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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와 목금

붉은 말

그러니까 내 말을 좀 들어봐. 나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야. 나는 경계를 넘어서는 자,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을 연결하기 위해 달리는 자, 가지 못하는 곳이 없는 자야.

말이니까 잘 달리는 건 당연하다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난 그냥 말도 아니야. 자, 보라고, 내 몸을. 그래, 난 타오르는 불길 같은 붉은 말이야. 누구보다도 빠르고, 누구보다도 용맹하고, 누구보다 강한 붉은 말이 바로 나야.

그거 알아? 중국 한나라의 황제는 서역에 붉은 말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너무나 갖고 싶어 했어. 결국 신하를 보내서 붉은 말을 찾아오게 했어. 수십 년이 걸려 신하는 서역의 붉은 말을 찾아왔어. 그 말을 한혈보마라고 부른다고 하지. 피 같은 땀을 흘리는 보배로운 말이라는 뜻이야. 그 말을 찾기 위해 사막을 헤맨 끝에 서역과의 교통로도 생겨났어. 다른 세상들이 서로 연결된 거야. 그 길을 통해 중국의 비단이 서역으로 넘어갔지. 그래서 그 길을 비단길, 실크로드라고 불러. 이 붉은 말의 후예 중에는 유명한 말이 많아. 한나라 말기에 천하를 휘어잡은 여봉선이라는 장군이 있었어. 그가 타고 다닌 말은 적토마라고 해서 역사에 한 획을 그었지. 여봉선 뒤에는 관운장이라는 장군도 적토마를 탔어.


남원 관왕묘 적토마도 南原 關王廟 赤土馬圖 (출처: 국가유산포털)

우리 말들은 왕을 찾는 데 재주를 가지고 있지. 신라의 시조였던 왕이 누군지 알아? 불구내라고 부르는 왕이지. 불구내는 붉은 누리, 붉은 세상이라는 뜻이야. 붉은색이란 이처럼 위대한 색이기도 하지.

불구내를 찾아낸 말은 백마, 내 형제인 하얀 말이었어. 하얀 말은 사람들에게 왕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번개를 불러들였지. 사람들은 난데없이 치는 벼락에 놀라 숲속으로 달려왔고 그곳에서 커다란 푸른 알을 발견했지. 당연히 보통 알이 아니었지. 푸른 알 속에서 건장한 인간 아기인 불구내가 나온 거야. 백마는? 사람들이 왔을 때 하늘로 올라갔지. 말이 하늘도 가냐고? 아까 말했잖아. 우리는 경계를 넘는다니까.

불구내는 하늘에서 낸 왕이었어. 종종 하늘로 올라갔지. 어떻게 올라갔겠어? 백마가 왕을 태우고 하늘을 올랐지. 하지만 하늘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왕뿐이었어. 불구내 왕이 하늘을 오가는 것을 너무 부러워한 궁녀가 있었지. 궁녀는 자기도 하늘나라를 구경하고 싶다고 왕을 졸라댔어. 너그럽고 인자했던 왕은 그만 마음이 약해져서 하늘의 금기를 어기고 말았지. 경계를 넘는 것과 금기를 어기는 것은 전혀 다른 거야.

불구내는 궁녀를 작게 줄여서 말의 귀에 넣었어. 절대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지. 하지만 화려한 하늘나라를 처음 본 궁녀는 저도 모르게 감탄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어. 당연히 들켰지. 불구내는 하늘의 금기를 어겼다고 해서 몸이 다섯 조각이 나는 형벌을 받고 하늘에서 떨어졌어. 하얀 말도 저주를 받았지. 어떤 저주를 받았냐고?

불구내의 아내, 왕비 알영은 용의 딸이었어. 졸지에 지아비를 잃은 알영은 그게 다 하얀 말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지. 용에게 부탁해서 하얀 말을 보면 꼭 잡아먹으라고 한 거야. 그때부터 하얀 말의 천적은 용이 되었어.

백제가 멸망할 때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사비성을 공격하려고 강을 건너려고 했어. 그때 백제를 지키던 용이 강물을 흔들어 당나라 군사가 강을 못 건너게 방해했지. 그러자 소정방은 하얀 말을 미끼로 걸어서 강에 던졌고, 용은 과거의 약속에 따라 하얀 말을 덥석 물고 말았어. 소정방이 그렇게 용을 잡아내고 강을 진정시키는 통에, 그 강의 이름도 백마강이 되었지 뭐야.


