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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콘텐츠의 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너다


제주콘텐츠코리아랩 BI (출처: 제주콘텐츠코리아랩 홈페이지)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다. 시대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콘텐츠는 이제 시대를 만드는 키워드가 되었다.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은 그 규모가 크고 파급력이 매우 높아 오늘날 경제의 핵심 키워드이자 미래의 대표적인 먹거리로 손꼽힌다.

일찍이 대한민국 정부는 콘텐츠 산업 진흥을 통한 문화강국 실현과 지역 주도형 콘텐츠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고자 “지역기반형 콘텐츠코리아랩 운영사업”을 추진하였다. 필자가 총괄하고 있는 사업이 바로 ‘제주’ 지역기반형 콘텐츠코리아랩 운영사업이다. 지역의 여건에 맞게 지역의 문화자원을 콘텐츠로 가공하고 분야별 성장 및 전·후방 산업 동반성장을 도모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최상의 인프라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콘텐츠 창작‧창업자들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가교(架橋) 구실을 하는 것이다. 실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 산업 기반을 조성하는 이곳. 이곳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해양문화 콘텐츠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변화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신들의 섬, 제주


제주는 섬이다. 섬이란 특정의 바다나 물로 둘러싸인 특별하면서도 독립적인 의미를 지닌 땅이다. 땅이면서도 바다이기도 한 섬은 저마다 고유하면서도 독자적인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 독특하면서도 특별한 민담 설화, 신화를 포함한 민속 관행과 다채롭고 풍성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다(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2023). 이러한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우리는 ‘문화원형’이라고 부른다. 경쟁력과 파급력을 모두 갖춘 콘텐츠의 공통점이 탄탄한 문화원형이라는 사실은 제주가 콘텐츠의 보고(寶庫)로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화탐정AR 제주 용궁 올레편 (출처: 주렁주렁스튜디오 홈페이지)


1만 8천 신들이 있다는 ‘신들의 고향’ 제주는 특히 해양을 둘러싼 다양한 스토리가 즐비하다. 해양을 둘러싼 신화와 민담을 보존·전승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거니와 나아가 이를 원천 IP로 적극 활용해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하는데 이르렀다. 하나의 소재를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해 파급효과를 높이는(OSMU) 웹툰, 웹 소설 콘텐츠는 물론이고, 실감형 뮤지컬 〈신비로운 여신수업(2019)〉, 〈그림책 속 제주이야기(2022)〉나 각종 게임을 제작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제주와 관련 있는 인물과 전설을 기반으로 AR 캐릭터 동화 〈설화탐정AR: 제주 용궁 올레편〉과 같은 다각도의 결과물이 도출되어 해양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바다, 그리고 삶


해녀의부엌 북촌점 해녀의바다 (출처: 해녀의부엌 홈페이지)


제주의 바다에는 삶이 살아있다. 제주의 바다와 함께 공존한 수많은 이들의 삶을 콘텐츠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들의 삶을 해양문화라는 커다란 범주에서 설명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사회해양교육 및 해양문화 활성화 조례(시행 2021.2.19.)]에는 “해양문화”를 해양과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난 정신적‧물질적 산물의 총체로서 해양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전승되어 온 전통과 유산 및 생활방식 등을 지속해서 보존하고 계승하며 해양을 활용하여 보고,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인간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바다에 깃든 삶을 녹여낸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해녀의 부엌(대표 김하원) 있다. 제주의 힘과 해녀의 정신이 깃든 식문화를 상생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해녀의 부엌〉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 어촌계와 연계해 마을의 유휴공간(어판장)을 공연장으로 탈바꿈해 마을을 활성화했다. 공연장에는 프로젝션 맵핑 등의 실감 콘텐츠를 접목해 해녀의 삶을 콘텐츠화한 공연을 선보이고, 해녀와 제주 바다가 만나 차려낸 청정 제주 원물 한 상을 제공한다. 이곳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일구었던 해녀의 삶을 만나고 제주를 오롯이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치유의 바다, 제주


코로나(Covid-19) 이후 달라진 시대 분위기 속 제주는 치유와 회복의 메카가 되었다. 제주지역 기반 콘텐츠 분야 창업‧성장 지원사업을 운영하며 가장 많은 지원 및 선정 장르가 웰니스(Wellness)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웰니스는 ‘웰빙(well-being)+행복(happiness)+건강(fitness)’의 합성어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한경 경제용어사전, 2013).

