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이저우 지역에서 마을에 들어가려면 대부분 조그만 하천을 건너게 된다. 또는 하천을 옆에 끼고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하천에 흐르는 물은 들어가는 사람과 반대로 마을 안에서 흘러나온다. 즉 사람은 마을로 들어가고 물은 마을을 빠져나가는 구조다. 이는 대부분의 마을이 산에 의지해서 자리 잡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부러 물길을 마을 안으로 돌려 마을에 인공수로를 만든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마을에는 물이 들어오는 지점과 물이 빠져나가는 지점이 있다. 이처럼 마을 입구에 물이 마을에서 빠져나가는 곳을 수구(水口)라고 부른다.
앞에 말한 대로 물이 빠져나가는 지점은 대체로 마을로 들어가는 마을의 입구에 해당한다. 전 세계 어디서나 물은 생명의 상징으로 되어 있으나 중국인들은 실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서인지 물을 재물 또는 재부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이는 물론 풍수적 의미이다. 따라서 마을 밖을 돌아가는 하천을 인위적으로 마을로 끌어들이는 것은 마을 밖의 재부를 마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끌어들인 재부가 물길을 따라 그대로 마을 밖으로 흘러나간다면 일부러 물길을 마을 안으로 낸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마을 안을 통과한 물길이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는 곳에 수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다리를 만든다. 물론 다리에 실제로 문을 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 입구의 물길을 가로막아 놓인 다리는 마을 안의 물이 흘러나가는 것을 통제하는 의미가 있다. 후이저우 사람들은 옛날부터 수구에 재물신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매년 수구재신(水口財神)에 제사 지내는 관습이 있었다. 수구에는 단순히 물이 나가는 문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이러한 후이저우 사람들의 풍수적 관념과 경제적 관념이 복합적으로 담겨있다고 하겠다.
청칸 마을의 수구, 융흥교(隆興橋)는 마을의 입구이며 마을의 물이 흘러나오는 출구 곧 수구이다.
우위엔현 홍관 마을의 수구, 통진교(通津橋)
후이저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수구에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산과 물과 나무가 그것이다. 산은 마을 뒤에서 마을의 배경으로 서있는데 그곳에서 물이 마을 안으로 흘러든다. 물이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는 곳은 바로 수구로서 마을에 들어오는 문에 해당하는데 여기에는 큰 고목들이 몇 그루 또는 숲을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마을에 가까이 접근하면 멀리 큰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 밑에는 마을로 들어가는 돌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 물길을 거슬러 하천 옆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산 물 나무가 어울려 하나의 수구를 이루게 되는데 이는 수구가 단순한 마을 하천의 출구가 아니라 수구를 구성하고 있는 환경이 마을과 어울려 소위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나무는 나무 한 그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큰 숲을 이루는 경우도 많다. 이 숲을 수구림(水口林)이라고 한다. 수구림은 마을에 모여든 왕성한 기운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보호벽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수구는 물 즉 재부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며 수구림은 마을을 왕성하게 발전하게 하는 기(氣)가 흩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수구림에는 은행나무, 종가시나무(櫧樹), 소나무, 느릅나무(楡樹), 녹나무(樟樹) 등이 많은데 녹나무 종류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거대한 녹나무 숲은 후이저우 옛 마을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 멀리서 보이는 녹나무들은 그 마을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지녔는지 짐작하게 한다.
황산시 치먼현 주커우 마을, 마을 뒤로 울창한 마을 숲이 보인다.
이는 수구의 반대쪽에 있지만 수구림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인위적으로 물길을 마을 안으로 돌아가게 만든 황산시 셔현 창시(昌溪)마을의 마을 숲
우위엔현 샤오치 마을 입구의 수구림
수구는 흔히 원림(園林)이라는 말과 함께 수구원림(水口園林)으로 일컬어지고 있음은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림이란 자연환경을 다양한 건축적 요소 또는 정원적 요소들과 어우러지도록 배치된 자연과 인문이 조화된 인위적 공간이다. 인공적인 건축 또는 정원과 같은 요소들은 마을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이어받아 온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며 따라서 그 지역의 오랜 역사와 문화가 하나로 녹아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수구가 원림과 합쳐짐으로써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전통문화적 요소들이 더해져서 아름다운 인문 경관으로 태어난 것임을 말한다.
따라서 마을 입구의 역할을 하는 수구를 지나 물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거대한 고목들과 누각형 정자, 패방, 연못 등이 배치되며 또 탑이 세워지는 경우도 있다. 후이저우의 마을을 다니다 보면 마을 입구에 사찰과 관계없는 탑들이 산 위 또는 산밑 평지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풍수적 의미에서 세워진 수구탑(水口塔)으로 풍수적으로 마을의 빈 곳을 채우는 의미에서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또 마을 안으로 들어가도 아름다운 숲과 정자가 세워진 랑교(廊橋), 하천 중간 중간에 설치된 보로 인하여 작은 호수처럼 고여 있는 하천물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을 안에는 마을로 들어온 물을 가두어 호수를 만드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또 마을 밖으로 나가기 전에도 호수를 만들어 물을 마을 안에 머물게 한다. 황산시 이현 홍춘 마을의 월소(月沼)와 남호(南湖)는 대표적인 예이며 청칸(呈坎) 마을이나 시디(西遞) 마을, 롱추안(龍川) 마을 등에서 볼 수 있는 호수들은 다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황산시 이현 홍춘 마을의 마을 안 호수, 월소(月沼)
우위엔현 져위엔향의 수구탑, 용천탑(龍天塔)
마을 입구의 수구로부터 마을 안쪽에 설치된 다리 및 여러 가지 환경조성물들은 모두 합쳐서 수구문화를 이룬다. 곧 수구는 그냥 마을 입구의 물이 흘러나가는 지점을 가리키는 단순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오랜 전통과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수구문화는 마을 사람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며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해 미학적 감성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또 후이저우 지역의 주택은 높은 벽과 좁은 내부 공간으로 인해 생활을 폐쇄적으로 만들어주는데 마을 속에 조성된 수구문화의 여러 요소들은 이러한 후이저우 사람들의 답답한 생활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후이저우 지역에 이 지역 독특한 조경문화(造景文化)가 발달한 것은 바로 이러한 수구문화와 관련있다고 볼 수 있다.
