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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그리움이 나무가 되어

서정화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살살 떠다니겠지.”

# 엄마나무
끌고 가는 우산 끝 뒤로 얼룩을 만들던 빗방울이 제법 커진다. 인적 없는 길옆 풀 위로 떨어지는 자작 자작 비소리와 낮은 노래 소리가 젖은 흙길에 내려앉는다.
“숙이 왔냐? 비오는 데 우산은 왜 안 쓰고...”
듬성듬성 허연 수염이 난 외할아버지가 소년에게 우산을 건넨다. 비에 젖은 운동화 끝만 바라보던 소년은 조금 전보다 밝은 얼굴로 미소 짓는다.
“다녀왔습니다.”
소년은 푸른 지붕의 집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곧장 뒷산으로 향한다. 소나무가 빼곡한 숲길을 지나 자작나무가 여럿 서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아름드리 곧게 뻗은 자작나무. 소년은 가까이 다가가 나무에 가만히 얼굴을 댄다. 나무의 흰 등걸에서 엄마의 향이 난다. 신선한 풀과 바람과 차가운 물의 향기. 엄마가 좋아하는 나무, 엄마처럼 보드랍고 친절하다.
“엄마, 나 왔어. 학교 끝나고 오는데 비가 오네. 엄마 비 맞고 있었지?”
소년은 우산을 펼쳐 나무 옆에 기대어 둔다.
조용히 나뭇잎이 흔들린다. 나무는 바람을 불러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고 따뜻한 땅의 온기를 온몸으로 끌어올려 소년의 차가워진 몸을 녹여준다.
“엄마, 따듯해요. 엄마가 너무 좋아.”

# 엄마의 죽음
올해로 3년이 되어 간다. 소년의 엄마가 나무가 되어버린 그 날.
아침에 눈을 뜨면 가지런한 머리를 귀 뒤로 넘긴 채 아침상을 준비하던 엄마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눈부신 햇살이 네모난 작은 창에서 쏟아져 엄마의 모습을 환하게 밝히던 그날이었다. 서둘러 집을 나서는 소년에게 엄마는 우산을 챙겨 주었다.
“엄마, 무거워. 이렇게 하늘이 맑은데? 비 안와. 걱정 마.”
그날 이후, 엄마가 건네던 우산을 뿌리치고 나오던 일을 후회한다.

학교 수업이 끝날 즈음 어두운 하늘이 운동장을 덮어버렸다. 갑작스런 비는 소년의 발을 묶어버리고 느닷없는 비가 오후 내내 내렸다.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가버렸지만 소년을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가방과 신발이 질퍽하게 집으로 돌아온 소년, 집안이 온통 어둡다. 엄마는 집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가스레인지에는 끓이다 만 찌개의 야채가 동동 떠다닌다.
왠지 불안한 생각들로 심장이 이리 저리 갈팡질팡 하고 있다. 생각의 끈이 끊어져 버리자 거실로 방으로 발걸음만 바삐 바장거린다. 문득 외할아버지 댁에 전화를 걸어보자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벨소리만 길게 늘어진다.
‘뚜르륵-뚜르륵-뚜르륵-’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다리에 힘이 빠져 소파에 철퍼덕 몸을 던져 버린다. 바닥에 떨어진 엄마의 휴대폰이 보인다. 손을 뻗어 휴대폰을 줍기도 전에 급하게 현관문이 열리면서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외삼촌이 거실로 들어온다.
“숙아, 왔니? 숙아!!”
“저, 여기 있어요. 삼촌.”
키 큰 외삼촌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소년을 번쩍 들어올린다. 외삼촌의 얼굴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무슨 일이에요? 왜 울어?”
“숙아, 엄마가 쓰러지셨어. 병원... 가자.”
빗속을 달리는 차 안의 와이퍼 소리만 요란히 빠드득거리며 지워지지 않는 빗물을 지운다. 푸른 가로등이 지키고 있는 병원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외삼촌은 어깨에 소년을 매달고 복도를 달렸다. 멀어지는 병원의 좁은 복도는 길게, 길게 춤을 추며 소년을 따라온다.
차가운 형광등 보다 더 차가운 엄마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만 남아있다.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던 외할머니와 벽을 보고 어깨를 들썩이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소년은 기억한다. 아무런 말도,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엄마는 나무가 되었다.