천마도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전주최씨 인재공파 재와종택 全州崔氏 訒齋公派 䏁窩宗宅 기탁 자료)

왕을 찾은 다른 형제 이야기도 해볼까? 그건 더 먼 옛날의 일이야. 저 북쪽 땅끝에 부여라는 나라가 있었거든. 그곳의 왕 해부루에게는 아들이 없었어. 해부루는 산신령들에게 아들을 부탁하고 다녔지. 그러던 하루는 왕이 탄 말이 큰 연못가에 멈춰 서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어. 왕은 그게 무슨 신호인지 알아차렸지. 말이 바라보는 큰돌을 밀어서 치웠더니 그곳에는 금빛의 개구리를 닮은 아기가 있었어. 이 아기는 자라나서 금와왕이 돼. 금개구리 왕이라는 뜻이야.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 않아. 훗날 부여는 고구려라는 강적을 만나는데, 고구려의 대무신왕은 부여를 공격할 때 거루라는 신마를 얻어. 거루는 말들의 왕이었지. 부여의 말들까지 거루에게 복종했어. 거루는 스스로 가장 위대한 왕을 찾아간 거지.

형제들 이야기만 하는 거냐고? 아, 그건 아니지. 내 이야기를 할 차례야.

북방의 패자로 오랫동안 군림했던 나라가 있어. 고구려라고 부르지. 그 고구려의 첫째 왕은 추모라고 해. 추모는 원래 부여 왕실에 빌붙어 살던 몸이었어. 그 어머니는 부여 금와왕의 첩실이었지. 그러니까 추모도 아마 금와왕의 아들이었을 거야. 하지만 어머니는 추모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네 아버지는 하늘에 사는 해모수란다. 내가 웅심연에서 멱을 감을 때 다섯 마리 용이 모는 수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었지.’

‘아버지는 지금은 어디 계세요?’

‘하늘나라로 돌아갔단다. 너도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부여 왕실에 남아있어서야 그럴 기회를 잡을 도리가 없었지. 그리고 경계를 넘으려면 뭐가 필요하다고? 그래, 바로 말이 필요하지. 마침 추모는 왕의 말을 기르는 일을 맡고 있었어. 추모의 어머니 유화부인은 채찍을 들고 마굿간에 가서 마구 휘둘렀지. 말들이 놀라서 달아났는데, 유유히 우리를 뛰어넘어 달아난 말이 있었던 거야. 붉은 말. 바로 이 몸이었지. 아참, 지금은 머리만 있다만.

유화부인은 내 혀 밑에 바늘을 꽂았어. 덕분에 난 여물을 잘 먹을 수가 없었고, 하루하루 말라갔지. 하루는 금와왕이 마굿간에 와서 보고는 제일 삐쩍 곯아 볼품이 없던 나를 추모에게 주었어. 내 고행도 그날로 끝났지. 다시 살이 오른 뒤에 나는 추모를 태우고 부여를 떠났어.

먼 곳의 강가에 도착하여 추모는 나라를 세웠지. 그 나라가 무슨 나라인지는 더 말 안 해도 되겠지?

추모는 그 땅에서 20년간 왕 노릇을 했어. 그리고 드디어 추모도 하늘나라에 올라가기로 결정했지. 나는 추모를 태우고 하늘나라로 올라갔어. 추모는 더 이상 채찍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옥으로 만든 채찍을 던져놓고 갔지. 뒤에 남은 사람들은 그 옥채찍을 추모의 몸으로 삼아 무덤에 안장했다고 해. 나는 하얀 말처럼 실수하지 않았기에 추모는 하늘나라에서 아버지 해모수를 만날 수 있었어.

그렇게 하늘나라로 간 내가 왜 망허산에 요 모양 요 꼴로 있는 거냐고? 좀 들어봐.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어.

하늘나라에서 유유자적 보내던 나는 또 왕이 될 사람을 발견하고 말았어. 하늘나라에 있던 것도 지겨웠던 터라 나는 그 소년을 섬기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왔지. 그 소년은 가야의 왕족이었어. 본래는 왕이 될 운명이었으나 할아버지가 신라에 항복해서 왕이 될 수는 없었지. 왕이 될 사람을 발견했다고 해놓고는 뭔 소리냐고?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으니 조금 더 들어봐.

이 소년은 검술과 병법에 뛰어나서 화랑이라고 불렸어. 화랑은 소년 전사들의 우두머리야. 화랑 밑의 소년들은 낭도라고 불러.

