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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 최종 피칭 현장 탐방기

기록에서 콘텐츠로,
청년 창작자들의 무대를 만나다


지난 2026년 5월 1일, [제12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 참가 접수가 시작되었다. 총 116개 팀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올해도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접수되었다. 최종 선발된 8개 팀은 각 분야의 전문가(멘토)와 함께 약 5개월간의 교육과정을 거치며 작품을 발전시켜 왔다.


오리엔테이션과 교육캠프를 거쳐 성장 중인 학생들



10월 10일 토요일은 그 동안의 고민과 노력, 성장의 결실을 선보이는 최종 피칭의 날이었다. 서울 송해아트홀에서 펼쳐진 청년창작자들의 마지막 무대, 그 뜨거웠던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최종피칭 현장인 송해아트홀과 [제12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 현수막

최종피칭이 이루어지는 무대



한로(寒露)는 지났지만 낮기온이 30도 가까이 이르는 가을치고 무더운 날이다. 학생들의 열기가 더 전해지는 듯했다.

아직 본격적인 피칭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현장은 분주했다. 학생들은 발표 자료를 점검하고 마지막까지 발표 내용을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행사 관계자들 역시 차질 없는 진행을 위해 무대와 장비를 점검하며 최종 준비에 한창이었다.


최종 피칭을 위한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학생들과 현장 스탭



최종 발표에 주어진 시간은 팀당 피칭 10분과 질의응답 10분, 모두 20분.

짧다면 짧은 이 시간 안에 작품의 기획 의도와 차별성,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단 20분의 시간만으로 학생들이 흘린 땀과 수많은 고민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날의 무대는 그동안 쌓아온 노력과 성장의 흔적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처음 공모전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 함께할 팀원들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어 기획서를 작성하던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던 순간까지. 기획서 심사를 통과한 뒤에도 오리엔테이션과 교육캠프, 전문가 멘토링을 거치며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발전시켜야 했다.

때로는 처음의 기획을 다시 돌아보고, 때로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며 한 걸음씩 나아온 시간이었다.

그렇게 수개월 동안 이어진 고민과 노력이 마침내 하나의 무대에서 만났다.




긴장 속에서 시작된 여덟 팀의 도전


최종 프로모션의 첫 번째 주인공은 둘로그 팀의 〈무영곡의 목민〉이었다.

첫 발표의 장점이라면 가장 많이 떨리지만, 또 가장 빨리 그 긴장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둘로그 팀의 발표에서도 첫 순서가 주는 긴장과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무영곡의 목민〉은 조선 후기 가상의 고을 ‘무영곡’을 배경으로 새로 부임한 사또가 첫날부터 살인 사건을 마주하면서 시작되는 TRPG 방식의 보드게임이다. 다소 생소한 TRPG라는 게임 장르를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려는 학생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실제 게임 상황을 예로 들며, 진행 방식과 특징을 풀어내고 약간의 ‘역할극’까지 불사하여 매우 인상적인 발표였다.


둘로그 팀의 〈무영곡의 목민〉



두 번째 발표는 아마계돈(阿麻鷄豚) 팀의 〈옥분향록(玉粉香錄)〉이었다.

〈옥분향록〉은 조선시대 기생의 딸로 태어난 홍옥분이 매분구로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며 신분의 한계를 넘어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담은 웹툰이다. 주인공 홍옥분이 여러 사건을 겪으며 진정한 아름다움의 의미를 깨닫고 성장해 가는 과정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화장술과 미의식을 알아보는 재미도 함께 담았다. 전통 장신구를 착용하고 발표에 나선 학생들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작품의 시대적 분위기를 직접 표현하며, 자신들이 만든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정성이 느껴졌다.


아마계돈 팀의 〈옥분향록〉




오늘날 태어난 신사임당과 뮤지컬로 전하는 금원의 여행기


세 번째 무대에서는 예술가로서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시대적 한계에 부딪혀 현모양처의 삶을 살아온 신사임당을 현대에 소환시킨 작품인 레디액션 팀의 〈사임당, 나를 그리다〉이다. 주인공 신사임은 전생의 기억을 지닌 채 현생에 다시 태어난 신사임당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이번 생에서는 '현모양처'가 아닌 화가 사임당으로 자신의 뜻을 펼치며 살아가던 중, 미술품 복제 사건에 연루되면서 전생의 인연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사임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화가로서의 삶과 재능에 주목하고 범죄 수사라는 대중적인 장르를 결합한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레디액션 팀의 〈사임당, 나를 그리다〉



이어진 발표는 공삼의 산악회 팀의 〈호동서락기〉였다.

