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골의 서당 훈장인 정생에게 백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6월 초였다. 무더위에 수원부에 사는 백부에게 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일흔이 넘은 백부가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그냥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람하는 일이라면 숙수(요리사)와 기생까지 대동해서 거한 행차를 할 일이었으나 시급을 요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수발을 들 하인 하나만 데리고 간단한 행장을 꾸려 길을 나섰다. 만에 하나 상례까지 치러야 하면 몇 달을 머물 수도 있기 때문에 접장을 불러서 당부를 단단히 했다. 훈장이 없는 동안 옆 서당에 훈도를 빼앗기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 〈백은배, 기려연강(騎驢沿江)〉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정생은 나귀를 타고 하인에게 고삐를 들려서 길을 떠났다. 사흘 만에 백부의 집에 도착했을 때 정생은 반쯤 죽어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먼 거리를 노새 등 위에서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흔들거릴 때마다 허리에 충격이 가해지는 것을 견딜 근육 같은 것이 없었던 탓이다.
드디어 백부 집의 대문이 보이자 이젠 살았다 싶어서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생은 허리가 아파 부들부들 떨면서 나귀에서 내렸다. 백부 집의 마름에게 안부를 물었다.
“아이고, 내가 왔다. 큰아버님은 어디 계시냐?”
“늦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어서 들어가 보시지요.”
사랑채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미 회생이 불가능하다 판단해서 정침(正寢)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정생이 들어서자 모인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인사를 하는데 그 인사를 일일이 받다가는 백부가 삼도천을 건널 것 같아서 정생은 사람들을 밀치고 백부의 머리맡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부가 가늘게 눈을 떨며 정생을 바라보았다. 뭔가 말하려 입을 벌렸는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생은 소리를 들으려고 허리를 굽히다가 허리가 끊어지듯이 아파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형님, 이렇게 멀리 찾아와주셔서 또 이렇게 슬퍼하시니 정말 정이 깊으십니다.”
옆에 앉아있던 사촌이 정생의 손을 붙잡으며 곡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양주골에 있는 전답은 형님께 주신다고 말씀하셨고 분급기에도 적었습니다.”
죽음을 지켜보고 준비하는 임종 (출처: 한국국학진흥원_조선가례)
다행히 백부가 조카를 까먹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잠시 후 백부가 정신을 잃고 눈을 감더니 숨소리가 멎었다. 허리는 부러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임종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조카들이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는 가운데 당숙 어르신이 햇솜을 꺼내 백부의 코 밑에 놓았다.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살피려 한 것인데 이것을 속광(屬纊)이라고 부른다.
“운명하셨구만.”
당숙 어르신의 말에 사방에서 울음소리가 터졌다. 정생은 옆에 있는 사촌 하나를 붙들고 물었다.
“수의, 상복, 관은 모두 준비했는가?”
“오래 아프셔서 미리 다 준비했다네.”
그 사이에 흰 천이 들어오고 당숙 어르신은 다시 한 번 백부의 눈꺼풀을 들춰보고 허리 밑으로 손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 살펴보았다. 사람이 죽고 나면 온몸이 풀어져 허리 밑으로 손을 넣을 수 없는 법이다.
당숙 어르신이 흰 천으로 백부를 덮고 나자 사람들은 상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습, 소렴, 대렴, 입관에 호상소를 만들고 영좌를 설치하고 명정을 세우고 조전, 석전을 올리는 등 상주와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은 정신없이 많다. 이렇게 꼼꼼한 절차와 예법은 친지를 잃은 슬픔에서 한껏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친척들이 별 기대를 하지 않아 호상(護喪), 사서(司書), 사화(司貨) 같은 장례 사무를 하나도 맡지 않은 정생은 방에서 나와 아픈 허리를 펴고 마당을 돌아보았다. 사흘이 지나 입관까지 끝나자 조문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이 한참 더운 때라 사람들은 대부분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모여 앉아있었다. 초상이 나면 일가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함께 슬픔을 견뎌내는 법이었다.
정생은 어디쯤 끼어들면 좋을까 슬슬 걸어 다니다가 평소 입담 좋기로 소문 난 왕고모부가 있는 자리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막걸리가 동이째 나와 있고 다들 얼굴이 벌겋게 이미 마신 터였다.
