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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생의 고종일기(考終日記)

양주골의 서당 훈장인 정생에게 백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6월 초였다. 무더위에 수원부에 사는 백부에게 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일흔이 넘은 백부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그냥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람하는 일이라면 숙수(요리사)와 기생까지 대동해서 거한 행차를 할 일이었으나 시급을 요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수발을 들 하인 하나만 데리고 간단한 행장을 꾸려 길을 나섰다. 만에 하나 상례까지 치러야 하면 몇 달을 머물 수도 있기 때문에 접장을 불러서 당부를 단단히 했다. 훈장이 없는 동안 옆 서당에 훈도를 빼앗기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 〈백은배, 기려연강(騎驢沿江)〉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정생은 나귀를 타고 하인에게 고삐를 들려서 길을 떠났다. 사흘 만에 백부의 집에 도착했을 때 정생은 반쯤 죽어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먼 거리를 노새 등 위에서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흔들거릴 때마다 허리에 충격이 가해지는 것을 견딜 근육 같은 것이 없었던 탓이다.

드디어 백부 집의 대문이 보이자 이젠 살았다 싶어서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생은 허리가 아파 부들부들 떨면서 나귀에서 내렸다. 백부 집의 마름에게 안부를 물었다.
“아이고, 내가 왔다. 큰아버님은 어디 계시냐?”
“늦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어서 들어가 보시지요.”
사랑채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미 회생이 불가능하다 판단해서 정침(正寢)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정생이 들어서자 모인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인사를 하는데 그 인사를 일일이 받다가는 백부가 삼도천을 건널 것 같아서 정생은 사람들을 밀치고 백부의 머리맡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부가 가늘게 눈을 떨며 정생을 바라보았다. 뭔가 말하려 입을 벌렸는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생은 소리를 들으려고 허리를 굽히다가 허리가 끊어지듯이 아파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형님, 이렇게 멀리 찾아와주셔서 또 이렇게 슬퍼하시니 정말 정이 깊으십니다.”
옆에 앉아있던 사촌이 정생의 손을 붙잡으며 곡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양주골에 있는 전답은 형님께 주신다고 말씀하셨고 분급기에도 적었습니다.”


죽음을 지켜보고 준비하는 임종 (출처: 한국국학진흥원_조선가례)


다행히 백부가 조카를 까먹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잠시 후 백부가 정신을 잃고 눈을 감더니 숨소리가 멎었다. 허리는 부러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임종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조카들이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는 가운데 당숙 어르신이 햇솜을 꺼내 백부의 코 밑에 놓았다.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살피려 한 것인데 이것을 속광(屬纊)이라고 부른다.
“운명하셨구만.”