〈호동서락기〉는 조선 후기 여성 문인 금원이 남장을 하고 금강산과 한양 등을 유람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작품은 어린 금원의 여행기뿐 아니라 여성들이 함께 시를 나누던 공간인 삼호정을 지키려는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다. 특히 최종 프로모션 현장에서 짧게 선보인 뮤지컬 넘버가 피칭의 효과를 더했다. 국악적 선율과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기록 속 금원의 삶이 실제 무대에서는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게 했다.



공삼의 산악회 팀의 〈호동서락기〉




도깨비와 함께 걷고, 신비한 꽃차로 마음을 위로하다


다음 작품은 도깨비 유랑단의 〈도깨비의 판-홀린 듯 한양을 걷다〉였다. 『계암일록』에 실린 도깨비 홀림 기록을 모티프로 한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2026년 서울, 자신의 이름과 기억을 잃어버린 도깨비가 나타난다. 관객들은 도깨비와 함께 광화문 일대를 걸으며 보고, 듣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직접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실제 도시 공간을 이동하며 이야기를 경험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서울 일대를 직접 촬영한 영상을 피칭에 활용해 작품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실제 공연이 펼쳐질 공간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이를 발표와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작품에 대한 이해와 몰입도를 높인 피칭이었다.



도깨비 유랑단 팀의 〈도깨비의 판-홀린 듯 한양을 걷다〉



필(筆) 무렵 팀의 〈꽃풀이-다시 쓰는 일기〉는 제주 신화 『이공본풀이』에 등장하는 서천꽃밭의 신비로운 꽃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조선시대 힐링 찻집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직접 찻집을 운영하며 꽃차 한 잔으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게임이다. 특히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눈길을 끌었다. 알록달록 꽃이 피어 있는 꽃밭을 가꾸고, 캐릭터들이 차를 마시는 모습은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듯했다. 언젠가 ‘조선판 동물의 숲’으로 거듭날 수 있길 기대해 보았다.



필(筆) 무렵 팀의 〈꽃풀이-다시 쓰는 일기〉




조선의 범죄 조직과 호환, 역사 속 공포가 스릴러로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어느덧 두 작품만 남았다. 두 작품 모두 조선시대의 어두운 이면에 주목한 사극이다. 먼저 조선시대 범죄 조직인 '검계劍契'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검크크 팀의 〈칼춤〉이다.

〈칼춤〉은 조선시대 범죄조직인 검계를 소탕하기 위해 조직에 잠입한 이진이 자신을 ‘식구’로 받아준 조직원들과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영화이다. 실존했던 검계를 바탕으로 잠입 수사와 인간적인 갈등을 결합해 조선시대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장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 학생들 모두 검은색 복장을 착용하고 발표에 나섰으며, 피칭 영상 역시 검은색을 중심으로 어둡고 강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때 영화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누아르 영화가 조선시대라는 배경을 만나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발표였다.



검크크 팀의 〈칼춤〉



또 다른 작품은 호환을 소재로 한 호시탐탐 팀의 〈동쪽에는 호걸이 살고 있었다〉이다. 조선시대에 호랑이는 경외시 대상으로 호랑이에 의한 죽임이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살인이 호랑이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호환을 끝내기 위해 부임한 신임 현감 영도가 연이은 죽음과 실종 사건을 추적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나 사건을 파헤칠수록 호랑이의 소행이라고 여겼던 일들 뒤에 감춰진 거대한 음모와 진실이 드러난다.

호환이라는 전통적인 공포 소재에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인간의 욕망을 결합한 정치 사극 스릴러다.



호시탐탐 팀의 〈동쪽에는 호걸이 살고 있었다〉



각 팀의 발표가 이어지는 동안 심사위원들의 질문도 계속됐다. 때론 날카롭게, 때론 따뜻한 격려와 조언으로 학생들의 기획을 깊이 있게 살폈다. 학생들 역시 긴장 속에서도 자신들의 생각과 기획 의도를 설명하며 질문 하나하나에 성실하게 답변했다.



공정하고 세심한 심사를 위해 집중하고 있는 심사위원님들



학생들에게는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는 것만큼이나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긴장되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구상한 작품을 설명하고, 때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돌아보는 순간도 있었을 법하다.

그렇게 모든 팀의 발표가 끝나고 시상식까지 마무리되면서 2026년 공모전의 긴 여정도 막을 내렸다

116개 팀에서 시작해 마지막 무대에 오른 8개 팀.

게임, 웹툰, 드라마, 뮤지컬, 참여형 공연 등 각기 다른 방식으로 완성된 작품들은 전통 기록문화가 얼마나 다채로운 콘텐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기록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옛 기록 속 사소한 일화가 흥미로운 게임의 출발점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한 인물의 삶이 무대 위의 노래가 되었다. 신화 속 꽃은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찻집으로, 오래된 도깨비 이야기는 오늘날 서울의 거리를 걷는 새로운 경험으로 탄생했다.

