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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와 목금

돌아온 여우 귀신

망허촌 사또 한익범은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망허산에서 일어난 괴변 때문이었다. 고개를 넘던 소금 장수가 끔찍한 시신을 발견해서 관아에 신고를 한 것이다. 노인네 시신이었는데 배를 갈라서 간을 꺼내 갔다.

명백한 살변이었다. 사람의 생간을 가져간 것으로 보아 창질을 앓고 있는 집 자식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우선은 기찰 포교들을 내보내 마을에서 중병을 앓고 있는 집이 있는지 파악하게 했는데, 소소하게 아픈 집들은 있었지만 중병을 앓는 집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없어진 노인도 없었다. 죽은 노인이 어디 사람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드라마 《별순검》의 살해된 객주〉 (출처: MBC 에브리원)


일단 살변이니 감영에 보고를 올리고 시신은 관아로 옮겨왔다. 날이 더워 시신이 금방 부패할 수 있으므로 얼음을 구해오게 해서 시신을 보존하게 했다. 이것만 해도 비용이 상당히 들었다.

끔찍한 살변이 일어났으니 마을도 공포에 휩싸였다. 평소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기 시작했고, 또 그런 욕을 참고 들을 사람들이 아니니 냅다 주먹을 휘둘러 사람이 다치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당장 어떻게 할 일이 없었다. 감영에서 검률과 오작인이 와야 검시가 가능하니 그저 하루빨리 와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작인이 와서 검시 결과를 보고했는데, 그때부터 한 사또의 두통도 시작되었다.

“에잇, 안 되겠다.”

한 사또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저녁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더는 견딜 수 없어서 관아를 나온 한 사또는 망허산 쪽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밤에 산을 올라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망허산 입구 쪽에 있는 목금 낭자의 세책방을 찾아가려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직 집에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한 사또가 사립문 밖에서 ‘이리 오너라’라고 외쳤다. 안방 문이 스르르 열리고 호롱불을 든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금이었다.

“세책방 문은 닫혔습니다. 내일 밝을 때 오시지요.”

“책을 빌리러 온 게 아니다.”

“어머나! 사또 나리 납시셨습니까?”

“들어가도 되겠느냐?”

“이리 오르시지요.”

목금이 대청마루로 사또를 올라오게 했다. 남녀가 유별하니 방으로 모실 수는 없었다.

“누추한 곳에 오셨는데 마땅히 대접할 것이 없어서 부끄럽습니다.”

“괜찮다. 갑자기 찾아온 내가 잘못이지. 그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하문하십시오.”

한 사또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목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엊그제 망허산에서 살변이 일어난 것을 알고 있느냐?”

“고을 사람치고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오늘 낮에 오작인이 와서 검시를 했느니라. 그런데…”

“사람 짓이 아니라고 했습니까?”

한 사또가 담대한 무관 출신이 아니었다면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오작인은 시신의 배가 날카로운 칼로 갈라진 것 같았지만 그 양옆으로도 상처가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맹수가 저지른 일처럼 보인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맹수라면 달랑 간만을 끊어가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점이 매우 이상하다는 것도 함께 적어 놓았다.


〈『신주무원록』〉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짐작 가는 일이 있어서 한번 말씀드려본 것입니다.”

“짐작 가는 일이 무엇이냐?”

“지난달에 한 무리의 도깨비가 망허산에 몰려온 바 있습니다. 하마터면 큰 사변이 날 뻔했는데 다행히 도깨비들이 물러나서 별일 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도깨비들이 갑자기 몰려온 이유가…”

“이유가?”

“여우 귀신이 선동한 탓이었습니다.”

한 사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여우 귀신은 한 사또가 망허촌에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윤 초시네 폐가에서 만났던 요괴였다.

“그때 도망치지 않았더냐? 그 여우 귀신이 다시 돌아온 것이냐?”

“그런 모양입니다. 그보다…”

목금이 가만 생각에 잠겼다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 시신은 어디 있습니까? 아직 매장하거나 한 건 아니죠?”

“당연하지. 첫 검시를 마쳤으니 아직 시신을 매장할 수 없다. 감영에서 2차 검시를 결정하기 전에는 시신을 보관해야 한다. 관아에 따로 시신을 둘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서 옥에 넣어두라고 했다.”