그런데 젊은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좋아하는 여인이 있었지. 천관이라는 이름의 여인이었어. 하늘의 관리라는 뜻이니, 참 묘하기도 하지. 물론 하늘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었어. 그녀는 술과 웃음을 파는 기녀였어. 젊은 화랑은 종종 그 집에 가서 놀았지.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어머니가 알게 되었어. 화랑의 어머니는 신라의 왕족이어서 매우 엄격한 교육 방침을 가지고 있었지. 정작 자신은 남편될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야반도주했던 처지면서 말이야. 아니, 어쩌면 자신이 그랬기 때문에 아들은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을 수도 있을 거야. 아무튼 어머니는 아들을 심하게 나무랐어. 아들은 어머니 앞에서 그 여자의 집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지.

하지만 술은 못 끊었어. 술을 끊는다는 맹세는 하지도 않았고. 하루는 만취하여 내 위로 올라타고는 ‘가자!’라고 한마디만 했지 뭐야. 나는 평소대로 천관의 집으로 화랑을 데려갔어. 술 취하면 그 집에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거든. 맹세? 그건 나는 모르는 일이었어.

한동안 발걸음이 뜸했던 화랑이 찾아오자 천관은 기뻐하며 달려 나왔어. 그 여자가 화랑의 이름을 부르자, 화랑은 정신이 번쩍 들었지. 어머니의 맹세도 떠올랐을 것이고.

‘어머니에게 이 집을 다시 찾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네가 마음대로 나를 데려왔구나. 용서할 수 없다.’

어이, 용서고 뭐고 그러려면 나한테 먼저 말을 했어야지. 하지만 나는 그런 항의를 할 틈이 없었어. 화랑은 어느 틈에 칼을 뽑아 들었고, 단번에 내 목을 잘라버렸거든.

아, 그래서 지금 이렇게 목만 남아서 숲속에 떨어져 있는 거냐고? 그렇기도 한데, 이야기는 아직 안 끝났어. 좀 더 들어봐. 마지막 이야기야.


붉은 말 (출처: ChatGPT 생성 이미지)

떨어진 목을 어찌어찌 수습해서 하늘나라로 돌아갔지. 그 화랑은 나중에 삼국을 통일하고, 죽어서는 흥무대왕으로 모셔져. 그러니까 내가 왕을 발견한 게 맞다는 걸 알겠지?

나도 좀 질려서 그 뒤엔 얌전히 지냈는데, 또 왕이 될 사람을 보자마자 내려가 그를 태우고 싶더라고. 나는 좀 불안한 목을 잘 붙이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서 그 청년의 말이 되었어.

하루는 말이야. 큰 내기가 걸렸어. 그 청년이 너무 말을 잘 타니까 화살보다 빠르다는 소문이 돌았거든. 청년은 호승심이 강했어. 그 말에 정말인지 한번 알아보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화살을 쏘고 박차를 가해 말을 달렸지. 그 말이 하필이면 나였어. 그깟 화살보다 빨리 달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지. 내가 과녁에 도착했을 때, 당연히 과녁은 텅 비어 있었어. 그런데 이 성질 급한 청년은 자기가 쏜 화살이 빗나간 줄 알았던 거야. 버럭 화를 내면서 순식간에….

그래, 내 목이 또 떨어진 거야. 내 목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화살이 과녁에 턱 박혔지. 청년은 깜짝 놀라 후회했지만 이미 떨어진 내 목을 되돌릴 방법은 없었어. 이 일로 청년은 자신의 급한 성격을 고치고 유명한 장군이 되었지. 나중엔 조선의 첫 번째 왕이 되었어.

그건 그거고, 나는 큰일 난 거잖아. 목이 두 번이나 떨어졌더니, 이젠 툭 하면 떨어지지 뭐야. 그러니 내 몸뚱이 좀 찾아줘.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네.

“백이야, 말 몸뚱이 찾았어!”

목금이 목 없는 말고삐를 잡은 채 오는 중이었다. 백이가 손을 흔들었다.

“기다리느라 심심하지 않았어?”

“하나도. 이 말이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시간 가는 줄 몰랐네.”

“잘됐네. 초록이가 바늘과 실도 가져왔고?”

“여기 있어.”

백이가 바늘과 굵은 실타래를 목금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제 목이 안 떨어지게 단단하게 꿰매줄게요. 그럼 좋겠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말머리가 대답했다.