수구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마을로 황산시 셔현(歙縣)의 탕모(唐模) 마을을 들 수 있다.
마을 동쪽에 있는 탕모 마을의 수구원림은 마을 입구의 수구림과 물가 돌다리 옆의 거대한 고목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물길을 거슬러 마을을 향해 발길을 옮기면 청대 강희년간(1662-1722)에 건축된 사제정(沙堤亭)이 나온다. 이 정자는 삼층으로 되어 있고 이층에는 회랑이 있어 올라가 한숨을 돌리면 멀리 물길을 따라 이어진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 옆의 사백여 년 묵은 고목은 마을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인지 암시해준다. 정자를 지나면 동포한림방(同胞翰林坊)이라는 패방이 있다. 이 패방은 청 강희년간에 이 마을 쉬씨(許氏) 형제가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에 나간 것을 기념한 것이다. 이 마을의 학문적 전통을 말해준다.
탕모 마을 수구원림을 빛내주는 것은 마을로 가는 중간에 있는 단간원(檀干園)이라는 큰 규모의 정원이다. 단간원은 마을에 상인 쉬씨가 돈을 많이 번 후 늙은 어머니를 위해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를 본떠서 만든 정원이라고 한다. 정원에는 큰 호수와 여러 개의 정자, 돌다리 등을 놓아 아름답게 꾸몄다. 단간원은 하나의 독립된 정원으로서도 훌륭하지만, 수구와 하천, 천변의 수구림과 고목들 그리고 정자와 패방들과 한데 어울려 종합적인 수구문화를 완성하였다는 데 큰 가치를 인정받는다.
황산시 셔현 탕모 마을의 수구와 고목
탕모 마을 길목의 사제정(沙堤亭)
탕모 마을로 들어가는 길의 동포한림(同胞翰林) 패방
쉬씨가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는 정원, 단간원(檀干園)
마을로 들어서면 고양교(高陽橋)라는 유명한 다리가 있다. 명대에 건립된 이 다리는 두 개의 큰 무지개 모양의 교각이 있고 그 위에 다섯 칸의 정자형 건물이 세워진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한 돌다리다. 고양교는 마을 한복판에 위치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 역할을 한다. 탕모에는 마을 입구의 수구를 지나면서 고양교를 포함하여 모두 열 개의 다리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리가 있는 곳에는 보가 설치되어 흐르는 물을 일단 고이도록 한다. 이는 빨래를 한다든가 또는 여러 가지 용수를 제공하는 의미가 있겠지만, 마을의 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통제하는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곧 마을의 재부를 한꺼번에 마을 입구의 수구에서 막아내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중간에서 부분적으로 차단하는 장치를 둔 것이다.
마을 중심의 고양교를 지나면 하천의 폭이 넓어지고 고양교에서 일단 차단된 물이 호수처럼 길게 고여 있다. 물이 흐르지 않는 고요한 수면에는 하천 양쪽에 있는 후이저우 특이한 건축들이 그대로 비쳐서 아름다운 반영의 풍경을 만든다. 하천 한쪽의 길에는 긴 회랑을 만들어 지붕을 씌었는데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물가 쪽으로는 미인고(美人靠)라는 긴 의자를 설치하여 마을 사람들이나 길 가던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하였다. 마을 입구에서 들어와 다시 반대쪽으로 빠져나가는 이 길은 이 지역의 역도(驛道)로서 사람들의 통행이 작았으며 따라서 천변에는 민가 건물 뿐 아니라 가게나 사당 등 다양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살펴본 것처럼 탕모 마을은 마을을 관통하는 하천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배치되고 하천을 따라 도로가 연결되었다. 또 도로에는 무려 열 개나 되는 다리는 물론 도로 주변으로 정자 패방 단간원 같은 대형 정원과 사당 등이 배치되어 아름다운 수향(水鄕)을 이루고 있다. 이 모든 마을의 구성요소들은 후이저우의 수구문화를 이루고 있으며 수구문화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탕모 마을 중심에 있는 고양교(高陽橋)
탕모 마을에는 모두 열 개의 다리가 있다.
이들 다리는 모두 재부의 상징인 물을 일시적으로 머물게 하는 기능을 한다.
탕모 마을의 마을 안 수변풍경, 오른쪽으로 미인고가 설치된 수가(水街)가 조성된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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