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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같이 살아간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여름의 느낌이 유독 빨리 오는 2026년 5월입니다. 5월에는 24절기 중 8번째 절기에 해당하는 소만(小滿)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소만은 여름의 시작과 식물이 본격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5월은 제법 바쁜 시기인 것 같습니다.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의 기념일이 많습니다. 여기에 더해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서둘러 처리해야 되는 일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더욱 급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어린이와 부모님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챙기는 기회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과 존경을 표현할 때에는 모두 함께 모여 공감대를 만들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개인적으로 표현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 모여 함께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소만은 농사철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시기입니다. 농사가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던 시절 모내기와 김매기는 무엇보다 우선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작업들은 가족 몇 명이서 모두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함께 참여해 진행되었습니다. 혼자의 힘 또는 소수의 힘으로 처리하기 어려웠던 일들은 동네 사람들의 도움과 협조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농사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도움과 협조는 모든 가정에 해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모두 함께 같이 살아가면서 농사를 짓고 추억을 남기며 공동체를 유지했습니다.

이광우 박사는 조선시대 농사에서 소만 전후로 이루어졌던 모내기의 과정과 사람들이 가졌던 기대와 걱정들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모내기는 1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과정에서 많은 기대와 걱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보릿고개를 극복해야만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은 많은 고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문제들은 ‘농경이 중심이 된 공동체의 운영 원리’를 통해 극복되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함께함의 지혜’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서미숙 작가는 짧은 수필 ‘소만 무렵’을 통해 보릿고개의 고단함을 함께 넘어섰던 시절의 따스한 풍경을 전해줍니다. 작가는 자연에서 군것질거리를 찾던 아이들의 순수한 추억과 더불어, 장리쌀을 나누고 품앗이로 일손을 보태던 안동 사람들의 묵직한 연대를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씨앗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내일을 준비했던 농부들의 마음은 ‘함께함’이 가진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부족함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삶을 채워 나갔던 당시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줍니다. 작가의 섬세한 시선을 따라가며, 이웃과 손을 맞잡아 결실을 일구어낸 선조들의 고귀한 지혜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서은경 작가는 시툰 ‘오리 망아지 토끼’에서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오리, 망아지, 토끼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표현합니다. 잡아보고 싶지만, 하늘 멀리 날아가는 오리와 타보고 싶지만, 탈 수 없는 망아지,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잽싸게 도망가는 토끼에 대한 어린이의 시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졌던 동물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이 떠오르는 에피소드였습니다. 백석 작가의 시는 웹툰 내용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여줍니다.

이수진 작가는 ‘선인의 이야기’ 「나, 그리고 우리」에서 정동극장 연희극 <광대>를 소개합니다. 작품에서 배우들은 개별적 기교나 움직임의 나열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서로의 호흡과 리듬에 의존하는 협력을 통해 공연을 진행합니다. 무대 위의 광대들은 모두 개별적 동작과 리듬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생과 협력을 통해 관객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공연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문영 작가는 소설 ‘백이와 목금’ 「은혜 갚을 뻔한 불돌이」에서 백이와 목금이 착한 일을 하려다가 위기에 빠지는 상황을 이야기해 줍니다. 불돌이와 초록이를 비롯해 여러 영물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입니다. 백이와 목금은 어떤 착한 일을 하다가 위험에 빠지게 될까요? 주인공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흥미로운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류기수 연구원은 ‘스토리테마파크를 쓰다’ 「함께 채워가는 삶」에서 조선시대 동안 소만을 전후로 했던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스토리테마파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료를 통해 소개해 주었습니다. 소만은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하는 동시에 보리를 베는 일도 함께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가장 바쁜 시기였습니다. 농사일로 바쁘고 정신없었던 이 시기를 조선시대 농민들은 개인의 힘이 아니라 서로의 협력을 통해 이겨낼 수 있었다는 점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사회는 개인 혼자의 힘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나 문화콘텐츠가 예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증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라 생각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의 구조 속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격리되어 홀로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일단 개인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소통과 협력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의 달 5월과 소만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서로를 도우며 모두 다 같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소개

이규철
이규철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에서 조선전기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에서 역사콘텐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사학과에서 근무 중이다. 대표 저서와 논문으로는 『정벌과 사대 – 15세기 조선의 대외정벌과 대명의식』, 「연산군 대 대외정벌 추진 과정을 통해서 본 외교 역량의 약화」, 「서울史의 경계 확장과 역사적 소재의 활용 - 단종·연산군을 중심으로 -」, 「1419년 대마도 정벌 전후 조선과 명-일본의 표면적 신뢰와 내면적 불신」 등이 있다. 조선전기 국제관계의 변화, 역사콘텐츠 활용 및 역사학의 저변 확대 방안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리타작 하는 계절”

이우석, 하은일록(霞隱日錄),
1902년 5월 29일 ~ 1902년 6월 2일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음력 5월 말은 보리타작을 시행하는 계절이다. 보리타작은 모내기가 끝날 무렵 시작되어 장맛비가 오기 전에 타작을 마쳐야 한다. 이우석의 집에서도 타작을 담당할 사람 3명을 고용하여 타작을 했다.