과거의 기록은 그대로 머물러 있었지만, 그 기록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상상력은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날의 발표가 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얻은 경험과 배움이 앞으로 또 다른 창작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 기획서를 작성하던 순간부터 마지막 발표를 마치기까지, 열정과 노력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온 모든 참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20분의 무대에 모두 담을 수 없었던 그들의 고민과 노력, 그리고 성장이 앞으로 더 멋진 콘텐츠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26년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구분 수상작(팀명) 분야
대상 도깨비의 판-홀린듯 한앙을 걷다
(도깨비 유랑단)
관객참여형 공연
최우수상 무영곡의 목민
(둘로그)
보드게임(TRPG)
우수상 사임당, 나를 그리다
(레디액션)
드라마
우수상 꽃풀이-다시 쓰는 일기
(필筆 무렵)
게임
장려상 칼춤
(검크크)
영화
장려상 호동서락기
(공삼의 산악회)
뮤지컬
장려상 옥분향록
(아마계돈)
웹툰
장려상 동쪽에는 호걸이 살고 있었다
(호시탐탐)
OTT드라마



집필자 소개
권희주(한국국학진흥원)
“임금의 파천 소식을 듣다”

정경달, 반곡난중일기(盤谷亂中日記),
1592년 5월 16일

1592년 5월 16일. 오늘 서울에서 갑사 1명이 도망쳐 이곳 선산 고을로 내려왔다. 전란의 소식을 들어보니 임금이 왜적을 피해 파천길에 오르셨다는 것이다. 이미 4월 그믐날 파천 길에 올랐는데, 5월 3일 무렵에 왜적이 도성에 쳐들어와 남녀 백성들이 달아나느라 서로 밟혀 죽었다고 한다. 이 도망친 갑사는 양근 고을과 충주 고을을 거쳐 산길을 따라 이곳까지 도주해 왔다고 한다.

이 소식이 부내에 전해지자, 민가의 동네마다 놀라서 동요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대년은 정경달의 손을 잡고는 “주상께서 서쪽으로 파천하셨으니, 우리는 장차 어디로 가야한단 말이오.”라며 울부짖었다. 정경달은 성안의 인심이 이렇듯 동요하자, 소식을 전한 사람의 목을 베어 진정시키려 하였으나 전대년이 있는 힘껏 말리는 바람에 중지하였다.

“이순신의 죽음”

정경운, 고대일록(孤臺日錄),
1598년 11월 19일

1598년 11월 19일, 전라좌수사 겸 통제사 이순신이 사망했다. 가토 기요마사가 제독 유정에게 두 번이나 강화를 청하면서 병력을 해산하고 돌아가겠다는 요청을 했다. 유정이 거짓으로 화친을 허락하고 이순신에게 이를 몰래 알렸다. 배를 정비하여 반쯤 건넜을 때 공격하였는데, 왜적이 배에 오르기는 했으나 다 타지 못했을 때 제독 유정과 이순신이 공격하여 왜선 수백 척을 부딪쳐서 파괴하였다. 왜적들이 건널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진영으로 다시 되돌아가 사천의 적장 심안도에게 힘을 합쳐 수전을 할 것이니, 즉시 달려오라고 하였다.

심안도가 연 배를 타고 앞으로 나오니, 이순신이 좌우로 협격하여 큰 전쟁이 바다 가운데서 벌어졌다. 이순신이 병사들의 앞에 서서 종일 혈전을 펼쳤는데 탄환을 맞고 머리에 맞아 전사했다.

“오랑캐가 압록강을 넘어왔다는 소식을 듣다”

김령, 계암일록(溪巖日錄),
1627년 1월 20일

1627년 1월 20일, 김령은 조카 김광적에게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김광적이 아버지인 김호의 묘를 옮기는 일 대문에 안동 관아에서 감사와 만나고 온 길이었다. 감사가 산송 문제로 당사자들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데, 갑자기 선전관이 말을 달려 관아에 당도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서북쪽 오랑캐 수만 명이 의주를 포위하고 또 선천에 들어왔으니, 감사는 군마를 불러 모으고, 호패어사 또한 머물지 말고 급히 서울로 돌아오라는 명령이다’ 라고 하였단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 뒤 자세한 내막을 들으니 오랑캐가 이달 13일에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포위하였는데, 의주성은 매우 공고하여 방어할 준비가 다 되었으나 안에서 내통하여 문이 열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의주부윤 이완은 스스로 불에 타 죽고, 의주 판관 최몽량은 피살되었으며, 한명련의 아들 한윤 및 박난영 같은 이들은 모두 돌아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장수와 군사들 중 저들에게 투항한 자들도 많이 왔는데, 그 가운데 강홍립도 있었다고 한다. 적의 군사들이 무인지경으로 우리나라를 침입하고, 또 안주를 함락시켰으며, 여섯 가지 항목을 들어 조선에게 죄를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랑캐들 스스로 대금이라 칭하고 황제를 자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발발 - 새벽 1시, 남산에 세 대의 봉화가 피어오르다”