“옥문은 잠그셨나요?”

“그, 그건…”

죽은 시신이 살아서 탈옥할 것도 아니니 굳이 잠그지 않았을 것이다. 잠그라는 명도 내리지 않았다.

“아, 빨리 가봐야겠습니다.”

한 사또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 목금이 일어나며 바다 신물인 조개와 소라고둥을 챙겼다. 한 사또는 처자의 집에 온다고 칼을 놓고 나온 것을 후회했다.

“낭자 생각엔 이번에도 여우 귀신이…”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구미호〉 (출처: KBS2)


목금이 딱 잘라서 말했다.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그럼 백이 낭자도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백이는 맘이 약해서 안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저랑 가시죠.”

한 사또는 목금을 따라 나오다 마당을 둘러보고는 절굿공이를 주워들었다.

“이것 좀 빌리겠네.”

칼은 없으니 그나마 튼실해 보이는 절굿공이라도 손에 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목금은 아무 말 없이 앞장서서 관아를 향했다.

두 사람이 발을 재게 놀려 관아의 구석에 있는 형옥에 도착했는데, 감옥 문이 활짝 열려있고 시신은 온데간데없었다. 감옥 안은 시체의 부패를 막으려고 부어놓은 얼음이 녹아서 물이 흥건했다.

한 사또가 머리를 짚었다. 간이 없어진 시체를 보았는데 여우 귀신의 장난인 것을 생각지 못하고 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탓이니, 분명히 자신의 실수였다.

목금이 감옥 안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배가 갈라지고 간이 없어졌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상태로 움직이면 내장이 쏟아졌을 텐데요?”

한 사또가 미간을 찌푸렸다. 목금 낭자는 때로 말을 막 하는 것 같았다.

“오작인이 검시를 마치고 배를 꿰매 놓았네. 배가 열려있으면 벌레들이 꼬이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해서.”

“오작인이 쓴 검시 보고서는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내 방에 있지. 가져다주겠다.”

한 사또는 방에 가면, 간 김에 칼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가시죠. 흩어지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게 한 사또에게도 안심이 되는 일이었다. 한 사또는 방에 들어가 칼을 챙겨서 허리에 매달고 검시 보고서를 들고나왔다. 목금이 달빛에 비춰가며 검시 보고서를 읽었다.

“역시 그랬군요. 사또 나리는 이 부분을 보셨습니까?”

“어떤 부분을 말하는 거냐?”

“시신이 금방 살해된 것 같지 않고 이미 죽은 지 보름여는 된 듯하다는 내용 말입니다.”

“여름철이라 시신이 빨리 부패하기 때문에 사망 시점을 정확히 알기 어려울 수도 있고, 시신이 산 고갯마루에 있었기 때문에 발견이 늦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목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 고개는 하루에도 서너 명은 꼭 지나다니는 길목입니다. 시신이 있었는데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는 건…”

한 사또는 갑자기 번갯불이 머리에 치는 것 같았다. 즉시 관헌 대청에 뛰어올라 설렁줄을 당겨 통인을 불렀다.

“지금 즉시 포교, 포졸을 모두 소집해라. 긴급 사항이다.”

난데없이 한밤중에 소집된 병사들은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사또가 대청마루에 올라 호령했다.

“비상 상황이다. 근래 초상이 난 집을 알고 있느냐?”

비장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훈장 댁 어르신이 한 보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곳이구나. 누가 그 집을 아느냐? 앞장서라. 모두 출동한다.”

사또는 급히 대청마루를 내려가다가 목금을 보고 말했다.

“낭자는 여기 있도록 하라.”

“신경쓰지 마십시오. 저는 뒤에서 설렁설렁 따라가겠습니다.”

사또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병사들은 여전히 무슨 일인지 모른 채 병장기를 손에 들고 훈장 양진흥의 집으로 출발했다.

“이거 불길한데. 대체 뭔 일이래?”

병사들의 행진으로 잠이 들었던 망허촌 사람들도 깨어나 불안한 기분으로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한 사또 역시 그런 불안감을 모를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한시가 바쁜 상황이었다.

“저 집입니다.”

비장이 멈춰서더니 한 집을 가리켰다. 방에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한 사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리 오너라.”

그러자 불 켜진 방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려주세요!”

한 사또의 안색이 변했다.

