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재밌다. 어제까지 왕이었던 자의 목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노비가 황제가 되기도 한다. 단, 혁명이 즐겁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여서는 안 된다. 내가 사는 시대여서도 안 된다. 혁명은 반드시 남의 일이어야 하고 다른 시대의 이야기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소용돌이에 하릴없이 이유도 모르는 채로, 마치 어벤져스와 우주 괴물이 벌이는 시가전에서 구겨진 종이처럼 날아간 자동차에 깔려 죽는, 엔딩 크레딧조차 나오지 않는 배역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전쟁이나 혁명 같은 역사적인 이벤트는 개인의 삶을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로 밀어 넣는다. 전쟁통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고려 시대는 흥미롭다. 그동안 고려 이야기는 조선의 눈으로 한 번 걸러진 상태였다면 최근에는 과거의 인물들에 대한 신선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거나 기록을 재발굴하며 진실을 찾아내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상〉 (출처: 경기도박물관)
오랫동안 고려가 얽힌 가장 즐거운 시기는 소위 말하는 여말선초다. 공민왕이 신돈에게 휘둘리고 노국공주가 세상을 떠나며 어지러운 국경을 지키던 장군 중 하나였던 이성계가 고려의 문을 닫고 조선을 열던 때다. 과거에는 고려의 라스푸틴 같은 위치였던 신돈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성계의 소위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란’이라는 스토리는 후대 사람들에게 꽤 큰 영감을 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혁명을 배경으로 한 가장 오랫동안 알려진 뮤지컬은 프랑스의 알란 부빌과 미쉘 쉔베르그가 만든 혁명 그 자체인 듯한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이다. 이 작품은 휴 잭맨, 러셀 크로, 앤 해서웨이 등이 출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져 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최근의 뮤지컬 팬들은 생각은 좀 다르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레 미제라블〉보다는 미국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한 브로드웨이 최초의 랩 뮤지컬 〈해밀턴(Hamilton)〉이 먼저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의 원작 소설 〈레 미제라블〉을 각색하여 방대한 수십 년의 줄거리를 이보다 더 잘 각색할 수 없다는 평을 들은 〈레 미제라블〉은 먹고 살자고 빵을 훔쳤다가 몇 번의 거듭된 탈옥 실패로 19년이라는 무시무시한 형기를 마치고 가석방된 남자 장발장이 주인공이다. 그가 빵을 훔칠 수 밖에 없었던 빈곤한 사회와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한치의 연민도 보여주지 않는 지배 계층이 극 초반부터 명확하게 드러난다. 장발장이 출소할 때조차도 형사인 자베르는 가석방이라는 사실을 콕 짚어주며 여전히 자신의 손안에 있음을 일깨운다.
장발장은 세상 모든 것에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모든 사람을 미워했다. 장발장은 특히 가진 자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던 자신을 맞이해 은식기까지 꺼내 식사를 대접한 마리엘 신부의 호의를 무시하고 은식기를 싹 챙겨 도망간다. 좀 찜찜하긴 해도 은식기를 살 수 있는 자에 대한 증오를 감출 생각이 없다. 하지만 경찰에 잡혀 다시 마주한 신부가 자신의 두 손을 꼭 잡고는 은촛대 한 쌍은 왜 잊고 갔냐며 집어주자 감당할 수 없는 사랑에 녹아내린다. 이후 장발장은 신분을 속이고 시장이 되고, 다시 자신의 신분이 발각되며 도망자 신세가 되기도 한다. 장발장은 팡틴의 딸인 코젯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신분을 바꿀지언정 한 순간도 신부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023~2024 〈레 미제라블〉 한국어 공연 포스터 (출처: 뮤지컬 레 미제라블 한국 공식 웹사이트)
왕당파와 혁명파가 엎치락뒤치락 정권을 뺏고 빼앗기는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는 은둔하며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아가려 노력한다. 하지만 코젯이 사랑하는 마리우스가 바리케이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결국 그를 살리기 위해 그 안으로 잠입하면서 혁명의 생생한 물결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레 미제라블〉에 담긴 이야기가 허구라면 뮤지컬 〈해밀턴〉은 미국의 국부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1755~1804)이라는 실존 인물을 담은 극이다. 해밀턴은 미국 최초의 재무장관으로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는 연방은행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는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었고 미국의 독립혁명이야말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신이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여겼다. 해밀턴에게는 영국과의 전쟁이 반드시 필요했다. 비록 그 와중에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해밀턴〉의 한 장면 (출처: 디즈니플러스)
뮤지컬은 그의 행적을 그저 찬양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그의 야망과 욕망, 열정, 그리고 지나친 승부욕을 적절하게 배분한다. 정치인으로서의 그는 꽤 존경받을만한 인물이었을지 몰라도 남편이나 아버지로서는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마지막 결투에서 상대방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 않는다. 불우했기에 누구보다도 인생을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냈던 불꽃같은 남자 해밀턴의 이야기는 그가 ‘위인’이 아니기에 더욱 매력적이고, 미국의 독립이 아니었다면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 될뻔했던 인물이기에 더욱 강렬하다.