# 외할아버지의 나무공방
낮은 바람에 펄렁이던 자작나무 껍질 하나가 소년의 신발 위로 떨어진다. 소년은 가만히 그것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뒤돌아선다.
“아이, 깜짝이야. 할머니, 오셨어요?”
“그래, 오늘은 엄마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누?”
“아, 엄마가 할머니 말씀 잘 들으라고 하시던데요? 나머진 비밀이에요.”
소년은 입을 귀에 올려 웃어 보인다. 작고 귀여운 얼굴이 창백하다.
이내 비가 그치고 해 그늘이 내린다. 저만치 가는 소년의 뒷모습이 날마다 여의어 간다.
소년의 외할아버지가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소년을 안아 올린다.
“어디보자, 우리 손자. 이 녀석. 고기 좀 먹어야겠다. 이렇게 몸이 가벼워서 되겠냐.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될 텐데 말이다.”
“할아부지, 예전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 옆에서 3년을 지냈다고 하잖아요. 지금, 난 그러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고기를 먹어요.”
“숙아, 엄마를 잊으라는 것이 아니야. 엄마는 항상 우리 곁에 있잖니. 우리 뒷산에서 숙이가 잘 있나 내려다보면서 네가 건강하기를 바랄게다.
자, 오늘은 저녁밥을 많이 먹는 거다. 할아비와 약속 하자.”
“응. 할아부지, 약속해요. 조금 더 있으면 3년이에요. 그땐 고기도 먹을게요.
근데요, 할아버지, 오늘은 어떤 작업을 하셨어요?”

소년은 외할아버지의 팔에서 내려와 나무 작업을 하는 할아버지의 공방으로 향한다. 공방에 들어서자 나무 향이 가득히 밀고 나온다. 수북한 톱밥을 살포시 밟아본다. 소나무의 생 향기가 상쾌하다. 공방구석에는 톱밥을 눌러 담은 포대가 나란히 누웠다. 넓은 벽면을 가득 채운 할아버지의 작업도구는 수 십 가지이다.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새까맣게 변한 끌의 손잡이와 대패는 할아버지의 손 크기만큼 움푹하다. 할아버지의 스승님이 주신 톱도 있다. 그 톱은 할아버지의 스승님의 스승님이 주신 것이어서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많다.
“할아버지, 톱밥을 포대에 담을까요?”
“그래주겠니? 톱밥을 담는 것은 네 엄마의 일이었는데 이제는 네가 이렇게 도와주는구나.”

# 엄마의 의자
소년의 방. 산이 보이는 창 아래에는 엄마가 앉던 자작나무로 만든 낡은 의자가 있다. 엄마가 어릴 때 공부하던 책상의 의자이다. 오래된 만큼 여러 번의 칠을 해서 정겨운 깊은 색을 지녔다. 외할아버지의 솜씨이다. 소년은 시간만 나면 의자에 앉아 산을 바라본다.
검은 산은 허리를 굽은 채 엎드려 잠을 잔다. 그 속에 있는 엄마의 자작나무는 더욱 빛난다.