당숙 어르신의 말에 사방에서 울음소리가 터졌다. 정생은 옆에 있는 사촌 하나를 붙들고 물었다.
“수의, 상복, 관은 모두 준비했는가?”
“오래 아프셔서 미리 다 준비했다네.”
그 사이에 흰 천이 들어오고 당숙 어르신은 다시 한 번 백부의 눈꺼풀을 들춰보고 허리 밑으로 손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 살펴보았다. 사람이 죽고 나면 온몸이 풀어져 허리 밑으로 손을 넣을 수 없는 법이다.
당숙 어르신이 흰 천으로 백부를 덮고 나자 사람들은 상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습, 소렴, 대렴, 입관에 호상소를 만들고 영좌를 설치하고 명정을 세우고 조전, 석전을 올리는 등 상주와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은 정신없이 많다. 이렇게 꼼꼼한 절차와 예법은 친지를 잃은 슬픔에서 한껏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친척들이 별 기대를 하지 않아 호상(護喪), 사서(司書), 사화(司貨) 같은 장례 사무를 하나도 맡지 않은 정생은 방에서 나와 아픈 허리를 펴고 마당을 돌아보았다. 사흘이 지나 입관까지 끝나자 조문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이 한참 더운 때라 사람들은 대부분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모여 앉아있었다. 초상이 나면 일가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함께 슬픔을 견뎌내는 법이었다.
정생은 어디쯤 끼어들면 좋을까 슬슬 걸어 다니다가 평소 입담 좋기로 소문 난 왕고모부가 있는 자리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막걸리가 동이째 나와 있고 다들 얼굴이 벌겋게 이미 마신 터였다.
“그래도 조카는 복 받은 겨. 자식들이 다 종신(終身) 했으니.”
임종을 지키는 것을 종신이라고 한다. 종신 자식이 진짜 자식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종신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백부가 악착같이 자식들이 다 모일 때까지 잘 버틴 모양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어찌 되는지요?”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왕고모부는 그 질문이 안 나오면 어쩔까 싶을 정도로 반색을 하며 말을 받았다.
“참 좋은 질문이야. 내 알려주지.”
왕고모부는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세상천지는 기(氣)로 가득 차 있어서 저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 건데, 그 기가 뭉치면 물(物)이 되는 거야. 사람도 바로 기가 뭉쳐서 만들어진 물(物)이라 이거야.”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이 떠나간다고 하던데 그럼 혼백은 뭔가요?”
“그렇지. 기에는 양기(陽氣)와 음기(陰氣)가 있는데 양기는 혼이고 음기는 백이야.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가 사라지는 거야. 이때 혼이 제대로 승천하면 신명(神明)이 되는데 원한이 있으면 승천하지 못하고 음기를 가지게 되어서 귀신이 되어버리는 거야.”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주자(朱子)도 혼백을 향불에 비교해서 설명했었다. 향에 불을 붙이면 향에서 향기가 피어오르는데 이것이 혼이고, 향이 타고나면 남는 재는 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사람이 죽고 나면 염습을 하고 손발을 꽁꽁 묶는단 말이야. 왜 그러는지 아는가?”
왕고모부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음산하게 이야기했다. 갑자기 주위에 한기가 쌩 불어오는 것 같았다.
“내가 안동의 오 진사댁 장례에 갔을 때 일이었지. 벌써 50년은 됐나 봐.”
왕고모부의 음침한 목소리에 맞춰서 어디선가 여우 울음소리가 들렸다.

*

오 진사가 죽은 건 다 확인을 했지. 내가 갔을 때는 이미 흰 천으로 시신을 덮어놓은 상태였어. 그런데 내가 방에 들어서니까 갑자기 덮어놓은 흰 천이 움찔움찔하는 게 아니겠어?

자식들이 아버지 숨이 돌아오셨다고 막 달려들어 천을 걷어냈는데 오 진사는 “그르륵, 그르륵”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갑자기 벌떡 상체를 곧추세운 거야. 금방 숨넘어간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지.
그러고는 고개를 홱 돌려서 방문 너머 쪽을 바라보는데, 그런데 눈에 초점이 없는 거야. 눈은 백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변해 있었지. 이건 사람의 모습이 아니어서 아버지가 살아난 줄 알았던 자식들도 모두 입도 못 벌리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어. 그러더니 오 진사가 벌떡 일어나서 제일 가까이 있던 둘째 딸을 확 덮친 거야. 그때 입을 크게 벌렸다가 딸의 목을 물려고 했는데 다행히 빗나갔지만 ‘딱’ 하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지.


드라마 〈킹덤-시즌2〉 2020년 (출처: 넷플릭스)


오라비 둘이 누이를 얼른 끌어내서 간신히 참변을 면한 거였어. 오 진사, 아니 오 진사의 탈을 쓴 그 괴물은 둘째 딸을 물어뜯는데 실패한 거야. 내가 말했지?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날아올라간다고. 오 진사의 혼은 이미 몸에서 떠나갔고 그 몸에 뭔가 이상한 것이 들어와 몸을 차지한 거지.
괴물은 이번에는 큰아들을 물어뜯으려고 덤벼들었어. 그때 둘째 아들이 얼른 괴물의 팔을 붙잡았는데, 괴물은 이렇게 몸을 흔들어댔고 그 통에 상의가 훌렁 벗겨졌지.
다행히 그 서슬에 괴물이 자빠졌어. 괴물의 몸은 이미 뻣뻣해진 상태라 금방 일어나지를 못했어. 그 틈에 사람들은 사방으로 달아났어. 나도 뛰쳐나와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지붕 위로 올라갔지. 괴물이 움직이는 꼴을 보니까 지붕 위로 올라올 수는 없을 것 같았거든.
내가 지붕 위로 올라가자 사람들도 나를 따라서 다들 지붕 위로 올라왔어. 나는 지붕이 무너질까 봐 조마조마했지.
마당에는 괴물이 그르륵 거리면서 이리저리 희생자를 찾아서 움직이고 있었어. 눈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사람들을 쫓아다니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