보리를 수확하게 되면 보릿단을 묶어서 당일이나 다음날로 되도록 빨리 보리타작을 해야 한다. 보리가 많지 않을 때에는 집 마당에서 집안 식구끼리 타작을 해도 괜찮지만, 양이 일정 정도 이상 많을 때에는 고용인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우석의 집도 그런 경우였다. 집 마당에서 보리 타작을 하기에는 보리 양이 많았기 때문에 보리를 벤 밭에 임시로 마당을 만들어 타작을 해야 했다. 이곳에서 일꾼들은 묶어둔 보릿단을 돌에 내리쳐서 보리 낟알을 털어야 했다. 새끼손가락 정도의 굵기로 된 밧줄로 보릿단을 감아 묶은 이 보릿단을 어깨 너머로 들어올려 내리치는 것이다. 이렇게 묶인 보릿단을 한 바퀴 돌려가면서 낟알을 털어낸 다음, 보릿단을 풀어 바닥에 널어 놓고 도리깨로 두들겨서 보릿단 속에 묻힌 보리 이삭까지 모조리 털어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도리깨질을 하면서 타작하는 일인데, 너무나 고된 작업이기 때문에 ‘옹헤야’ 같은 노동요가 보리타작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보리타작을 하노라면 보릿단이 얼굴을 찌르기도 하는 데다 한창 날씨가 더울 때 이루어지는 작업이어서 고되기 이루 말할 데 없다.

“양봉을 시도하다”

오희문, 쇄미록(𤨏尾錄),
1598년 5월 7일

1598년 5월 7일, 오희문은 올해 양봉을 해 보기로 하였다. 강원도에서는 벌이 많기도 하였고, 식구들에게 새로운 먹거리도 마련할 겸, 처음으로 양봉을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리하여 얼마전 지인에게 몇 개의 벌통을 받았는데, 가져올 때 잘못하여 벌들이 대부분 죽어버린 일이 있었다.

어제는 신수함에게서 벌통을 받았는데, 이 벌통의 새끼벌들을 오희문의 벌통으로 옮길 셈이었다. 신수함의 벌통에 연기를 쏘이자 새끼벌들이 나왔다. 이후 벌통을 동쪽 울타리 밖의 배나무에 매달고 종 수이로 하여금 벌들을 벌통으로 받으려 하였는데, 이 벌들이 도로 흩어져서는 뒷산 한마장이나 되는 숲 나무 밑에 모였다. 그리하여 간신히 이 벌들을 통에 담았다가 희철의 방 밖에다가 앉혀두었다. 거의 벌들을 날려 버릴 뻔하다가 도로 잡았으니 기쁜 일이었다. 종 수이는 처음 해보는 양봉이라 벌을 치는 법도 잘 모르고, 미끄러운 그릇에 벌들을 담으려 했는데 그것이 실수였던 것이다. 들어보니 미끄러운 그릇에 받게 되면 얼마 안가 벌들이 다 도망한다고 한다.

“관청에서 모내기를 ‘정(井)’자로 하도록 지시하다”

남붕, 해주일록(海洲日錄),
1926년 5월 8일 ~ 1926년 5월 11일

1926년 5월 11일 이날은 남붕도 모내기를 하는 날이었는데, 먼저 아침 일찍 옥금(玉今)으로 가서 소작인과 일꾼들에게 논 5두락에 모내기를 시작하게 했다. 그런데 봇물이 오지 않아 일손을 멈추고 나머지 일을 뒤로 미루었다. 봉후(峰後), 유전(田畓), 강단(江端)의 논 7두락에도 모내기를 하였는데, 일꾼 20여 명을 썼다.

이번 모내기에 예전과 달리 이렇게 많은 일꾼을 쓰게 된 것은 모두 면사무소 사람이 채근해서였다. 엊그제 마을 사람들이 면사무소를 찾아갔다 온 후로 예전 방식으로 모내기를 하자 면사무소에서 사람이 나와 아직 모내기하지 않은 집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반드시 ‘정’자로 모내기를 해야 한다고 성화를 하고 다녔다. 남붕 또한 면사무소 사람의 방문을 받고 마지못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결국, 면사무소 사람이 채근하는 바람에 한 줄씩 모를 심었으므로 일꾼은 전보다 더 들었고, 앞으로 곡식 소출도 이익이 없고 감소될 것이 분명하니 한탄이 저절로 나왔다.

“모내기를 어렵게 하는 가뭄”

이우석, 하은일록(霞隱日錄),
1897년 5월 9일 ~ 1897년 6월 11일

요즘은 모내기철이다. 이우석(李愚錫)은 최근 여러 논에서 모내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위네 집에서도 월초에 모내기를 한다고 소식을 들었는데 이우석은 몸이 아파서 가지 못한 적이 있다. 모내기를 하려면 물이 많이 필요하지만 평창에는 저수지가 그렇게 많지 않아 비가 충분히 내리기를 바라는 수밖에 방도가 없다. 그런데 걱정스럽게도 요새는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고, 잇따라 맑은 날씨만 계속되고 있다.