“엄마, 오늘 동아리에서 그림을 그렸어. 주제가 ‘가족’이었어. 좀 유치하지?
그런데 태훈이가 자기 그림을 ‘피카소의 게르니카’처럼 그린거야. 왜 그렇게 그린 줄 알아?
대답이 더 웃겨. 태훈이네 엄마가 덩치가 크잖아.
엄마가 가족 중에 누군가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게 되면, 가족들 모두에게 전쟁을 선포한데. 엄마의 독재 때문에 가족이 공포에 떨고 있는 장면이라고 하면서 그림 제목이 ‘엄마는 전쟁 중’이야. 재미있지? 그림도 훌륭하다고 생각해. 그치?”
멀리 서 있는 자작나무가 가지를 흔들며 대답한다. 소년은 창문을 활짝 열어 밤공기를 맘껏 들이마신다. 습하고 상쾌한 산의 내음이 자작나무 향기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무슨 그림을 그렸냐고? 이번에는 엄마의 의자를 그렸어. 엄마가 좋아하는 자작나무 숲과 엄마의 의자야. 이거 봐. 제목은... 음... ‘엄마의 의자’”
소년은 창밖의 자작나무에게 그림을 펼쳐 보인다. 단발머리의 엄마가 조용히 의자에 다가와 앉는다. 소년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 엄마, 그리움
길게 굽이치는 소나무 언덕길을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가 우뚝 서있다. 여기서부터는 좁은 흙길이 시작된다. 엄마나무로 가는 또 다른 길이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알록달록 초록 잎들을 달고 있다. 어떤 나무는 사철 붉은 잎으로 장식되어 있고 어떤 나무는 납작한 잎이 화살촉처럼 뾰족하다. 이 길을 지키는 작은 주인이 있다. 청설모.
청솔모는 소년을 보자 나무 아래로 조로록 내려와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다. 소년은 땅콩 한 개를 청솔모에게 건넨다. 이 길을 지나는 통행료인 셈이다.
“이 녀석, 오늘은 널 보려고 일부러 이 길로 왔더니 기다리고 있었구나? 잘 있었어?”
청솔모는 한 가득 땅콩을 입에 물고 재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나무 가지와 가지 사이를 건너 엄마의 자작나무에 먼저가 기다린다.
소년은 엄마나무 아래 자리를 펴고 가방을 내려놓는다. 땀이 이마에 송글 맺혀있다. 가슴이 뻐근하여 가쁜 숨을 몰아쉰다. 나무에 기대어 가져 온 물병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무에게도 조금 따라 준다.
“휴~~. 조금 힘드네.
엄마, 나 어릴 때 엄마랑 수목원 갔었잖아. 엄마가 내게,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물었을 때, 내가 뭐라고 그랬는지 기억나?”
소년은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무 그림이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굵은 나무는 큰 가지를 늘어뜨려 그늘을 만든다. 한쪽으로 맑은 시내가 흐른다.
“나무, 내가 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가 나보고 멋있다고 했잖아. 그치?
나무처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이야. 난 실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 안 해봤어.
엄마가 물어봐서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던 거야. 음... 나무들이 멋있어 보여서.
그런데 엄마가 나보다 먼저 나무가 되었네. 그치?”
소년은 초록으로 번져가는 나뭇잎들을 입으로 후후 불어 말린다. 부서지던 햇살이 조금씩 가늘게 멀어진다.

# 꿈
“숙아, 아주 멋있는 나무를 그렸는데? 여기 이 나무는 우리 숙이처럼 아주 잘생겼네.”
중학생이 된 소년에 비하여 엄마의 모습은 3년 전 그대로이다. 웃는 모습도, 짧은 단발머리도, 장난기 어린 표정도.
소년은 엄마와 그림 속의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반짝이는 햇살을 맞으며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재잘 되었다. 엄마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부드럽게 안아준다.
“숙아, 이제 집에 가야할 시간이야. 일어나자.”
소년은 엄마의 뒤를 따라 걷는다. 빗방울이 시냇물 위에 동그란 파문을 그린다.
“엄마, 어디 가는 거예요?”

박시현 | 자작나무 숲, 도자기판 그림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외할머니의 등이 보인다. 소년은 할머니의 목을 꼬옥 안아본다.
“숙아, 잠이 들었더구나. 이렇게 몸이 가벼워 어디다 쓰누....”
소년은 할머니의 등에서도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난다. 시냇물에서 물장구치던 엄마의 하얀 발이 자꾸 떠오른다. 그립다. 엄마가 자꾸 그립다.