“그래도 조카는 복 받은 겨. 자식들이 다 종신(終身) 했으니.”
임종을 지키는 것을 종신이라고 한다. 종신 자식이 진짜 자식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종신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백부가 악착같이 자식들이 다 모일 때까지 잘 버틴 모양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어찌 되는지요?”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왕고모부는 그 질문이 안 나오면 어쩔까 싶을 정도로 반색을 하며 말을 받았다.
“참 좋은 질문이야. 내 알려주지.”
왕고모부는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세상천지는 기(氣)로 가득 차 있어서 저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 건데, 그 기가 뭉치면 물(物)이 되는 거야. 사람도 바로 기가 뭉쳐서 만들어진 물(物)이라 이거야.”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이 떠나간다고 하던데 그럼 혼백은 뭔가요?”
“그렇지. 기에는 양기(陽氣)와 음기(陰氣)가 있는데 양기는 혼이고 음기는 백이야.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가 사라지는 거야. 이때 혼이 제대로 승천하면 신명(神明)이 되는데 원한이 있으면 승천하지 못하고 음기를 가지게 되어서 귀신이 되어버리는 거야.”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주자(朱子)도 혼백을 향불에 비교해서 설명했었다. 향에 불을 붙이면 향에서 향기가 피어오르는데 이것이 혼이고, 향이 타고나면 남는 재는 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사람이 죽고 나면 염습을 하고 손발을 꽁꽁 묶는단 말이야. 왜 그러는지 아는가?”
왕고모부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음산하게 이야기했다. 갑자기 주위에 한기가 쌩 불어오는 것 같았다.
“내가 안동의 오 진사댁 장례에 갔을 때 일이었지. 벌써 50년은 됐나 봐.”
왕고모부의 음침한 목소리에 맞춰서 어디선가 여우 울음소리가 들렸다.
*
오 진사가 죽은 건 다 확인을 했지. 내가 갔을 때는 이미 흰 천으로 시신을 덮어놓은 상태였어. 그런데 내가 방에 들어서니까 갑자기 덮어놓은 흰 천이 움찔움찔하는 게 아니겠어?
자식들이 아버지 숨이 돌아오셨다고 막 달려들어 천을 걷어냈는데 오 진사는 “그르륵, 그르륵”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갑자기 벌떡 상체를 곧추세운 거야. 금방 숨넘어간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지.
그러고는 고개를 홱 돌려서 방문 너머 쪽을 바라보는데, 그런데 눈에 초점이 없는 거야. 눈은 백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변해 있었지. 이건 사람의 모습이 아니어서 아버지가 살아난 줄 알았던 자식들도 모두 입도 못 벌리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어. 그러더니 오 진사가 벌떡 일어나서 제일 가까이 있던 둘째 딸을 확 덮친 거야. 그때 입을 크게 벌렸다가 딸의 목을 물려고 했는데 다행히 빗나갔지만 ‘딱’ 하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지.
드라마 〈킹덤-시즌2〉 2020년 (출처: 넷플릭스)
오라비 둘이 누이를 얼른 끌어내서 간신히 참변을 면한 거였어. 오 진사, 아니 오 진사의 탈을 쓴 그 괴물은 둘째 딸을 물어뜯는데 실패한 거야. 내가 말했지?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날아올라간다고. 오 진사의 혼은 이미 몸에서 떠나갔고 그 몸에 뭔가 이상한 것이 들어와 몸을 차지한 거지.
괴물은 이번에는 큰아들을 물어뜯으려고 덤벼들었어. 그때 둘째 아들이 얼른 괴물의 팔을 붙잡았는데, 괴물은 이렇게 몸을 흔들어댔고 그 통에 상의가 훌렁 벗겨졌지.
다행히 그 서슬에 괴물이 자빠졌어. 괴물의 몸은 이미 뻣뻣해진 상태라 금방 일어나지를 못했어. 그 틈에 사람들은 사방으로 달아났어. 나도 뛰쳐나와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지붕 위로 올라갔지. 괴물이 움직이는 꼴을 보니까 지붕 위로 올라올 수는 없을 것 같았거든.
내가 지붕 위로 올라가자 사람들도 나를 따라서 다들 지붕 위로 올라왔어. 나는 지붕이 무너질까 봐 조마조마했지.