섬을 ‘힐링(healing)’이라는 치유 공간이자 ‘유토피아(Utopia)’로 보는 오늘날 많은 이들의 인식과 부합한다. 이는 여러 지자체에서 섬을 휴식과 힐링의 장소로 여기고 시행하는 다양한 관광시책과도 맞물린다.

이러한 경향에 맞춰 섬의 역사와 문화를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를 발굴하고 응용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해양을 둘러싼 섬이라는 특별한 존재를 치유라는 테마를 접목해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제주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질그랭이센터 (출처: 비짓제주)


제주에서 치유의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콘텐츠는 눈과 귀로 담는 바다를 매개로 진행되는 요가나 명상도 있지만, 제주 곳곳의 작은 마을과 연계한 로컬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마을에 느긋하게 머물며 일상과 분리되어 치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가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제주 방언으로 작은 마을을 뜻하는 ‘카름(가름)’이라는 단어와 머뭄을 뜻하는 영단어 ‘스테이(stay)’를 접목한 ‘카름스테이’가 있다. 지난해 카름스테이를 운영한 해안마을은 해녀체험학교와 연계한 웰니스 관광콘텐츠를 발굴해 마을의 활성화와 방문객의 치유를 도모하였다. 금년부터는 콘텐츠 산업 저변을 확대하여 마을 고유의 해녀문화에 청년 창업가의 아이디어를 결합, 다양한 콘텐츠를 양산하는 로컬브랜드 활성화 지원사업을 추진중이다. 이와 함께 민관이 조성한 워케이션(workation) 공간, ‘질그랭이센터’를 운영하며 사무공간과 더불어 해녀여행, 오름, 용천수와 당, 다크 투어 등 해양자원을 활용한 휴식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해양자원을 활용해 몸과 정신을 치유하는 “제주 해양치유 센터”가 들어선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어 그 기능이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해양치유센터는 2023년 완도에 첫 개소를 알린 데 이어 제주도·충청남도 태안, 경상남도 고성, 경상북도 울진에 건설될 예정이다. 제주도의 해양자원을 활용해 도민과 관광객을 치유함으로써 관광산업과 해양치유를 접목한 신성장 해양산업으로 육성하는 로드맵을 구성하고 있다. 지금, 제주의 해양은 ‘치유’라는 키워드로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바다를 구하는 콘텐츠


제주 바다를 둘러싼 콘텐츠 산업에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기존의 콘텐츠가 해양을 무대로 한 삶과 이야기를 ‘활용’하는데 주목했다면, 최근에는 해양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무분별하게 해양을 활용한 인간에서 비롯된 각종 부산물이 해양생태계를 넘어 인간의 삶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제주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제주 또한 2021년 기준 해양폐기물이 2만t을 훌쩍 넘어선 이래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해양 문제에 주목한 도내 콘텐츠 창작자와 기업은 문제 해결을 위한 다채로운 콘텐츠를 도출하고 있다. 공급된 콘텐츠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충족할 수 있는 대상을 소비하는 ‘가치소비’ 트렌드 수요와 맞물려 산업환경을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제주 해안가에 버려지는 해양쓰레기를 주우며 건강과 제주바다를 지키는 비치코밍(Beachcombing), 소위 플로깅(Plogging)은 캠페인 문화를 넘어 대표적인 기업의 ESG 실천 전략이 된 지 오래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必터: 제주바다”는 우리의 놀이 ‘터’이자 반드시 지켜야 할 ‘터’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해양쓰레기 팝업 전시 스토어를 개최하고 환경‧음악‧문화가 결합한 문화관광 축제 ‘필터(filter/必터) 페스티벌’을 매년 개최하는 등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인스타툰 홍주비 (출처: 홍주비 인스타그램)

도담스튜디오 패션제품 (출처: 도담스튜디오 인스타그램)

JEMI페스타 팝업놀이터 (출처: 342워크 홈페이지)


콘텐츠 창업 시장도 해양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창업한 쓰담패밀리(대표 이홍주)는 제주도 내 해양폐기물 문제를 환기하는 인스타툰을 연재하고 캐릭터를 발굴해 친환경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제주 해안가에 버려진 폐플라스틱을 모아 업사이클링 패션소품을 제작하는 도담스튜디오나, 어업에서 발생하는 부표 등 각종 쓰레기를 활용한 놀이 콘텐츠를 만드는 342워크와 같은 초기 창업 기업의 꾸준한 활동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유명 패션·레저스포츠·코스메틱 브랜드가 각종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제주 해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폐자원 활용 제품을 출시하고 있어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해양쓰레기 수거부터 재활용에 이르는 자원순환 관리 솔루션을 제시하는 해양문화 콘텐츠 산업은 제주의 해양문화를 새로이 쓰고 있다.