“저 방에 괴한이 있으니 바로 진압하도록 하라!”

비장이 칼을 뽑아 들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부하 병졸 둘이 따라붙었다. 문을 열어젖히자 안에서 시커먼 사람 모양이 휙 뛰쳐나왔다. 그 서슬에 비장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졌다. 한 사또가 들고 있던 칼로 뛰쳐나온 사람을 내리쳤다.

괴한은 한 사또의 칼을 한 손으로 받아냈다. 칼이 손목까지 내리박혔지만 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어서 이 괴물을 잡아라!”

한 사또의 외침에 병졸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괴한을 쓰러뜨리고 오라로 몸을 묶었다.

“크아아아!”

일단 사또의 명이라 정신없이 달려들기는 했는데, 괴한이 괴성을 내지르자 병졸들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괴한이 버르적거리며 일어나려 했다.


〈영화 《킹덤 2》, 좀비가 된 안현대감의 모습〉 (출처: Netflix)


“저, 저거, 낮에 검시했던 노인이잖아?”

병졸 하나가 놀라서 외쳤다.

“어, 어, 정말이네.”

심약한 병졸 중에는 너무 놀라 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방에서 비틀거리며 양 훈장이 나왔다.

“아, 아버님이 어찌…”

한 사또가 비장에게 양 훈장을 다시 방으로 들이라고 명했다. 양 훈장은 버둥대며 저항했다.

“제 아버님입니다. 죽음에서 살아나 아직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인데 제가 모시겠습니다.”

한 사또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건 훈장의 부친이 아닙니다. 여우 귀신이 무덤을 파헤치고 그 몸에 들어가 조정하는 것입니다.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여, 여우 귀신이라고요?”

“아마 양 훈장의 간을 빼먹으려고 했을 겁니다.”

“그, 그래서 제 옷을 들춘 거였…”

양 훈장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영화 《킹덤 2》, 역병환자가 좀비가 되어 사람을 먹는 장면〉 (출처: Netflix)


“이놈! 여우 귀신아, 어찌 다시 돌아왔느냐?”

그러자 노인이 고개를 들고 한 사또를 노려보며 말했다.

“또 네 놈이 날 방해하는구나! 나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야!”

한 사또는 그 순간 칼을 휘둘렀다. 단칼에 목이 떨어져 나갔다. 역시 죽은 지 오래되어 피는 흐르지 않았다.

노인의 미간에서 한 줄기 빛이 흘러나오더니 재빨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번에도 여우 귀신을 놓치고 만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다른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한 사또는 목금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인사를 올렸다. 목금도 보일 듯 말 듯하게 웃음을 내비쳤다.

한 사또는 고심한 끝에 감영에 올리는 보고서를 간신히 써냈다. 발견된 시신은 고을 훈장의 부친으로 사람의 간이 창질에 좋다는 헛소문을 믿은 누군가의 소행으로 간이 사라진 채 발견되었다는 내용으로 적고 시신은 다시 매장했다는 내용이었다. 병졸들에게는 시체가 살아서 움직였다느니 하는 말은 입 밖에 내지 말라고 단속했다. 하지만 더운 여름날 사람들이 몸을 식히려 모여 앉으면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때마다 진짜네, 거짓부렁이네 하면서 오래도록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시신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 간단하게 묶는 수시 모습〉
(출처: 한국국학진흥원-조선의 가례)





집필자 소개

이문영
이문영
역사, 추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문서 쪽으로도 출간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의 소설게시판지기로도 활동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을 겸하고 있다. 역사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어린이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역사소설 『정생, 꿈 밖은 위험해』, 어린이 인문서 『그게 정말이야?』, 역사인문서 『유사역사학 비판』을 비롯해서 MMORPG 『무혼』 등 여러 편의 게임 시나리오도 만든 바 있다.
“살인죄로 형문 받는 거창수령”

노상추, 노상추일기, 1825년 2월 9일~3월 26일

거창(居昌) 수령 이재연(李載延)이 살인을 저질러 선산부에 구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노상추는 이재연에게 위문 편지를 보냈다. 심지어 칼[枷]까지 쓰고 갇혀 있다고 하는데 법전의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노상추는 진심으로 이재연을 동정하는 마음이 들었다. 최소한의 체면은 지켜 주어야 할 것인데. 이재연은 형문까지 당했다고 한다.

