또 고향에 가고 싶어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다시 인명 사고가 날 것입니다.”
“그렇군. 그럼 무슨 좋은 수가 없겠느냐?”
목금이 말했다.
“강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나누기도 하지요. 우리가 죽으면 삼도천이라는 강을 건너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강은 모든 것을 이어주는 신성한 곳이기도 합니다. 저 하늘에 뜬 달은 모든 강에 비춘다고 하지요. 저희는 미르(용)님께 부탁하여 저 가련한 영혼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목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물 위로 소용돌이가 회오리바람처럼 하늘 끝까지 뻗어올라갔다. 마치 달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놀라서 외쳤다.
“용오름이다!”
한익범이 말했다.
“그럼… 저것이….”
“네. 미르님께서 영혼들을 인솔해 떠나셨어요.”
“이제 안심해도 되는 것이겠구나. 낭자들에게 큰 은혜를 받았구나.”
한익범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백이가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우리 마을 일인 걸요.”
백이는 사또의 절에 너무 놀라 목금의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익범이 슬그머니 목금을 곁눈질 하는 것도 몰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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