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허촌에 호환이 났다. 망허산을 넘어오던 소금 장수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것이다.
“소금 짐만 고갯마루에 떨어져 있어서 다들 놀랐잖아. 그런데 익재 아저씨가 향촌 갔다 오다가 썩는 냄새를 맡고 뭔가 싶어 가봤다가 반쯤 뜯어먹힌 시체를 발견했다지 뭐야?”
세책방 집 목금이 소식을 듣자마자 친구인 정 진사 댁 백이에게 달려와 종알종알 소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맹호도(猛虎圖)〉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듣기만 해도 끔찍하네. 넌 그런 이야기 무섭지도 않냐?”
“이야기가 무서울 건 뭐 있어? 호랑이랑 만나면 무서울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강심장이야, 강심장.”
“그게 문제가 아니야. 거기 시체 옆에 누군지도 모를 백골들이 널려 있었대!”
백이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무, 무서워! 그만 이야기해!”
“알았어, 알았어. 그럼 이제 마을에 무슨 일 생기는지도 말 안 할게.”
백이는 조용히 귀에서 손을 내렸다.
“무슨 일?”
“안 듣는다면서?”
“빨리 말 안 하면 간지럼 태운다?”
“와, 이 사람 보소. 내 유일한 약점을 건드리겠다고?”
“어서!”
백이가 곧 간지럼을 태울 듯이 양손을 치켜올리자 목금이는 벌써 뒤로 나자빠지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 그만! 말해줄게. 착호군을 불러올 거래.”
“착호군이 뭐야?”
“호랑이를 잡는 군사야. 사또 나리가 감영에 말해서 병사들을 불러올 거라네. 그런데 마을 어르신들은 그거 못마땅한가 봐. 착호군이 오면 마을 사람들한테 이거 내놔라, 저거 내놔라 해서 되게 힘들어진대.”
“그래도 우리 고을을 위해서 호랑이를 잡아주러 오는 거면 어쩔 수 없지 않나? 그것참 큰일이네. 착호군이 오기 전에 호랑이가 떠나줬으면 좋겠는데.”
백이의 말에 목금이 손뼉을 쳤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중 착호군 출신의 영규의 모습 (출처: 넷플릭스)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호랑이가 떠나면 착호군이 올 필요도 없고. 한번 그렇게 해볼까?”
“뭐야? 그런 게 될 리가 없잖아?”
“안 될 것도 없어. 옛날에 호랑이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지금도 가능할 거야.”
백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그게 누군데?”
“강감찬 장군님.”
“강감찬? 그게 누군데?”
목금이 혀를 찼다.
“우리나라에 외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다섯 분 있는데, 을지문덕은 수양제의 백만대군을 무찔렀고, 안시성 성주는 당 태종을 물리쳤고, 강감찬은 거란을 귀주에서 물리쳤지. 또 김윤후는 몽골 장군 살례탑을 쏘아죽이고, 박의는 청나라 노이합적(누르하치, 청태조)의 사위 양고리를 쏘아죽였어.”
강감찬 표준영정 (출처: 문화유산포털)
“늘 말하지만 넌 참 대단해. 그런 걸 어떻게 다 아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책 좀 보라니깐. 우리 집에서 빌려보면 나도 좋고, 너도 좋고.”
“귀찮아. 난 너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그래서 강감찬 장군님이 호랑이를 부렸다는 거야?”
목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감찬 장군은 원래 하늘의 문곡성이었는데 우리나라에 온 거래.”
“잠깐만! 문곡성은 문신의 별인데 왜 장군님이 문곡성이야?”
“오호라, 너도 그걸 아는구나. 원래 강감찬은 문신이야. 장원급제한 사람이거든.”
“장원급제! 그런데 왜 장군이야?”
“문무가 다 뛰어나서 거란군이 쳐들어왔을 때는 장군으로 활약했으니까 그렇지.”
“굉장하네. 출장입상(出將入相)이라고 나가면 장수요, 들어오면 재상이라 했는데 강감찬이 딱 그런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어쩌다 호랑이를 부리게 된 거래?”
“강감찬이 한양 판관으로 있을 때 호랑이가 엄청 많았대.”
“한양이면 임금님 계신 도성인데 거기에 호랑이가 많았다고?”
목금이 혀를 끌끌 찼다.