한국의 근대사는 처참하다.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자 이승만의 독재를 맛봤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대통령과 왕의 차이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때 이승만은 왕의 길을 걸었다. 4.19와 5.16을 겪었어도 여전히 대통령을 나랏님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대사는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 소재지만 입장에 따라 ‘정치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렇다면 좀 더 멀리, 그러나 현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시대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 여말선초를 다룬 작품은 무대에서도 꾸준히 있어왔다. 고려 말의 무신정권의 몰락을 그린 2017년에 개막한 연극 〈혈우〉나 2022년에 공연된 뮤지컬 〈난세〉, 누가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 가운데 진짜 조선의 창업자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지는 뮤지컬 〈창업〉도 공연됐다. 하지만 소재가 워낙 무겁고 짧게 끝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다루기가 쉽지는 않다.
오히려 주목할만한 작품은 소설가 박화성(朴花城, 1904-1988)이 쓴 소설 『백화(白花)』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연극 〈백화〉다. 1932년 동아일보에서 연재를 시작했던 소설로 1934년에는 단행본으로 발행됐고, 1937년 12월에는 인생극장 창립 기념 작품으로 공연되었다. 대본집 표지에는 〈백련화연〉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원작이 여말선초의 환란을 겪으며 성장하는 ‘백화’라는 서경 기생의 삶과 사랑을 그린 소설이었는데 연출가이자 극각가였던 송영은 이 작품을 5막 7장의 대작으로 각색했다. 지성과 아름다운 외모는 물론 예술적인 소양과 인문적인 소양도 뛰어났던 고려 말의 평양 기생 백화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에게 복수를 시도하는 내용이다.
주인공 백화는(어릴 적 이름은 일주) 낙향한 선비 임처사의 딸이다. 소꿉친구인 왕생과 함께 성장하며 연정을 품었지만 신돈의 악행을 고발한 아버지가 끌려가면서 백화의 인생에 그림자가 깃든다. 악역인 황파는 일주를 환란에서 구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일주를 기생으로 만들어 돈을 벌려는 음흉한 인물이다. 백화의 아버지 임처사가 옥에서 죽자 일주를 옥죄어 억지로 기생으로 만든다. 더 익힐 것도 없이 아버지에게 배운 문장과 예술에 대한 조예를 바탕으로 뛰어난 미모까지 갖춘 백화는 여기에 기생 수업을 받으며 익힌 가무까지 얹어 서경의 최고 기생으로 이름을 날린다. 비록 기생이 되었어도 백화의 마음은 꺽이지 않고 마침내 아버지의 누명을 벗긴다는 내용이다.
박화성의 장편소설 『백화』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원작자 박화성은 중세 사회라고 해서 여성이 억눌려서 살기만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박화성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남자와 다를 바 없이 진취적으로 살아가던 여성을 묘사하려는 목적으로 이 소설을 썼다. 일제 시대를 살아가며 여성 작가는 ‘여류’라고 불렸던 시대에 박화성은 과거를 소환해 당시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던졌다. 역사 소설이 임금의 계보 찾기에 급급할 때, 박화성은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연극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아쉽게도 연출가인 송영이 월북하면서 작품도 같이 묻혀버렸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공연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만약 과거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역사의 역할이라면 연극 〈백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지금처럼 고려가 트렌드가 된 때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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