드라마 〈킹덤-시즌1〉 2019년 (출처: 넷플릭스)


그때 둘째 아들이 벗겨낸 아버지 윗도리를 가지고 나랑 같은 지붕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을 봤지. 둘째는 윗도리를 잡고 서럽게 울고 있더라고. 얼른 옆으로 가서 뒤통수를 딱 때렸지.
지금 울고불고할 때가 아니니까. 나는 망자의 윗도리를 들고 주변에 조용히 하라고 외쳤어. 사람들이 조용해지자 마당에서 날뛰던 괴물도 조용해지더라고. 나는 윗도리를 펄럭이며 혼을 불렀어. 그래 초혼(招魂)을 한 거야. 오 진사의 몸으로 자기 혼이 돌아와야 우리가 살아날 방법이 있겠더라고. 그래서 목청껏 외쳤지.
조선국 경상도 안동의 진사 오병국! 복(復), 복, 복!


북망산천으로 가는 망자의 혼을 부르는 복(초혼)의식 (출처: 한국국학진흥원_조선가례)


혼이 돌아오라고 ‘복’이라고 외치는 거야. 한 번은 하늘을 보고, 한 번은 땅을 보고, 한 번은 북쪽을 향해서. 북쪽은 뭐냐고? 죽은 사람을 관장하는 신은 북쪽에 살거든.
초혼할 때는 조용해야 해. 사람들이 막 떠들고 울고불고하면 혼이 돌아오려고 하다가도 놀라서 못 돌아온단 말이지.
그런데 다행히 사방이 완전 조용해진 덕인지 혼이 돌아온 거야! 괴물, 아니 이제 다시 살아난 오 진사가 철퍽 소리를 내면서 마당에 쓰러졌어. 다들 무서워서 다가가지를 못하는데 오 진사가 큰아들 이름을 부르더라고. 그래서 큰아들이 내려가서 보고는 “아버지!” 하면서 울더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다 지붕에서 내려갔지.


시신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 간단하게 묶는 수시 모습 (출처: 한국국학진흥원_조선가례)


하지만 오 진사는 되살아나지는 못하고 금방 다시 숨이 끊어졌어. 그러자마자 얼른 손발을 다 꽁꽁 묶었지. 또 괴물로 변하면 큰일이잖아.
상여 메고 가는 동안 관이 쿵쿵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도 있긴 하던데, 난 몰라. 무서워서 장지까지는 안 따라갔거든.

*

이야기를 마쳤는데, 정말 주위에 서리라도 내린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꼬맹이 하나가 덜덜 떨면서 말했다.
“할아부지, 그거 참말이에요?”
“그럼! 난 평생 거짓부렁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몸이야!”
정생은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오금이 저려서 기분이 엄청 나빴다. 술도 오른 김에 독설이 튀어나왔다.
“객쩍은 소리 고만하세요. 그런 엉터리 이야기는 대체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
왕고모부는 펄쩍 뛰었다.
“엉터리라니! 그런 괴물을 죽어서 음기로 된 도적이라 해서 조음비(弔陰匪)라 부르는 거야.”
“조음비? 그게 뭐예요? 차라리 좀 같은 도적이라고 좀비라고 부르세요.”
그때 사랑방 쪽에서 콰당 소리가 났다. 왕고모부가 그쪽을 가리키켜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앗, 저기 봐라! 조음비다!”


(출처: 픽사베이)


정생이 고개를 돌려보자 사랑방 문이 천천히 열리는 중이었다. 저기에는 백부 관밖에 없는데? 사랑방 문틈으로 하얀 옷에 감싸인 시커먼 손이 튀어나왔다.
“으악!”
정생은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음날 사람들은 하루종일 장례 절차도 잊을 만큼 정생의 소심함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석전(夕奠)을 올리고 나오던 당숙 어르신이 미끄러지면서 벼루에 손을 찧으셨다고. 덕분에 엉금엉금 기어 나왔는데 정생이 먹물 묻은 손만 보고 기절했던 것이다. 그 후 일가친척들이 정생만 보면 조음비가 왔다고 웃어대는 통에 정생은 수원부 쪽으로는 오줌도 누질 않았다고 한다.