첨언: 제주 지역의 해양문화를 기반으로 한 다채로운 콘텐츠와 그 산업을 조망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해양을 주제로 한 콘텐츠 산업 경향을 살펴보면, 해양은 더 이상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배경지(背景地)가 아닌 콘텐츠 장르 그 자체가 되었다. 지구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넓고 큰 바다 그 정의 자체는 해양문화콘텐츠의 잠재력을 설명하기 충분할 것이다. 해양을 맞댄 지역 간의 교류와 네트워킹 활성화를 통해 새로이 탄생할 콘텐츠는 앞으로 해양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한편, 이 글에 언급된 콘텐츠 창작‧창업 사례의 다수는 (재)제주콘텐츠진흥원(前, (재)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지원한 기업을 대상으로 해 전체를 세밀하게 조망하기에 한계가 있음을 안내하는 바이다. 지역 곳곳에서 콘텐츠 창작·창업 선순환구조를 구축하고 건강한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는 콘텐츠 분야 창작‧창업자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관계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집필자 소개

김보배
동국대학교에서 미술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수료하였다. 현재 제주콘텐츠진흥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대표 저서 및 논문으로는 『아시아의 표해록』(공저), 『동아시아 표해록』(편집), 「여말선초 관음보살상 연구: 윤왕좌보살상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인문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뿐만 아니라, 문화원형을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양산하는 〈지역기반형 콘텐츠코리아랩 운영사업〉을 총괄하여, 지역의 다양한 콘텐츠 발굴하고 있다.
“연경으로 가는 유구국 사람을 만나보다”

유구국도(琉球國圖)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노상추, 『노상추일기』,
1794년 11월 3일~11월 9일

방물차사원(方物差使員)으로 뽑힌 노상추는 가산(嘉山)에 와서 이번 동지사 사행이 가져갈 방물 포장을 위해 한참을 머무르고 있었다. 가산에 온 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다. 아직 방물도, 사행도 어디쯤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방물과 사행을 기다리며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마찬가지로 사행의 차사원으로 차출되어 가산에 머무르고 있던 희천(熙川) 수령 서택성(徐宅聖)이 늦은 시간에 노상추를 방문했다.

서택성은 이번에 유구국(琉球國: 오키나와)의 표해인(漂海人)을 연경(燕京: 베이징)까지 데리고 가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표해인은 아직 가산에 도착하지 않았다. 서택성은 이번 임무를 위해 제법 공부를 해 놓은 듯했다. 노상추도 서택성에게 유구국 표해인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어들었다. 유구국은 조선의 서남쪽에 있는 섬나라인데, 이번에 표해인 무리가 연경을 경유하여 본국으로 들어가기를 원했다고 했다. 그래서 동지사가 청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들을 데리고 가기로 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닷새 뒤인 11월 8일, 마침내 저녁 무렵에 함종(咸從) 수령 이경희(李敬熙)가 유구국 표해인 3명을 인솔하여 가산에 도착하였다. 이경희는 서택성에게 이들을 인계하였다. 한 번도 외국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던 노상추도 호기심이 동해 이경희, 서택성과 함께 유구국 사람들이 있는 관아에 들어가 보았다.

유구국 사람들은 머리털을 올려 묶어서 상투를 틀었는데, 그 방식이 우리나라 사람과 같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는데, 제주에서 온 역통사(譯通事)가 따라와서 통역해 주었다. 이경희, 서택성, 그리고 노상추가 관에 들어가자 유구국 사람들은 자신들을 대접하기 위해 깔아놓은 삼엽방석(三葉方席)을 가져와서 수령들 앞에 펴 놓았다. 그 자신들을 대접하기 위한 자리인데 앉지 않고 수령들을 위해 양보한 것은 구태여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존중을 표하는 방식으로 보였다. 과연 유구국 사람들이 예의가 있다고 일컬어지는 것을 이런 데서 알 수 있었다.