5월 22일은 하지였는데, 가뭄 든 논이 많아 근처 논에서 태반이나 모내기하지 못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모내기하는 시점에 물이 부족해서 모내기에 실패하면 아무것도 수확할 수 없게 된다. 이우석은 올해 농사가 매우 걱정스러웠다. 지금 시점까지 이 정도로 모내기하지 못한 상황이어서는 곤란하다. 30일이 되어서 들린 소식인즉, 횡성에 있는 갑천 같은 곳에서는 예년과 같이 모내기가 시작됐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태반이나 모내기를 시작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장마 후 들판에 남은 곡식들을 살피다”

노상추,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1765년 5월 3일 ~ 1765년 5월 16일

노상추의 집안에서 경작하고 있는 논밭은 낙동강 주변에 펼쳐져 있었다. 가장 높은 소출을 내는 논은 포(浦) 인근의 밭이었다. 낙동강이 실어온 퇴적물이 좋은 영양분이 되어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컸다. 비가 많이 내려 낙동강이 범람하면 논밭에 심어놓은 곡식이 모두 쓸려 내려갔다. 여름이 되자 올해도 여지없이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났다.

비가 많이 내리기 전에 노상추의 집안에서는 보리타작을 미리 해두었다. 홍수가 나면 보리마저 쓸려 내려가기 때문에 제때 수확해서 양곡을 저장해 둬야 했다. 이번 하짓날에 타작한 보리는 이전에 미리 거둬 둔 것이었고, 아직 밭에는 채 수확하지 않은 보리들이 있었다. 노상추는 내리는 비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장대비가 그치자마자 밭으로 나가 보았다. 다행히 들에 보리가 남아 있었다.

남은 보리를 갈무리하자 또다시 며칠 동안 굵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번에야말로 강물이 넘쳐 포 인근의 논밭이 잠기게 될 것 같았다. 보리를 거둬들인 후 포의 논밭에 남겨놓은 것은 밀뿐이었다. 과연 포 인근의 논밭은 모두 잠겨버렸다. 하지만 밀은 기특하게도 물에 둥둥 뜬 채 떠내려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덕분에 밀도 보리와 마찬가지로 거둬들여 타작할 수 있었다. 장마철은 매일같이 하늘을 보며 일희일비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어머니 생신에 친지들이 곡식을 보내어 오다”

최흥원, 역중일기(曆中日記),
1746년 12월 14일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서 인근의 친족들도 최흥원의 집을 찾았다. 종지 마을과 지묘 마을에 사는 친지들이 모두 찾아와서 어머니께 축수를 올렸다. 그리곤 곡식을 수십 섬이나 최흥원의 집으로 보내어 온 것이 아닌가. 까닭을 들어보니 얼마 전 최흥원의 집 창고에서 불이나 살림살이가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집안사람들끼리 운영하는 종계에서 곡식을 내어준 것이었다.

사실을 알게 된 최흥원은 친척들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감사했다. 이 친척들은 집안의 종손이라 하여 최흥원의 집을 신경 써준 것이리라. 그러나 최흥원은 이 곡식을 받지 않기로 하였다. 사적인 일에 종계의 곡식을 축내다 보면, 애써 만든 종계의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리라. 최흥원은 이러한 뜻을 친지 어른들에게 간곡히 설명하며 마음만 받겠노라 이야기하였다. 비록 곡식은 물렸지만, 여러모로 마음이 따뜻한 어머니의 생일이었다.

“감사가 향약을 시행하도록 명하다”

김령, 계암일록(溪巖日錄),
1635년 3월 5일

1635년 3월 5일, 잠깐 비가 내리다가 종일 흐린 날이 계속되었다. 얼마 전 예조에서 전국에 향약을 시행하는 것을 건의하였다고 한다. 주상의 재가를 얻어 경상도 감사가 주와 현에 반포하여 각 고을마다 향약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인근 고을 현풍에서는 수령 김세렴(金世濂)이 이미 예전부터 시행해왔던 것인데, 여씨향약과 주자향약, 퇴계 선생이 정한 향약을 아울러서 향약의 약법을 만들었고, 그 내용 중에는 율곡 이이의 향약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 향교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옛 규례를 취하고, 거기에다가 『소학』의 훈계를 추가하여 이름을 학규(學規)라고 지었다. 이 학규는 향교 제생들에게 시행하게 하였다.

예조에서 명이 내려오자 감사가 현풍의 향약과 향규를 가지고 경상도 고을 모두에 반포하였다. 예안 현감인 남연(南碝)은 평소 향약을 매우 싫어하였는데, 지금은 나라에서 시행하는 것이니 막거나 무너뜨릴 수가 없게 되었다. 참으로 웃을 만한 일이었다. 예안 고을 내의 간악한 무리들 모두 향약을 불편하게 여겨 온갖 방법으로 소란을 피워댔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나라에서 법으로 권면하는 것을. 이 간악한 자들이 그들 뜻을 펼 수 없게 되었으니, 더더욱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김령은 아무쪼록 향약이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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