“그럼 너무 고맙지.”

“대신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뭐든 들어준다!”

“망허산 남쪽에 나무꾼이 한 명 사는데 말이죠. 아내가 선녀였어요….”

“에잇, 내 등에다가 팥죽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땅바닥에 떨어진 그 덜떨어진 놈 말하는 거구나.”

“맞아요. 불쌍하니까 한 번만 봐줘요. 다시 하늘나라로 데려가 주세요.”

말머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알았다. 머리만 단단히 붙여주면 그 소원 들어주마.”

두 소녀는 손을 붙잡고 기뻐했다. 나무꾼 아저씨의 넋 나간 얼굴이 너무 불쌍했던 탓이다. 어머니가 준 팥죽 때문에 말에서 떨어졌는데 이 말이 놀라서 하늘로 날아가다가 그만 목이 툭 떨어지면서 망허산 어디쯤 떨어진 것 같으니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으니, 임무 완수였다.

“올해가 마침 붉은 말의 해라고 하더라고요. 새해에 좋은 일을 하는 붉은 말이니 꼭 복 받을 거예요.”

“히히힝, 좋구나. 너희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목이 단단히 붙은 붉은 말이 기뻐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집필자 소개

이문영
이문영
역사, 추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문서 쪽으로도 출간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의 소설게시판지기로도 활동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을 겸하고 있다. 역사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어린이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역사소설 『정생, 꿈 밖은 위험해』, 어린이 인문서 『그게 정말이야?』, 역사인문서 『유사역사학 비판』을 비롯해서 MMORPG 『무혼』 등 여러 편의 게임 시나리오도 만든 바 있다.
“새 말(馬)을 사다”

김광계, 매원일기(梅園日記),
1607년 1월 13일

김광계는 다른 양반들처럼 늘 말을 타고 다녔다. 제천 할아버지 댁을 갈 때도, 재종숙들 집에 갈 때도, 향교에 갈 때도, 서원에 갈 때도, 향시를 보러 갈 때도,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갈 때도 언제나 그는 그 말에 짐을 싣기도 하고, 타기도 하면서 다녔다. 그런데 2년 전 겨울 이른 아침에 말을 타고 강을 건넌 적이 있는데, 말의 배까지 차디찬 물이 차올라서 김광계의 바지가 다 젖고, 말도 고생을 했었다. 그리고 이십일 정도 지나서 김광계는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게 되었는데, 그 때 서울로 가면서 그 말에다가 짐을 싣고 타고 갔었다. 그 때 말의 걸음이 매우 느려 같이 가던 친구들을 따라 가지 못하기도 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예 길에 드러눕고 말아서 말고삐를 잡았던 하인과 김광계가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고향으로 출발하기 위해 말을 전세내다”

미상, 을묘청의변(乙卯淸議辨),
1855년 8월 12일

1855년 8월 12일, 김수근의 서원을 안동에 세울려고 할 때의 일이다. 아침에 류치흠의 관사(館舍)에 갔더니, 자리가 몹시 시끄러웠다. “어느 날 고향으로 출발하느냐”고 묻기에, 내가 “전세를 낸 말[馬]이 낭패가 되어 지금까지 미루고 있다. 만약 오늘이라도 말을 구한다면 내일 당장 출발하겠다.”고 대답하였다.

“마패로 말을 빌려 타며 임지로 가는 길”

금난수, 성재일기(惺齋日記),
1581년 12월 6일 ~ 1581년 12월 25일

금난수는 경안역(현 경기도 광주)에서 처남 조목과 사마시 급제 동기인 찰방 박길보(朴吉甫)를 만나 좋은 말을 지급받았다. 경안역에서도 융숭한 대접을 받아 이미 만족스러웠건만, 박길보는 다음에 금난수가 들른 덕풍역(현 경기도 하남시)에도 서리 김사호(金士浩)를 보내 금난수를 잘 대접해 줄 것을 연통해 놓았다. 이런 인맥 덕인지, 금난수는 들르는 역마다 매우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아천역, 유춘역, 가흥역을 지나 연원역(현 충청북도 충주)에서도 찰방 민의(閔椅)가 금난수를 반기며 고급 등급의 말과 말구종을 지급해 주었다.

좋은 말을 탄 덕에 피로감 없이 창락역(현 경상북도 영주시)까지 온 금난수는 말을 갈아타지 않고 말 먹이만을 먹인 뒤, 집까지 곧바로 달렸다. 12월 6일에 출발하여 약 이레 만에 집에 도착한 것이다.

