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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보지 못한 책을 돌려주다


1596년 6월 20일, 어제저녁 무렵, 송영구가 사람을 보내어왔다. 그간 잘 지내고 있는지 묻는 문안 편지와 더불어 노란 참외 25개도 함께 보내어왔다. 그리곤 일전에 오희문이 빌려간 삼국사 책을 돌려달라는 내용도 함께 보내어왔다. 오희문은 편지를 읽고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다만 일전에 빌린 삼국사는 아직 다 읽어보지 못하였으므로 다음번에 돌려주겠다는 내용으로 답장을 적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송영구의 종 세량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하직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그가 말하기를 만약에 책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필경 무거운 매를 맞게 될 것이라 한다. 그리하여 여기서부터 도망을 쳐야겠다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오희문이 듣기로 송영구가 평소 정신병이 있다고 하던데, 종 세량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틀림없이 노여움을 그 종한테 옮겨서 무거운 중벌을 내릴 수 있을 듯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오희문은 두려운 마음에 부득이 삼국사 스무 권을 내어 종에게 딸려 보내었다. 세량이 떠나기 전 말하지 않았다면, 애꿎은 종만 무거운 벌을 받을 뻔한 것이었다. 오희문은 책을 보낸 이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출전 : 쇄미록(𤨏尾錄)
저자 : 오희문(吳希文)
주제 : 미분류
시기 : 1596-06-20 ~
장소 :
일기분류 : 전쟁일기
인물 : 오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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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소개

글 그림 | 서은경
서은경
만화가. 1999년 서울문화사 만화잡지공모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간 지은 책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조선의 명화』, 『소원을 담은 그림, 민화』, 『만화 천로역정』, 『만화 손양원』 등이 있으며, 『그래서 이런 명화가 생겼대요』, 『초등학생을 위한 핵심정리 한국사』 등에 삽화를 그렸다.
● 제5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 담임멘토
● 제6회 스토리테마파크 창작 콘텐츠 공모전 전문심사위원
● 제7회 전통 기록문화 활용 대학생 콘텐츠 공모전 면접심사위원
“조선시대 점과 점쟁이”

예로부터 무당을 궐 안에 두고 나라의 길흉을 예언케 하였으나 점쟁이는 예언자로 전문적 직업인으로 민간에 생겼다. 점을 치는 종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사의 존망을 점치는 사주점과 앞으로 닥칠 일을 점치는 운수점, 한 해의 운이 좋고 나쁨을 점치는 신수점, 단시점(斷時占), 멸액점(滅厄占), 절초점(折草占)따위가 있다. 또한 점을 치는 것으로는 태주가 하는 신점(神占)과 주로 여자 점쟁이가 쌀을 뿌려 점치는 쌀점, 동전을 던져서 점치는 돈점, 새가 물어온 점괘로 점치는 새점, 산통점(算筒占), 역점(易占), 오행점(五行占), 육효점(六爻占), 팔괘(八卦占), 구궁점(九宮)따위가 있다.

옛날 점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맹인들은 골목을 돌아다니며 “문복(問卜, 점쟁이에게 길흉을 물음)이요!” 하면서 점을 치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다녔고 자기 집에 ‘점’ 또는 ‘점집’이라 쓴 깃발을 달아놓기도 하였다. 이들은 주역(周易)을 바탕으로 이름 짓기와 관상, 이름, 감정 따위를 보았으며 때때로 액운을 막기 위한 부적을 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중기(中期) 때 민간에 보급된 대표적인 토정비결(土亭秘訣, 이지함 저술)은 생년월일시를 숫자로 풀이해서 그 해의 운수를 달마다 보는 정초의 풍습이 되었다.

“용한 맹인 점쟁이 심군”

맹인점술가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아카이브)
최흥원, 역중일기, 1763-01-06 ~

1763년 1월 6일. 신미년 새해가 된 지도 며칠이 지났다. 어제는 인근에 사는 김용여가 일부러 사람을 보내어 편지를 전하였는데, 새해가 되었으니 신년 운수를 보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그의 편지에는 맹인 점장이 심옥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는데, 평소 그가 아주 영험하고 뛰어나단 소문이 인근에 자자하다고 한다. 엊그제 김용여가 사는 마을에 왔길래 자신도 점을 한 번 쳐보았는데 맞추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데려다가 점을 한 번 쳐볼 만하니 최흥원에게도 한 번 권한다는 내용이었다. 최흥원은 이 편지를 보고는 둘째 아우를 보내어 그 심옥이란 점쟁이를 데려오게 했다.

오늘 그가 점을 쳐보니, 점괘가 아주 불길하게 나왔다. 심옥은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대뜸 아내 묘소의 이장을 권하는 것이었다. 최흥원은 예전에도 아내 묘의 풍수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심옥의 이야기를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었다. 또 그에게 아픈 아이의 사주를 적어주고 앞으로의 운명을 물어보았더니, 그는 매우 길한 점괘가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최흥원은 내친김에 심옥에게 집안사람들의 운명을 두루두루 물어보았다. 매년 새해가 되면 운수를 점치기는 하나, 정확하게 들어맞은 적은 없었다. 막상 심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역시 특별히 용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자뿐 아니라 모두가 아내의 이장을 권하니, 그것은 한 번 고려해 볼 만한 것 같았다.