이재연이 저지른 잘못은 다음과 같았다. 지난달인 2월에 이웃마을의 상놈 최가가 그의 며느리를 구박해서 연못에 빠져 죽게 만들었다. 최가 놈은 며느리의 시체를 이재연의 집에서 바라다 보이는 가까운 곳에 묻었다. 이를 알게 된 이재연은 최가 놈을 잡아들여 때린 다음에 마당 근처에 있는 연못에 집어넣었다. 최가 놈이 덜덜 떠는 모습을 본 이재연은 마음이 누그러져서 최가 놈을 물 밖으로 꺼내 따뜻한 곳에 두게 하였다. 그런데 최가 놈의 동생이 형에게 밥도 주지 않고 치료하지도 않아 그대로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이 이재연에게 있다고 고발하여 이재연이 잡혀 들어가게 된 것이다. 과연 이재연은 어떤 처분을 받게 될 것인지. 노상추는 염탐을 위주로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는 관찰사가 이재연에게 유리한 처분을 해 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살해하여 잡아먹은 도적, 이웃사람으로 밝혀지다”

김령, 계암일록, 1608년 11월 18일

1608년 11월 18일, 들으니, 선산(善山)에 89살 먹은 노인이 있었다고 한다.

난리 뒤에 굶주림이 심한 때, 아들이 그의 아비를 따라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도적을 만났다. 도적이 돌연 자기의 아비를 가로채어 죽여 잡아먹었다. 그는 기겁해서 달아났다. 그 도적의 얼굴을 식별해 보니 바로 이웃에 사는 사람이었다.

아들은 천병(명나라 군대)에 투신하여 걸식하며 시졸이 되어 요동으로 따라 들어갔다가, 다시 당장(명나라 장수)을 따라 건주위로 가서 노추(누르하치)를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고 한다.

옛날 살던 집에 이르러 원수가 아직 아무 탈 없이 살고 있는 것을 알고는 바로 인동 수령에게 가서 그 사유를 알렸다. 원수는 바야흐로 좌수(座首)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를 잡아서 심문하니 정말 죄를 자백했다.

이 일은 아주 기이한 일이라 기록할 만하다.

“홧김에 남의 집을 때려 부순 가짜 유생”

노상추, 노상추일기, 1826년 3월 21일~3월 27일

암자에 갔다가 집에 온 노상추는 집 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회당(永懷堂)의 창후 두 짝이 산산 조각나서 구멍으로 바람이 숭숭 드나들고 있었다. 노상추가 노해서 감히 어떤 놈이 이런 짓을 저질렀냐고 집안사람들에게 묻자, 울진(蔚珍)에서 본면(本面) 송천리(松川里)에 들어와 살고 있는 신(申)가 놈이 이래 놓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노상추의 집 남자종 복만(卜萬)과 술을 마시다가 서로 다투기 시작했는데, 복만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하면서 영회당에 와서 다짜고짜 창을 때려 부수었다는 것이다.

노상추는 이미 신가 놈이 양반으로 모칭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괘씸한지고. 노상추는 남자종의 이름으로 관아에 소장을 올렸다. 관아에서는 소장에 언급된 복만과 신가 놈을 잡아올 것을 명했다. 노상추는 집안에 화를 끌고 들어온 복만을 잡아 넘겼다. 신가 놈도 곧 잡혀온 모양이었다. 노상추는 분이 풀리지 않아서 손자 명숙(明璹)의 이름으로 또다시 소장을 올리려고 했으나 수령이 만류하였다. 수령은 노상추의 화를 풀어주려고 다독이면서 장방(長房)에 신가 놈을 구속하고, 복만은 태(笞) 10대를 때리고 석방하였다.

하지만 만족하지 못한 노상추는 다시금 명숙의 이름으로 소장을 올렸다. 하지만 수령은 뇌자(牢子) 사령이 말하길 신가 놈이 설사병이 심하다고 했다면서 그를 풀어주고 대신 신가 놈의 아들을 잡아두었다. 이는 분명 신가 놈이 뇌자 사령과 서로 짠 것이다. 계속되는 노상추의 소장에 수령은 “이번에 엄히 처벌할 것임” 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노상추는 상놈이 유학으로 모칭한 것 역시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수령에게 신신당부했다. 이에 수령은 ‘신가 놈을 관아에서 좌부(座夫)로 등급을 낮추어 정해서 포(布)를 납부하게 하고 그의 아들은 통인(通印)의 보인으로 채워 정할 것’이라 처분하였다.