그날 밤, 외할머니는 그동안 참아둔 가슴 속 말을 외할아버지에게 하고 말았다.
“애가 저러다 병나겠어요. 애미에 대한 그리움이 병이 되서 저렇게 말라가니, 병원에 가서 진찰이라도 받아야 할지... 그리고 여보...”
신문을 보던 외할아버지가 말끝을 흐리는 외할머니의 얼굴을 돌아본다.
“우리, 이사 갑시다. 당신 공방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난 우리 숙이가 더 중요해요.”
외할아버지는 신문을 접어 의자에 놓고 일어선다. 마루의 커다란 검은 창에는 외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올려다보는 외할머니의 근심 어린 얼굴이 어린다.

# 소년의 죽음
암병동 1304호.
“여어~ 우리 숙이가 계신 곳이 여기인가?”
굵직한 외삼촌의 목소리가 병실을 울린다. 소년은 반가움에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는다. 외삼촌은 소년이 누워있는 침대의 안내판을 보더니 껄껄껄 웃는다.
“숙이는 정말 훌륭한데? 병원에서도 상을 받았네? 낙상(落傷)?”
“응? 그게 무슨 얘기에요? 삼촌?”
외삼촌은 ‘낙상조심’이라고 쓰여 있는 안내판을 들어 보이며 또 웃는다. 장난기 어린 삼촌의 얼굴에 엄마의 얼굴이 지나간다. 소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왜 그래? 어지러워? 자, 눕자. 씩씩하게 치료 잘 받고 있었어?”
“응. 삼촌, 있지. 조금 전에 반 아이들이 내 상장을 가져왔어.
지난번에 그림대회에서 ‘가족’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렸거든, 나 상 탔어. 이거 봐.”
소년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떨리는 하얀 손으로 상장과 그림을 외삼촌에게 건넨다.
“엄마의 의자야, 제목이. 거기 엄마가 있는 거 보여? 엄마를 보여주고 싶었어. 삼촌.”
“엄마? 엄마가 어디 ... 그래 여기 있구나. 엄마가 있구나.”
외삼촌은 그림 속의 의자를 어루만지며 입술을 물었다.
소년의 팔이 힘없이 침대 아래로 미끄러진다.

며칠 후,
외할아버지는 딸의 자작나무 옆에 작은 자작나무를 심었다. 15살 소년은 그리운 엄마를 만났다. 나무가 되어.

서정화 | 나무-엄마와 소년, 도자기판 그림

에필로그 Epilogue

일찍 어머니를 떠나보낸 16세기, 숙아(肅兒)의 마음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12세라면 어머니의 정이 아직 필요한 나이이다. 어린 숙아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지만 양반가에서 총명하고 의젓하다고 칭찬받으며 자란 숙아는 그 표현조차 제대로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그에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에 병이 되어 어머니의 뒤를 따르게 된다. 어린 숙아를 잃은 남은 가족의 슬픔 또한 얼마나 컸을까? 숙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모자(母子)의 재회를 어떻게 표현하면 숙아의 슬픔을 풀어줄까’하고 고민을 많이 하였다. 아팠던 가슴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레 글을 마무리한다.

현대에 살고 있는 감성 풍부한 ‘소년(숙)’은 곳곳에서 움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병이 깊어진다. 그가 사는 공간과 사용하는 사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서 어머니의 존재는 커져만 간다. 결국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한 소년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과거에는 먼저 간 조상(죽은 사람)을 모신 산 아래에서 밭을 일구며 생활하거나 형편이 어려워 조상을 산에 모시지 못할 경우, 밭 가운데에 조상을 모시고 함께 살던 모습이 우리의 장례문화이며 삶이었다. 그래서 모자(母子)의 죽음을 ‘자연의 순환’과 연계하여 공존과 재생의 의미를 담아 자연장의 하나인 수목장으로 그려보았다. 그리고 그들을 보낸 애잔한 가족의 마음도 담아보았다.

참고로, 1999년 스위스에서 시작된 자연장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죽은 사람의 유골을 나무에 묻으면 수목장, 잔디에 묻으면 잔디장, 화초에 묻으면 화초장이라고 부른다. 근래에는 개인 산에도 모시는데 나무를 정하여 가족 수목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림은 도자기판에 그린 후 무광유약을 발라 고온 가마에서 소성(燒成)한 것으로 종이그림과는 느낌이 다르다. 도자기물감은 색채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색감이 풍부하게 표현되며 도자기판을 긁거나 덧칠하여 작품의 감성을 심도 있게 전달할 수 있다.