유구국 사람들을 인솔해 온 이경희가 통역을 통해 말하기를, “나는 내일 돌아갈 것이니, 그대들은 무사히 잘 가게.”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유구국 사람들은 일어나서 합장한 채로 두 번 인사하고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대답하였다. 이어서 앞으로 이들을 인솔할 서택성이 다담상을 들여와 대접하였다. 그러니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서는, 역통사를 통해 말하여 그 음식을 역졸에게도 내주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함종 수령의 하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라고 인정을 보였다. 유구국 사람들의 신중한 처신에 노상추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행 중 바다 뱃길에서 고생을 겪다”

양경우, 『역진연해군현잉입두류상쌍계신흥기행록』, 1618년 5월 4일

1738년 7월 11일, 흐린 날이었다. 최흥원의 집에 개 한 마리를 키웠는데, 키가 몇 자나 되는 큰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 개가 그만 호랑이에게 물려죽고 말았다.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어젯밤에 다소 이상한 꿈을 꾸었다. 최흥원이 사는 칠계 동네 집 앞 감나무 위에 어떤 새가 날아와 앉았다. 머리의 벼슬은 닭과 같았고 꼬리는 긴데 마치 수꿩처럼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최흥원이 이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최흥원을 바라보면서, “이것은 봉황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최흥원이 이 이야기를 듣고 새에게 가까이 다가갔는데, 새는 날아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새의 꼬리 쪽에 꼬물꼬물 움직임이 있어서 꼬리를 헤치고 보니, 새끼 세 마리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흥원이 이를 보고 신기해하고 있으니,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상서로운 기운이라며 수근 대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최흥원이 다시 아버지를 찾는데 아버지가 온데간데없고, 그 와중에 그만 꿈을 깨고 말았다.

돌아가신지 3년이 되신 아버지를 꿈에 뵌 것도 좋은 일이었지만, 꿈에서 봉황이라고 하는 새까지 만나게 되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생길 조짐인가....

최흥원은 머릿속으로 기다려질 만한 경사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풍랑을 만나 정신이 아득해지다”

홍호, 『조천일기』, 1632년 8월 17일

1632년 8월 17일, 홍호(洪鎬)는 명나라로 향하는 배안에 있었다. 새벽에 광록도를 출발하여 용당을 지날 때였다. 정사의 배와 여타 사행단의 배 두 척도 홍호의 배 뒤를 따르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한줄기 거센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더니, 새까만 구름이 마치 물에 먹을 풀어놓은 듯하고 빗줄기가 장대처럼 퍼붓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이 참혹하고 맹렬해서 홍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공포를 느꼈다.

뱃사람이 바쁘게 중앙의 돛대에서 돛을 내리고는 뱃머리의 거적을 걷으려는데, 바람이 바다를 말아 올려서 놀란 파도가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성난 바람소리가 땅이 꺼지는 소리보다 장렬하게 울렸다. 배안의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신속히 대척하여 경우 풍랑을 피해 배를 지켜내고 다른 탈은 없었다.

배를 돌려 바람을 따라 30리쯤 가니, 비가 그치고 구름은 흩어졌으며 바람은 갑자기 줄어들었다. 돛을 올리고 다시 길을 가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곧장 맑게 개는 것이 아닌가. 삼계도, 해성도란 섬 사이에서 바라보니, 사행단의 두 배는 이미 목적지인 평도에 정박하였고, 뒤따라오던 배들 중 하나도 인근 삼계도에 닻을 내리는 것이 보였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홍호는 제수를 준비하여 앞서 거우도와 장산도에서처럼 바다의 용왕에게 제를 올렸다. 애초 재를 올리는 모습을 보고는 못난 이들의 무식한 처사라 여겼는데, 직접 바다의 풍랑을 겪어보고는 허겁지겁 재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노련한 뱃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바다 한가운데서 고기밥이 될 뻔하였단 생각이 들자 고마운 마음이 일어났다.