후련해진 노상추는 목수를 불러와 부서진 창호를 수리하였다. 하지만 역시 부서진 창호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나서 “미친놈이 부순 창을 어서 수리해라.” 라고 목수에게 거칠게 내뱉었다.

“관고에서 은잔을 훔친 윤효빙은 어떻게 탈옥하였을까”

황사우, 재영남일기, 1519년 6월 14일~1519년 9월 22일

1519년 6월 14일, 황사우가 성주에 도착하니 겸직어사 남세준(南世準)이 성주에 머물며 감사의 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세준은 강중진(康仲珍)이 성주목사로 있을 때 개인 사정으로 사람을 죽인사건, 윤효빙(尹孝聘)이 안음현감으로 있을 때 부정을 저지른 사건, 고령에 사는 최씨가 몰래 저지른 간악한 사건 등을 추고하기 위해 내려와 있었다.

6월 21일, 안음현에 도착하니 안음현감 안우가 왕명을 맞이하였다. 훈도(訓導)는 전 현감 윤효빙의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 윤효빙이 은잔을 훔쳤는데 이웃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떠벌리자 되 갖다 놓은 사실이 적발되어 수감되었던 것이다.

9월 6일, 의령현에 머물고 있을 때 윤효빙이 감옥에서 도망쳤다는 기별을 듣게 된다.

9월 9일, 함안군에 머물고 있을 때 윤효빙이 탈옥했다는 첩정(牒呈)이 왔기에 즉시 찾아서 체포하라고 명령하였다.

9월 16일, 철성. 황사우는 윤효빙이 전에 안음현감으로 있으면서 부정한 재물을 축적해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떼거리를 이루어 50여 명이 진주 감옥을 습격해서 도주하였다는 윤효빙 탈옥사건의 대강을 알게 된다.

9월 21일, 진산에 머물고 있을 때 어사 남세준이 감사의 방의로 갔다. 진주목사 신영홍(申永泓)이 윤효빙이 탈옥하여 도망간 사건 때문에 조정이 놀라고 동요하여 의금부(義禁府) 나장(羅將)을 보내 잡아 오라 하였기 때문에 함께 들어와서 만나게 되었다.

9월 22일, 어사 남세준이 아침 일찍 출발해서 황사우는 미처 뵙지 못하였다. 윤효빙의 탈옥 사건이 놀라우니 감사가 찾아서 체포하라는 유지(有旨)가 왔다. 그래서 즉시 사근도 찰방과 단성현감에게 이 일을 맡겨서 의심 가는 곳을 찾아 체포하도록 하였다. 이후 윤효빙이 체포되었는지에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윤효빙 탈옥 사건의 전말은 어사 남세준이 죽고 난후, 그의 죽음을 논하는 사신의 글에서 밝혀진다. 윤효빙이 갇혀있던 진주감옥의 진주목사는 신영홍이었는데, 그는 효빙과 교분이 있어 은밀히 남세준과 동의하여 일부러 효빙에게 옥을 넘어 도망하도록 한 것이었다.

남세준이 세상을 떠난 1533년 1월 16일 실록의 기록이다. “이조 참판 남세준(南世準)이 졸(卒)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안음 현감(安陰縣監) 윤효빙(尹孝聘)이 금전을 훔쳐 쓴 일이 발각되어 진주(晉州)의 옥에 갇혔다. 세준이 경차관이 되어 사명(使命)을 받들고 가서 추문하여 정상이 드러났다. 진주목사 신영홍(申永泓)은 효빙과 교분이 있어 은밀히 세준과 동의(同議)하여 일부러 효빙에게 옥을 넘어 도망하도록 하였다. 세준은 겉으로는 모르는 척하고 영홍을 파출하자고 아뢰었다. 그리하여 효빙은 범장(犯贓, 뇌물을 받거나 공금을 횡령하는 것)의 처벌을 모면하였고, 영홍은 사사로이 하찮은 신의를 세웠으며, 세준은 조정을 속이고 봉명 사신의 체통을 크게 실추시켜서 왕법(王法)이 행하여지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사론(士論)이 비난하였다.”