“마의를 불러 말의 병을 치료하다”

김광계, 매원일기(梅園日記),
1608년 5월 2일

1608년 5월 2일, 김광계는 종을 불러 말(馬)의원을 불러 오라고 일렀다. 지난달 21일에 김광계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박기원과 홍차회를 만나고 서원으로 돌아오다가 갑자기 말이 펄쩍 뛰는 바람에 땅에 떨어진 일이 있었다. 너무 놀랐지만 다행히 김광계는 크게 다치진 않았다. 그러나 너무 아파서 서원에 도착하자마자 술이라도 마시려 했었다.

그 후에도 말의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서 말의원을 부르려다가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아무래도 더 이상 미루면서 그냥 타고 다니기엔 불안해서 말의원을 부른 것이다.

“온 식구와 새해를 맞이하다”

오희문, 쇄미록(𤨏尾錄),
1598년 1월 1일

1598년 1월 1일, 오늘은 무오년 새해가 밝는 날이다. 동이 트기 전에 아우와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사당에 제사를 올렸다. 부모와 조부모, 죽전숙부모에게 제사를 모두 지낸 다음, 작년 죽은 딸아이에게 제사를 지냈다. 집에 종과 말이 없어 성묘를 드리지 못하니 한스러웠지만, 그나마 사당에서 온 식구들이 모여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세 가지 색의 육탕과 네 가지의 어육 구이, 포, 혜, 오색 과일, 떡, 면을 준비해 지냈다. 전란이 일어난 이후 가장 갖추어진 제사상이었다.

늦은 오후에 사람들이 와서 새해의 덕담을 건넸다. 오는 사람마다 술을 대접해 보냈다. 판관 최중운과 참봉 최경수 및 그 두 아들이 찾아왔기에 술과 음식을 대접해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희문은 과음을 하여 저녁에 구토까지 했다. 환갑이 넘는 나이에 과음하여 구토까지 하니 참으로 민망한 일이었다. 술에 취해 잠에 들면서 오희문은 올해 무오년은 작년처럼 슬픈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였다.

“마흔 한 살 설날을 맞이하다”

엄경수, 부재일기(孚齋日記),
1712년 1월 1일

1712년 1월 1일. 올해 엄경수는 마흔한 살이 되었다. 과거 젊은 시절에는 마흔 살을 마치 노인처럼 여겼는데, 고개를 둘러보니 40살을 먹었고, 또 한 해가 지났다. 이제 쉰 살에 9년이 모자라는 나이였다. 스스로 벌써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는 살이 새삼 놀라웠다.

예전 성인의 말씀에, ‘마흔 살, 쉰 살이 되어서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 또한 끝일 뿐이다.’란 구절이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엄경수는 명성이 알려진 자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엄경수 역시 그저 그런 변변치 못한 인생으로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인가. 그런 생각이 밀려들자 씁쓸하면서도 좌절감이 밀려왔다. 그렇다면 과연 여기서 그칠 뿐이란 말인가!

“소머리 굽고 노래하며 질펀하게 보낸 새해”

김성탁, 제산일기(霽山日記),
1732년 1월 2일

천연두 때문에 온 동네에 가족을 잃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슬픈 분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느끼게 하는 것은 새해맞이의 힘일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다시 함께 모여 좋았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현재를 즐기며 계속 살아갈 힘을 얻는다. 우울한 얼굴로 다니던 김성탁(金聖鐸) 역시 운곡의 이호 형 집에 들어서자 느껴지는 왁자한 분위기 덕에 조금씩 웃음을 찾아 갔다.

밤늦은 시간에도 이호 형 집의 부엌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수십 명의 손님들이 들어찬 사랑방에는 등잔불이 흔들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여종들이 바삐 내어오는 상들 위에는 쇠머리를 구운 고기들이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겼다. 주인이 준비했는지, 어느 손님이 가져왔는지 촌 막걸리도 있었는데 그 시큼한 맛이 고기와 잘 어우러졌다. 술이 들어가자 다들 불콰한 얼굴로 서로 노래를 시켰다. 서로 주고받는 노래의 흥이 모두의 근심과 적적함을 깨뜨려 주었다. 하지만 김성탁은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술에 취해 종종 광대짓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음설한 말을 섞기도 했기 때문에 모임이 우아하거나 고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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