스토리테마파크 참고 스토리

작가소개

서정화 글, 그림
서정화
KBS방송국,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생물자원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 술문화박물관리쿼리움 큐레이터이다. 그리고 공예전문 칼럼니스트이자 동화작가로서 다양한 기획과 글쓰기를 하고 있다.
박시현 그림
현재 핸드페인팅 도자공방 ‘시현스튜디오’에서 자연을 소재로 한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국내외 전시도 활발히 하고 있다.
“ 선친의 산소에 구멍을 낸 범인을 찾아라! - 덫에 걸려든 산다람쥐 ”

김령, 계암일록,
1622-02-27 ~ 1622-03-07
1622년 2월 27일, 청명절(淸明節)이었다. 김령은 아침 일찍 외조모의 기제사를 지내고, 부모님의 묘를 찾아가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살펴보니, 어머니의 산소에 쥐구멍이 나있는 것이 아닌가. 김령은 이곳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쥐구멍을 발견하고는 놀랍고도 괴로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즉시 손질해서 고치려고 했지만, 날과 달의 거리낌이 고려되어 함부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김령은 잠이 오지 않았다. 생일잔치에 초대받았지만, 음식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머니 산소의 쥐구멍 때문이었다. 김령은 비 내리는 2월 29일의 아침, 다시 산소로 찾아가 쥐덫을 놓고 잡히기를 기다렸다. 지관에게 물어보니 산소에 난 구멍은 삼월절(三月節) 안에 손대서는 안 된다고 대답하였다. 답답하고 안타까웠지만, 쥐덫을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쥐덫을 놓은 지 이틀만인 3월 1일, 날이 저물 무렵, 종이 쥐덫에서 잡힌 산다람쥐를 가져왔다. 옳거니, 김령은 어머니의 산소에 구멍을 뚫은 범인이 이 녀석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 뒤로도 매일 어머니의 산소에 찾아가 확인해보았는데, 더 이상 구멍 뚫리는 일이 없었다. 필시 산다람쥐로 인해 생긴 탈이었던 것이다. 김령은 일주일이나 더 확인해본 후에야 마음을 놓았다.

“ 권문해, 어머니를 위해 직접 약을 조제하다 ”

권문해, 초간일기,
1583-03-07 ~
1583년 3월 7일, 권문해가 예천을 떠나 사간원 사성으로 복직되어 한양에 올라온 이후 조정은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북방에서는 오랑캐가 난을 일으켜 민심은 흉흉해지고, 조정은 정치적 이견들이 수 없이 대립하는 가운데 권문해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권문해는 그렇게 바쁜 중에도 어머니의 안위와 평안을 늘 염려하였다. 며칠째 비가 내리며 궂은 날씨가 이어지는데 어머니의 몸이 편치 않아보였다. 어머니는 뱃속이 잠시 편치 않은 가벼운 증상이라 했지만 권문해는 동지중추부사 양예수(楊禮壽)를 직접 찾아가 어머니에게 좋은 약을 물었다. 당대 탕약과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던 양예수는 가입이진탕(加入二陣湯)과 기효사물탕(奇效四物湯)을 복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권문해는 그 말에 직접 전의감(典醫監)에 가서 약을 조제해왔다.

“ 정성스러운 3년상, 어버이의 빈소에 올리지 않은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다 ”

