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에서는 인형을 사용한 스펙타클한 연극 두 편이 상연 중이다. 하나는 동명의 소설과 영화를 원작으로 한 〈라이프 오브 파이〉, 나머지 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무대에 옮긴 동명의 연극이다. 거대한 호랑이가 등장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와 존재하지 않는 정령들이 등장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 얼핏 보기에는 이야기도 주제도 지향점도 많이 달라 보이지만 이 두 공연은 인형이 무대 위에서 매우 중요한 배역을 맡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두 공연이 무대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공연이 영국의 국립극장인 NT에서 제작한 연극 〈War Horse〉다. 한국에서도 2020년에 투어팀이 내한 공연을 올렸다.
마이클 머포고(michael morpurgo)의 소설 〈워 호스(war horse)〉
〈워 호스〉의 원작은 1982년에 출간된 마이클 머포고의 동명의 소설로 ‘조이’라는 이름의 말이 주인공이다. 이전까지 말이 주인공인 작품으로 가장 유명했던 것이 애너 스웰의 소설 〈블랙 뷰티(1877)〉라면 머포고의 소설은 여기에 전쟁의 포화를 배경으로 삼아 한층 깊이를 더했다. ‘어떤 말의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던 〈블랙 뷰티〉의 경우 말이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주인에 의해 뒤웅박처럼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가는 내용이다. 그 와중에 주인공인 말의 내면의 소리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인 애너 스웰은 말에서 떨어져 침상에 누워 이 소설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말에 대한 바닥 없는 애정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소설도 영화도 〈블랙 뷰티〉가 보여주는 것은 세상에는 나쁜 인간이 널렸지만 어딘가에는 선한 인간이 있으며 선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있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온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작가인 애너 스웰은 소설이 출간되고 일년 후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초등학교 시절, 이 소설을 읽으며 블랙 뷰티의 고통 때문에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 펼쳤다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워 호스〉의 주인공인 조이가 겪는 고난은 또 차원이 다르다. 블랙 뷰티가 사람들 사이를 떠돌며 마차를 끌고 농사를 짓고 때로는 얻어맞으면서도 묵묵히 삶을 유지했다면 〈워 호스〉의 조이는 전쟁터에 군마로 끌려가기 때문이다.
영화 〈워 호스〉의 앨버트와 조이 (출처: 디즈니)
조이의 첫번째 주인은 앨버트다. 조이가 내면으로부터 인정하는 유일한 친구이자 주인이다. 앨버트는 조이를 자신의 애완동물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친구가 많지 않았고 외동아들이었던 앨버트에게 조이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가장 깊은 교감을 나누는 친구였다. 앨버트는 조이에게 채찍이나 박차를 쓰지도 않았고 조이와 눈을 마주보며 생각을 읽는 아이였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났고 조이의 아버지는 빚 대신에 조이를 팔아버린다. 앨버트가 목 놓아 찾는 걸 뒤로 하고 조이는 전쟁터로 떠난다. 앨버트의 조이에 대한 사랑을 본 니콜스 대위는 조이를 사랑으로 대한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시를 사랑하고 틈만 나면 스케치를 하는 인간이 그 아름다움을 지키며 살아남을 길이 있던가? 니콜스는 조이의 등 위에서 죽고 포연 속에서 조이는 독일군에게 잡혀가 짐과 무기를 끄는 말이 된다.
영화 〈워 호스〉의 앨버트와 조이 (출처: MovieBestBits)
한편 앨버트는 조이를 그리워하다 결국 나이를 속이고 전쟁터로 향하지만 부상을 당해 눈에 붕대를 감은 상태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심해 하며 친구인 조이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른다. 바로 근처에 조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 앨버트의 목소리를 듣기 전 조이는 진창이 된 전쟁터에서 영국군에게 발견되었지만 쓰러져 있었다. 일어날 수 없는 말이라면 사살해서 식량으로나 쓰자는 말을 듣던 참이었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삶의 의지가 꺼져가던 조이의 귓가에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앨버트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주인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조이는 무릎을 펴고 일어선다. 전쟁은 선의를 파괴하고 온갖 아름다운 것들에 피칠을 하지만 마침내 그 사이에서도 아름다운 무언가가 모두 망가지지는 않고 살아남기도 한다.

연극 〈워 호스〉 (출처: warhorseonstage)
무대 버전으로 공연된 〈워 호스〉에서는 말들이 실제 말과 똑같은 크기의 인형으로 등장한다. 연극 〈에쿠우스〉에서 간혹 말머리를 머리에 쓴 배우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워 호스〉에 등장하는 말은 그 자체가 스펙터클이다. 말이 달리고 쓰러지고 일어나게 하기 위해 말 한 마리에 2~4명의 퍼팻티어(puppeteer)가 달라붙는다. 사람이 아닌 존재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인형을 사용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인형극이라는 장르가 따로 있을 정도니까. 가장 유명한 작품은 줄리 테이모어가 연출한 뮤지컬 ‘라이언 킹’을 들 수 있다. 사자가 주인공이지만 아프리카의 온갖 동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사람이 동물을 연기하거나 가면을 머리 위에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말의 오브제는 무대 위의 마술에 현실감과 동시에 환상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 무대 위의 약속이라는 환상을 멋지게 구현한 작품 덕분에 뒤이어 새로운 환상들이 뒤이어 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다. 무대공연의 큰 인기 덕분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2011년 영화로 개봉하기도 했다. 무대에서도, 영화에서도 주인공 조이는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이 없기에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서 관객들은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리고 조이의 존재 그 자체에 압도된다.


한국전쟁에서 맹활약한 군마 ‘레클리스’ (출처: KOREAN DIASPORA KBS, KBS한국어진흥원, KBS 다큐)
한국에도 〈워 호스〉에 맞먹는 군마 이야기가 있다. 아직 무대나 영화로 만들어진 적은 없지만 6.25 전쟁 당시 심지어 혼자 총알을 나르며 활약했었다는 군마 ‘레클리스’다. 한국 이름은 ‘아침해’였다고 하며 무모할 정도로 거침없고 용감했다고 한다. 아침해는 경주마로 키워졌지만 6.25가 발발하면서 미군에게 군마로 팔려 갔다. 아침해의 주인 김혁문은 아침해를 무척 사랑해서 아침해를 팔면서도 그 이력을 줄줄이 다 읊어주었다고 한다. 해병대에게 팔려간 아침해는 타고난 영민한과 과감함으로 부대에서 동료로 인정을 받으며 미국 해병대 최초로 사람이 아닌 존재로서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차량이 달릴 수 없는 험한 산지나 진창을 달리며 포탄을 옮겼고 사람이 한 두번 같이 다녀오면 혼자서도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영리했다고 한다. 심지어 “포격이다!”는 외침을 들으면 알아서 참호에 들어가 피신도 했고 사격소리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휴전이 되자 레클리스는 해병대와 함께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스타 대접을 받으며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아침해가 레클리스가 되어 미국에서 전쟁영웅으로 칭송받았던 때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한국에서는 아무리 잘 달리던 경주마도 은퇴한 뒤에는 ‘블랙 뷰티’와 같은 고난의 마생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해는 붉은 말의 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 마생은 여전히 그리 아름답지는 않은 듯하다. 달려야 할 말은 달리고, 말처럼 달려서는 안되는 인간은 쉬엄쉬엄 삶을 살아가도 되는 말의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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