집필자 소개

이문영
이문영
역사, 추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문서 쪽으로도 출간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의 소설게시판지기로도 활동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을 겸하고 있다. 역사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어린이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역사동화 『역사 속으로 숑숑』, 어린이 인문서 『그게 정말이야?』, 역사인문서 『만들어진 한국사』를 비롯해서 MMORPG 『무혼』 등 여러 편의 게임 시나리오도 만든 바 있다.
“양반 부인의 상을 치른 비부(婢夫)”

노상추, 노상추일기,
1773-10-08 ~ 1773-10-10
겨울로 접어드는 10월, 하천(下川)의 족증조모 이씨(李氏)가 별세하였다. 올해 80세가 되었는데 곁에서 가까이 모시는 자식이 없이 쓸쓸하게 살고 있었고, 결국 임종을 한 자식도 하나 없었다. 친족들은 모두 원래 자식이 해야 하는 발상(發喪)은 누가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차에 비부(婢夫) 복삼(福三)이 머리를 풀고 나타나 상차(喪次)에서 망자를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복삼이는 세 살 때 부모를 모두 잃었다. 그를 불쌍하게 여긴 이씨 부인이 그를 거둬 키웠는데, 복삼이는 길러준 은혜를 잊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도리를 다하기 위해 상차에 자리하여 곡을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천한 비부가 양반 부인의 장례에서 상주 노릇을 한다며 끌어내려하던 사람들도 이와 같은 사정을 듣고는 복삼이를 기특하게 여기며 천성이 아름답다고 칭찬하였다. 하지만 복삼이는 신분이 달랐기에 이씨 부인의 수양아들로 인정받을 수 없었고, 부모를 잃은 자식이 입는 상복도 입을 수가 없었다.

“가친께서 돌아가시다”

금난수, 성재일기, 1575-05-13

금난수(琴蘭秀)의 부친인 금헌은 1575년 올해 정월부터 심기가 고르지 못하였다. 식사도 점점 양이 줄고 가래와 천식이 아주 심하였는데, 이러한 증세가 오래도록 나아지지 않는 염려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몇 달이 지났는데도 차도가 없이 오히려 병세가 악화되자 금난수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부친이 평상시에 거처하던 곳에서 사랑방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예서에서는 임종이 가까워지면 천거정침(遷居正寢)이라고 하여 병이 깊어진 환자를 정침으로 옮기도록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금난수도 이를 따르고 싶었던 것이었다.
금난수는 임종에 대비해 부친의 처소를 안방으로 옮겼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히 부친이 쾌차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이 무색하게 금헌은 5월 13일 미시(未時; 오후 1시~3시)에 세상을 떠났다. 오랜 병환 기간이 있었기에 부친이 조만간 먼 길을 떠나실 것을 예감했음에도 애통한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금난수와 가족들은 그 애통함에 연거푸 곡(哭)하였다. 집안을 이끌어야 했던 금난수는 정신을 차리고 부친께서 다시 살아나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초혼(招魂)을 진행하였다. 가친의 웃옷을 가지고 지붕에 올라간 자가 부친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소리가 금난수의 귀에 들렸다. 금난수는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시신을 살폈으나 깨어나시지 못했다. 이제는 금난수도 부친이 돌아가셨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금난수는 주상(主喪)이 되었고, 금난수의 처 횡성 조씨는 주부(主婦)가 되었다. 금난수는 집안사람들 중 주상인 자신을 도와 상사(喪事)의 일을 처리할 호상(護喪, 초상 치르는 데에 관한 온갖 일을 책임지고 맡아 보살피는 사람)과 사서(司書, 조문객의 출입 등을 기록하는 일을 하는 사람)·사화(司貨, 초상에 쓸 물건 또는 재물의 출납 등을 기록하는 일을 하는 사람)를 정한 다음 친척과 친구들에게 부고를 전했다.