“홍수 중에 작업에 동원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

노상추, 노상추일기, 1774년 10월 15일

올해는 비가 많이 왔다. 선산부(善山府)에서는 낙동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서쪽에 새로 보(潽)를 쌓아 놓았었는데, 7월에 내린 큰비 때문에 이 보가 무너졌다. 이에 관아에서는 동부(東部)와 서부(西部) 사람들을 보를 새로 쌓는 역(役)에 동원하였다. 그런데 아직 보를 새로 쌓기에는 비로 불어난 강물이 조금도 줄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불어난 물이 좀 빠진 뒤에 작업하자고 요청하였지만, 보를 쌓는 일을 감독하기 위해 나온 좌수, 이방, 군관, 장교들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작업을 독촉하기만 했다. 마침 선산부사도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좌수 이하 사령들은 더욱 안하무인으로 굴었다.

하지만 불어난 물이 거세게 휘몰아치는 강으로 누구도 선뜻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갈 것이 뻔했다. 모인 장정들이 모두 뒷걸음질을 치자 좌수는 지금 물에 들어가 작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곤장을 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곤장에 맞아 죽느냐, 물에 빠져 죽느냐였다. 공권력 앞에 버틸 수 없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거센 강물로 들어갔다. 불어난 물은 깊었고, 그 기세는 거셌다. 그날 작업자 중 네 사람이 수마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예견된 결과였다.

이날 목숨을 잃은 네 사람의 가족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었다. 호소를 들어줄 선산부사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뒤로부터 3개월 뒤인 10월, 새로운 선산부사가 부임하였다. 그제야 유족들은 7월에 있었던 참사를 일으킨 당사자들을 고발하여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초례날 호랑이에게 물려간 신랑”

노상추, 노상추일기, 1815년 12월 28일~1816년 1월 8일

어제 김양채가 노상추를 보러 와서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그의 표정이 내내 편안하지 않기에 무슨 일이 있는가 싶었는데, 나중에 듣자 하니 그의 막내아들이 주륵동에서 초례를 치르고 머무르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갔었다고 한다.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놀랄 만한 일이다. 노상추는 곧바로 남자 종을 보내 김양채를 위문하였는데, 돌아온 남자 종의 말로는 호랑이에게 물린 사람이 살아날 길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불쌍하기 그지없다.

다음날, 결국 부고가 전해졌다. 호랑이에게 물린 아이가 기어코 죽었다고 한다. 관아에서는 사람을 문 호랑이를 잡기 위해 인근의 포수들을 모두 모았다. 포수들은 곧 법화동에서 호랑이를 잡아 왔다. 잡힌 호랑이가 바로 사람을 문 호랑이라고 한다. 이렇게라도 원수를 갚고 고을을 안정시켰다고는 하나 죽은 아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김양채의 슬픔이 덜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물려가다”

오희문, 쇄미록, 1597년 3월 7일

1597년 3월 7일, 오늘 오희문은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 어젯밤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뒷산 인가에 들어와서 자는 사람을 잡아갔다고 한다. 사람을 물어 가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차마 빼앗을 수가 없었는데, 아침에 찾아가보니 사람의 반을 먹어버렸다고 한다. 참으로 분통한 노릇이었다.

호랑이가 마을 사람을 해친 것은 비단 오늘 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달 26일에는 관아에 소속된 관비가 범에게 물려갔다고 한다. 관비는 범에게 물려갈 때 살려달라고 사람들을 애타게 불렀는데, 사람들이 두려워서 나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호랑이는 관비를 물고 달아날 때 관아 뒤를 지나갔다고 하던데,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사람이 호랑이에게 물려 가는데도 두려워서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고약한 인심이라 할 만 하였다.

요사이 호랑이들이 많이 돌아다녀서, 혹은 대문을 부수고 울타리를 헤치고는 인가로 들어온다고 하니 몹시 걱정이었다. 악독한 맹수가 성하게 다니면서 사람을 상하게 하는데도, 이것을 잡아 없애지 못하고 사람마다 두려움에 질려서 해가 넘어가자마자 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를 않는 상황이었다. 오희문은 또 한 가지 걱정거리가 늘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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