마당에는 괴물이 그르륵 거리면서 이리저리 희생자를 찾아서 움직이고 있었어. 눈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사람들을 쫓아다니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
드라마 〈킹덤-시즌1〉 2019년 (출처: 넷플릭스)
그때 둘째 아들이 벗겨낸 아버지 윗도리를 가지고 나랑 같은 지붕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을 봤지. 둘째는 윗도리를 잡고 서럽게 울고 있더라고. 얼른 옆으로 가서 뒤통수를 딱 때렸지.
지금 울고불고할 때가 아니니까. 나는 망자의 윗도리를 들고 주변에 조용히 하라고 외쳤어. 사람들이 조용해지자 마당에서 날뛰던 괴물도 조용해지더라고. 나는 윗도리를 펄럭이며 혼을 불렀어. 그래 초혼(招魂)을 한 거야. 오 진사의 몸으로 자기 혼이 돌아와야 우리가 살아날 방법이 있겠더라고. 그래서 목청껏 외쳤지.
조선국 경상도 안동의 진사 오병국! 복(復), 복, 복!
북망산천으로 가는 망자의 혼을 부르는 복(초혼)의식 (출처: 한국국학진흥원_조선가례)
혼이 돌아오라고 ‘복’이라고 외치는 거야. 한 번은 하늘을 보고, 한 번은 땅을 보고, 한 번은 북쪽을 향해서. 북쪽은 뭐냐고? 죽은 사람을 관장하는 신은 북쪽에 살거든.
초혼할 때는 조용해야 해. 사람들이 막 떠들고 울고불고하면 혼이 돌아오려고 하다가도 놀라서 못 돌아온단 말이지.
그런데 다행히 사방이 완전 조용해진 덕인지 혼이 돌아온 거야! 괴물, 아니 이제 다시 살아난 오 진사가 철퍽 소리를 내면서 마당에 쓰러졌어. 다들 무서워서 다가가지를 못하는데 오 진사가 큰아들 이름을 부르더라고. 그래서 큰아들이 내려가서 보고는 “아버지!” 하면서 울더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다 지붕에서 내려갔지.
시신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 간단하게 묶는 수시 모습 (출처: 한국국학진흥원_조선가례)
하지만 오 진사는 되살아나지는 못하고 금방 다시 숨이 끊어졌어. 그러자마자 얼른 손발을 다 꽁꽁 묶었지. 또 괴물로 변하면 큰일이잖아.
상여 메고 가는 동안 관이 쿵쿵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도 있긴 하던데, 난 몰라. 무서워서 장지까지는 안 따라갔거든.
*
이야기를 마쳤는데, 정말 주위에 서리라도 내린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꼬맹이 하나가 덜덜 떨면서 말했다.
“할아부지, 그거 참말이에요?”
“그럼! 난 평생 거짓부렁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몸이야!”
정생은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오금이 저려서 기분이 엄청 나빴다. 술도 오른 김에 독설이 튀어나왔다.
“객쩍은 소리 고만하세요. 그런 엉터리 이야기는 대체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
왕고모부는 펄쩍 뛰었다.
“엉터리라니! 그런 괴물을 죽어서 음기로 된 도적이라 해서 조음비(弔陰匪)라 부르는 거야.”
“조음비? 그게 뭐예요? 차라리 좀 같은 도적이라고 좀비라고 부르세요.”
그때 사랑방 쪽에서 콰당 소리가 났다. 왕고모부가 그쪽을 가리키켜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앗, 저기 봐라! 조음비다!”
(출처: 픽사베이)
정생이 고개를 돌려보자 사랑방 문이 천천히 열리는 중이었다. 저기에는 백부 관밖에 없는데? 사랑방 문틈으로 하얀 옷에 감싸인 시커먼 손이 튀어나왔다.
“으악!”
정생은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음날 사람들은 하루종일 장례 절차도 잊을 만큼 정생의 소심함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석전(夕奠)을 올리고 나오던 당숙 어르신이 미끄러지면서 벼루에 손을 찧으셨다고. 덕분에 엉금엉금 기어 나왔는데 정생이 먹물 묻은 손만 보고 기절했던 것이다. 그 후 일가친척들이 정생만 보면 조음비가 왔다고 웃어대는 통에 정생은 수원부 쪽으로는 오줌도 누질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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