“저기요, 백이 낭자. 그때는 고려 시대잖아. 도성은 송도, 그러니까 개성이었지. 그때 한양은 아직 작은 고을이었나 봐. 호환이 심하다는 말을 들은 강감찬은 아전을 불러서 편지 한 통을 주고 북문 밖 골짜기를 나가서 바위에 앉은 노스님에게 전하라고 했대. 그러자 편지를 읽어본 노스님이 아전을 따라 관아로 들어왔어.”
“호랑이를 쫓아내라는데 웬 스님을 불렀대?”
“들어봐. 노스님이 들어오자 강감찬은 호통을 쳤어. ‘너는 짐승 중의 영물인데 감히 사람을 해치다니 어쩐 일이냐! 너희 무리를 데리고 이곳을 속히 떠나도록 하라!’ 그런 거야.”
“그 노스님이 무슨 재주로? 아니, 노스님이 짐승 중의 영물이라고?”
“다른 사람들도 그게 이상해서 그렇게 강감찬에게 물었어. 그러자 강감찬이 다시 노스님에게 말했어. ‘어서 네 본모습을 보여라.’ 그러자 노스님이 글쎄, 순식간에 호랑이로 변한 거야. 강감찬이 그만하라고 하자 다시 사람 모습이 되었어.”
백이가 혀를 내둘렀다. 목금은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 늙은 호랑이 한 마리가 수십 마리 호랑이를 끌고 강을 건너 사라졌다는 거지. 그 뒤에는 한양에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대.”
“그런데 옛날이야기잖아. 강감찬이 지금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호랑이를 떠나가게 할 수 있어?”
“다 방법이 있지. 강감찬은 문곡성의 화신이었다고 했잖아. 문곡성은 북두칠성 중 네 번째 별이야. 그러니까 별의 힘으로 호랑이를 부릴 수 있다는 거지.”
“그럼 문곡성을 내려오게 하는 거야? 그럴 수가 있어?”
목금이 손사래를 쳤다.
“그런 정도의 힘은 없어. 대신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같이 가볼래?”
“호랑이한테 가자고? 안 돼, 안 돼. 그건 무리야.”
“에이, 나도 호랑이한텐 안 가. 강감찬도 호랑이 앞에 간 건 아니잖아. 그냥 망허정까지만 가면 돼.”
백이는 주저하다가 결국 목금이를 따라나섰다. 한참 망허정을 향해 산길을 올라가다가 백이가 문득 생각난 듯이 목금이에게 물었다.
“이미 시간이 늦었는데, 해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지?”
“아니, 없어. 해가 져야 별이 보이잖아.”
“뭐야? 안 돼! 해지면 내려가기도 힘들단 말야.”
“괜찮아. 그럴 줄 알고 우리 불돌이도 챙겨왔다고.”
목금이 들고 가던 바구니 속에서 양수지조(陽燧之鳥) 불돌이가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밤길에 돌아갈 때는 불을 뿜어서 앞길을 밝혀줄 것이었다.
산고개에 있는 망허정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남아 있었다. 목금이는 망허정 안에 28개의 초를 원형으로 둘러놓았다. 그리고 원 안에 일곱 개의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이게 다 뭐야?”
“스물여덟 개의 초는 하늘에 있는 28 별자리를 가리키는 거야. 태양이 도는 길을 따라 스물여덟 별자리가 있거든. 그리고 원 안에 있는 동그라미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는 거야. 북두칠성은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고 기원을 올리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거든.”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백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북두칠성이라고? 아까 문곡성을 부르는 건 안 된다면서?”
“북두칠성을 부르려고 하는 건 아니야.”
그러면서 목금이 바구니에서 불돌이를 꺼냈다. 불돌이는 신이 난 듯 초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옛날 제갈공명은 칠성단을 쌓아서 동남풍을 불렀고, 북두칠성을 따라 걷는 보강답두(步罡踏斗)로 수명을 연장하고자 했었지. 내가 하려는 건 하늘을 지키는 개, 천구(天狗)를 부르는 거야.”
“천구가 뭐야?”
“항아리 같은 머리를 가지고 꼬리는 석 자에 불타는 몸을 지니고 있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개야. 사실은 별이지. 천구를 부르면 호랑이는 놀라서 이 산을 떠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때였다. 송낙을 쓰고 진회색 장삼을 걸친 노승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났다.
“나무아미타불, 낭자분들이 이 늦은 시간에 여긴 왜 있는 것이오?”