김령, 계암일록,
1608-11-28 ~
1608년 11월 28일, 임 형의 이야기가 내성의 참봉 이문규와 수군 홍동년의 효행에 미쳤다.
이 참봉은 효성스러워 아침저녁으로 어버이 가묘에 평상시와 같이 밥상을 올렸는데, 퇴도(退陶, 이황) 선생이 ‘지나친 예’라고 말했으나, 이것은 귀한 일이다.
김령은 일찍이 이문규의 효행은 들었으나 홍동년의 일은 처음 듣는다.
홍동년은 생전에 효성스럽게 어버이를 모셨는데 돌아가시자 3년상을 지내는 동안 비록 보잘것없는 음식일지라도 어버이 빈소에 올리지 않고는 자기 입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그의 어버이 묘소에 성묘하러 가서 개암나무 열매를 따다가 절하고 올렸는데, 중이 지나가기에 불러 나누어 먹자고 하니, 그가 웃으면서 갔다고 한다. 이것은 비록 사소한 일이나 역시 그의 지성스러운 효심이 독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상에도 반드시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 피난길 헤어진 어머니의 부음을 전해 듣고 주저앉다 ”

도세순, 용사일기,
1593-05-15 ~ 1593-06-11
1593년 5월, 도세순(都世純)은 합천의 초계(草溪)에 있었다. 그리고 이때 부모님들은 광대원(廣大院)에 계셨다. 도세순은 오고가는 인편에 부모님의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5월 15일 종숙부인 도장(都章)이 와서 부모님과 형제들의 소식을 세순에게 전하였다. 전한 내용은 아버지께서 이름 모를 병을 앓고서는 10여 일 만에 일어나셨고, 또 세순의 형 역시 아버지를 이어 병으로 누워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세순은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어서 마음과 몸이 어지럽고 뒤숭숭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순이 부모님이 계신 광대원으로 가자니 강물이 불어 갈 수도 없었고, 며칠 간 부모님의 소식이 끊긴 채 마음만 애태워야 했다.
6월 1일이 되자 도장 숙부께서 비로소 광대원으로 돌아가실 수가 있었다. 세순은 급히 옥수수 닷 되를 찾아 광대원으로 보냈다. 그런 후 얼마 후 상주에 갔던 연금(連金)이가 6월 7일 돌아왔다. 연금은 돌아오는 길에 광대원을 들렀는데, 광대원에는 전염병이 돌고 어머니마저 병이 들어 누우셨다고 세순에게 전했다. 세순은 어머니가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6월 11일 명복(命卜)이 광대원에서 세순을 찾아 와서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전하였다. 세순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소식을 들은 세순은 털썩 가슴을 부여 치며 힘없이 주저앉았다. 순간 세순의 마음속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까맣고 황량해졌다. 조금 뒤 정신을 차린 세순은 급히 어머니가 계신 광대원으로 달려갔다.

“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흉흉한 시절, 어머니의 제삿상에 떡을 올리다 ”

도세순, 용사일기,
1594-06-05 ~ 1594-06-08
1594년 6월 5일, 도세순(都世純)은 형님과 누이, 그리고 동생을 만나보고, 또 8일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형과 동생이 있는 고향 마을 운곡(雲谷)으로 출발하였다. 도세순은 매실[毛也]에서 밀 약간과 보리, 젓갈, 그리고 콩가루 약간을 마련하여 직접 짊어지고 홀로 길을 나섰다. 이 가운데 콩가루는 도세순이 길을 가며 쓸 양식이었다.
도세순은 출발한 날 저녁에는 용담(用淡)에서 묵고, 6월 6일에는 한배미[大夜]에 묵었다. 그리고 6월 7일 도세순은 몸이 몹시 피곤함을 느끼며 겨우 운곡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운곡에 와 형님과 누이, 동생을 보니 겨우 명줄이나 보존하고 있었고, 몸 전체는 굶주림에 들뜬 모습이 확연하였다. 도세순은 형님과 이마를 맞대고 통곡을 하며, 그 동안 만나지 못한 사연들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도세순은 저간의 사정을 이루 다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날 도세순과 형님, 누이와 동생들은 굶주려 죽을 지경인데도 감당하지 못할 제수를 마련하고, 떡과 술, 나물을 갖추었다.
다음날(6월 8일) 새벽, 세순의 형제들은 어머니의 허위(虛位)를 진설하고 어미니에게 제사를 올렸다. 이날 숙모(숙부 배응보의 처)가 우박촌(于朴村)에서 와 제사떡을 음복하고는 깊이 탄식하여 세순의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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