“아내가 병에 걸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김광계, 매원일기,
1643-03-19 ~ 1643-08-18

1643년 봄부터 김광계의 아내는 병이 깊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먹고 마시지도 못하였다. 김광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침 또 김광계가 존경하고 따르던 재종숙의 대상이 다가오자, 김광계는 아끼는 이를 또 잃을까 하는 마음에 더욱 걱정하였다. 더욱이 아내가 병에 걸려 있어 부정이 탈까 싶어 재종숙의 궤연에 전을 올릴 수도 없었다. 여러모로 한스러운 상황이었다.
김광계는 종 무생(戌生)을 용성(龍城)에 보내 약을 처방받아 오게 하였는데, 의원은 김광계의 아내의 병세를 듣고 가감승마갈근탕(加減升麻葛根湯)을 처방하였다. 이 약은 신열을 내리고, 입이 헐고 목구멍이 아픈 증상을 치료하는 약이다. 김광계는 걱정도 되고, 자신의 노구도 병을 옮을까 싶어 강재(江齋)로 나와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동생 김광악, 김광실, 김광보, 조카 김민 등 여러 사람이 김광계를 매일같이 찾아와 아내의 병세를 전하였는데,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들이었다.

“하회누이의 부고가 오다”

최흥원, 역중일기, 1756-05-06 ~

1756년 5월 6일. 최흥원은 아침 날이 밝기 전부터 서둘러 10말의 쌀과 5냥의 돈, 2마리 닭과 함께 5홉의 꿀을 종 한선이를 시켜 하회마을로 가져가도록 하였다. 며칠 전 하회마을로부터 걱정스러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아이를 가진 최흥원의 누이가 전염병에 걸려 유산을 하였다는 것이다. 유산뿐 아니라 몸 상태가 매우 위중한 상황이라고 하였다. 이때 까지만 해도 누이가 위기를 잘 넘기고 일어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제 재낭이의 지아비를 하회마을로 보내어 상황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누이의 증세가 심각해져 그사이에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은 최흥원은 당장이라도 누이의 증세를 확인하기 위해 하회로 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으나, 최흥원 본인도 병중인 상황에서 함부로 길을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오늘 오전에 한선이를 보내 여러 물건을 보내고, 누이의 증세를 다시 확인해보도록 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후 무렵, 한선이가 돌아오기도 전에 하회마을에서 사람이 왔다. 결국, 누이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세상에, 이것이 무슨 하늘의 이치란 말인가. 매우 애통하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왔다. 최흥원은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내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어머니께는 대체 어찌 말씀드린단 말인가! 병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 데, 이제 딸자식의 죽음까지 듣는다면 어머니께서 차마 견딜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에 최흥원은 소식을 전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러나 딸의 죽음을 언제까지나 숨길 수도 없는 법. 최흥원은 이윽고 결심하고 어머니 방의 문을 두드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누이의 부고를 전하던 최흥원은 어머니와 함께 통곡하고 말았다.

“전쟁 중에 병으로 딸을 잃다”

금난수, 성재일기,
1592-05-20 ~ 1592-06-03

안 그래도 전쟁 때문에 근심이 많은 때에, 전염병까지 창궐하기 시작하였다. 피난을 온 외지 사람들이 많은 데다가 모두 씻고 먹는 것 역시 부실한 만큼 전염병이 퍼지기도 쉬웠다. 금난수의 가족이 피난하고 있는 고산(孤山)에서도 병자가 나왔다. 이광욱과 혼인한 딸 계종(季從)이 앓기 시작한 것이다. 사위인 이광욱은 이때 자신의 부인과 함께 있지 않고 자신의 부모를 챙기기 위해서인지 따로 있었는데, 부인이 심하게 앓는다는 소식에 고산으로 와서 부인의 병세를 확인하였다.
그러나 약재를 구하기도 어려운 흉흉한 상황이었다. 계종은 약 한번 변변히 써 보지 못하고 남편이 돌아간 다음날 저물 때쯤 허망하게 사망하였다. 돌아갔던 남편이 황망하여 바로 찾아왔으나 이미 부인의 시신은 차게 식은 뒤였다. 전쟁 중이라 시신을 시댁으로 보내 장례를 치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금난수는 몸소 딸의 장례를 지휘하였다. 사위와 사돈, 그리고 형제인 금경과 금업, 부모인 금난수와 그의 부인만 참여한 조촐한 장례가 치러졌다.
장례가 끝난 뒤, 아들들은 자신의 부인이 있는 곳으로, 사위는 자신의 부모가 있는 곳으로, 모두 각자의 집안을 챙기러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금난수는 딸의 관을 뗏목에 실어 강을 건너게 한 뒤 소를 빌려 장지까지 운반하였다. 쓸쓸한 장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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