불돌이가 후다닥 바구니 속으로 뛰어들었다.
“저희는 호랑이 때문에 왔어요.”
백이가 미처 목금이 말리기도 전에 대답해 버렸다.
“오호라, 호랑이 때문에? 그 ‘보강답두 이십팔수진’은 뭔가 불러낼 생각으로 만든 것이오?”
이번에도 백이가 냉큼 대답했다.
“천구를 부를 거예요. 하늘에서 불개가 내려오면 멋지겠죠?”
노승은 석장을 정자 기둥에 기대고 걸터앉았다.
“나무 관세음보살, 그런 일을 하면 아니 되오.”
이번에는 목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안국병법』에 보면 천구가 하늘에서 내려오면 천하에 큰 병란이 일어난다고 되어 있소. 호랑이 몰아내려다 나라에 난리가 나면 그게 더 큰 일 아니겠소?”
“그게 정말이에요?”
“노승이 뭘 알겠소마는, 신라 혜공왕 때 천구 셋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천지가 진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더구려.”
“머리가 항아리 같고 꼬리가 석 자나 되는?”
“나무아미타불, 바로 그렇소. 그때 96명의 대신들이 서로 싸우는 천하대란이 벌어져서 피가 강처럼 흘렀소이다. 낭자분들이 또 그런 일을 보고 싶은 거요?”
“그건 아니지만,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호랑이들을 부린 게 별의 힘을 이용한 것 같아서...”
노승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강감찬 장군이라, 그 양반은 문곡성의 기운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었지. 그렇다고 그 별의 힘으로 호랑이를 부린 건 아니오. 그렇게 힘으로 억누르려 했다면 호랑이들도 가만있지 않고 대판 싸웠을 것 아니겠소? 호랑이가 뭐가 두려워서 강 장군의 말에 따라 조용히 떠나겠소?”
백이가 물었다.
“그럼 호랑이들은 왜 떠난 거예요?”
“호랑이는 자연의 일부지. 본래 호랑이와 인간은 서로 말할 수 없는 사이라오. 비바람이 쳐서 사람을 해친다고 해도 비바람과 서로 말할 수는 없지 않소? 호랑이도 그와 같소. 호랑이는 그저 배가 고파서 사냥을 할 뿐, 선악을 구분하지는 않는다오.”
노승의 말이 끝나자 목금이 말했다.
“그렇지만 호랑이가 사람들을 구해주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는 일도 많던데요?”
“사람 중에도 뛰어난 이가 있듯이 호랑이 중에도 뛰어난 영물이 있는 법이라오. 그런 뛰어난 것들끼리는 때로 서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는 것이라오. 강 장군도 언젠가 그런 영물 호랑이와 교분을 텄을 것이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은 단지 한 사람의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 사람의 원한은 단지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그에 동정하는 모든 사람의 원한이 될 수 있어요.”
“나무 관세음보살, 낭자의 말씀이 맞소. 그렇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거라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호랑이들은 무리를 지어 움직이지 않소. 결국 그래서 호랑이는 천하를 지배할 수 없는 것이라오.”
“하지만 영물인 호랑이는 무리를 이끌 수 있는 거겠죠? 강감찬 장군의 말을 들어준 호랑이처럼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긴 하오.”
목금은 백이를 툭툭 치더니 일어나 노승에게 큰절을 올렸다. 백이도 얼떨결에 같이 절을 올렸다.
“그렇다면 우리 동네의 호랑이들은 스님께서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릴게요.”
노승이 다시 큰소리로 웃었다.
“내가 호랑이라는 건 대체 어찌 알았소?”
목금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불돌이가 놀라서 숨는 걸 보고 알았어요.”
“선재로다. 하지만 연기(緣起)의 법은 홀로 있지 않으니 무엇을 이 몸에게 해줄 수 있으리오?”
목금이 씩 웃음을 머금었다.
“아까 『안국병법』을 말씀하셨는데, 그 책은 신라 때 만들어진 거죠. 실제로 보신 적은 없으실 것 같은데요?”
노승의 얼굴에 처음 흥미로운 기색이 떠올랐다.
“설마 그 책을?”
“우리 집엔 없는 책이 없지요.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그 책을 선물해드릴게요.”
노승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망허산에 호랑이의 자취가 사라졌다. 물론 착호군이 올 일도 없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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