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스토리이슈에서는 조선판 마블, 종경도(宗卿圖)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종경도(宗卿圖)는 조선시대 ‘관직도표’로서, 하위직부터 차례로 승진하여 고위 관직에 먼저 오르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의 놀이판입니다. 조선시대 승진마블, 종경도(宗卿圖)에 대하여 한국국학진흥원 김형수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종경도(從卿圖)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이 물건은 종정도(從政圖) 또는 승경도(陞卿圖)라 불리는 조선시대 관직놀이의 놀이판인 종경도(從卿圖)입니다. 종정도 놀이란 놀이판에 당시의 관직명을 차례로 적어 놓고, 윤목(輪木)을 던져 나온 숫자에 따라 말을 이동하여 하위직부터 차례로 승진하여 고위 관직에 먼저 오르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입니다.
등급이 많고, 칭호와 상호관계가 복잡한 조선시대의 관직에 대하여 자녀들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행해지던 놀이인 셈이죠.
<용재총화(慵齋叢話)>의 내용을 보면 조선 초에 하륜(河崙)이 만든 놀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놀이판에 적힌 관직의 명칭은 조선시대 관직 명칭을 사용하였지만, 관직의 명칭만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관직은 항상 변천하고, 그 당시의 관직 명칭만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놀이용 관직을 따로 사용 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종정도(從政圖)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놀이도구가 필요합니다. 놀이판인 ‘종경도(宗卿圖)’, 주사위 역할을 하는 ‘윤목(輪木)’ 그리고 ‘놀이말’입니다.
놀이판은 당시의 관직 체계를 적어 넣은 관직도표로서 관직명과 상황을 써 넣습니다. 각 아래에는 1~5까지의 숫자와 관직 또는 상황이 쓰여 있으며, 이는 윤목(輪木)을 던져 나온 수에 따라 다음으로 어디로 승진할 것인지 좌천할 것인지를 정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놀이판의 중앙에는 중앙관직을, 놀이판의 가장자리에는 지방관직을 배치합니다.
중앙부의 맨 꼭대기 부분에 가장 높은 관직을 배치하고, 중앙부의 가장 아래쪽에 가장 낮은 관직을 배치합니다.
놀이판(종경도)의 구성
윤목(輪木)은 나무로 만든 5각 기둥으로, 5개의 모서리에 1~5까지를 새겨 굴리면 모서리에 새긴 숫자가 보이도록 만든 것으로 주사위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윤목(輪木)은 5각 기둥으로 5단계의 숫자가 존재하고, 주사위는 6각으로 6단계의 숫자가 존재하는 차이는 있지만 여러 사람이 행하는 놀이이므로 어느 것을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윤목(輪木)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일정한 형태가 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나, 자기 말과 다른 사람의 말이 구별되도록 표시를 합니다. 대부분 색깔을 달리해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이 놀이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분의 결정입니다. 신분의 결정은 첫 번째 굴린 결과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죠. 신분은 크게 유학(幼學), 진사(進士), 무과(武科), 문과(文科), 은일(隱逸) 등 5단계로 나누어집니다. 신분의 5단계는 지역 또는 시기에 따라 가장 높은 신분과 가장 낮은 신분에 차이가 있습니다.
신분이 결정되면 각자의 신분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관직까지 누가 먼저 오르느냐를 겨루는 방식으로 놀이가 진행됩니다. 각 신분에 따라 가장 높은 관직은 ‘영의정(領議政)’, ‘도원수(都元帥)’, ‘지사(知事)’ 등이 되지만 ‘봉조하(奉朝賀)’를 마지막 최고로 칩니다. 봉조하(奉朝賀)는 최고직위에 오른 사람을 명예직으로 은퇴시켜 은퇴 후에도 녹봉을 주고 대우를 받는 관직이기 때문입니다.
양사라는 것은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을 뜻하는 것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탄핵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양사법은 사헌부나 사간원의 벼슬자리에 가 있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규칙으로, 이 사람이 지정하는 말들은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합니다. 해당 말을 움직이려면 규정된 수가 나와야 했던 것입니다.
은대는 승정원(承政院)을 뜻하는 것으로 승정원은 임금의 비서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금의 명령을 하달하고 임금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하는 자리입니다. 승정원 벼슬에 있는 사람이 규정된 수를 얻으면 아래의 모든 말들은 다음 번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숫자를 자기네가 쓰지 못하고 승정원 벼슬에 있는 사람에게 전부 바쳐야 하는 식입니다.
지역마다 놀이방식의 차이는 크게 존재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역 또는 시기에 따라 신분의 결정에서 어느 것을 높게 치느냐에 차이는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에는 만과라고 하여 한꺼번에 무관을 만 명을 뽑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급제자가 너무 많으니 벼슬을 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말에 한량이라는 것이 원래 무과에 급제한 사람이 한량입니다. 급제는 했으나 벼슬이 없어 놀고 있는 처지를 말하는 것이죠. 이처럼 조선 후기에는 문과, 무과, 은일, 진사, 유학 중 무과를 가장 낮은 신분으로 취급하였던 것입니다.
전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는 남승도, 부처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성불도, 전국의 유명한 정자나 누각의 이름을 적은 누각도 등이 존재하였는데 모두 같은 맥락의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관직체계는 등급이 많고, 상호관계가 매우 복잡했습니다. 따라서 양반집 자제들은 어려서부터 놀이를 통해 관직의 체계적인 개념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죠. 단순히 관직을 얻어 승진을 하는 놀이가 아닌 파직, 귀양, 사약 등의 규칙을 넣어 책임감과 관직을 얻은 선비의 올바른 자세를 익히게 하기도 한 것입니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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