“출항하기 전 배와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다”

홍호, 『조천일기』, 1632년 7월 16일

1632년 7월 16일, 홍호(洪鎬)가 탄 배가 드디어 명나라를 향해 출항을 시작하였다. 임금의 돌아가신 아버지 정원부원군을 왕으로 추숭하고 이에 대한 시호를 명나라에 요청하기 위한 사신단의 일행으로 홍호가 참여하게 된 것이다. 사신단은 모두 6개의 배에 나누어 탔는데, 홍호는 3호 배에 올라타게 되었다. 이제 거친 바다를 헤치고 명나라까지 긴 여정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배를 출발하기 전 밤중에 항해 개시를 고하며 배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어제는 바다의 신과 용왕님에게 제를 올렸다. 제문은 사신단의 일행에 속한 이장배란 자가 지은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강과 하천이 돌아가는 곳으로
제사 받는 순번에서도 으뜸에 있으시네
정성으로 현황(玄黃)을 받들어
저 넓은 바다를 항해하려니
충성과 신뢰에 의지하여
밝은 신에게 이로써 기원하노니
영험한 복을 밝히시어
파도를 거두고 길을 열어주셔서
오가는 길에 편안토록 하소서
시종일관 도와주시길
보잘것없는 제물과 술을 올리니
밝게 임하여 주시길 바라옵니다.

드넓은 바다는
용왕님의 댁일지니
오가는 배들은
모두 용왕님의 도움을 입은 것
나라님의 예물을 보호하여 가나니
음으로 양으로 도우시길 비옵니다
상어와 악어를 물리쳐 주옵시고
수코래 암코래를 쫓아 주옵소서
아득하고 드넓은 바닷길을 건너가노니
하루도 안돼 천리를 가게끔 하옵소서
감히 조촐한 상을 마련하였사오니
흠향하여 주옵소서.

홍호는 제를 지내는 동안 과연 바다신과 용왕님이란 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저리 정성스럽게 제를 지내는 뱃사람들이 다소 신기해 보였다. 그가 수십년 동안 공부한 학문에서는 용왕님이나 대해신(大海神) 같은 존재는 모두 거짓이라고 배웠다. 바닷길로 사행을 가게 되었다고는 하나, 이런 제에 불쑥 끼어들게 되니 다소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홍호보다 상관인 정사나 부사 역시 아무말 없이 제를 지내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아무렴 어떠랴. 무사히 사행을 갔다 올 수 있다면 까짓 근본이 없는 믿음이나마 제 한번 지내는 것이 어디 어렵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막 제를 지내고 출발해서인지 항해 첫날 날씨는 맑고 바다는 더없이 푸르렀다. 홍호는 처음 만날 명나라의 문물과 풍경을 생각하며 마음이 부풀었다.

“남연군의 묘가 도굴당하다”

남연군의 묘 (출처: 문화재청) 박한광(朴漢光), 박득녕(朴得寧), 박주대(朴周大), 박면진(朴冕鎭), 박희수(朴熙洙), 박영래(朴榮來), 『저상일월(渚上日月)』, 미상

1868년 4월, 박득녕은 또 한 번 깜짝 놀랄 소식을 접했다. 서양인들이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를 도굴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들은 지난달 18일날 충청남도 덕산에 상륙하여서 남연군 묘를 도굴하였는데,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고 다만 군기와 양곡을 약취하여 갔다고 한다. 서로 전쟁하는 사이어도 적장 아버지의 묘를 도굴하였다는 말은 들은 바가 없는데, 저들은 과연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인 듯하였다.

이후에 이들 오랑캐들이 운현궁에 서신을 보냈다고 한다. 그 내용인즉 ‘당신이 산 사람을 살해한 것보다 우리가 죽은 사람의 무덤을 파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 아버지 무덤을 파려고 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간다. 뒷날을 기약한다.’ 라는 것이다. 이 서한을 본 대원군의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일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영종도 순찰사가 남연군 도굴단에 참가했던 괴수 두 명을 붙잡아서 참살하였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이를 큰 경사라 칭찬하였는데, 도굴단의 대표는 서양 오랑캐이거늘 하수인 한 둘을 참살했다 하여 경사라 칭하다니, 옹색하기 이를 데 없는 처사였다.

윤 5월이 되자 왕의 교지가 내려왔다. ‘이번에 일어난 덕산군의 참변은 비단 조정뿐 아니라 백성들 모두가 통탄할 만한 일이다. 앞으로 이들 해적을 섬멸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모두 등용할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두 달이 지나도 여전히 분노가 가시지 않은 대원군의 조치였다. 박득녕은 과연 이러한 전교가 저들 서양 오랑캐를 잡는데 도움이 될 지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저들 서양인들이 점점 조선에서 방종하는 것은 참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과연 이 난국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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