김종, 임진일록(壬辰日錄),
1592년 4월 23일

1592년 4월 23일, 김종(金琮)은 전장에 나가는 군사들을 위해 말을 바쳤다.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에 남산을 올려다보니 봉화 5대가 모두 피어오르고 있었다. 또 장계가 올라와, 왜적이 울산과 경주 등에 들어왔다는 내용을 보고하였다. 임금께서는 두 세 곳의 요충지로 군사를 파견하라는 전교(傳敎, 임금의 명령)가 있었다. 내일 이른 아침이면 군사들이 나갈 것이다.

오후가 되니 남산에서 봉화 1대를 올렸다. 오후가 되니 충청에서 온 소식에는 박진(朴晉)이 경상도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날 몇몇 정무(政務)가 임시로 정지되었고, 나라의 특별한 일을 위해 임시로 설치된 도감(都監) 역시 없앴다. 또 4경(四更, 새벽 1시~3시 사이) 남산에서 봉화 3대를 올렸다.

“원균의 패배”

정경운, 고대일록(孤臺日錄),
1597년 7월 10일 ~ 1597년 7월 18일

이순신 대신에 통제사가 원균이 1597년 7월에 수군들을 이끌어 왜적을 맞이하여 적의 소굴을 바로 쳤는데, 조선의 6척이 서생포(西生浦)에 표류했고, 한 척은 침몰했다.

원균이 다시 7월 14일에 배 200여 척을 이끌고 나가서 공산에서 적을 맞이하여 치고는 영등포(永登浦)에 배를 머무르게 했는데, 16일 밤에 적이 밤에 몰래 숨어 있다가 동이 트자 적선이 와서 사면을 포위하고 공격하니, 조선군이 크게 무너져 원균은 바다에 빠져 사라지고 충청병사 최호도 죽었다. 수군 중에 죽거나 물에 빠진 자의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원균이 패배한 것은 원수 권율이 곤장을 치자, 이에 성이 난 원균이 급히 군사를 몰아나가 적의 세력이 많은지 적은지를 고려하지 않고 싸운 탓이었다.

“변방 소식에 민심이 흉흉하다”

장흥효, 경당일기(敬堂日記),
1621년 3월 2일 ~ 1621년 4월 7일

변방의 기이한 소문은 연일 안동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일전에 명나라에서 파병을 요청한 일 때문에 조선이 한 번은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다. 결국 파병은 이루어졌고 안동에서도 여럿 파병군으로 참여하거나 안동에 있는 다수의 말들이 징발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변방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혹 조선으로 오랑캐가 쳐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민심은 더더욱 흉흉해졌고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요동이 드디어 오랑캐에게 노략질을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요동은 명나라 동북쪽 지방의 요충지로 만주에서 중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다. 요동이 침략 당했다는 것은 오랑캐들이 본격적으로 중원을 노린다는 사실을 말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이제 언제 조선에 들어올지 모를 일이었다. 명나라 같은 대국이 침략을 당했으니 과연 조선이라고 무사할 수 있을까.

“병자호란이 시작되다”

김광계, 매원일기(梅園日記),
1636년 12월 13일 ~ 1636년 12월 20일

1636년 12월 13일, 청군이 안주(安州)에 이르렀다. 병자호란이 시작된 것이다. 인조는 이미 14일에 파천(播遷)하여 남한산성에 이르렀다. 도산서원에 있던 김광계는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19일에 이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병사를 모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움과 염려를 금치 못하였다. 청나라 군사의 속도와 기세 역시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온 나라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고 있었다. 김광계와 마찬가지로 예안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지 동생 김광보가 놀란 가슴을 안고 김광계를 찾아왔다.

20일, 김광계는 조카 김초(金礎)와 함께 도산서원을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김광계를 더욱 한탄스럽게 하는 전란 소식이 들어와 있었다. 임금이 서울을 지키지 못하고, 왕의 어가가 남한산성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김광계는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난리를 맞음을 탄식하였다. 이 때 여러 읍의 수령들도 군수물자를 만들기 시작하고 군사를 움직이는 등 동리가 불안하였다. 김광계는 이러한 시점에 한 가문과 서원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국난을 해결하기 위해 뭔가 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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