“과거를 꿰뚫어보는 맹인 점술가 ‘김여추’”

권문해, 초간일기,
1584-03-09 ~ 1584-03-15

1584년 3월, 권문해는 추운 겨울을 지나 어서 봄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3월 9일, 바라본 소백산에는 겨울처럼 눈이 내려온 산이 다 하얗게 되었다. 더욱이 연일 서리가 내려 초목의 싹이 대부분 시들어 죽어가는 걸 보니 마음까지도 메마르는 듯하였다. 그러던 중 예천군 성주 류세무와 경상북도 선산부백(善山府伯) 류덕수(柳德粹)가 경상북도 의성군의 대곡사(大谷寺)에 만나기를 청하였다.

3월 14일, 권문해는 집을 나서 대곡사로 향했고 그곳에서 3일을 머무르며 류세무와 류덕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3월 15일, 이야기 중 경상북도 선산군의 부백 류덕수에게 자신의 고을에 맹인 점쟁이 김여추(金汝秋)에 대해서 듣게 된다. 앞을 못 보는 맹인이지만 그 누굴 만나도 그가 살아온 과거를 귀신같이 맞춘다는 것이다. 권문해와 류세무는 명경수(明鏡數) 김여추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여추의 이야기를 한참 듣던 류세무는 율시 한 수를 쓰는데,
화와 복은 다 이미 정해진 것 禍福皆前定
꽃 피고 시드는 것은 각기 때가 있다네 榮枯各有時
정원의 꽃은 일찍 떨어져 버리지만 花落園中早
산골짝 옆 소나무는 오래도록 산다네 松生澗畔遲
현묘한 이치 원래 수가 있는 것이니 玄機元有數
조물주가 어찌 사사로움을 용납하리오 造物豈容私
모름지기 반계(磻溪) 늙은이를 알아야 할거니 須識磻溪叟
끝내 임금의 스승이 되었네 終爲帝者師

대곡사에 모인 권문해와 류세무, 류덕수는 앞 못 보는 맹인 점쟁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몰랐다.

“자신의 수명을 점쳤던 점괘가 생각나다”

점괘패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오희문, 쇄미록, 미상

1593년 3월, 해가 바뀌자마자 100여 일을 앓았던 오희문은 최근에야 밥을 먹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운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희문이 병으로 죽었단 소문도 돌았고, 이로 인해 아들에게는 위문편지가 날아오기도 하였다. 병이 너무나 심하여 오희문 스스로도 이제 곧 죽는구나 생각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제 이렇게 다시 살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문득 15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오희문은 양지현 농촌에 머물고 있었는데, 죽산에 사는 맹인 김자순이란 자가 점을 잘 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리하여 그를 불러다가 자신의 운명을 점치게 하였는데, 그때 김자순이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나이 54세, 그러니까 임진년에 큰 횡액이 있고, 이것을 지나면 70살 넘게 살 수 있다” 그때 오희문은 재미 삼아 친 점이라 특별히 신뢰하지 않고 있었는데, 과연 임진년에 난리가 터져 거의 죽을 뻔하게 되었다. 비록 몸의 병은 해를 넘겨 생겼지만, 김자순이란 자가 이야기한 점괘와 신기하게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오희문은 새삼 점쟁이 맹인의 신통함에 감탄하였다.

“풍증(風症)걸린 덕원, 괴상한 말을 늘어놓다”

김령, 계암일록,
1623-05-05 ~ 1624-01-20

1623년 5월 5일, 이직(以直)이 안타까운 소식을 가지고 김령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덕원(李德遠)이 지난 밤 풍증(風症, 미친 증세)이 발병하여 정처없이 계상(溪上)·분천(汾川 :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부포(浮浦 :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등지를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김령은 그가 가련하고 애석하여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김령은 이직이 돌아간 뒤 탁청정에 갔다가 제군들을 만나 냇가 길에서 모였는데, 이때 덕원의 병이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고 여희와 이실이 온계(溫溪)로 급히 갔다. 흥이 싹 가셔서 기쁘지 않았다. 탄식스럽고도 탄식스러웠다.

6월 2일, 비 내리는 아침, 김령은 덕원을 만나러 탁청정으로 나아갔다. 그의 언행을 보니 병은 차도가 없었다. 덕원은 괴상한 말들을 계속 늘어놓았다. 가련하고도 탄식스러웠다. 종종 정상인 것도 같으면서, 말하는 것이나 몸을 움직이는 것이 보통 사람과 크게 달랐다.

덕원의 병은 나아지는가 싶더니, 1624년 1월, 다시 발병하였다. 또 이렇게 고된 병에 걸리다니 안타깝고 애석함이 모두 지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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